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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네르는 아르윈을 떠나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아르윈의 마지막 제안을 곱씹는다.

     

    베르그에게 선택권을 주자는 말.

     

     

    …그건 오히려 네르가 바랐던 대로였다.

     

    멜의 눈물에 대한 정보를 아는 그녀로서, 아르윈에게 패할리 없었다.

     

    베르그가 상처입을까 숨겨왔던 이야기였지만…이렇게 되면 상황이 많이 달라져버렸다.

     

     

    네르는 여태 이토록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항상 곁에 있으리라 믿었던 베르그와 이별할 수도 있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아르윈에게 자리를 빼앗겨, 멀리서 그 꼴을 지켜보기만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을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던 베르그.

     

    꼭 안아주었고, 유일하게 편이 되어주었던 그를 잃을 수 있을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네르는 걸음을 충분히 옮기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르윈은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네르는 걸음을 더 바삐 옮겨 베르그를 찾아나섰다.

     

     

    당장 베르그에게 멜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건 최후의 상황이 닥쳤을때만 할 이야기였으니.

     

     

    하지만 분명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다.

     

    그러니 네르는 점점 빠르게 내달렸다.

     

    베르그가 일전에 제 입을 막아, 하지못한 말이었지만…그녀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베르그의 곁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이혼을 하고 떠날 것인지.

     

    베르그가 입을 연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그러면 평생을 사랑해 줄게.’

     

    그 말을 하던 베르그의 모습도 떠올랐다.

     

    아르윈도 베르그의 곁에 남아있고 싶다 했을때는 당황했지만…기회라는 생각 또한 든다.

     

     

    베르그에게 평생을 사랑받을 기회였다. 욕심이 나지 않을수가 없다.

     

    그런 미래는 또 얼마나 달콤할까.

     

    가슴에서부터 이어지는 떨림에는 불안함과 기대감이 동시에 공존했다.

     

     

    최근 들어서는 더 깊은 관계까지 맺는 상상을 한다.

     

    그와 입을 맞추는건 어떤 느낌일까.

     

    혀를 비비는건 또 어떨까.

     

    …몸을 섞는건 또 어떤 행복을 줄까.

     

     

    이제야 완전한 부부가 될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아르윈도 베르그의 곁을 떠나게 될테니.

     

     

    네르는 순식간에 베르그의 뒷모습을 찾아냈다.

     

     

    저기, 그녀의 남편이 있었다.

     

     

    네르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몸을 날렸다.

     

     

    -팍!

     

    네르는 베르그의 등을 강하게 껴안았다.

     

    그 포옹을 예상하지 못한 베르그는 잠시 비틀대다, 뒤를 돌아보았다.

     

     

    “….네르?”

     

    네르는 베르그를 꽉 붙잡았다.

     

    “…난 이혼하기 싫어.”

     

    그녀가 속삭였다.

     

    “…”

     

    베르그는 그 말에 몸이 굳었다.

     

    네르는 거친 호흡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말을 했다.

     

    달려와서 호흡이 거친것인지, 베르그에게 마음을 밝히는게 익숙하지 않아 이러는 것인지, 혹은 아르윈과의 이야기로 불안했던 마음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난 네 곁에 남아있고 싶어…베르그.”

     

    굳어있던 베르그가 몸을 천천히 돌렸다.

     

    네르는 그를 살짝 풀어주어 베르그가 몸을 돌리게끔 해주었다.

     

    이내 그가 자신을 바라보니, 네르는 다시 그를 꽉 껴안았다.

     

    품에 얼굴을 묻어 부끄러운 표정을 숨긴다.

     

    그럼에도 마음을 밝히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베르그. 난 네 곁에 있을래.”

     

    “….네르.”

     

    따스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베르그.

     

    동시에 불안함이 녹아 사라진다.

     

    그의 존재가 얼만큼의 의미인지 또 실감한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속삭였다.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해봐.”

     

     

    네르는 그런 그의 배려가 항상 고마웠다.

     

    그는 그녀들을 보내주기 싫어했음에도. 남아주길 바란다고 부탁했음에도.

     

    자신들만큼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깊이 생각해준다.

     

     

    그 배려에 네르도 구원받았다.

     

    팔려 올 당시에 이런 행복을 느낄거라 생각 못했다.

     

    순식간에 순결을 빼앗겨, 장난감처럼 이용당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경험한 건 그 반대였다.

     

    온 아픔이 그로 인해 치유받았다.

     

    지난 세월의 고생은 베르그의 곁에 있기 위해 경험했나 싶을 정도다.

     

     

    그러니 네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내 마음은 내가 확실히 알아.”

     

    이 말을 하고자 아르윈과 이별하자마자 달려온 것이었다.

     

     

    마음을 밝히는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지금 느낀다.

     

    그 동안 베르그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그녀는 그래도 힘을 내 말했다.

     

    “…나에게는…네가 필요해.”

     

    아르윈이 먼저 입을 열기전에 말하고 싶었다.

     

    “…”

     

    베르그는 침묵을 유지한채 잠시 네르를 밀어냈다.

     

    진의를 떠보듯, 그녀의 눈을 한참동안 들여다본다.

     

     

    네르는 이번만큼은 눈을 절대로 피하지 않았다.

     

    베르그에게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선택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이내 베르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베르그로서도 헷갈릴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네르의 진심이었다.

     

     

    한숨 같은 헛웃음과 함께, 베르그의 굳었던 표정이 점차 펴졌다.

     

    그 동안 그에게 얼마나 확신을 주지 않았는지 네르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베르그는 그 미소를 삼키며, 제 걱정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네르, 네 기준으로…나는 구속하는 편일지도 몰라.”

     

    네르가 답한다.

     

    “난 이제 네 구속이 기분 좋아.”

     

    베르그가 몸을 기울인다.

     

    그녀의 귀에다 베르그가 속삭였다.

     

    “…네가 싫어할만큼 애정표현을 할수도 있어.”

     

    네르는 부끄러움에 눈을 꾹 감으며 말했다.

     

    “………..해.”

     

     

    그녀는 이제 베르그와의 종족차를 생각하지 않으려했다.

     

    무엇이든 베르그만 있다면 이겨낼 수 있었다.

     

    그가 평민이어도, 천민이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인족이어도, 그 외의 종족이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용병이든, 농부든 다 의미 없었다.

     

     

    그냥 베르그라는 존재만이 중요했다.

     

    예언도 내다버린지 오래였다.

     

     

    네르는 본인이 결국 사랑하게 된 한 명의 존재가 베르그라는 걸 밝히는게 두려웠지만…이제는 밝혀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난 이제 너와 이별 못해, 베르그. 안돼. 그러니까…곁에 있게 해줘.”

     

    “…”

     

    베르그는 미소를 짓다,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네르를 품에 안았다.

     

     

    네르는 그의 품에 안기며 또 느꼈다.

     

    이 온기가 없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이 온기 없이 대체 어떻게 살아왔을까.

     

    이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제 편 누구하나 없던 삶에서 이런 순간까지 왔다.

     

    온 가족들과 일족에게 미움을 받으며 커왔다.

     

    자신의 편이 생기길 평생토록 바라왔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베르그의 존재란 기적이었다.

     

    꿈에 그리던 자신의 편이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네르는 이제야 할머니의 예언도 틀렸음을 깨달았다.

     

    베르그의 곁에 있는것보다 더 행복한 미래는 없었다.

     

     

    베르그는 아쉬울만큼 짧았던 포옹을 풀고 다시금 네르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조금은 아픈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아르윈은?”

     

    “…”

     

     

    네르는 베르그가 아르윈을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질투가 났다.

     

    하지만 이제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도 생각하려 했다.

     

    아르윈의 약점을 쥔 그녀였다.

     

     

    베르그를 독살하려 했던 그녀다. 이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

     

    그를 죽이려 했던 주제에 어떻게 옆에 있길 원한다는 말일까.

     

     

    “…”

     

    동시에 네르는 제 일기장을 떠올렸다.

     

    솔직한 말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건 아니었다.

     

    오늘 집에 들어가는 순간 곧장 없애버려야할 무언가였다.

     

    누구 하나 지금껏 그녀의 방에 들어온 적도 없었고, 일기장을 들여다볼 일도 없었을테니 걱정은 크지 않았다.

     

    당장도 일기를 방구석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상태였다.

     

    애초에, 누가 아무런 이유없이 남의 방까지 들어와 숨겨두었던 일기장을 찾아내 안을 들여다볼 생각을 할까.

     

     

    네르조차 반지를 찾겠다는 이유로 아르윈의 독병을 우연으로 찾게 된 것이었다.

     

     

    한참동안 스탁핀 밖에서 내돌았고, 최근에 벌어진 정신없는 일들에 잠시 까먹고 있었지만…이제는 그 책도 처리를 해야했다.

     

     

    “….네르?”

     

    “…”

     

    “아르윈은…?”

     

    네르는 잡념은 지우며 고개를 저었다.

     

    “…몰라.”

     

    네르는 아르윈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베르그를 좋아한다는 말 따위 할 수 없었다.

     

     

    “대화 나눈거 아니었어?”

     

    베르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꾸만 이상한….말을 해서.”

     

    그리고 네르는 계속해서 말을 돌렸다.

     

     

    베르그는 그런 네르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윈에게 가보자. 고민중이라면……..보내주게.”

     

    “…”

     

    아르윈도 베르그의 곁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는 건 네르도 알았지만, 곧 다가올 현실적인 미래에 심장이 떨렸다.

     

     

    아르윈을 보내고, 자신에게만 눈길을 보내주는 베르그를 떠올려본다.

     

    언제나 자신이나 아르윈이 아닌 이성은 칼 같이 끊어냈던 베르그였다.

     

    아르윈마저 내보내면 결국 자신과 베르그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존재는 그 누구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보고, 서로가 서로에게만 사랑을 속삭이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심장이 터질 듯 떨리는 순간들도 끝도 없이 늘어질 것이다.

     

    그러니 네르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네르는 베르그의 손을 잡고 집에 들어섰다.

     

    아르윈은 거실에 나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긴장감이 없어보이는 자세.

     

    네르는 그런 아르윈의 모습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노력조차 하지 않을거면서, 어떻게 베르그 곁에 남겠다고 하는걸까.

     

     

    엘프가 느긋한 것은 알았다만, 그 차이는 네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사실,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수명부터 문화까지 모든게 다르다.

     

    어떻게 이해를 할까.

     

    베르그가 그런 그녀와 친해지려고 한 것부터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아르윈은 평온하게 찻잔을 들어올리다, 집에 돌아온 네르와 베르그의 맞잡은 손을 보았다.

     

    잠시 굳는 그녀.

     

     

    이내 날카로운 엘프의 눈동자가 네르를 응시했다.

     

    “…”

     

    “…”

     

    네르도 지지 않고 그에 맞섰다.

     

    아르윈의 분위기는 마치 몇 달 전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엘프 장로와 도움을 요청하러 왔을때의 그 까칠한 모습이 날을 드러내고 있다.

     

     

    -스윽.

     

    베르그는 네르의 손을 가볍게 놓았다.

     

    네르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그를 놓아주었다.

     

     

    아르윈이 그런 베르그에게 말했다.

     

    “….둘이 대화는 나누셨나요?”

     

    베르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윈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속삭였다.

     

     

    “….그럼 이제는 저와 이야기를 나눠요, 베르그.”

     

    이후, 아르윈은 별 다른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베르그는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네르는 안방으로 떠나가는 베르그의 손을 잡아 그를 멈춰 세운다.

     

    -턱!

     

    “…?”

     

    “…”

    “…왜?”

    “…쓰다듬어줘.”

     

    네르는 자신이 왜 그 말을 내뱉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안에 들어가서도 자신을 생각하라는 마음에서 그런걸지도 몰랐다.

     

     

    베르그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매만지고는, 안방으로 향했다.

     

    -쿵.

     

     

    문이 닫힌다.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적막함.

     

    네르는 아르윈과 베르그가 무슨 대화를 나눌지 궁금해진다.

     

    아르윈의 말솜씨가 빼어나다는 걸 네르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독약병 앞에서는 어떠한 논리도 필요하지 않다.

     

    아르윈의 마음이 바뀌었어도 상관이 없다.

     

    그러니 네르는 마음을 편히 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동시에, 기회가 왔다는 걸 깨닫는다.

     

    둘이 저렇게 안방으로 갔을 때…일기장을 치워야만 했다.

     

    사실 아직 들키지 않았던만큼 방에 숨겨두는게 어째서인지 심적으로 편하게 느껴졌지만, 거짓된 편안함이라는 걸 그녀도 알았다.

     

     

    그녀는 재빨리 제 방으로 향했다.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옷장 깊은 곳에 숨겨 오랜기간 꺼내지 않았던 일기장을 찾아본다.

     

     

    보이지 않는 위치까지 손을 넣어 뒤적여본다.

    태우거나 묻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떨렸다. 들키지 않고 해낼 수 있을까.

     

    -스윽…스윽….

     

     

    “……….?”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익숙한 감각.

     

    의아함을 느끼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일기장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헛된 노력이 지속될수록 의아함은 당혹스러움으로, 당혹스러움은 불안함으로 바뀌어간다.

     

     

    “….어…?”

     

    네르는 옷을 천천히 옆으로 치워보았다. 두 눈으로 보고 찾아야할 듯 했다.

     

    하지만 옷을 치워도 보이지 않는 일기장.

     

     

    네르는 눈을 깜빡였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기는 했다.

     

    그녀의 반지가 언젠가 자취를 감췄던 적이 있다.

     

    마을 아이들이 훔쳤었는데…설마 이번에도 그런걸까?

     

     

    “….”

     

    …안된다. 그건 반지와 비할바가 아니었다. 베르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일이다.

     

    네르는 일기장이 가져올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옷장을 비우기 시작했다.

     

     

    -스윽…스윽…

     

    옷을 하나 둘 옷장에서 꺼낸다. 그럼에도 일기장은 찾아볼수 없었다.

    -쿵….쿵….

    심장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점차 빨라지는 손길로 그녀가 옷장을 비웠다.

    네르의 뒤로 고운 옷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어? 어….어디에….”

     

    심장이 불안히 뛸수록, 네르는 더 급히 옷을 빼냈다.

     

    -사악..! 탁..!

     

    난장판이 만들어지기 시작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온 옷장을 뒤집어 엎는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어…..?”

     

    일기장이 사라졌다는걸.

     

     

    “….아니….”

     

    불안히 커져버린 그녀의 눈동자가 온 방을 훑는다.

     

    다른곳에 두고 깜빡하고 있는 걸까?

     

    네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곳저곳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침대 밑을 보고.

     

    -스윽.

     

    짐상자를 뒤집고.

     

    -우르르륵!

     

    책상을 빼보고.

     

    -드르륵!

     

     

    다른 그 무엇에도 신경쓸 겨를 없이 온 방을 헤집었다.

     

    초조함에 온 몸에 피가 마르는 느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행동이 더욱 거칠어진다.

     

     

    스탁핀에 대한 정보가 끝없이 들어있는 일기장이었다.

     

    홍염단의 간부와 부대의 전략까지도 대략적으로 적혀 있다.

     

    식량창고의 위치, 대원들의 쉼터. 훈련장, 마을의 취약점 등등.

     

     

    베르그에게 사랑에 빠지기 전 만들었던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다.

     

     

    …………그걸 베르그가 본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야….!”

     

    그녀는 극도로 치닫는 두려움에 혼잣말로 소리까지 지르고 말았다.

     

    …애초에, 베르그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

     

    그러니 당장 서류작업을 할 때도 게일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던가.

     

     

    “……..?”

     

    그리고 그 순간, 네르는 상당히 기이한 점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이한 감각과 함께…생전 처음 경험한 공포가 찾아왔다.

     

     

    이렇게 난리를 피웠는데………왜 집이 이토록 조용할까.

     

     

    -끼이이이익……

     

     

    네르의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네르는 미세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내 방문 앞에 차가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르윈을 발견한다.

     

     

    “…”

     

    “…”

     

    아까와도 같은 눈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네르는 이전처럼 아르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아르윈은 방의 난장판을 보고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짧게,

     

     

     

    “…베르그가 널 찾아.”

     

     

    라고 말할 뿐.

     

     

    네르의 눈동자가 불안히 떨렸다.

     

    이렇게나 두려웠던 적이 있었을까.

     

    아닐거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해보아도 나아지지 않는다.

     

    네르는 한동안 자리에 굳어 멈춰있었다.

    아르윈이 그런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네르.”

    “…”

    “…베르그가 찾아.”

     

    그제야 네르는 어렵게 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면서도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네르는 발이 땅바닥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이 집에 들어서며, 베르그와 함께 단단히 보수한 바닥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집에도 베르그와의 손길이 깃들어 있었다.

     

    술병밖에 굴러다니지 않던 이 집을, 보금자리로 만든건 한 부부의 합작이었다.

     

    두 번 다시 경험해보지 못할 특이한 추억의 산물이었다.

     

     

     

    네르는 이내 안방에 도착했다.

     

    베르그의 뒷모습이 보인다.

     

     

    네르가 그토록 사랑하게 된 등이었다.

     

     

    “….베르그….?”

     

    네르는 어렵게 베르그의 이름을 불렀다.

     

    “………….”

     

     

    하지만 베르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한 그 오랜기간 중…베르그가 자신의 말을 무시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네르의 꼬리가 다리사이로 말려들어간다.

     

    베르그의 분위기가 변해있었다.

     

     

    언제나 상냥히 미소를 지어주던 베르그가 갖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신, 네르를 해하던 사람을 상대할 때만 보였던 그 거친 분위기였다.

     

    베르그가 언제나 속에 감추고 있던 슬럼의 분위기였다.

     

     

    “…..베….르그…?”

     

    네르는 사랑하는 남편의 이름을 다시금 불러보았다.

     

     

    두 번의 부름이 이어지니 베르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

     

    -털썩.

     

     

    그리고 네르는 베르그의 눈동자를 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아…”

     

    따스함 하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아픔밖에 비추지 못하는 눈빛.

     

    네르에게 만큼은 언제나 숨겼던 그 눈빛.

     

     

    “….너….”

     

    베르그는 네르를 이름으로 불러주지도 않았다.

     

    악물린 잇새 사이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툭.

     

    이내 베르그가 무언가를 네르의 앞에 던진다.

     

     

    동시에 눈물을 흘릴 것처럼 베르그의 표정이 무너진다.

     

    그 강인했던 남자가, 힘이 풀려 약해진 모습으로 물었다.

     

    “……이게……뭐야……..?”

     

     

    네르의 앞에, 그녀의 일기장이.

     

    아니, 정보가 빼곡히 담긴 책이 떨어진다.

     

     

    첫장에는 ‘스탁핀’이라고 적혀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뒷꿈치킥님! 3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와…이렇게 큰 후원을 한번에 받아본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ㅋㅋㅋㅋ아니, 야근비를 제게 이렇게 주셔도 괜찮은건가요… 저는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보너스도 받으셨다하셨는데, 제게도 보너스를 주시는건가요…ㅋㅋㅋ 저는 좀 후한 상사(?)를 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금휘장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모티콘까지도 구매해주셔서 감사해요. 언제나 응원해주신다는 말도 많은 힘이 되네요. 앞으로도 재미를 느끼실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해보겠습니다. 아마 캐릭터들의 음습한 모습을 앞으로 써보게 되지 않을까하네요.

    aaa777740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ㅋ재밌어해주셔서 감사해요!

    해피명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선량한다람지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노펠피아에 처음이시군요! 좋아해주시니 뿌듯합니다!

    응애오브킹님!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이모티콘을 구매하셨다니, 감사합니다ㅋㅋ. 화이팅해 보겠습니다!

    뼈있는순살치킨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재밌게 써볼 수 있도록 힘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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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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