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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특혜는 혼자 가지면 독재다.

     하지만 특혜를 나눠 가지면 이는 권력이 된다.

     

     마도자동선이 그렇다.

     황태자가 내게 처음 마도자동선을 선물했을 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바로 마도자동선을 강탈했다.

     순순히 넘겨주기는 했지만, 사실상 위계에 의한 강탈이었다.

     왕명.

     권력.

     나로서도 괜히 ‘국왕도 없는 물건을 백작가 장남에게?’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넘겨줘서 이득이었지만, 대외적으로 보인 모습이나 지금이나 좋은 말은 없다.

     저기 빈민가나 술집 등에서 나오는 말을 잠시 빌리자면.

     -바퀴 달고 땅을 달리는 개쩌는 자동선을 국왕 혼자 즐긴다!!

     라는 소리가 간혹 들린다.

     물론 이는 결코 세인트 지오의 자동선-유람선에 초대받지 못한 귀족들이 질투심에 사람을 시켜 내뱉는 그런 음험한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분명 무능왕이 마도유람선을 타고 다니며 즐기는 걸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고,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한 번 직접 타보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정기선에 올랐다.

     

     오로솔 아카데미와 세이레네 항구를 연결하는 대로.

     그 대로에는 이제 더 이상 마차가 달리지 않는다.

     정확히는 못 한다. 

     마차는 대로 가운데를 굴러가는 마도자동선을 피해 갓길로 쫓겨났고, 그마저도 자동선이 굴러올 때는 흙바닥으로 비켜서야 했다.

     사람이 버티기 이전에, 말이 땅을 달리는 배를 보며 놀라서 옆으로 자리를 피하고는 했으니.

     심지어 마차를 끄는 마부들도 이제는 슬슬 중앙대로를 마차로 이동하는 걸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고 하더라.

     -아니 글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들이 어지간히 고까워야지.

     마도자동선은 기본적으로 바다 위를 달리던 배였다.

     자연히 갑판이든 아니면 객실이든, 상대적으로 사람이 타는 곳은 마차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마도자동선에 오른 이들이 은연중에 느끼게 되는 우월감.

     고작 마차가 아닌 마도자동선에 올랐을 뿐인데, 지나가는 여행객이나 마차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윗사람이 된 것만 같은 우월감을 가지게 된다.

     알량하지만, 이 또한 또 하나의 권력이다.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엄청난 돈을 이동하는 데 쓸 수 있다는 것.

     남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마도자동선을 왕복으로 타봤다는 것.

     그러한 곳에 시간과 재산을 소비할 수 있으며, 그것이 또 자신의 자산을 늘리거나 권력을 다지는데 바탕이 된다는 것.

     즉.

     -마도자동선! 이걸 타지 않으면, 사교계에서 뒤처지고 말 거야!

     노스트럼의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게 있어, 마도자동선을 탄다는 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뽐내기에 너무나도 적절한 요소였다.

     수많은 영애가 부티크에서 산 옷이나 보석 등의 신제품, 제국에서 으레 사용되는 말로 소위 ‘신상’을 비싸게 산 걸로 유행을 선보이듯.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배가 땅을 달린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린아이처럼 바로 나타나 강탈한 것처럼.

     마도자동선은 뭇, 많은 남자 귀족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명분?

     갖다 붙이면 만들어지는 게 명분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제국의 신식 문화’를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다는 점이지, 명분은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지껄이면 그만이다.

     남들보다 먼저 제국 문화를 접하는 것이 권력이 된 시대.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의 또다른 문화, ‘바이크’의 등장은 예고만으로도 왕도를 뒤집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그 바이크가 도입되는 걸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곳, 바이크가 하역될 예정인 세이레네 영지에 직접 내려왔다.

     “여기가 세이레네 항구인가요?”

     “세이레네 제2 항구입니다. 제국과의 교역을 위해, 남부 해협의 일부를 아예 깎아버렸다고 하더군요.”

     넓은 평야.

     오직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구역은 거대한 철제 상자, ‘컨테이너’에 의해 구분되어 있다.

     “제국형 항구. 노스트럼에서는 어디에도 없는 물류창고. 제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의 70%가 이곳 세이레네 항구를 통해 들어온 다음 왕도 전체로 퍼지게 되죠.”

     “70%나 되는 거예요? 지브롤터가 열려있는데?”

     “협곡은 폭이 좁을뿐더러, 클레이돌 후작령의 핏빛 황무지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잖습니까.”

     “아하.”

     “초기에는 97%가 이곳 항구를 통해 들어왔다고 합니다. 항구가 이렇게 대규모로 개발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죠.”

     이제 막 철로가 깔리는 협곡 너머 핏빛 황무지-그러니까 과거 오크 시체들이 굴러갔던 그 지역과 달리, 세이레네는 해협에서의 포격만 없으면 얼마든지 교역이 원활한 장소다.

     우리가 지금 도착한 곳은 한창 하역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이레네 제2 항구.

     제국식으로 변모된 무역항만으로도 장관이지만, 역시 가장 큰 구경거리는 저기 배에서 컨테이너를 들고 옮기는 거인이다.

     “우와. 저렇게 보니까 좀 신기하네요. 저 무거운 컨테이너를 골렘으로 옮기고 있다니.”

     “때때로 마법의 힘만 있으면 쉽게 해결되는 일들이 노스트럼에는 참 많죠.”

     정확히는 거대인형, 그러니까 ‘골렘’이다.

     왕국의 마법사 중에는 사역 마법을 다루는 이들도 있고, 세이레네 백작가는 컨테이너를 빠르게 옮기기 위해 마법사들을 대량으로 고용했다.

     “신기하긴 하네요.”

     “제국에서는 컨테이너에 바퀴를 달고 움직이게 하는 편이잖습니까. 여기는 그러기에는 도로 상태가 많이 안 좋고.”

     “제국신문에서 그런 것도 나와요?”

     “마법으로 조작하는 골렘으로 컨테이너를 들고 옮기는 것은 미개한지 아닌지. 1년 전에 사설로 올라간 게 보였습니다.”

     “미개….”

     아스타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걸 미개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마법의 힘이라고 해야 할지…?”

     “시각의 차이죠.”

     좋게 표현해서 시각의 차이기는 하지만, 노스트럼 전반적으로 보면 미개하다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마법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다지 좋은 해결책은 아니니까.

     “배를 보러 가죠. 마침 저기, 제일 큰 배가 떡하니 보이지 않습니까?”

     “네. 엄청…크죠?”

     “아카데미 건물이 누워서 바다를 움직이는 것 같군요.”

     전방.

     제국에서는 ‘화물선’이라고 부르는 엄청난 크기의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다.

     노스트럼 해군 전열함 세 대를 연달아 늘어놓은 것 같은 길이의 배는 항구의 도크에 딱 달라붙은 채, 갑판에 싣고 온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있었다.

     “많이도 싣고 오네요. 사람도 그렇고.”

     “사람이라….”

     “역시, 신경 쓰이시나요?”

     “괜찮습니다. 이미 그런 걸 가지고 신경을 쓰기에는 제국 물건들이 너무 많이 들어왔으니까.”

     물론 저 배가 순식간에 ‘상륙함’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당장은 세이레네 항구에 정박한 제국의 상선이 싣고 온 건 머스킷을 든 병사들이 아닌 제국의 온갖 마도 문물.

     설령 머스킷이 알게 모르게 귀족들의 수렵 사냥용 무기라거나 귀족 영애들의 호신용 무기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튼, 제국은 지금 전쟁물자를 왕국에 내려놓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전쟁물자가 아니라, 순수하게 교역하고 교류하기 위한 물자죠.”

     적어도 겉으로는 절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다.

     “아가씨.”

     “네.”

     “아가씨와 제가 이렇게 붙어있는 이상, 제국의 수출품들이 ‘적진에 미리 가져다 놓은 전쟁물자’로 탈바꿈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네.”

     내가 아스타시아와 함께하는 이상.

     황태자가 나를 눈여겨보고 있고, 일부러 저렇게 아이페리아의 거대화물선까지 보내면서 제국 문화를 보내고 있는 이상.

     그리고.

     “혹시 황태자에게 놀아난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보겠습니다만.”

     “아뇨, 괜찮아요. 선물을 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죠.”

     황태자가 나와 아스타시아의 관계가 돈독해지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저것’을 대량으로 보낸 이상.

     “같이 타는 사진 하나 어떻게 찍혀서 보내는 건 어때요? 그러면 황태자, 기뻐서 막 춤이라도 출 것 같은데.”

     “그건 저기 아카데미에 돌아가면 위장용으로 하나 찍고, 그전에는 둘이 자유롭게 한 번 달려보도록 하죠.”

     나와 아스타시아는 황태자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제국군의 실질적 제1 함대, ‘해적’들이 갑작스럽게 약탈이라는 명목으로 세이레네 항구를 습격할 수도 있으니.

     평화를 위해, 우리는 사랑을 연기해야 한다.

     반짝.

     화물선 내부, 아주 짧은 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레이.”

     빛을 인식한 아스타시아가 바로 내 손을 잡았다.

     “가죠.”

     “예.”

     우리는 그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화물선 창가에서 빛이 나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 * *

     잠시 뒤, 특대화물선 ‘아이페리아’ 내부.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회장님.”

     정말 오랜만에, 우리는 그녀를 만났다.

     “오랜만이야, 이사장님! 그리고…황손녀님도!”

     에르윈 아이페리아.

     아스타시아가 성장함에 따라, 내 기억 속에 있는 ‘공주님’과 너무나도 닮은 모습인 그녀는-

     “지금 뭘 하시는 거예요!!”

     아스타시아에게 혼나고 있다.

     “오, 옷 제대로 입으세요!”

     “어머, 이게 왜?”

     

     에르윈 회장은 자기 옷을 위아래로 가리켰다.

     “남사스럽게 지금 뭘 입고 있는 거예요?!”

     “라이딩 복장?”

     상의는 재킷 앞을 여민다면 모를까, 내부는 제국 용어 ‘스포츠 브라’라는 것을-심지어 그마저도 흉부 좌우를 드러내는 개방적인 디자인의 옷.

     ‘누구 엄마 아니랄까 봐.’

     어째 취향도 비슷하다.

     에르윈 회장을 처음 볼 때부터 직감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녀는 내 기억 속 아스타시아와 너무나도 똑 닮아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가리고 있으면 서방님이 싫어하지 않을까?”

     “누, 누가 서방님이라는 거예요!”

     “그야 당연히 황손녀님 서방님이지.”

     에르윈 회장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안 그래?”

     자신의 눈을, 그리고 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만지작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죠.”

     “힉…?”

     나는 내 눈을 두 손으로 가린 아스타시아의 허리를 잡아끌며 당겼다.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정식으로 청혼할 겁니다.”

     “어머나!”

     “그리고 그때는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릴 수 있겠군요, 어머님. 아니, 장모님이라고 해야 하나…?”

     내 말에 에르윈과 아스타시아가 동시에 굳었으나, 나는 담담히 앞을-에르윈 회장의 뒤에 쭉 놓여있는 수많은 바이크를 잠시 훑으며 말을 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황태자비가 되신 거.”

     “…아직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아닌데.”

     “아. 벌써 결재는 난 겁니까?”

     “그것도 제국신문에 있었니?”

     “사설과 칼럼에서 이사벨라 황태자비를 규탄하고, 황태자비에 어울리는 여인으로는 누가 있을까 연일 떠들어대고 있는데 모를 수는 없죠.”

     황태자비의 교체.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못하지만 예상을 하나 하자면.

     ‘내가 나서는 바람에 미리 교체되는 건가. 조금은 미안하군.’

     분명 이사벨라 황태자비는 조금 일찍, 그것도 ‘공식적으로’ 폐위될 예정이다.

     “제국 황실에서도 어떻게 억제하려고 해도, 언론인 중에서는 자신이 직접 입으로 떠드는 걸 정의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 하하….”

     “더군다나 그들에게 입김을 불어 넣는 이들은 이사벨라 황태자비 뒤로 ‘후보’로 이야기가 나오던 이들. 합스베르크 전하께서 황태자비를 여럿 들였다면, 분명 제2 황태자비나 그런 식으로 자리를 잡았을 이들이 목소리 높은 이들을 동원해 떠들고 있겠죠.”

     이사벨라 황태자비를 규탄하고, 누가 진정한 황태자비에 어울리는가.

     “혹시 싫으신 겁니까?”

     “싫다기보다는, 으음….”

     “저는 굳이 장모님을 모셔야 한다면, 에르윈 회장님을 장모님으로 모시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

     에르윈 회장이 겸연쩍은 듯 볼을 긁적거리고, 아스타시아는 가만히 내 팔을 붙잡은 채 에르윈 회장의 눈치를 보기만 했다.

     공식적으로, 둘은 아무런 관계가 아니니까.

     누가 봐도 모녀 관계-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언니와 자매처럼 보이는 게 기본이기는 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이니까.

     “아스타시아 황손녀님?”

     “네, 네…?”

     “만일 제가 황태자비가 된다면, 저를 뭐라고 부르시겠어요?”

     “그야….”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우물쭈물하는 에르윈 회장과 달리.

     “엄마!”

     “…….”

     “어, 그건 너무 그런가요? 어머니? 어머님…?”

     아스타시아는 직선적이고, 저돌적이고, 적극적이다.

     “그, 실례…였나요?”

     “…실례는 아니고,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으음….”

     에르윈 회장은 뒤를 슬쩍 바라본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

     “…황태자비,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아, 물론 제가 황태자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건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이해합니다.”

     괜한 말이 나오기 전,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적으로 가족이 되는 경우는 왕국이든 제국이든 흔한 경우니까. 음, 그렇다면….”

     잠시, 뜸을 들인 뒤.

     “에르윈 회장께서 제 장모님이 된다면, 합스베르크 전하를 장인어른으로 대함에 있어 어느정도 제가 마음이 편해질 것 같기는 합니다.”

     진심을 담아 전했다.

     다른 황태자비보다, 에르윈 회장이 황태자비가 되는 게 내게는 더 편하니까.

     ‘듣고 있겠지.’

     최고의 선택지를 정할 명분을 줬으니, 남은 건 도장을 찍는 것뿐이리라.

     “아.”

     “왜 그러세요?”

     생각해 보니.

     ‘장인어른이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 * *

     “…….”

     “전하, 왜 그러시는지…?”

     “…….”

     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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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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