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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 ***

         

       혁기린은 아마 밤중에 황제 유경과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정상으로는 궁 밖의 오라버니가 혁기린을 만나러 오는 것이니..

         

       혁기린의 오라버니가 혁기린을 만나기 위해 황궁에 입궁했다는 사실의 개연성을 위해 나는 저녁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과를 함께 하자 말했다.

         

       마냥 일이 잘 풀리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는 예상 못했는데.

         

       혁기린이 일주일은 물을 못 먹은 시금치마냥 시들시들해졌다. 내가 천상루에 다녀온 다음 날 혁기린에게 혼구멍이 난 궁녀들만큼이나 시들었다.

         

       유경과 대판 싸우고 화가 잔뜩 나 있거나 아니면 오라버니와 화해에 성공해서 웃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세 번째 상태의 혁기린이 나타났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나는 슬쩍 운을 띄워 보았다.

         

       “혹시 일이 잘 안풀리셨습니까?”

         

       혁기린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와는 잘 화해했습니다. 그저 생각할 것이 많아진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왜 갑자기 그런 말이 나왔고 왜 또 시들시들하냐고.

         

       솔직히 채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혁기린의 고민의 깊이가 범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캐묻기에는 너무 무거워 보인다 해야 할까.

         

       괜히 들쑤시기 전에 유경을 통해 혁기린의 상태를 한번 떠 보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들시들한 혁기린과 다과 시간을 가지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두작으로 위장한 유경이 날 찾아왔다.

         

       혁기린과의 거북한 분위기 때문에 애꿎은 차만 벌컥벌컥 마시던 나는 차로 빵빵해진 배를 붙잡고 다시 두작과 다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누이랑은 잘 화해했네.”

         

       “그….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하지만 잘 화해하신게 맞는지요?”

         

       유경의 안색 역시 어둡기는 마찬가지.

         

       “자네에 대한 건은 잘 봉합되었지…그래.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다네.”

         

       남매가 날 아주 쌍으로 감질나게 만드네. 그 근본적인 문제가 뭔데? 혁기린이 두 가지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인가? 아니면 다른 문제인가?

         

       일단 남매 사이가 봉합되었다는 점에서 유경이 내 머리나 손모가지를 작두에 끼울 가능성은 사라졌다 할 수 있었다. 목숨은 건졌는데…이번 일에 끼어든 또 다른 목적인 혁기린의 싱글벙글 황궁 휴가 부분에 대해서는 전망이 어둡다.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유경이 물었다.

         

       “자네는 어쩌다 그런 도박 실력을 갖추게 되었는가?”

         

       이건 무슨 소리지?

         

       “낙양은 수도일세. 전통적으로 오랜 기간 번영해 온 도시이니만큼 유흥에 쓰이는 돈도 많고 그만큼 도박사들의 질도 높지. 그런 도박사들중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이들을 다 모아서 자네와 붙였음에도 자네는 그 모든 이들을 박살내지 않았나.”

         

       유경은 씁쓸한 기색을 띄었다.

         

       “만명의 사람에게 물어도 자네의 승산을 점치는 이는 없었을 테지. 그럼에도 자네는 그 판을 오로지 자네의 역량만으로 뒤집었네. 진인사대지천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천상루의 도박판이 딱 그랬지. 결국 사람이 일을 꾸며도 하늘이라는 운명에는 거스를 수 없는 법이었네. 나는 사람이었고 일을 꾸몄으나 자네는 하늘이었고 절대자였지.”

         

       “허허허, 너무 과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자네는 어떻게 그런 도박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어찌하여 그런 경지까지 오를 생각을 하게 되었나?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가르쳐 줄 수 있겠나.”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이 호천안이라는 몸뚱이가 한계경지가 이류인 잡혈 특성을 달고 있어서 하고 싶은 무공 수련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기술을 파게 되었는데 도박은 재료가 필요 없고 돈이랑 손모가지만 멀쩡하면 대성할 수 있는 기술이라 익혔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지만 못 해줄 이야기는 또 아니었다.

         

       “저는 제 출신성분을 모릅니다. 두작 님도 제 뒷조사를 했을 테니 얼추 들어는 보셨겠지요?”

         

       “크흠. 그, 그렇긴 하지.”

         

       “그러다보니 제가 특수 체질이라는 것도 몰랐지요. 근래 어쩌다 고명한 의원님과 연이 닿아 그때 알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까맣게 몰랐지요. 일류에 오를 수 없는 몸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마휘경도 도신 호천안의 성장비사가 궁금했는지 은근 슬쩍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일년간 무림에서 살며 그나마 이류의 경지에 올랐고 사천낭인의 소문을 듣고 낭인객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 자신감에 차 있었지요. 천하 기재들에 비하면 대단한 것 없는 성장속도겠지만 그래도 낭인들중에서는 군계일학이었거든요.”

         

       이야기는 좀 각색되었지만 실제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이도 했다. 이몸이 누구? 무림천하 고인물 10년차. 가진 건 불알 두 쪽밖에 없는 처지지만 그래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지 잡혈따위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파해 주겠다.

         

       그리고 결과는 이미 수차례 말했듯이 실패.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일류의 문턱을 넘어설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2년간 온갖 짓을 다 하고 나서 느꼈습니다. 아 그래 이건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구나. 무인으로서 길이 막혔으니 이젠 뭐라도 하나 해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게…도박인가?”

         

       유경의 얼빠진 반문이 돌아왔다. 뭐…그래 아무래도 좀 그렇지?

         

       “하하하…어처구니 없겠지만 뭐 그렇습니다. 사천낭인이라는 것이 꽤 폐쇄적인 신분이거든요. 사천낭인직을 유지하면서 다른 기술을 배울 길이 아예 없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농사, 약학, 요리, 대장장이일…뭐 이런 것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으니 제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박뿐이었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결국 내가 그 당시 배울 수 있는 기술은 도박 정도였으니까.

         

       “뭐 아무튼 도박을 제대로 배우기로 했으니 낭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도박을 배웠지요. 뭐 그냥 다 잃어 주었습니다. 다 잃어 주니 어설프게 손기술을 부려도 낭인들도 한 식구이니 그냥 웃으며 넘어가 주더군요. 그렇게 기본을 배워서 실전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오직, 도박 기술을 숙련시키기 위해서 말인가?”

         

       “뭐 그렇습니다. 도박판을 기웃거리다보니 꼴에 무인이라고 다른 도박사들의 손재주가 보이더군요. 실전을 겪으면서 이런 저런 기술도 숙련 시키고…뭐 그렇게 5년 정도 도박판을 기웃거리다보니 이 실력이 되었습니다.”

         

       유경은 잠시 생각을 곱씹어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자네가 진지하게 도박 실력을 갈고 닦은 것은 알겠네. 결국…자네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자네는 무공을 익힐 열정을 다른 곳에 쏟아내었다는 것 아닌가. 그게 도박이었고 그렇게 도박기술에 매진하다보니 그 경지에 도달했다는 결론인가?”

         

       “뭐, 그렇다 할 수 있겠지요. 맥이 빠지십니까?”

         

       유경은 허허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그렇구만. 천하제일의 도박사에게는 꼭 그만한 사연이 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말일세 그래도 기대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 아니겠나.”

         

       “하하. 그렇습니까.”

         

       유경은 웃다가 조용히 본심을 토로했다.

         

       “사실 나는 사람 보는 눈에는 자부심이 있었다네.”

         

       뭐…그렇겠지. 인사(人事)는 곧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폭발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인재를 보는 눈이 필수. 황권이 바닥에 눌어붙은 시기에서부터 치고 올라온 유경에게는 당연히 사람 보는 눈이 있었겠지.

         

       “그런데 자네를 보고 아주 크게 틀려버렸다네. 내가 볼 때 자네는 평범한 사람이었네. 딱 안분지족할 상이었지. 느껴지는 특별한 재능도 없었고 위를 향하는 치열함도 없었지. 재능이 있다 치더라도 모든 것을 걸고 위를 추구하기보다는 적당히 양보하고 적당히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범인.”

         

       뭔가 뜨끔한 말이었다. 유경의 통찰은 어느 정도 깊숙이 내 폐부를 찌른 듯한 느낌.

       

       

        “뭐 내가 삼라(森羅)와 만상(萬象)의 이치를 모두 꿰뚫어 보는 신인도 아니었거늘, 너무 교만했다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 한 번 틀렸으니 두 번 세 번 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유경은 잠시 한숨을 쉬고 망설이다가 말했다.

         

       “허허. 그저 누이의 앞날이 걱정되어서 말일세…조금 푸념을 들어 줄 수 있겠는가? 어쩌면, 내 예상을 벗어난 자네라면 또 다른 답을 내어 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구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누이는 아주 많은 것을 양보했네. 아주, 아주 귀한 것을 두고 어린 시절 나와 누이는 대척점에 서 있었지. 엄밀히 말하면 누이는 그 귀한 것에 나보다 더 가까웠네. 그것을 차지할 가능성이 나보다 높았다 할 수 있지. 그럼에도 누이는 나에게 그것을 양보하기 위해 가문을 뛰쳐나갔지.”

         

       유경의 말에 나는 그 귀한 것이 황제의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 가장 존귀한 자. 가장 높은 자리.

         

       “나는 누이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빚을 졌네. 그 어린 것이 짊어지기 어려운 짐을 스스로 떠안아가며 그 무게에 낑낑대는 것을 보았지. 그러니 나는 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네. 정말 진심으로 말이야. 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누이가 떼를 쓰면 다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부채감.

         

       나는 유경의 말에서 아주 진한 부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혁기린과 유경의 사연을 알고 있기에 그 목소리에 담긴 부채감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유경은 황제의 자리를 양보받았다 생각하고 있으니 그 무게를 가벼이 여길 수는 없었겠지.

         

       “누이는 나에게 말했지. 이 길을 걷는 것은 불행한 길이 아니라고. 그렇겠지. 어찌 사람의 길에 불행함만이 가득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볼 때 누이가 가는 길은 점차 가시밭길이 되어 갈 것일세. 나는…그것을 보기 어렵군.”

         

       “어째서입니까.”

         

       두작의 누이를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설정은 잠시 머릿속에서 지웠다. 나 역시 진심을 담아 그렇게 물었다.

         

       유경이 말하는 가시밭길이란 곧 무림일 것이다. 여장남자이자 황실의 공주로서 혁기린이라는 삶을 관철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어째서 누이가 가는 길을 응원해주시지 않은 것입니까?”

         

       “확신.”

         

       유경은 그렇게 말했다.

         

       “내 누이에게는 확신이 없었으니까. 앞으로 더 험해지고 험해질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누이가 만약 더 어렵고 더 험한 길을 선택하더라도 그저 믿어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한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그리 하겠네.”

         

       혁기린은 그런 확신이 없었던 것일까.

         

       “그러나 누이는 아직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모양일세. 오랜 시간 숙고해 해결될 문제라면 기다리겠네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로군.”

         

       “그렇습니까…”

         

       뭐랄까.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가슴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혁기린이 점창파에 가지는 애정을 나는 이미 많이 경험해 보았다. 미운 오리가 분명했을 여일예를 위해 분개해 점창파를 뛰쳐 나온 혁기린을 보았다. 여일예를 위해 상인들에게 부탁을 하러 돌아다니던 혁기린을 보았다.

         

       그리고 점창파에서 어린 제자들을 아끼는 혁기린 역시 보았다.

         

       단순하게 애정만 있는 것도 아니다. 혁기린은 무림인으로서 아주 잘 나가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점창파 대제자이며 사천에서 이름난 후기지수이기도 하다. 실력 역시 저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이니 출중하다고 할 수 있다.

         

       혁기린이 유경 앞에서 당당해지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혁기린의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할 것 같았다.

         

       *** ***

         

       아침부터 혁기린을 찾아갔지만 혁기린의 얼굴의 그늘은 여전했다.

         

       “대체 무슨 고민을 하시길래 사람이 이리 반쪽이 되었습니까? 좀 털어 놓으시지요.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강하게 채근하자 혁기린은 마지못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제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

         

       “이번 사천성 사태 때 말입니다. 사실 무력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나는 눈을 끔뻑였다.

         

       “사천성에서 제가 한 일이라고는…악적이라 할 수 있는 황금가의 황금선의 수작을 지켜보면서도 무력하게 황금가에 머무른 것 뿐이었습니다. 뿐입니까? 열심히 갈고 닦은 무력으로 황금선의 목숨이나 지켜 주었지요.”

         

       “아니, 그것은 올바른 일이지 않았습니까. 그때 여일예 소저가 광분해 난입했더라도 황금선을 잡아낼 가능성은 없었겠지요.”

         

       “그래도 결국 사천성에서 검을 뽑아 한 일이라고는 그것뿐이었습니다.”

         

       혁기린이 우울한 안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호 무사님은 계획을 입안하셨고 도박으로 성락루를 흔들며 사천낭인으로서 잠봉문을 습격해 증거를 모으셨지요. 흑묘 소저도 역시 성락루주 유지경을 잡는 공로를 세우셨고…일예 사저 역시 원수들을 징죄했으며 당가의 분들은 토벌군을 이끌었고 사마염 태수 역시 태수로서 활약했지요. 저만 그저 구경했을 뿐입니다.”

         

       “아, 아니. 청허 선사님을 설득해 거대방파와 사천성 문파들 간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점창파와 끈이 닿은 문파들을 규합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후후, 그것이 뭐 대단한 활약이라 언급하십니까. 점창파 제자라면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사천성 사태의 핵심은 사천성 문파들의 자력갱생이었다. 그러니 사천성을 둘러싼 거대 문파들의 개입을 모조리 쳐내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점창파 제자인 혁기린 역시 활약할 기회가 없어졌다.

         

       “점창파 제자라는 껍데기가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저는 그저 무력하게 뒤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제가…만약 또 다른 큰일이 닥친다면 해결해 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혁기린 상태이상: 자신감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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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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