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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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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크로맨서가 제스와 아이리스에게 탈탈 털리고 있을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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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m 정도 깊게 파인 구덩이 안에 노아가 숨을 헐떡이며 피투성이가 된 제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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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하악…”
    ​
    ​
    불안과 공포, 초조함 따위의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숨이 거칠게 쉬어졌다. 온몸이 얼음물에 담가진 것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
    ​
    단정했던 머리는 잔뜩 흐트러진 상태였고, 볼에는 마른 눈물 자국과 흙이 묻어있었다. 입술을 몇 번이고 깨문 탓에 다 터져 핏물이 아롱거렸다. 
    ​
    ​
    “흐으…흐…”
    ​
    ​
    애달픈 울음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스며 나오고 노아의 등이 앞으로 둥글게 말렸다. 비참함과 죄악감이 그녀의 등을 훑어내렸다.
    ​
    ​
    평화에 익숙해져 잊고 있던 잔혹한 기억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에 떠올라 잔혹하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미 늦어버린 후회가 자비 없이 숨통을 조여왔다.
    ​
    ​
    “…”
    ​
    ​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손톱이 다 깨져라 땅을 파내지도 신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에 스산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
    ​
    텁.
    ​
    ​
    피로 얼룩진 두 손이 나무뿌리, 돌이 섞인 바닥을 짚었다.
    ​
    ​
    “흐..”
    ​
    ​
    그녀는 짧은 신음을 뱉으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롱하게 반짝이던 녹안은 탁하게 가라앉은 채 위험하게 번뜩였다.
    ​
    ​
    카르디샨에 머물던 시절이었다면 노아는 그저 절망을 끝없이 곱씹으며 스스로를 지옥으로 끌어내렸을 것이다. 어쩌면 극도로 불안해져 스스로를 해하려 했을지도 몰랐다.
    ​
    ​
    노아는 그런 행위가 제 죄악감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더 이상 그녀는 눈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던 멍청이가 아니었다.
    ​
    ​
    참수대의 칼날처럼 땅바닥을 바라보던 시선이 천천히 허공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
    ​
    쿠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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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덩이 바깥에 있던 나무들이 태풍을 맞이한 것처럼 거칠게 흔들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노아의 마력이 숲 전체에 퍼져나갔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주변에 있는 모든 정보를 샅샅이 살펴 노아에게 전해주었다.
    ​
    ​
    ‘…원인을 찾아야 해.’
    ​
    ​
    분노가 치밀수록, 절망이 깊을수록 머리는 차갑게 식혀야 이성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항상 리안 앞에서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원칙이 오늘에서야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
    ​
    노아는 빠르게 머릿속 정보를 정리해나갔다.
    ​
    ​
    처음 땅을 헤집을 때만 해도 노아는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식물형 몬스터 ‘라플’을 미끼로 사용했고, ‘라플’은 인간의 모습을 본뜬 ‘무언가’를 미끼로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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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지 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눈앞에서 리안을 잃은 노아에겐 한 줌의 이성도 남아있지 않아 알아차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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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 전체를 지배하는 무언가가 있어. 그것이 리안을 삼켜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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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 한점 묻어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위로 살기가 흘러내렸다. 무기질적인 시선이 도르륵 굴러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한계까지 마력을 끄집어낸 덕분에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숲을 집어삼킨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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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살이 쏘아지는 것보다 빠르게 퍼져나간 마력은 네로와 릴리가 기사 몇몇과 무리 지어 움직이는 모습이나, 대화를 나누다 이질적인 노아의 마력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제스와 아이리스의 모습,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레인저의 모습 따위를 전부 잡아냈다.
    ​
    ​
    노아는 오로지 리안을 구하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찬 상태라, 다른 사람들의 기척을 무시한 채 더 멀리 기운을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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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숲을 전부 집어삼켰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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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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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퍼져나간 기운 끝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적한 기운이 잡혔다. 마치 부패한 시체의 벌레처럼 구역질이 나는 끔찍한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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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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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의 눈동자가 서슬 퍼렇게 일렁이고.
    ​
    ​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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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덩이를 가볍게 뛰쳐나와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녀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무를 보며 갈라져 피가 흐르는 입술을 재차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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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리안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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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는 제때 힘을 사용하지 못해 리안을 잃은 거라 생각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현재 노아가 막대한 양의 마력을 끌어다 사용할 수 있는 건 반쯤 폭주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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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줌의 이성과 죄악감으로 머릿속이 점령된 노아는 끝없이 자책하며 분노를 키워갔다. 폭주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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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쿠웅!
   
    ​
    그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나무가 쓰러지고, 수풀이 으스러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점점 안개가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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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의 주인이 머무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정신을 어지럽히는 안개가 짙어졌다. 노아는 마력으로 주변 안개를 날려버리며 숨을 참은 채 계속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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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지직…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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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크로맨서가 펼쳐놓은 방어막이 그녀의 발걸음을 막았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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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개를 뚫고 지나가자 탁 트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붉은색으로 물든 커다란 호수와 그 위에 서 있는 기이한 존재였다.
    ​
    ​
    “킷…그륵?”
    ​
    ​
    그것 -… 순록의 형태를 닮은 숲의 주인은 기괴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복잡하게 갈라져 솟아난 거대한 뿔은 벌레가 갉아먹은 것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었고, 그 아래 연결된 머리는 반이 썩어 머리뼈 반이 드러나 있었다.
    ​
    ​
    등은 전부 녹아내린 것처럼 썩어있었고 다리는 멀쩡하게 가죽과 털로 덮여있었다. 텅 빈 머리와 등 쪽에는 끈적한 마기가 넘쳐흘렀다. 
    ​
    ​
    카르디샨에서 마기를 가진 이들과 자주 마주했던 노아조차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질이 나쁜 마기였다.
    ​
    ​
    등과 얼굴에서 흘러넘친 부패한 마기는 호수에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기괴한 꼴도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했지만, 그보다 더한 공포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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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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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을 오랜 시간 지켜왔던 영물은 오랜 시간 살아왔던 만큼 위엄이나 신성함이 흘러넘치는 존재였다. 그 위엄과 신성함은 타락한 이후 위압감과 괴이함으로 변질되었다.
    ​
    ​
    인간과 격이 다른 존재가 내뿜는 기운은 평범한 이라면 패닉에 잠기거나 심장 마비로 쇼크사 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노아 또한 얼굴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였다.
    ​
    ​
    본능과 이성이 동시에 외쳤다. 어서 이곳에서 도망치라고, 저 불쾌하고 끔찍한 것에게서 멀어져야 한다고!
    ​
    ​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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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는 기꺼이 제 본능과 이성을 짓누른 채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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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을…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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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달려 나가는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마력을 두른 발이 호수 위를 땅을 밟듯이 밀어냈다. 호수가 마기를 가득 머금은 덕분에 적은 마력으로도 호수 위를 달릴 수 있었다.
    ​
    ​
    마력으로 번들거리는 검이 숲 주인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숲의 주인은 미끄러지듯 뒤로 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긴 불가능했다. 
    ​
    ​
    우드득.
    ​
    ​
    숲 주인의 목이 기괴하게 옆으로 꺾여 매섭게 달려드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
    ​
    촤아악!
    ​
    ​
    가죽이 벗겨진 등과 머리에서 불쾌한 마기가 호수에 거대한 돌을 떨어뜨린 것처럼 치솟아 올랐다. 노아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이를 악문 채 압도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숲의 주인을 똑바로 마주했다.
    ​
    ​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
    ​
    한 편 그 시각 리안은 공작과 함께 지하를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
    ​
    “천장을 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네요.”
    “…당장은 그 방법밖에 없겠지.”
    ​
    ​
    공작은 혼란스러운 기색을 애써 숨기며 리안의 말에 겨우 대답을 내놓았다. 
    ​
    ​
    “끙… 무너질 수 있으니 함부로 뚫어볼 수도 없고…아, 한 잔 더 드실래요?”
    “부,탁하지.”
    ​
    ​
    쪼르르륵.
    ​
    ​
    리안이 가방에서 꺼낸 새하얀 티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견고한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의자는 꽤 고급품인지 좋은 향기가 났으며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
    ​
    테이블 위에는 고풍스러운 찻잔과 찻주전자가 놓여있었는데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는 고소한 차가 우려져 있었다.
    ​
    ​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야. 거기다 꽤 상등품. 도대체 이런 차를 어디서 구한 거지?’
    ​
    ​
    리안이 개그 필터를 사용해 소환한 보리차였을 뿐이지만, 한 번도 구수한 차를 맛본 적 없었던 공작에겐 충격적인 맛이었다.
    ​
    ​
    ‘대체 왜 계속 손이 가는 거지? 그보다… 저 가방은 얼마나 값비싼 가방이기에 저리 많은 물건이 들어가는 거고?’
    ​
    ​
    공간 확장 가방은 시중에 꽤 흔하게 구할 수 있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내부 공간이 크면 클수록 그 값이 천문학적으로 높아졌는데 -… 리안의 가방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온갖 물건이 쏟아졌다.
    ​
    ​
    어느새 지하 공간은 꽤 번듯한 야영지가 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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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삼일 밤새다가 반쯤 기절해버려서 늦어졌습니다 .. ㅠㅠ

뚝딱뚝딱 다음편 가져오겠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네크로맨서가 제스와 아이리스에게 탈탈 털리고 있을 시점.

약 3m 정도 깊게 파인 구덩이 안에 노아가 숨을 헐떡이며 피투성이가 된 제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학,하악…”

불안과 공포, 초조함 따위의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숨이 거칠게 쉬어졌다. 온몸이 얼음물에 담가진 것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단정했던 머리는 잔뜩 흐트러진 상태였고, 볼에는 마른 눈물 자국과 흙이 묻어있었다. 입술을 몇 번이고 깨문 탓에 다 터져 핏물이 아롱거렸다.

“흐으…흐…”

애달픈 울음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스며 나오고 노아의 등이 앞으로 둥글게 말렸다. 비참함과 죄악감이 그녀의 등을 훑어내렸다.

평화에 익숙해져 잊고 있던 잔혹한 기억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에 떠올라 잔혹하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미 늦어버린 후회가 자비 없이 숨통을 조여왔다.

“…”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손톱이 다 깨져라 땅을 파내지도 신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에 스산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텁.

피로 얼룩진 두 손이 나무뿌리, 돌이 섞인 바닥을 짚었다.

“흐..”

그녀는 짧은 신음을 뱉으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롱하게 반짝이던 녹안은 탁하게 가라앉은 채 위험하게 번뜩였다.

카르디샨에 머물던 시절이었다면 노아는 그저 절망을 끝없이 곱씹으며 스스로를 지옥으로 끌어내렸을 것이다. 어쩌면 극도로 불안해져 스스로를 해하려 했을지도 몰랐다.

노아는 그런 행위가 제 죄악감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더 이상 그녀는 눈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던 멍청이가 아니었다.

참수대의 칼날처럼 땅바닥을 바라보던 시선이 천천히 허공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쿠웅 -..

구덩이 바깥에 있던 나무들이 태풍을 맞이한 것처럼 거칠게 흔들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노아의 마력이 숲 전체에 퍼져나갔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주변에 있는 모든 정보를 샅샅이 살펴 노아에게 전해주었다.

‘…원인을 찾아야 해.’

분노가 치밀수록, 절망이 깊을수록 머리는 차갑게 식혀야 이성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항상 리안 앞에서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원칙이 오늘에서야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노아는 빠르게 머릿속 정보를 정리해나갔다.

처음 땅을 헤집을 때만 해도 노아는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식물형 몬스터 ‘라플’을 미끼로 사용했고, ‘라플’은 인간의 모습을 본뜬 ‘무언가’를 미끼로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지 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눈앞에서 리안을 잃은 노아에겐 한 줌의 이성도 남아있지 않아 알아차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숲 전체를 지배하는 무언가가 있어. 그것이 리안을 삼켜버린 거야.’

감정 한점 묻어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위로 살기가 흘러내렸다. 무기질적인 시선이 도르륵 굴러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한계까지 마력을 끄집어낸 덕분에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숲을 집어삼킨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했다.

화살이 쏘아지는 것보다 빠르게 퍼져나간 마력은 네로와 릴리가 기사 몇몇과 무리 지어 움직이는 모습이나, 대화를 나누다 이질적인 노아의 마력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제스와 아이리스의 모습,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레인저의 모습 따위를 전부 잡아냈다.

노아는 오로지 리안을 구하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찬 상태라, 다른 사람들의 기척을 무시한 채 더 멀리 기운을 날려 보냈다.

거의 숲을 전부 집어삼켰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쿠웅!

“…!”

퍼져나간 기운 끝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적한 기운이 잡혔다. 마치 부패한 시체의 벌레처럼 구역질이 나는 끔찍한 기운이었다.

“…찾았다.”

노아의 눈동자가 서슬 퍼렇게 일렁이고.

콰앙!

구덩이를 가볍게 뛰쳐나와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녀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무를 보며 갈라져 피가 흐르는 입술을 재차 깨물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리안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노아는 제때 힘을 사용하지 못해 리안을 잃은 거라 생각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현재 노아가 막대한 양의 마력을 끌어다 사용할 수 있는 건 반쯤 폭주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줌의 이성과 죄악감으로 머릿속이 점령된 노아는 끝없이 자책하며 분노를 키워갔다. 폭주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다.

쿵! 쿠웅!

그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나무가 쓰러지고, 수풀이 으스러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점점 안개가 짙어졌다.

숲의 주인이 머무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정신을 어지럽히는 안개가 짙어졌다. 노아는 마력으로 주변 안개를 날려버리며 숨을 참은 채 계속 달려 나갔다.

치지직…콰직!

네크로맨서가 펼쳐놓은 방어막이 그녀의 발걸음을 막았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안개를 뚫고 지나가자 탁 트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붉은색으로 물든 커다란 호수와 그 위에 서 있는 기이한 존재였다.

“킷…그륵?”

그것 -… 순록의 형태를 닮은 숲의 주인은 기괴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복잡하게 갈라져 솟아난 거대한 뿔은 벌레가 갉아먹은 것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었고, 그 아래 연결된 머리는 반이 썩어 머리뼈 반이 드러나 있었다.

등은 전부 녹아내린 것처럼 썩어있었고 다리는 멀쩡하게 가죽과 털로 덮여있었다. 텅 빈 머리와 등 쪽에는 끈적한 마기가 넘쳐흘렀다.

카르디샨에서 마기를 가진 이들과 자주 마주했던 노아조차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질이 나쁜 마기였다.

등과 얼굴에서 흘러넘친 부패한 마기는 호수에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기괴한 꼴도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했지만, 그보다 더한 공포는 따로 있었다.

“크르르륵..”

숲을 오랜 시간 지켜왔던 영물은 오랜 시간 살아왔던 만큼 위엄이나 신성함이 흘러넘치는 존재였다. 그 위엄과 신성함은 타락한 이후 위압감과 괴이함으로 변질되었다.

인간과 격이 다른 존재가 내뿜는 기운은 평범한 이라면 패닉에 잠기거나 심장 마비로 쇼크사 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노아 또한 얼굴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였다.

본능과 이성이 동시에 외쳤다. 어서 이곳에서 도망치라고, 저 불쾌하고 끔찍한 것에게서 멀어져야 한다고!

“…돌려줘.”

노아는 기꺼이 제 본능과 이성을 짓누른 채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리안을…돌려줘!”

앞으로 달려 나가는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마력을 두른 발이 호수 위를 땅을 밟듯이 밀어냈다. 호수가 마기를 가득 머금은 덕분에 적은 마력으로도 호수 위를 달릴 수 있었다.

마력으로 번들거리는 검이 숲 주인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숲의 주인은 미끄러지듯 뒤로 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긴 불가능했다.

우드득.

숲 주인의 목이 기괴하게 옆으로 꺾여 매섭게 달려드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촤아악!

가죽이 벗겨진 등과 머리에서 불쾌한 마기가 호수에 거대한 돌을 떨어뜨린 것처럼 치솟아 올랐다. 노아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이를 악문 채 압도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숲의 주인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

한 편 그 시각 리안은 공작과 함께 지하를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천장을 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네요.”

“…당장은 그 방법밖에 없겠지.”

공작은 혼란스러운 기색을 애써 숨기며 리안의 말에 겨우 대답을 내놓았다.

“끙… 무너질 수 있으니 함부로 뚫어볼 수도 없고…아, 한 잔 더 드실래요?”

“부,탁하지.”

쪼르르륵.

리안이 가방에서 꺼낸 새하얀 티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견고한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의자는 꽤 고급품인지 좋은 향기가 났으며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고풍스러운 찻잔과 찻주전자가 놓여있었는데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는 고소한 차가 우려져 있었다.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야. 거기다 꽤 상등품. 도대체 이런 차를 어디서 구한 거지?’

리안이 개그 필터를 사용해 소환한 보리차였을 뿐이지만, 한 번도 구수한 차를 맛본 적 없었던 공작에겐 충격적인 맛이었다.

‘대체 왜 계속 손이 가는 거지? 그보다… 저 가방은 얼마나 값비싼 가방이기에 저리 많은 물건이 들어가는 거고?’

공간 확장 가방은 시중에 꽤 흔하게 구할 수 있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내부 공간이 크면 클수록 그 값이 천문학적으로 높아졌는데 -… 리안의 가방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온갖 물건이 쏟아졌다.

어느새 지하 공간은 꽤 번듯한 야영지가 된 상태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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