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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신들의 왕. 그 이름은 바알일지니.」

       

       

       어느 노인에게서 얻은 작은 돌조각에 새겨져 있는 글귀는 나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자신의 위에 다른 이가 있는 것을 신들이 용납할리 없건만, 그런 거만한 신들에게 왕이 있을리 없건만, 먼 고대에 새겨진 석판의 조각은 그러한 사실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이 작고 초라한 석판의 조각을 믿을 것인가.

       

       상식적인 사고는 이 작은 돌조각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버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직감은 무언가 다르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 돌조각이 품고있는 진실이 보통의 것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돌조각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재직은 대리석. 연대 측정 마법으로 조사한 석판 조각의 제작 연대는 신들이 지상을 거닐던 시대. 신들의 시대.

       

       세계 곳곳에 흩어진 수많은 신화들의 원형이 존재했던 시대.

       

       그런 시대에서 신들의 왕을 말하는 이 석판이 진실을 품고 있을지, 아니면 거짓을 품고 있을지, 나로서는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사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수많은 신들이 인간들과 함께 살아간 시대. 남아있는 기록이나 발굴된 유물이 드문 그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알 수 있다면, 나에게 큰 부와 명예가 찾아오게 되리라.

       

       우선은 신들의 왕. 바알. 그 이름의 진실을 캐내는 것이 첫번째일터.

       

       신들의 왕. 달리 말해 신들 중 가장 높은 신이라면 역시 생명의 여신이겠지만…. 일단, 지금은 생명의 여신을 생각하지 않도록 할까.

       

       지금 찾아야 할 것은 잊혀진 역사 속에 묻힌 신들의 왕이라는 존재니까.

       

       일단 바알이라는 이름이 유일한 단서가 될 것 같으니, 세계 각 지역에 흩어진 신화들 중에서 바알, 또는 그와 흡사한 이름을 찾아보도록 하자.

       

       운이 좋다면…. 또다른 단서를 찾을 수 있을테니.

       

       

       – – – – – – – – – – – – – – – – – – – –

       

       

       그렇게 대관식은 끝이 났다.

       

       바알의 마지막 말이 여러가지로 난장판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보기 드물게 사가르마타가 화산처럼 분노를 터트리긴 했지만. 일단 끝났으니까. 응.

       

       그렇게 펄펄 날뛰는 사가르마타를 어떻게든 진정시킨 후, 바알을 혼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바알. 마지막 그 말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었느냐.”

       

       “하지만, 내 것이라는 선언이 필요했는걸.”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을 어딘가에 두고 왔다는 어느 해적왕이 생각나는듯한 말이었지만, 이 점은 일단 묻어두고.

       

       

       “아무튼, 대관식이 별 문제 없이 끝났잖아. 그러면 된 것 아냐? 광장의 신들도 별다른 이의 제기 없었고.”

       

       “광장의 신들은 대관식이 끝난 후 모두 일제히 흩어져서 만신전을 구경다녔으니까 당연히 없었지! 하지만 사가르마타는 엄청 화냈잖느냐!”

       

       

       그 아이가 그렇게 화내는건 처음 봤다니까. 평소에 얌전한 사람이 화내면 무시무시하다더니.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도 마찬가지였네.

       

       그런데 사가르마타는 어째서 그렇게 화를 낸걸까? 바알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걸까?

       

       평소에는 과묵했던 사가르마타니까 더욱 모르겠네. 바알의 말에 긁혔던걸까.

       

       덕분에, 사가르마타랑 한동안 같이 지내는 것으로 화를 풀어주게 되었으니까…. 음. 그냥 한동안 같이 지내는 것으로 화를 풀어주다니, 정말로 쉬운 아이들이라 이 엄마는 걱정이에요.

       

       그러다 못된 남자에게 꼬득여지면 어쩌지. 제대로 된 직장…이 아니라 신이 아니면 허락해주지 않을거니까!

       

       

       “그러면 신들의 왕으로 어떤 일을 해야하는거야?”

       

       “음. 그건 말이다.”

       

       

       나는 품 속에서 둘둘 말려 있는 파피루스 스크롤을 꺼내 바알에게 내밀었다.

       

       

       “이 세상의 모든 신들이 이름이 담긴 목록이란다. 이걸 보고 다 외우도록.”

       

       

       상당한 두께의 스크롤에는 많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선 바알부터 시작해서 여러 신들의 이름이 가득찬 스크롤은 펼치고 또 펼쳐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뭐, 마법으로 만든 스크롤이니까 당연한 일이지. 무한히 늘어나는 파피루스와, 갓톡과 연동해서 목록에 올라가 있는 신들의 이름을 고스란히 다 옮겨주는 마법을 걸어뒀으니, 갓톡이 존재하는 한 자동으로 연동되지!

       

       나와 바알의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정도는 아주 사소한 문제니까. 애초에 메신저 친구 목록에 자기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경우가 어딨겠어.

       

       바알의 경우에는 그냥 내가 뺐고 말야. 어차피 바알이 볼 목록인데 바알의 이름이 올라갈 필요가 없잖아?

       

       

       “이걸 전부…?”

       

       “다 외우면 좋지만, 가능한 많이 외우는 정도로 만족해주마.”

       

       

       내 말에 바알은 스크롤의 한쪽 끝을 떨어트렸고, 스크롤은 쭉쭉 늘어나며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외워!”

       

       

       땅에 떨어진 스크롤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펼쳐지더니 신좌 주변을 빙빙 돌며 늘어난다.

       

       이대로 놔뒀다간 신좌 주변에 발 디딜 곳이 없어질 것 같으니, 붙잡아두자.

       

       나는 마력을 움직여 계속 굴러가는 스크롤을 멈춰세운 후, 저절로 되감았다.

       

       

       “이렇게 많은 이름을 어떻게 다 외워!”

       

       “음…. 못해?”

       

       “못해!”

       

       

       이게 안되네. 씁.

       

       

       “애초에, 백성의 이름을 다 외우는 왕이 어디에 있어! 왕이라고 전부 다 이름을 외워야 하는건 아니잖아!”

       

       “음…. 생각해보니 그렇네.”

       

       

       작은 언덕과 작은 개천에도 신이 태어나고 있는데, 그런 작은 신들을 하나 하나 전부 다 외우는건 쉽지 않겠구만.

       

       인간으로 치면 백성 수십만의 이름을 다 외우는 것과 다르지 않을테니.

       

       아, 요즘은 인구가 조금 많아져서 백만 단위가 넘던가.

       

       

       “그러면 뭐, 이 스크롤을 들고 다니면서 이름을 확인하거라. 그리고 영향력이 큰 신 일부는 외워두도록 하고.”

       

       “끄응….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노력해볼게!”

       

       

       그래. 노력하는 자세 자체가 중요한게야.

       

       

       “그런데 이 스크롤. 이름은 지었어?”

       

       “이름? 딱히 짓지 않았다만.”

       

       “어허! 그러면 안돼! 가이아의 손이 닿은 모든 것은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범상치 않은 물건이니까! 이름은 확실히 지어두라고!”

       

       

       음. 그런가. 확실히 인간의 기준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만. 옛날에 고쳐줬던 리자드맨의 흑요석 창도…. 아직도 보물처럼 쓰이고 있는걸 봤으니까.

       

       

       “그러면, 신들의 명부?”

       

       “너무 평범하고 직설적인 이름이잖아. 음…. 만신록. 모든 신들의 목록이니 만신록으로 하자.”

       

       

       음. 만신전과 비슷한 이름이구만.

       

       뭐,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앞으로는 바알의 손에 있을 물건이니까. 바알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게 좋겠지.

       

       

       – – – – – – – – – – – – – – – – – – – –

       

       

       만신전이란, 모든 신들의 전당.

       

       그렇기에 신들에 대한 모든 것은 만신전에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니, 바알이라는 신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해서는 만신전과 관련될 수 밖에 없으리라.

       

       물론, 만신전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신들의 세계이기에 직접 들어가서 조사하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인간을 총애하는 일부 신들 중에는 자신들의 것을 인간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나눠주는 것 중에는 신들만이 알고 있는 지식도 있었으니.

       

       신들의 목록. 만신록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생명의 여신이 작성한다고 알려진 이 목록은 셀 수 없이 많은 신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나, 신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그 목록의 일부 뿐.

       

       거기에 인간들에게 전해진 목록은 거기서 더욱 적은 양이었으니.

       

       인간들은 그렇게 전해진 일부 목록들을 종합하여 어떻게든 신들의 목록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물론 생명의 여신이 가지고 있다는 원본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은 것이었지만, 지역에 따라 제각각인 신들의 목록을 어느정도 정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들에게는 감지덕지였으니.

       

       그러한 신들의 목록은 생명 교단에서 관리하고 있었으나, 탐욕스러운 이들이 몇 푼의 은화를 탐내어 그 목록을 유출하고는 하였었다.

       

       뭐, 나처럼 떳떳하지 못한 조사를 하는 이에게는 고마울 따름이지만.

       

       나는 약간의 돈을 써서 가능한 많은 만신록을 수집했다. 멀게는 수천년 전의 목록에서부터 최근의 목록까지.

       

       처음에는 그냥 돈낭비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오랜 시간을 걸쳐 목록을 꼼꼼히 조사한 결과 몇가지 성과를 쥘 수 있었다.

       

       우선 수많은 신들의 이름. 그 사이에는 바알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들의 왕이라는 직위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권의 만신록에는 수많은 신들의 이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는 것을 반복했지만, 바알이라는 이름은 철저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결과에 나는 처음에는 무척이나 실망했었다.

       

       결국 바알이라는 신은 거짓인걸까? 나는 헛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순간, 머리속에 전류가 흘렀다.

       

       어쩌면, 바알이라는 신이 실제로 존재했고, 신들의 왕이었다면….

       

       이 명단에 존재하지 않는게 아니라, 존재할 필요가 없었던게 아닐까?

       

       가장 널리 알려진 신. 생명의 여신 또한 이 명단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신들의 왕이라는 존재의 이름 또한 이 명단에 오를 필요가 없었던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이어진 나는 다시 한번 목록을 확인하며 수많은 신들과, 신들이 관장하는 것들을 확인했다.

       

       분명, 신들의 왕이라면 그에 걸맞는 것을 관장하는 존재일터.

       

       그렇다면, 수많은 신들의 목록 중에, 신들의 왕이 관장하는 것이 비워져 있을 것이니.

       

       각종 원소나 세계수, 성스러운 산과 바다. 드넓은 평야나 넓은 강. 몰아치는 폭풍과 같은 것에도 신이 존재하였으나.

       

       단 하나. 관장하는 신이 존재치 않는 것이 있었다.

       

       하늘.

       

       세계 각지의 신화에서도, 제각각의 모습을 가진 수많은 신화체계에서도.

       

       하늘의 신은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자리는 비워둬야 한다는 것처럼.

       

       그렇다면, 바알이라는 신이 존재했다면, 그 존재가 신들의 왕이라면.

       

       그는…. 하늘의 신이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이 아프네요. 눈꺼풀 밑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아파서 끙끙거렸는데, 조금 자고 일어나니 깔끔하게 이물감이 사라진 마법.

    뭐지. 그냥 피곤한 것 뿐이었나…

    안과 갈까 말까 하다가 그냥 힘들어져서 잠 좀 잤는데, 역시 사람은 잠을 자야 하나 싶네요. 어흒.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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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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