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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무엇이 보이는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제야 막 감을 잡아가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나는 지금까지 사라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떻게 보자면, ‘섞였다’라고 하는 것도 맞는 말일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나와 사라의 관계는 그것보다도 한층 더 가까웠다.

        

       사라의 안에서, 사라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옆에서 직접 볼 수 있었으니까.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그저 사라의 과거뿐이었지만—

        

       ……결국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언제나 과거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짧은 시간, 1시간, 30분, 5분, 혹은 1초, 아니면 그보다 더 작은 시간이라도, 사람이 받아들이고 기억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사람의 기억이다.

        

       그러니, 내가 사라의 기억, 그러니까 ‘생각’을 읽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계속 거슬러 올라가, 한없이 현재와 비슷한 수준까지.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라의 마음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비록 20년이 채 되지 않는 삶을 산 아이의 삶이라도, 그리고 그 삶의 안에서 일상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었더라도, 그 모든 기억, 잠재의식 아래에 깔린 모든 과거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치 아무런 정리도 되지 않고 책을 꽂아둔 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최대한 요즘 나온 책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았다.

        

       하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시간이 무척 많았다.

        

       사라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자는 셈이었으니까. 그 ‘자는 시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사라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사라는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는 사라의 의식 속이고, 원래의 주인도 사라였으니, 만약 사라가 자기 생각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면 내가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사라가 조금 수상했다.

        

       이런 말을 내가 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다녀왔어.”

        

       내 옆에 앉아있던 사라가 불쑥 말을 걸었다.

        

       나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말이 멎어버려서, 나는 벌써 아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곧장 돌아온 것을 보면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잠깐 물 좀 마시고 돌아왔어.”

        

       물만 마시고 돌아왔다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린 것 같기도 하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라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서 나를 속이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일부러 말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 하나로도, 사라의 의식 안에 있을 뿐인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사라가 이야기해주는 일상은 너무나 평화롭고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사라의 말대로 모든 것이 평화롭고 잘 돌아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사라의 과거를 조사하는 경찰들이 있고, 사라를 걱정하는 공무원도 있다. 그 사람들이 최나경을 건드리진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최나경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사라가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할까?

        

       “히힛.”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안겨 온다.

        

       의식 안에서도 사라의 몸이 따뜻하다는 것은 느껴졌다. 물론 진짜로 느낀다기보다는, 나도 사라도 그렇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에 가깝겠지만.

        

       현실에서처럼 섬세한 감각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먼 곳의 온기를 느끼는 것 같은, 다소 둔중한 감각을 느낄 수는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사라의 의식 일부나 다름이 없어서, 아마 사라와 어느 정도 감각이 겹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함께 끌어안고 있으면 그 감각은 더욱 빠르게 가까워졌다.

        

       어쩌면 사라가 나에게 이렇게 필사적으로 안기고 있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

        

       안쓰럽다.

        

       자신을 이렇게 안아줄 사람이 없어서, 평생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 이렇게 매달리는 거겠지.

        

       나는 말없이 사라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

        

       사라는 아무 말도 없이 나의 품에 안겨 있었다.

        

       사라는 이곳에 올 때마다 ‘돌아왔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건 그저 나를 위해서 그렇게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계속 여기에 있고 싶다…….”

        

       사라가 작게 그렇게 말했다.

        

       “누구나 한 번 잠자리에 들면 계속 자고 싶다고 생각하는 법이니까.”

        

       내가 그렇게 대꾸하자, 사라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사라는 몹시 귀여웠다.

        

       그런 사라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내가 그런 것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렇구나.”

        

       그런 말을 진심으로 하는 사라를 보고, 나는 반드시 사라의 기억을 따라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최나경에게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은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있긴 했지만, 어른이 되면서 고쳤다. 이빨로 손톱을 뜯으면 결국 한동안 좋지 않은 모양으로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나쁜 인상을 심어주는지도 알았으니까.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물어뜯은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다.

        

       손톱을 치장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있다. 남들에게 말로 하지 못할 이유이기는 했지만.

        

       손톱을 길게 기르고, 거기 색칠하고 다니면, 나중에 꼭 필요해졌을 때 상대를 상처입힐까 봐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될 테니까.

        

       언제나 손톱 끝을 가다듬고, 상대방을 부드럽게 만져줄 수 있도록 준비해둔다.

        

       특히, 사람의 특정한 신체 부위는 유독 약하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언제나,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지내던 최나경이었지만.

        

       “…….”

        

       지금은 그런 자기 손톱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물어뜯고 싶어서, 라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그 손톱을,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의 목덜미에 꽂아 넣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사라와는 만나보셨습니까?”

        

       “…….”

        

       마주 앉아있는 상대가 최나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시야 한구석으로 그걸 느꼈지만, 최나경은 여전히 자기 손톱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대답하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대신 말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씀을……?”

        

       “사라는 지금 회장님께서 마련해주신 저택에 없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 저택도 회장님께서 마련해주셨다기보다는 사라 본인의 재산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

        

       “저택에 한참 동안 불이 꺼져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방 하나에만 꾸준히 불이 들어오고 있는데, 그게 사라의 방은 아니라는 것도.”

        

       사라의 방은 저택의 안쪽에 존재했다. 외부에서 사라를 최대한 보지 못하게 하고 싶은 최나경의 욕망이 반영된 배치였다.

        

       “저택에 있던 사용인은 거의 해고당하고, 경비는 기존의 사용인이 아닌 사설 경비업체와 제휴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에서는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 저택은 개인의 소유이긴 해도, 동시에 등록문화재이기도 하니까요.”

        

       그는 그런 긴말을 하고서도, 굳이 목을 축이지 않았다.

        

       “자세히도 알고 계시네요.”

        

       최나경이 시선을 들어 올리며 한껏 비꼬아 쏘아붙였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희도 알아내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이번에도 그 이름 모를 제보자 덕분인가요?”

        

       “그분의 도움도 있었고, 저택에 남은 사용인과 연락이 닿은 것도 있습니다.”

        

       “…….”

        

       “대체 사라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알면서 떠보는 걸까?

        

       ……아니, 저들도 모른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지금이 아니라 진작에 그걸 빌미로 나섰을 테니까.

        

       그러니까, 정작 이 인간들도 사라를 겉으로만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사라에게는 어떤 관심도 주지 않았던 주제에, 이렇게 빌미가 생기니 마구 달려드는 것을 보면.

        

       “저와 사라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가족 간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라의 진짜 가족을 데리고 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진짜 가족이라뇨?”

        

       최나경은 순간 그대로 격분할 뻔했지만, 일단 침착하게 그렇게 물었다. 이 인간의 말에 하나하나 화를 내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회장님께서 사라의 어머니이시니, 지금까지 이야기는 없었습니다만.”

        

       이사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으며 말했다.

        

       “사라의 친척들은 많이 있으니까요.”

        

       “그 친척들이, 저보다 사라와 가깝다는 말씀이신가요?”

        

       “필요하다면 맡아줄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

        

       최나경은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이사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그저 그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회장님께서 사라와 진짜 가족이라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저희가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면 저희도 물러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

        

       으드득, 최나경이 이를 악물자 그런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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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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