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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제가 사라의 가족이라는 것만 증명하면 되는 건가요?”

        

       최나경의 말에, 이사는 잠깐 뜸을 들이고 말했다.

        

       “그저 가족이라는 것으로는 안 되겠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부모라도 자식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면 부모 취급을 해주지 않는 세상입니다.”

        

       “…….”

        

       “그 회사는 아직도 압박하는 중이십니까?”

        

       “……그건 운영상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이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탁자 위의 잔을 들었다. 하지만 잔에 입을 대지는 않았다.

        

       그 따뜻한 잔을 양손으로 든 채로 잠시 말이 없던 이사가 입을 열었다.

        

       “사라의 친구 중에서, 이원양행의 상속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

        

       “그 회사는 지금 건드리고 계시는 회사처럼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저희가 의뢰를 주고 그 회사가 그 의뢰를 따르는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건 양측 모두에게 이득이 있으니 이어질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최나경을 바라본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다루는 것은 경영자로서 심히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힘으로 찍어누르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갑 중의 갑이라고 말이 많은 회사인데 그 이미지를 고착화해버리면 문제가 심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알아서 해요.”

        

       “운영은 이사진에게 맡기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부디, 개인적인 감정에 눈이 멀어 회사의 앞길을 막는 일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지, 회장님의 개인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 회사의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된 이유를 생각해주십시오.”

        

       “…….”

        

       회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분명히 이 사람은, 전 회장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는 말일 거다.

        

       변변찮은 간호사로서, 매일 3교대 근무에 시달리는 그녀가 이렇게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 사람의 덕분이니까.

        

       물론, 최나경이 회장의 자리에 오른 이유는 그런 것과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회장님은 개인으로써 유진 전자의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지신 분이지만…… 이사진이 모두 모이면 그 주식의 양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회장님께서 보이고 계신 행동들은 모두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중이고요. 투자자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

        

       “그래도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어 당장은 불만이 터지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사라와 제 주식은……”

        

       “사라의 주식은 사라의 주식입니다.”

        

       이사의 말에, 최나경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사라의 주식이다.

        

       보통은 하나뿐인 어머니인 최나경의 그것과 함께 하나로 보여야 할 주식이었다.

        

       하지만.

        

       “……그러니, 사라와 아직 부모자식의 연을 맺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운명은 정해져 있다.

        

       회사 내에서의 투표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니까.

        

       “……반드시, 증명해 보이도록 하죠.”

        

       최나경은 이를 악물었다.

        

       *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일상이었다.

        

       물론 평범하다는 말은 이 학교 내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다. 학교 바깥에서 보면 이 학교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집안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

        

       모든 시설이 국내 최상이고, 교사들조차 최상. 그 모든 것을 나라의 지원 거의 없이 오로지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풀어나가는, 웬만한 사립 대학과 비교해도 비싼 학비를 자랑하는 학교.

        

       만약 ‘평범한’ 집안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니고자 한다면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생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거액의 빚을지는 방법밖에는 없을 정도였다.

        

       내용물은 더 가관이다.

        

       자본주의의 극단에 있는 집안이 자식들답게도, 학생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 거액의 돈을 받는 명품 교사들은 모두 제대로 수업도 듣지 않는 학생들에게 질려 교사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다 잊어버린 것 같다.

        

       학생 사이에서건, 교사 사이에서건,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건 돈이 오가는 것은 당연하고, 아예 이 학교를 위해 파견되어있는 은행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일반적으로 말하는 ‘평범함’과는 심하게 동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이상한 곳이라도, 그 안에서 계속 지내다 보면 이게 평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예사라를 따돌리던 아이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을 거고, 거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동조하던 선생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예사라’라는 존재가 갑자기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바람에 그 ‘평범함’이 깨져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교내의 위치는 많이 달라졌다.

        

       비록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던 교사들이라도, 최소한의 교권은 확보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점수를 주는 역할이었고, 돈을 낸 학생들이라면 몰라도, ‘그 학생들 덕분에 이 학교에 공짜로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분명 성적이 가장 좋아 교내에서 좋은 취급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장학생들은 사실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언젠가 고용되어야 하는’ 아이들. 이 학교에 돈을 내고 다니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의 목에 목줄을 너무나 쉽게 걸 수 있었다.

        

       ……그리고 예사라.

        

       ‘예사라가 가진 돈은 예사라의 돈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퍼져있던 것은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이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 봐야 아직 성인도 아닌 학생들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 과연 몇이나 ‘이 돈은 내 부모의 돈이 아니라 내 돈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을까.

        

       게다가 예사라는 실제로도 그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통제당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건 그저 착각이었을 뿐이지만.

        

       누군가 평생 벌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뿌려버림으로써, 예사라는 학교를 그대로 장악해버렸다.

        

       그러니, 그 결과로 이루어진 이 상황은 별로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을 하면 일단은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애꾸눈을 가진 사람들만 모인 곳에선, 애꾸눈이 정상인 법이다. 평생을 애꾸눈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은, 두 눈을 모두 가진 이를 보면 기괴하게 보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두 눈을 가진 사람이 ‘정상’ 취급받는 것은, 한쪽 눈을 뽑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다만—

        

       “예사라.”

        

       조회 시간, 갑작스럽게 교사가 예사라의 이름을 부른다.

        

       언제나처럼, 주변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려 멍하니 교사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수업을 들을 필요 없다.”

        

       “……네?”

        

       예사라가 당황하는 모습은 종종 보이던 모습이었다. 특히 이번 학기 초에는 자주 그랬다. 옆자리 친구가 옆구리를 찌를 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내곤 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갑작스럽게 차분한 인상으로 돌아온 예사라는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는지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대놓고 상대를 도발하는 것 같은 말투.

        

       담임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너를 찾아오신 분이 계신다.”

        

       그렇게 대답해준다.

        

       교실 모두는 어느새 예사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

        

       턱을 괴고 있던 예사라의 입이 멍하니 벌어진다.

        

       “……누가요?”

        

       “그건 가서 만나보면 알 수 있을 거다.”

        

       “싫어요.”

        

       예사라의 대답은 칼 같았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니, 기대하는 표정일까?

        

       당황하면서도, 입꼬리가 살짝살짝 올라간다.

        

       아니, 어쩌면 화난 얼굴일지도 모른다. 눈썹이 움찔거리고, 그 날카로운 눈이 마치 눈빛으로 베어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선생을 보고 있었으니까.

        

       “아, 너희들은 일어나지 마라. 일어났다간 그대로 불이익을 받게 될 테니까. 지금까지 수업을 몇 번이나 빠졌지?”

        

       먼저 일어나려던 신소희와 유하늘을 보고, 선생이 그렇게 말했다. 유하늘은 얼굴을 붉혔고, 신소희는 이를 드러냈다.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학생들이 숨을 삼킨다.

        

       저 사람이 어떻게?

        

       신소희에게 돈을 받았다는 것을 폭로 당하고는 신소희에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선생이,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예사라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차피 결국엔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라야.”

        

       “금방 돌아올게.”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 선생 쪽을 보았다.

        

       “……어디로 가면 되죠?”

        

       “교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담임은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예사라는 한동안 담임을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서 교실 문을 향했다.

        

       “사라야, 역시—”

        

       유하늘이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아냐.”

        

       예사라가 바로 그 말을 막았다.

        

       “이건, 단둘이 끝내야 할 일이니까.”

        

       “…….”

        

       예사라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교실 문이 닫히고, 한동안 교실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그럼, 조회 시작한다.”

        

       담임이 당당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신호가 되었다.

        

       학생들은, 선생이 자신감을 찾은 것을 보고 판단했다.

        

       아, 다시 ‘평범해질 시간’이구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건 차차 파악해가면 된다.

        

       만약 일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면.

        

       그녀들의 시선이 교실에 남은 신소희와 유하늘을 향했다.

        

       —애꾸눈을 가진 사람들만 있는 곳에선, 두 눈을 다 가진 이들이 비정상 취급을 받는 법이다.

        

       그리고, 그 ‘비정상’들이 ‘정상’이 되기 위해선, 한쪽 눈을 뽑아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눈을 뽑으면서, 어느 쪽의 눈을 뽑아야 할지,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잘못된 쪽을 선택하면, 괜히 눈을 뽑고도 비정상 취급을 받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무리 참아보려고 해도 하루에 두 편씩 올리는데 화수가 홀수로 올라가는 것이 불편해서, 내일은 한 화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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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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