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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안전지대 안은 쇠와 돌이 가득했다.

         

       쇠로 만들어진 동상.

       돌로 만들어진 석상.

         

       지장보살 석상에서부터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십자가까지.

         

       군사와 관련된 곳이 아닌 종교와 관련된 곳과 비슷해 보였다.

       동서양의 신을 그러모아서 만든 만신전(Πανθεονας)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둘러본다면 신앙보다는 생존을 위해 마련된 공간임을 알 수 있었으니.

         

       곳곳에 놓여있는 흉흉한 철 덩어리들은 이곳에 무기가 필요하고, 무기로 무언가를 상대해야 한다고 차갑게 소리치고 있었으며, 각 종교에서 엄선해서 보내왔을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군종장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탄띠에 성수와 정화수를 담고 있었고, 목에 초커의 형태로 만든 전기충격기는 언제든 빙의가 된다면 이 한 몸 바쳐 제압당해 악령을 쫓아내겠다는 그들의 각오를 보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신앙과 평온이 가득해야 할 종교인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공포로 인해 굳어져 있었다.

       병사들을 이끌고 일과를 진행하는 지휘관의 얼굴에도, 퇴마용 물품을 점검하는 군종장교의 얼굴에도 ‘잘 점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라는 위기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직 해가 떠 있기 때문일까?

       사람이 목숨을 위협받았을 때 마땅히 내비치는 폭력성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듯 보였다.

         

       “SP-103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행은 웃는 낯으로 자신을 맞이해주는 지휘관의 안내에 따라 나름 깔끔해 보이는 생활관에 머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취사병이 만든 식사를 하고 부대 이곳저곳을 확인하고 다닐 수 있었다.

         

       확인이라고 해봐야 당연히 무기고나 창고 같은 군사 기밀과 연관이 된 곳은 갈 수 없고, 생활관이나 체력 단련실, 사이버 지식 정보방 등의 공간이었지만 말이다.

       군 인권 센터의 사람들은 병사들과 장교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지 않은지,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지, 가혹행위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지를 설문지와 면담을 통해 꼼꼼하게 점검했으며, 의심이 가는 상황이 있다면 자료를 뒤져가면서 사실 여부를 판단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군 인권 센터의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하고 있을 때.

         

       진성만은 그 자리에 끼지 않았다.

         

       일행이 설문조사를 돌릴 때 진성은 지게를 점검하고 있었고.

       일행이 설문조사 결과를 꼼꼼하게 살펴볼 때 소금을 햇볕이 잘 드는 곳에다가 널어서 한껏 양기를 머금게 했으며.

       일행이 면담할 때에는 군종장교에게서 얻은 성수를 소금과 섞고 그것을 페트병에 잘 담아두었다.

         

       오직 혼자만.

       그 혼자만이 튀어 보였다.

         

       그 모습이 기이했던 것일까?

         

       “거 저 사람은 뭐 하는 겁니까?”

       “저희도 몰라요.”

       “그 뭐냐, 대기업에서 사람 한 명 꽂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스펙 쌓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건지…?”

       “하이고…. 신경 쓰지 마세요. 이상한 짓 하는데 괜히 연관되고 싶지도 않을 거 아닙니까?”

       “아니 그래도 뭐 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몰라요 몰라. 뭐 테러 저지르려는 것도 아니고…. 웬 이상한 미신이라도 들었나 보죠. 뭐, 대기업에서 인맥 타고 꽂아줬다는데 문제라도 일으키겠습니까?”

       “크흠.”

         

       안전지대의 사람들도 진성을 이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대놓고 일행에게 진성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았고, 병사들은 호기심에 다가가려다가도 진성의 괴상망측한 차림새에 차마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리고 군종장교들은 혹시 진성이 주술 흉내를 내며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했다.

         

       “제 눈으로는 저 청년의 모습이 주술사가 하고 다니는 차림새랑 참으로 비슷해 보이는군요. 신부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제가 로마에 있을 당시 보았던 주술사와 비슷한 기이함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주술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제가 아는 주술사들은 주술을 사용하려면 저런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엄청난 것들을 가지고 다니곤 했습니다만….”

       “엄청난 것이라. 저기 커다란 황금 피라미드가 있는데 어찌 보잘것없는 물건이라 하십니까? 신부님이라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기라도 하시는 겝니까?”

       “황금을 돌같이 보는 것은 물욕에 초월한 스님에게 맞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파란 눈의 외국인 신부는 진성을 주술사라고 의심하고 있었으며, 티베트에서 한국으로 망명을 온 30대 스님 역시 진성이 주술사가 하고 다니는 차림을 한 것을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둘은 한국어로 소곤소곤 진성을 주제로 대화했다.

         

       “황금 피라미드, 기이한 차림새. 주술사일 가능성은 큽니다. 아까 귀에 들린 말로는 재벌 2세라고 들었는데…. 안전지대라는 곳이 악귀, 악령, 종교가 가득한 공간이니 주술사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고 꽂아준 것일 수도 있겠지요.”

       “제 생각 역시 신부님과 같습니다. 이곳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영능력자나 주술사에게는 꼭 한번 견학하고 싶은 곳이 될 수도 있겠지요. 본디 지옥이라는 것은 마음에 따라 달린 것이며, 마음을 편히 먹고 고통과 시름을 잊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극락이 될 수 있는 것이 세상살이 아니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지만 얼굴이 곱상하고 몸이 잘못된 곳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막 주술의 길에 발을 들이려는 사람 같군요. 성취 자체는 높지 않겠습니다.”

       “혹은 여러 길을 찾다가 주술에 관심을 보인 것일 수도 있지요. 본디 돈과 권력이 있다면 막 시작할 때도 설레발을 치며 아낌없는 투자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안전지대의 현실을 똑똑히 보고 주술의 길을 버렸으면 좋겠군요. 어린 양이 참된 희생도 아닌 고통밖에 없는 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가혹한 일이니까 말이에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많은 사람이 진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시간에는 병사들과 장교들이 식당에 모여서 밥을 먹는 중에도 진성에 대해 떠들고 다녔고, 장비를 점검하는 군종장교들도 진성이 주술사다 아니다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군 인권 센터의 사람들 역시 ‘대체 어느 대기업이 저런 이상한 사람을 끼웠는지 모르겠다.’라며 그의 욕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진성은 그들이 자신을 가지고 무어라 떠들든 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했을 뿐.

         

       그는 저녁조차 거르고 가지고 온 천을 소금물에 흠뻑 적시고, 삼매진화를 피워 바싹 말리는 힘겨운 작업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소금물이 증발하고 또 증발하며 천 자체를 소금에 절여버리고, 곳곳에 소금의 결정이 맺힐 때까지 계속해서 말이다.

         

       그리곤 쇠 지게에도 빈 곳이 보이지 않게 소금물을 꼼꼼하게 발랐고, 걸치고 있는 누더기를 벗고 가지고 온 환(丸) 여러 개를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든 후 물에 개어 진흙처럼 만들었다.

         

       그는 쓴 냄새와 계피의 향기를 풍기는 걸쭉한 물을 손으로 떠서 누더기의 바깥쪽에 잘 펴 발랐고, 다 발려지자 삼매진화를 피워 순식간에 말려버렸다. 그러자 누더기는 진흙에 뒹굴고 그대로 버려둔 우비 같은 모습이 되었고, 진성이 그것을 걸치자 어디 개발도상국의 빈민가에서나 볼법한 거지와 흡사한 모습이 되었다.

         

       그는 누더기를 끝으로 실내 작업이 끝난 것인지 벌떡 일어나 어둠이 내려앉은 바깥으로 향했고, 자신이 가지고 온 장작을 하나하나 숯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손에서 피어오르는 삼매진화는 순식간에 장작을 바싹 말렸고, 장작의 부피를 줄이고 새까맣게 바꾸었다.

         

       그리고 그 작업을 반복하자 그가 가져온 장작의 부피가 확 줄어들었고, 가마니 하나에 들어가고도 남을 양이 되었다.

         

       진성은 장작을 담은 가마니와 3분의 2 정도 사용해 부피가 확 줄어버린 소금 가마니를 지게 위에 얹고 그 위에 황금 피라미드를 얹었다. 그리고 지게에 묶어놓은 천을 이용해 그것들이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동여매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

         

       공해가 없는 북쪽의 하늘에는 별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구름에 모습을 감춘 달이 망치로 부서져 가루가 되어 흩뿌려진 것처럼 작게 반짝였으며, 어느 것은 무리를 이루고 어느 것은 흩어져 빛나고 또 빛나며 그에게 말을 건네려 하고 있었다.

         

       진성은 별을 바라보았다.

         

       북극성을.

       서로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며 형상을 이루는 별자리들을.

       흩뿌려진 채 상징을 받지 못한 별 무리를.

       오직 학자가 붙인 이름만이 존재하는 별을.

       그리고 그 별들 사이에 있는 새까만 공간을.

         

       그는 오직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관측에 별들 역시 그를 관측하였고, 서로가 관측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지함에 따라 그에게 충분한 의미를 내려주었으니.

         

       흔들리는 구름이 별을 가리고, 어둠에 파묻히며 우주의 색채를 품은 구름은 공백이 되어 흐트러진 별 무리를 정리해주었다. 구름으로 삐져나온 별은 점이 되었고, 삐져나온 점들을 잇고 또 이으면 그것은 쥐의 형상이 되었다.

         

       쥐.

       물을 나타내는 동물.

       방위로는 북쪽에 해당하며, 깊은 밤을 말한다.

         

       쥐는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형상을 하고 있었고, 똑바로 선 형상을 그리고 있었다.

         

       이는 자시(子時)의 한가운데를 뜻하는 것이라.

         

       진성은 자신이 안전지대를 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 그때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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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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