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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몰아친 흑염의 폭풍 앞.

   크라슈가 검을 쥔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멸화수라의 10초와 순간 강화 영약을 이용해 도달한 멸천수라.

     

   저번에도 느꼈지만, 그 대가가 몸에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엄청난 정신력으로 정신의 끈을 꽉 붙잡았다.

   그럼과 함께 녹스와 눈인형을 동시에 일으켜 천살성과 광증을 강제로 억눌렀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전에서 응용해야 하는 거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쓰러져서는 안 된다.

   언젠가 결국 전쟁이 터지고, 그게 장기화한다면 단발성 각성은 위험했으니까.

     

   그러니 크라슈는 단 한 번이라도 실전을 더 쌓을 수 있을 때 버티고자 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반쯤 감긴 크라슈의 눈이 번뜩이며 앞을 향했다.

     

   그럼과 동시에 흑염 속에서 칼 한 자루가 크라슈의 머리를 향해 똑바로 밀어 들어왔다.

     

   혈라사도.

   광도제가 사용하는 검이었다.

     

   크라슈가 우뢰성을 급히 일으키며 다시금 검을 들려 했을 때.

     

   콰앙, 쾅, 콰앙!

     

   크라슈의 눈앞에 거대한 검들이 일제히 꽂히며 혈라사도를 강제로 제지했다.

     

   그 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제왕섬멸검.

   검왕 라이 발하임의 비술이었다.

     

   그런 제왕섬멸검의 너머 광도제의 얼굴이 보였다.

   한쪽 팔이 너덜거린 채로 몸 절반 이상이 화상을 입고, 구멍 난 곳에서 핏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녀석을 말이다.

     

   놈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이글 차올라 있었다.

   지금 자신이 이 꼴을 당했다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눈이었다.

     

   그럼에도 놈의 눈은 분노로 잠식되기보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본인도 아는 것이다.

     

   이 상태로 라이와 세나가 협공한다면 놈도 별수 없다는 걸 말이다.

     

   심지어 잠재적 위험인 에벨아스크를 시작해.

   무엇보다 자기 팔과 몸을 이 꼴로 만든 크라슈가 있었다.

     

   광도제에게 현재 가장 위험인물은 다름 아닌 크라슈였다.

     

   왜냐하면 그는 크라슈가 한계임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크라슈는 몸이 한계임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며 우뢰성을 들어 올렸다.

   그것만으로 광도제의 눈이 와락 일그러지며 몸이 수축했다.

     

   방금전 당한 공격을 몸이 기억한다는 증거였다.

     

   “……넌 누구지? 세계 침식자 중에 너 같은 놈이 있다는 건 못 들어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에벨아스크와 무장공주 때처럼 광도제는 크라슈를 세계 침식자로 인식했다.

     

   그의 경계 섞인 눈을 보며 크라슈는 속으로 어이없이 웃었다.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는 처음부터 생각도 안 했다.

     

   ‘하지만 못해도 바로 움직이지 못하게 될 정도는 망가트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크라슈는 멸천수라까지 쓰며 전심전력을 쏟았다.

   하지만 그런 전력을 쏟았음에도 저쪽은 쓰러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애초에 하링의 인비저블이나 세나가 없었으면 놈을 저 꼴로 만들 수도 없었을 거다.

     

   반드시 피했었겠지.

     

   ‘애초에 팔 쪽도 원래는 목을 노린 거였으니까.’

     

   순전히 무언가 느낌이 안 좋다는 감 하나로 광도제는 인비저블을 간파하고, 피한 것이다.

   이래서 세계 침식자랑 싸우는 건 싫다.

     

   이것들은 하나 같이 괴물 같으니까 말이다.

     

   새삼 세계 침식자와의 격차를 느꼈다.

     

   아직.

   아직도 한참 멀었다.

     

   여기서 더 강해져야만 했다.

     

   크라슈의 눈에 불이 붙듯 빛났다.

     

   세상에는 광도제 같은 놈들이 끝도 없이 존재한다.

   거기에다가 세계 침식이 번져 탄생할 최흉도 있다.

     

   그러한 최흉은 창공의 세대조차도 죄다 죽어 나가던 지옥도였다.

     

   멸망을 막기 위해 그런 곳을 막아야 하는 것이 크라슈의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그 의지에 불이 붙듯 타올랐다.

     

   “크라슈!”

     

   뒤늦게 물러서 있던 하링이 달려와 그의 곁에 섰다.

   그녀는 크라슈를 지키듯 비수를 든 채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은 분노였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에 비친 광도제는 그날의 기억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뛰쳐나가지 않았다.

   크라슈에게 분노에 휘감겨 뛰쳐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괜찮냐.”

     

   크라슈가 태연한 척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러자 하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그렌 가문 사건 때 오빠가 살해당한 이유는 광도제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아까 약속했으니까.”

     

   아까 전 크라슈에게 진정한 이후로 하링은 몇 번이고 이 상황을 곱씹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원한을 다스리겠다고 말이다.

     

   그래야만 크라슈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다.

   그러니 그가 있다면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라슈가 한 방 먹여줬어.”

     

   하링의 두 눈이 광도제의 팔을 노려보며 빛났다.

   조금이나마 복수에 가담할 수 있었던 것에 그녀는 미약한 만족을 보였다.

     

   평생토록 원망한 광도제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래, 복수에 눈이 멀지 않으면 됐다.”

     

   크라슈는 살아오며 수많은 복수 귀를 보아왔다.

   저 정도 컨트롤이라면 하링은 자신 없이도 잘 헤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다시금 광도제가 움직일 낌새가 보이자 제왕섬멸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를 묶어두듯 검들이 내려치자 광도제는 급히 회피에 몰두했다.

     

   아무리 광도제라도 세나의 공격에다가 크라슈의 일격까지 정면으로 당했다.

   놈의 몸 상태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 증거로 놈의 몸은 분명 이전보다 굼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몰아넣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크라슈.”

     

   어느샌가 다가온 라이가 크라슈를 불렀다.

   크라슈는 몰아치는 제왕섬멸검을 바라보며 라이를 말렸다.

     

   “라이 형님, 광도제랑 더 싸우면 안 됩니다.”

   “그 말은?”

   “그가 일으킨 세계 침식은 그가 강자와 싸우면 싸울수록 더 강해지는 특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 침식의 힘은 지금도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하덴하르츠는 위기라는 소리였다.

     

   라이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 또한 이 사실은 크라슈가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덴하르츠에는 일검이 있다.”

     

   라이의 두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놈들이라면 문제없다.”

     

   그 말은 즉, 광도제와 계속 싸울 거라는 소리였다.

     

   “아뇨. 문제 있을 겁니다. 일검이 주인을 감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덴하르츠가 세계 침식을 감당 못 하게 될 테니까요.”

     

   크라슈는 라이의 말을 부정했다.

   일검이 전력을 다하면 다할수록 하덴하르츠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거다.

     

   게다가 세계 침식은 주인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일반 침식종까지 강해져 버린다면 그건 오로지 하덴하르츠의 주민들이 감당해야만 한다.

     

   “게다가 저놈 곧 튈 겁니다.”

   “……도망친다고?”

   “예, 어쨌거나 목적은 이뤘으니까요. 저놈과 같은 팀이었던 밤까마귀 수장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라이의 눈빛이 미묘해졌다.

   그야, 조금 전 선언은 크라슈가 세계 침식자와 관련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독단적으로 움직인 건 그걸 위해서였나.”

     

   그리고 아무래도 라이는 크라슈가 혼자서 먼저 하덴하르츠 본관을 떠난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라이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크라슈는 라이와 그렇게까지 연이 있는 사이는 아니다.

     

   단지, 라이라는 이의 성격은 안다.

     

   그는 실속을 챙기는 데 중점을 맞춘다.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실속을 챙길 수 있다면 선뜻 그에 응한다.

     

   그것이 라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일부러 이 사실을 직접 알린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크라슈는 자신이 한 이야기에 확신을 보였다.

     

   광도제는 강자랑 싸우는 걸 즐긴다.

   그러나 저놈은 거기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광도제는 그 모순된 점이 짜증 난다는 거다.

   강자랑 싸우는 걸 즐기는 주제에 정작 죽을 위기가 들면 대뜸 도망쳐버리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그때도 끈질기게 살아남았지.’

     

   매번 세계 침식을 터트리고 줄기차게 도망가는 건 징글 맞을 정도다.

     

   게다가 놈의 뒤에는 흑마녀가 있다.

   흑마녀가 놈을 자기 독립 공간으로 데려가 버리면 끝장이다.

     

   하지만 크라슈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기회였다.

   크라슈는 반드시 흑마녀의 눈을 묶어 둘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놈을 끝내는 수단 하나만 있으면 된다.

     

   ‘내 출력은 모자라.’

     

   크라슈의 시선이 라이에게 닿았다.

     

   “라이 형님.”

     

   크라슈는 우뢰성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멸천수라를 쓴 대가인지 그것만으로 팔이 후들거렸다.

     

   허세 부리기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가주님께 받은 게 있지 않습니까.”

     

   크라슈가 태어났을 때쯤에 라이가 가주에게 하사받은 검이 하나 있다.

   그거라면 가능하다.

     

   라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크라슈가 그것을 어떻게 아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라이의 눈빛은 곧 사그라들었다.

   그는 무엇이든 길게 캐묻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씁시다.”

     

   지금 찬 거 더운 거 가릴 처지가 아니다.

   여기서 광도제를 놓치면 언제 잡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 검은 아직 미완성이다.”

     

   크라슈가 태어났을 적에 받았음에도 아직도 미완성인 검.

   그만큼 완성하기가 까다로운 검이기도 했다.

     

   “그래도 쓸 수는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그 파괴력만큼은 발군임을 크라슈는 두 눈으로 보아 알고 있었다.

     

   라이가 크라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작해야 15살.

   그것도 발하임의 막내였고, 이전까지 반푼이라는 소문까지 있었던 크라슈다.

     

   둘째인 릴리쉬보다도 가족을 향한 애정이 전혀 없던 라이는 가족을 아낀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그런 라이이기에 그는 순수하게 크라슈라는 전력을 이 자리에서 판단했다.

     

   그의 힘이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는 게 보이긴 하나 방금전 보여준 출력은 라이도 상당히 놀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샬롯만큼은 아니어도 검왕이라는 이름을 날릴 만큼 천재라 불리는 그조차 15살에 그런 출력은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크라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전력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당연하지만 고민할 것도 없었다.

     

   크라슈는 발하임의 직계다.

   발하임은 고작해야 나이와 자리에 연연하여 인재 등용을 등한시할 만큼 멍청한 가문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묶어라.”

     

   크라슈와 같은 색깔을 지닌 라이의 두 눈이 광도제를 향해 번들거렸다.

     

   “그럼 끝내주마.”

     

   이 자리에서 가장 믿음직한 그 말에 크라슈가 미소를 그렸다.

     

   “하링, 적호단 좀 줘.”

     

   크라슈가 하링에게 손을 뻗었다.

   하링은 크라슈를 마지못해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적호단을 절대 주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원수인 광도제가 저기에 있다고는 하나 크라슈가 힘든 모습 또한 보고 싶지 않은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독단의 주머니를 열었다.

     

   “크라슈.”

     

   그러면서 그의 손에 적호단을 쥐여주며 말했다.

     

   “이기자.”

     

   자신의 개인 복수가 아닌 그저 순순히 크라슈와 함께 승리를 외치는 하링의 눈은 어느 때보다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크라슈는 가볍게 웃음 지으며 적호단을 입에 던져 넣었다.

     

   “당연한 소리를.”

     

   하링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에게 있어 세상 누구보다 믿음직한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 감당 가능하겠느냐? ]

     

   그러는 순간 크라슈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크림슨가든이 마음에 걸린다는 투로 말을 걸어왔다.

     

   “감당하려고 여기까지 왔잖냐.”

     

   까득!

     

   크라슈가 적호단을 깨물어 삼켰다.

   그러자 멸천수라에 의해 삐걱거리던 몸에서 다시 활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한계에 내몰리고 있던 몸이 잠시나마 생기를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하링.”

     

   그러고는 하링을 부르자 그녀가 크라슈의 허리를 감싸며 섰다.

   인비저블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저번보다 더 뜨거울 거다.”

   “괜찮아. 뭐든 할 수 있어.”

     

   믿음직하군.

   크라슈가 세나 쪽을 보았다.

     

   그녀도 언제든 함께해 주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라이 형님, 도망치는 건 저희가 막겠습니다.”

     

   크라슈의 몸에서 흑염이 들끓기 시작했다.

   적호단을 통해 잠시나마 회복된 몸을 또다시 담금질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모습은 후에 있을 대가를 조금도 걱정 안 하는 모습이었다.

   크라슈는 광도제의 도주를 도울 흑마녀를 막을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그니스.’

     

   벨로킨이 샬롯에게 죽은 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크라슈의 형인 검왕, 라이 발하임의 아들이 12살 된 해.

   아들이 이그니스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아들을 익시온이 납치하고자 했던 대사건이 발하임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그때 발하임의 분노가 익시온을 향했고, 그 결과 벌어진 전면전에서 익시온이 택한 건 그야말로 최악의 수였다.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크라슈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그니스가 지닌 정화의 힘을 이용하면 세계 침식의 가장 순수한 힘을 뽑아낼 수 있다.

     

   신을 창조하려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그니스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스킬은 다름 아닌 크라슈에게 있었다.

     

   ‘반드시 걸려든다.’

     

   자신은 익시온을 낚을 최고의 미끼가 되어줄 수 있었다.

     

   [ 아주 몸뚱어리를 부순다. 부숴. ]

     

   크림슨가든조차 혀를 내두를 지독한 정신력이었다.

     

   “확실하게 몰아넣죠.”

     

   하링의 인비저블이 발동되며 크라슈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제 새까만 별을 떨어트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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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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