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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아빠, 그럼 내일 봐요.”

       “그래. 레이나. 너도 잘 자렴.”

         

       첫날 밤은 그렇게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녀가 자러 돌아가고 나서 나는 몇 번이나 허공을 향해 헛웃음을 터트렸다.

         

       결혼은커녕 변변찮은 연애도 한 적 없는 내가 누군가에게 아빠 소리를 듣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거기다 지금 원더스타인의 외형은 현실의 나처럼 20대 중후반이었다.

       어느 쪽이든 레이나와 부녀 관계라 할 정도의 나이 차라고 할 수 없었다.

         

       거기에 그녀의 외모가 나이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그 격차는 더 줄어들었다.

         

       그런 그녀와 부녀 관계를 연기하라니.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줘야만 했다.

         

       상태창에서 ‘단원 퀘스트-지게에는 타기 싫어!’와 ‘서브 퀘스트-아빠 대행 아르바이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전자의 퀘스트는 보상도 짠 주제에 실패 시 페널티가 상당했다.

         

       지금까지 단원 퀘스트는 대부분 실패 시 페널티가 크지 않았다.

       단원 퀘스트는 일종의 소원 수리함이었고, 단장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요구 사항이 퀘스트가 되어 나타났다.

         

       역으로 단원 퀘스트의 내용에는 기본적으로 단원들이 내 눈치를 얼마나 보는지도 반영되어 있었다.

         

       “다, 단장님, 제 부탁 좀 들어주실 수 없을까요? 아, 안되면 어쩔 수 없죠, 뭐…….”

         

       말로 풀어보자면 이런 식이었다.

       덕분에 실패 시 페널티가 없거나 작았다.

         

       그런데 단원들의 호감도가 오를수록, 그들이 요구하는 정도나 실패 시 페널티가 커졌다.

         

       모르는 사이에는 밥 한 번 사는 일로 호감도를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친한 사이에는 그것보다 더 까다로운 요구를 들어주어야 호감도를 올릴 수 있었다.

         

       반대로 모르는 사이에서는 상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지만, 친한 사이에서는 당연히 해주기를 기대하고 안 들어주면 실망하기 마련이었다.

         

       호감도와 단원 퀘스트에는 그런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형태가 반영되어 있었다.

         

       즉, 지금까지 단원 퀘스트의 높은 효율성은 ‘단원들이 원더스타인을 두려워한다’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었다.

       가스통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아랫사람 취급을 했기에, 단원 퀘스트가 까다롭고 실패 시 페널티가 높았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그를 아예 퇴출하는 게 속이 편했다.

       그러나 그는 내 혼잣말을 들은 덕분에 그것을 방지하는 단원 퀘스트를 발동시켰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실수였다.

         

       어차피 레이나가 주는 서브 퀘스트도 실패 시 페널티가 작지는 않았다.

       이번 일은 무조건 성공시켜야 했다.

         

       고작 이틀뿐이잖아?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남들 앞에서는 연기를 안 하기로 했으니 크게 부끄러울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바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옆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놀라 일어나 이불을 걷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파자마를 입은 레이나가 나의 허리에 달라붙어 잠들어 있었다.

         

       “레이나 양?”

         

       그녀가 하품을 크게 하고 눈가를 비벼댔다.

       그녀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더니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헤헤, 아빠……안녕히 주무셨어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그녀가 내 침대에서 누워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여기에……?”

       “새벽에요. 아, 아빠가 깰까 봐 조용히 옆에 누웠어요…….”

         

       그녀가 나에게 들키지 않고 옆에 숨어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절대적인 균형감각이 있었다.

       흔들다리에서도 손에 든 커피에서 한 방울도 쏟지 않았다.

       고작 침대 매트리스의 출렁거림 따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을 터였다.

         

       내가 놀란 것은 그녀의 재주가 아니었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레이나 양이 어째서 여기에……?”

       “혼자 자기 무서워서 옆에서 같이 잤어요. 그리고……,”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갑자기 눈을 치켜떴다.

       그녀의 두 눈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누가 딸을 ‘레이나 양’으로 부르나요? 분명 아빠 연기를 해달라고 했잖아요? 제대로 부탁드립니다.”

         

       서슬 퍼런 그녀의 기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레이나. 그……무서웠겠구나.”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그녀의 몸을 내 앞으로 끌어당기고 이불을 덮어썼다.

         

       “누구시죠?”

       “마야예요.”

         

       그 목소리에 시계를 확인한 나는 벌써 새벽 훈련 시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밤새 가스통이 역정을 내고, 신세를 한탄하고, 심술을 부리는 것을 들어주느라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기다려달라는 말을 미처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끼익.

       베레모를 비스듬하게 쓰고 얇은 카디건을 걸친 소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복도의 너머의 창문에서 내리쬐는 아침 햇빛에 그녀의 머리칼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마야는 2주 전부터 무슨 일인지 계속 외출을 하고 있었다.

       어제는 제과 공장에 간다고 쉬었지만, 오늘부터 다시 일과를 시작할 모양이었다.

         

       그녀는 나갈 때는 항상 다녀오겠다고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났고, 들어와서는 돌아왔다고 내게 보고를 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나를 응시하더니 내 앞까지 걸어왔다.

       방 주인의 허락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녀의 마이페이스에 익숙해진 편이었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속으로 크게 긴장했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좀 일찍 나가는군요?”

         

       나는 그녀의 얼굴이 어딘가 초췌하다고 느꼈다.

       어제 공장에서 돌아올 때부터 그녀는 어딘가 이상했다.

       지금은 눈 아래에 살짝 그늘이 진 것이 어제보다 더 좋지 않아 보였다.

         

       “서둘러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단장님 괜찮으신가요? 오늘은 오래 주무셨네요.”

         

       그녀가 침대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자꾸 허리를 들려는 레이나를 더 품으로 끌어당겼다.

         

       “네. 문제없습니다. 어제 일로 조금 피곤해서요. 그럼 오늘도 테트로미노 광장에 나가는 건가요?”

       “네.”

       “후후, 알겠습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그녀는 내 이불 안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젖혔다.

         

       레이나가 내 배 위에 엎드린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레이나 양, 아니……레이나. 괜찮……니?”

       “수, 숨이 막혀서…….”

         

       그녀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 팔과 다리로 그녀의 전신을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재빨리 그것을 풀었고, 그녀는 흐느적거리는 자세로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도무지 나와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하아, 하아.”

       “이런 꽤 답답했겠구나. 하지만 들켰다면 큰 오해를 샀을 거야.”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렸다.

         

       “아, 알아요……. 저, 저는 제 방으로 가볼게요.”

       “그래…….”

         

       그녀는 땀에 푹 젖은 파자마를 입은 채 방을 나갔다.

         

       일요일 내내 나는 그녀와 계속 붙어 다녔다.

         

       일과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교육, 식사, 훈련, 세신, 식사, 상담.

         

       남들이 있을 때 우리 둘은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었지만, 다른 사람이 사라지면 그녀는 바로 어린애처럼 굴었고, 나는 그것들을 아빠로서 받아주었다.

         

       그렇게 어제를 보냈고, 오늘도 그렇게 하루 대부분이 갔다.

         

       인터뷰를 마친 우리는 마차를 타고 별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어리광을 부리던 그녀는 마차가 별장 앞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그만 지쳐서 잠들고 말았다.

         

       “도착했습니다.”

       “잠시 시간 좀 주시겠습니까? 아이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군요.”

         

       마부는 30분 뒤 오겠다며 근처에 있는 쉼터에 담배를 피우러 갔다.

         

       이걸로 나도 좀 쉴 수 있겠지.

         

       나는 내 무릎을 베고 잠든 레이나를 바라보며 지친 한숨을 토해냈다.

       희극의 한복판에 있다가 겨우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그녀 덕분에 정신없는 이틀을 보냈다.

         

       지칠 대로 지친 나였지만, 나는 그녀를 원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몬 마기어 같은 악질 밑에서 15년 동안 정신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인격에 손상이 생겨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보육원 시절이 떠올랐다.

       버려진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기준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자신이 버려지는 순간을 기억하고 있느냐 없느냐였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는 쪽의 상처가 더 깊었다.

         

       기억도 없던 시절에 버려진 아이들은 보육원을 제집 삼아, 친구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성장했다. 어떤 애들은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과 정서 발달에 있어서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이 버려지는 때를 기억하고 있는 쪽이었다.

       그들은 아무리 보육원에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도 ‘진짜 가족’은 기억의 단절된 부분 저편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즉, 그들은 평생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상태를 인식하며 자라는 것이다.

         

       레이나는 그런 친구들보다 더 큰 상처를 안고 있었다.

       그녀가 진짜 가족이라고 믿는 사람이 애초에 진짜 가족이 아니며, 자신은 진짜 가족의 대용품으로 사 온 ‘가짜’였다.

         

       “아빠……우움…….”

         

       그녀가 입을 쩝쩝 다셨다.

       그녀가 자신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잠결에 씹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입에서 그것들을 빼내 침을 닦아내고 정리해주었다.

         

       그녀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 몸의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녀의 요구에 유독 쩔쩔맸던 것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빠라…….

       하필이면 그녀가 나를 그렇게 부르다니.

         

       지독한 농담이었다.

         

       TT3의 주요 적은 원더스타인의 친구 혹은 자매라 불리는 세 명의 마녀가 이끄는 세 개의 조직이었다.

         

       3번째 챕터에서 토끼 마녀를 쓰러트리고 부두교를 무너뜨린 용사들은 도망친 원더스타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는 완전히 부활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녀 발렌티나와 싸우고 부상을 입었다.

       어딘가 숨어 힘을 회복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쉽게 꼬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을 때, 그들은 예전에 함께한 적 있는 동료 레이나로부터 원더스타인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TT2에서 자신이 진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대체물로 입양되었다는 걸 알게 되어 정신적 방황을 겪었다.

         

       다행히 그녀는 그것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로 극복했지만, 자신의 뿌리를 추적하는 일은 그만두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어떠한 단체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지몬이 그녀를 사 온 인신매매 조직이었다.

         

       그곳은 단순히 어린아이를 잡아다 파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객들이 원하는 대로 아이를 개조해서 팔았다.

         

       레이나는 거기서 ‘만들어진’ 아이였다.

         

       그들은 카탈로그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을 납치해서 외모, 키, 근육 발달 정도, 신체적 특징 등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지몬의 요구는 죽은 딸과 똑 닮은 아이였다.

       그는 그것이라면 아내의 상심을 치료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는 서커스의 재능까지 원했다.

       그녀의 빠른 신체 발달과 절대적인 균형감각은 그 제조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었다.

         

       레이나는 그렇게 ‘상품’으로 출하되어 지몬에게 배송되었다.

         

       여기까지 내용을 들었을 때, 용사들은 누가 그 조직의 배후에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세 마녀 중 한 명인 까마귀 마녀가 부회장으로 있는 상회.

         

       아이들을 납치해서 손님들의 입맛에 따라 개조해서 파는 그들을 작중에서 이렇게 불렀다.

         

       콤프라치코스(Comprachicos, 아이 상인)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검성 님, 5코인 후원! 꾸준한 응원 감사합니다!

    -Goese 님, 100코인 후원!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기쁘네요! 기대에 부응해 더 재미난 글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웃는 남자’라는 이름과 ‘괴물서커스’라는 소재에서 예측하신 것처럼, 이 글은 빅토르 위고의 1869년 작, ‘웃는 남자’에서 모티브를 딴 게 맞습니다.

    콤프라치코스는 그 소설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단체입니다.
    거기서는 멀쩡한 아이들을 잡아다 인체 개조해 장애인으로 만들어 귀족들의 유흥거리나 애완동물로 파는 악당들로 나옵니다.
    작중 고유명사라 그 어원을 여기에 밝히고 갑니다.

    더불어 이 소설의 1928년 영화판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배트맨 시리즈 악당, 조커의 외모에 모티브를 줬다고 하네요. 검색해보니 빼다박았더군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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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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