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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소울 아카데미의 메인 스토리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일단은 지금 어떻게든 나를 조지려 노력하고 있는 악신 측과 관계된 스토리.

   

   먼 옛날 할배를 비롯한 용사 일행이 악신을 봉인하는 데 성공했지만 봉인은 영원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라는 문장을 기본으로 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소울 아카데미의 대전제로 깔려 있는 이야기다.

   

   시간 내에 악신을 조지는 데 실패하면 게임 오버가 떠버리니까.

   

   어떤 컨셉으로 어떤 루트를 타더라도 일단 게임의 끝을 보고자한다면 악신을 조질 필요가 있지.

   

   허접 주신이 나한테 바라는 것도 이거라고 생각해.

   

   쪼잔 악신이랑 비교를 했을 때 과민반응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 쪽에 악감정이 많이 있는 것 같으니까.

   

   하기야 수많은 신들의 주가 되는 입장에서 자신들을 배신하고 힘을 독점하려 한 무리를 좋게 볼 수는 없으려나.

   

   다른 스토리 중 하나는 타락한 주신 교회 측의 이야기다.

   

   페이비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그 쪽은 도저히 깨끗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놈들이 많거든. 그 쪽을 파고 들게 되면 온갖 추악한 꼴을 보게 되지.

   

   그리고 마지막 메인 스토리가 바로 소울 아카데미가 존재하는 왕국과 관련된 이야기다.

   

   왕권을 누가 가질 지를 두고서 벌어지는 혼파망을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인데 이 스토리에서 최종 보스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현 왕국의 1왕자.

   

   차기 왕권에 가장 가까운 인물.

   

   르네 솔라딘.

   

   방금 전 문서에서 루시가 음침한 외톨이 좆밥 왕자님이라 매도했다는 분 되시겠다.

   

   그러니까 지금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최종 보스에게 시비를 털어 놓은 상태라는 거지.

   

   과거의 루시는 국왕의 면전에다가 냄새나는 가축 돼지라는 이야기를 지껄이는 미친년이다.

   

   과연 그런 루시가 1왕자를 상대했을 때에 어휘를 자제했을까?

   

   그럴 리가!

   

   1왕자의 면전에다가 온갖 매도를 퍼부어댔겠지!

   

   하아. 안 그래도 밉보이면 더럽게 귀찮아지는 인간인데 적의를 최대치로 찍고 시작해야 한다니.

   

   진짜 토 나올 것 같네.

   

   아직은 아카데미 튜토리얼이 안 끝나서 얼굴 볼 일이 없지만 나중에 2학년이 되면 오며가며 마주칠 일이 생길 텐데.

   

   으으. 안 그래도 요즘 아카데미 돌아다니다가 세실 얼굴이 보이면 다급히 도주를 해야 해서 힘든데 거기에 르네까지 추가되면…

   

   끔찍하다. 진짜.

   

   <여아야.>

   ‘왜요. 할아버지.’

   <본인이 미안하다.>

   ‘네?’

   <아무튼 본인이 잘못했다. 그대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고 너무도 많은 죄를 저질렀구나. 제발 본인의 업보를 용서해 줄 수 있겠느냐?>

   

   처음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내 모습에 할배가 놀란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니었다.

   

   할배는 노골적으로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손녀의 흑역사가 담긴 일기장을 발견하고는 폭소를 터트리며 그걸 읽고 있는 셈이었다.

   

   나이를 헛으로 먹은 인간 같으니라고.

   

   정신 세계에서 보여준 게 아니었다면 이 인간이 영웅인지조차 의심스러웠을 거야.

   

   ‘지금 제가 저럴 거 같아요?’

   

   그치만 할배. 아무리 그래봐야 저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없거든요? 어차피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서.

   

   연이어진 할배의 짓궂은 농담에도 내가 태연한 반응을 보이자 할배는 이내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음. 그건 그렇지. 사람은 바뀌는 것이니.>

   ‘할아버지가 자꾸 저 괴롭히면 저 때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요.’

   <하하. 조심하도록 하마.>

   

   아니 근데 진짜 신기한 게 루시는 어떻게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이만큼 사고를 저지르면 아무리 백작 영애라고 단두대 위에 올라가게 될 것 같은데?

   

   루시가 저지른 걸 대부분 베네딕이 수습했다는 걸 보면 베네딕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긴 한데 궁금하네.

   

   알새틴이라면 이것도 알려나.

   

   ‘저기. 알새틴…’

   “야. 정보 팔이. 이건 때려치우고 다른 것 좀 물어보자. 우리 바보 아버님은 대체 어떤 사람인 거야?”

   

   왕을 모욕한 것도 수습하고. 왕자를 모욕한 것도 수습하고. 교회에서 깽판을 친 것도 수습하고.

   

   이런 일은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베네딕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인 건데.

   

   “…베네딕 알른 경의 따님께서 그를 모르신다고요?”

   

   그게 궁금해서 알새틴에게 물었더니 그가 경악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알른 가문의 딸이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는 듯이.

   

   응. 그게 무척 비정상적인 일이라는 걸 알아. 근데 있잖아.

   

   ‘제가 왜 그걸 알아야 하죠?’

   “내가 왜 바보 아버님이 저지른 헛짓거리를 알아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왕이랑 왕자를 모욕한 것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무친련이 자기 아버지에 대한 걸 기억하겠니?

   

   무적의 루시 방패를 내밀자 알새틴은 당황했다가 이내 묘하게 납득을 하다 허공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데.

   

   왜 그런 반응인데.

   

   <베네딕 그 녀석이 불쌍해지는 구나…>

   ‘아니 할아버지까지 왜 그래요?!’

   <아무리 망나니 같아도 자기 딸이라고 최선을 다해 보살폈거늘 거기에 돌아온 대답이 내 알바냐라니.>

   

   할배의 이야기를 듣고 돌이켜보니 이런 썅년이 없긴 하네.

   

   누구는 아무리 쓰레기 같아도 자기 딸이라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수습을 해줬는데 그 딸이라는 년은 ‘아버님이 뭘 하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같은 이야기가 지껄이고 있다니.

   

   그치만 나는 루시가 아니라고!

   

   메스가키 모드 제작자 그 개자식 때문에 루시의 몸에 빙의한 불쌍한 피해자일 뿐이란 말야!

   

   그런 내가 어떻게 베네딕에 관해서 아냐고!

   

   얘는 게임 속에 출현한 적도 없는 녀석인데!

   

   속으로 내가 쓰레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그 모든 건 허사였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 내뱉을 수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으니까.

   

   <지금이라도 기억해두도록 하거라. 베네딕은 그대를 위해 어마어마한 고생을 한 듯 하니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네에.’

   

   할배의 이야기는 지극히 정론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억울해. 난 아무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베네딕 알른 경께서는 구국의 영웅이십니다.”

   

   알새틴은 정보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는 듯 내 앞에서 베네딕이 한 일에 대해 읊어대기 시작했다.

   

   왕성에 처들어 온 용을 단신으로 격퇴한 일.

   

   S급 던전이 발생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문의 기사들을 이끌고 그를 공략한 일.

   

   타국과의 분쟁이 벌어졌을 때 그 이름만으로 분쟁을 멈춘 일.

   

   이외에도 베네딕이 전성기 시절 이루어낸 업적은 몇 가지가 더 있었다.

   

   <강한 녀석이라 생각했지만 격이 다른 괴물이군.>

   

   한 때 세상을 구한 용사 일행 중 하나였던 할배의 입에서 괴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정도였으니 베네딕은 살아 움직이는 전설이라 불릴 법 했다.

   

   나는 그를 듣고 감탄하면서도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지금 베네딕이 이루어낸 업적들. 원래는 다른 캐릭터들이 이루었어야 할 일들이잖아.

   

   용 퇴치의 업적 같은 경우에는 현 왕국 기사단장의 것이다. 왕국 측 최강전력의 대단함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었지.

   

   S급 던전 공략 같은 경우도 그렇다.

   

   저는 한 가문의 업적으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었다. 교회 측에 협력을 통해 간신히 해결한 문제로 왕국 내에 교회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한 설정이었다.

   

   이외의 다른 업적들도 그랬다.

   

   원래라면 다른 이들이 지녔어야 했을 업적이.

   

   더 커져서 많은 피해를 입혔어야 했을 일들이.

   

   베네딕의 손에 의해 해결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루시의 목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베네딕이 이루어둔 업적이 업적이지만 그보다도 베네딕과 그의 가문이 지닌 무력이 너무도 위압적이었으니까.

   

   딸바보로 유명한 베네딕이다.

   

   그 누가 그의 앞에서 루시 알른을 규탄하고 나서겠는가.

   

   자그마한 나라가 상대라면 홀로 대결을 펼칠 수 있는 변방의 백작 가문을 어찌 적으로 돌리겠는가.

   

   알른 가문이 강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네.

   

   내 뒷배인 백작 가문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곳이었구나?!

   

   “베네딕 알른 경께서 계시기에 영애께서는 안전할 수 있는 거죠.”

   

   ‘이해했습니다.’

   “내가 그것도 이해 못할 것 같아 정보 팔이? 내 지적 수준을 너 따위랑 비교하지 말아줄래?”

   

   “…아셨다니 다행입니다.”

   

   근데 저 정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으면 메인 스토리에도 여러 영향이 갔을 것 같은데…

   

   아직은 알른 가문하고 아카데미밖에 둘러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이 바깥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여러 일들이 존재하겠네.

   

   당장 알른 가문에 요한 주교가 있는 것도 게임 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니까.

   

   이게 게임이었다면 단순히 메스가키 캐릭터가 하나 생기고 말 문제가 현실이 되니까 이렇게 어지러워지는구나.

   

   내 게임 지식이 쓸모없어 지는 순간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아서 슬프다.

   

   그 때가 오면 할배에몽을 부르짖으면서 해결해달라 그래야지.

   

   “이외에 더 물어보실 것이 있습니까?”

   

   ‘네…’

   “그래. 정보 팔이. 구해주겠다고 한 그 물건은 언제 가져다 주는 거야? 네 무능을 참아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허접 정보팔이.”

   

   얼마 전 페이비가 자신의 진실을 깨닫게 된 후에 나는 알새틴에게 한 가지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침묵의 스크롤 말입니까?”

   

   침묵의 스크롤. 고요의 신 하르포를 모시는 교단에서 제작하는 두루마리로 그 효과는 이렇다.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바깥에 새어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간단하게 말해서 비밀 이야기를 할 장소를 만들어주는 물건이다.

   

   앞으로 나와 페이비가 나누어야 할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넘치는 이야기일 텐데 아무데서나 이야기를 나눌 순 없잖아?

   

   그러니까 페이비를 내 방으로 데려온 후에 침묵의 스크롤을 사용해서 밀실을 만들 생각이야.

   

   어지간히 불온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안 그래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알새틴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품 안에서 스크롤을 꺼내 내 앞에 올려다줬다.

   

   빠르네. 워낙 고위층에 인기 있는 물품이라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이런 물건을 구해주는 능력은 탁월하다니까.

   

   ‘고마워요. 알새틴.’

   “흥. 무능한 허접치곤 빨랐네.”

   “감사합니다. 알른 영애님.”

   

   그럼 이제 페이비랑 대화를 나누러 가볼까.

   

   내가 잘 할 수 있으려나 몰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네딕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 집무실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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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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