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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나는 로티라는 캐릭터도 좋아했다. 공략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제이크와 로티 둘이 게임에 나오면 보통 저런 식으로 만담을 벌였기 때문이다. 막 폭소할 정도로 웃긴 건 아니지만 훈훈했으니까.

        

       “그럼, 무슨 정보를 줄까?”

        

       나와 단둘이 대화하겠다는 말은 어차피 진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옆에 로티가 있으니 장난이라도 걸어보자고 생각했겠지.

        

       처음 나한테 말을 걸었던 것도, 로티가 홧김에 한 말을 그대로 했을 뿐일 거고.

        

       기본적으로 무표정에 자기감정을 숨기는 캐릭터였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참는 것에 익숙해졌을 뿐.

        

       제이크는 그런 로티를 안쓰럽게 생각한다.

        

       “무슨 정보를 주실 수 있으십니까?”

        

       “흐음.”

        

       내 질문에 제이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저 아래쪽에 있어서 이 시기에도 덥다는 것 정도?”

        

       사막과 맞닿은 곳이니까.

        

       제국은 대륙이 서쪽 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아래쪽으로 뻗어있는 남대륙의 북부 지방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다.

        

       남대륙 침공 초기에 가장 앞장서서 나섰던 가문이 린드버러였다. 아직 제국 의회가 없던 시절에 해적을 포섭하여 자기 부하 삼아 침공해 점령해버린 곳을 약 한 세기라는 긴 시간을 들여 자기네 영지로 흡수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린드버러 영지는 중간에 바다를 끼고 위아래로 양분되어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쪽의 영지는 평화롭고 딱히 내세울 것 없는 곳이다. 공작령이니 엄청나게 넓기는 하지만 그뿐, 대단한 특산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린드버러 가문의 돈 대부분은 남대륙에 있는 영지에서 나온다. 남대륙 북부의 비옥한 곳을 죄다 점령하고 있는 데다가, 그 아래쪽 사막 너머 식민지들과의 무역 수입이 린드버러 가문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병이 철폐되기 전 잔뜩 만들어둔 해군 기지를 그대로 제국군에 임대하고 받는 돈도 꽤 짭짤할 거고.

        

       그리고 윈터필드 가문처럼, 국경에 맞닿아 있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사병을 운용하고 있기도 했다.

        

       “아마 바닷가에서 놀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요즘 영지에서 수영복이라는 게 유행하고 있거든.”

        

       “…….”

        

       제이크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듣고, 로티는 뭔가 꾹 참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고증’만 따른다면, 20세기 초의 수영복이라고 해봐야 펑퍼짐한 옷이나 다름없다. 특히 여성용은 더 그래야 했고.

        

       하지만…… 이 세계관이 어떤 세계관인가. 오타쿠 서브컬처의 최전선에 서있는 일본의 게임사가 만든 세계관이다.

        

       당연히 수영복은 내가 살던 세계의 수영복이랑 크게 다르게 생기지 않았다.

        

       애초에 카지노에 바니걸이 돌아다니는 시점에서 그런걸 따지는 게 웃긴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뭐…… 특산품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이야기해줄 수 있기는 한데, 솔직히 우리가 가서 할 일이랑 큰 관계는 없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설령 제이크가 영지의 중요한 기밀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밀을 대놓고 떠벌리고 다닐 정도로 입이 가벼운 캐릭터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그래도 며칠 동안은 따뜻하게 있을 수 있다는 소리 아니야. 안 그래도 방학 동안 따뜻한 곳에 있다가 추운 곳으로 와서 적응하기 힘들었다니까.”

        

       “갑자기 기온이 바뀌면 병에 걸리실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련님은 건강을 걱정하셔야 합니다. 이번 달에만 두 번 왕복하시는 거니까요.”

        

       “걱정하지 마, 로티. 나는 겉보기만큼 튼튼하니까. 그리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여인의 몸인 로티가 더 걱정해야 하지 않겠어?”

        

       “저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내가 말해 뭐해’하는 분위기로 입을 다무는 로티를 보고 쓴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아야 했다.

        

       *

        

       다른 영지는 대부분 드넓은 대양을 건너야 할 필요까지는 없었기에 각 반이 따로 가더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린드버러 영지는 다르다.

        

       북부 린드버러 영지로 가봐야 특별히 배울 것도 없는 곳이었으니 당연히 실습지는 남부 린드버러 영지였다.

        

       남대륙 식민지들은 제국 기준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제국이 ‘제국’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수많은 식민지들이었으니까.

        

       식민지들을 전부 점령하고, 황제가 ‘나는 두 대륙의 황제다’라고 선언한 시점에서 아제르나 제국은 완성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뭐, 이전에 초대 황제 팬그리폰 시절부터 이미 당당하게 대륙의 이름 뒤에 ‘제국’을 붙여 쓰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라 하나를 두고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 보다는, 진짜 제국주의적인 면모를 가진 채 제국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다른 국가도 수긍하기 쉬울 것이다.

        

       제국이 진정한 의미의 제국일 수 있는 이유.

        

       아카데미가 학생들을 한 번은 여기로 보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게다가 종종 외국인 학생도 섞여 있는 아카데미였으니, 제국의 위신을 자랑하기에 얼마나 좋겠는가.

        

       배가 아닌 비행선을 태워 보내는 것도 실용적인 이유와 제국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동시에 있겠지.

        

       “제국은 이 드넓은 바다가 전부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위아래로 제국의 영토가 있으니까.”

        

       샤를로트의 말에, 앨리스가 대답했다.

        

       엄밀히 따지면 국제법상 합의된 바에 따라 바다 전체가 영해일 수는 없다.

        

       다만 제국은 중간중간 점령한 섬과 암초에 죄다 그 법을 적용하여 사실상 지중해의 절반 정도 되는 해역을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제국의 해군력이 막강하니 따로 반박할만한 나라도 없다. 공중에 전함을 띄우는 나라인데 바다라고 못 띄울까.

        

       “벨부르는 어차피 대륙 북부에 있어서 이쪽 바다를 거의 이용하지도 않잖아.”

        

       “……이 바다를 넘어서 오는 물건들의 가격이 지나치게 부풀려진다는 말이 있어서요.”

        

       “그건 제국이 바다를 자기 영해 취급하기 때문이 아니야. 그보다는 린드버러 가문에서 남겨 먹는 게 많은 탓이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제국 본토에서 같은 물건을 구해도 외국이랑 차이가 별로 없다고. 그리고, 정 구하고 싶다면 이벨리아 왕국과 거래를 하면 되잖아?”

        

       자기가 물려받을지 모르는 나라에 대한 험담이 나와서 그런지, 앨리스는 조금 까칠하게 반응했다.

        

       앨리스의 그런 반응에도 샤를로트는 딱히 겁먹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긴, 왕녀와 황녀 이전에 이미 친구 사이였으니까.

        

       “이벨리아 왕국은 남대륙 식민지가 거의 없으니까요. 통일한 지 이제 20년이잖아요? 그 사이에 남대륙 알짜배기 땅은 제국이 죄다 점령했죠.”

        

       “그건 수 세기 동안 갈라져서 싸우기만 한 그 사람들 탓이지.”

        

       …….

        

       음.

        

       원작에서는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이다. 아니, 물론 설정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캐릭터들이 나누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지나가더라도 보통은 제국과 왕국 두 나라 사이의 직접적인 다툼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하긴, 설정상 이 두 캐릭터는 각각 20세기 제국주의, 민족주의가 막 퍼져나가던 시기의 캐릭터였다.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한창 비대해져 있었고, 그 자부심은 당연히 점령 중인 식민지나 국가 자체의 힘을 근거로 한 것이다.

        

       뭐, 그것도 금방 깨지긴 하겠지만.

        

       나는 시선을 돌려서 로티 쪽을 흘끗 보았다.

        

       비행선 안에는 론다리움 아카데미의 1학년이 전부 타고 있었지만, 이렇게 경치 좋은 전망대에 나와 있는 것은 대부분 귀족 학생들이었다.

        

       귀족 학생들이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해버리면, 평민 학생들은 대부분 불편해서라도 내려오지 못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하나 있었다.

        

       아니, 학생이 눈에 띈다기보다는, 그 학생 주변에서 그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눈에 띈다고 해야 할까.

        

       로티였다.

        

       제이크 옆에 서있는 로티.

        

       제이크가 억지로 데리고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짓궂은 제이크라도 남들이 로티를 깔보는 것은 싫어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니까.

        

       이 자리에 로티가 있는 건, 로티 본인의 의지일 거다.

        

       ‘메이드로서 도련님을 보좌하기 위해’라는 변명을 대고 서있는 거겠지.

        

       실제로는 그냥 같이 있고 싶은 거면서.

        

       내가 로티를 향해 시선을 돌린 한순간 눈이 마주쳤다. 로티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지만, 분명 이쪽의 이야기가 신경 쓰였던 것이리라.

        

       그도 그럴 게, 로티는 식민지 사람이었으니까.

        

       사실상 린드버러 영지에서 린드버러의 사람으로 자랐다고는 하지만, 본인의 외모 때문에 대놓고 차별당하던 캐릭터다. 그 차별의 원인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신경 쓰였겠지.

        

       하지만 얼굴에 분노나 분함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체념에 가까우려나.

        

       제국인과 피가 섞인, 이쪽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캐릭터.

        

       제이크와 사귀기 전에도, 연인이 된 다음에도 여러 귀족의 구설에 오르게 되는 캐릭터.

        

       “…….”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지만, 막상 이렇게 그런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나니 게임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딱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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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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