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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8

    이곳은 세피로 02 마나 발전소.

     

    그곳에서 창 밖을 올려다보며 차를 홀짝이는 사내가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항상 드리워져있던 다크서클이 말끔히 지워져 있었는데, 새들이 세계수 가지 위에 날아와 앉는 모습을 마치 너무나 행복하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리는 것이 대체 얼마만의 일이란 말인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아주 새랑 대화도 할 것 같은 모양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여성은 그 장면도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러기엔 그의 감수성이 그다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기대는 되지 않았다.

     

    “기분 되게 좋아 보이시네요, 콜슨 선배.”

     

    “그야 당연히 기분이 좋지.”

     

    “세계수가 안정화 되어서요?”

     

    “그럼.”

     

    그렇다, 세계수의 안정화. 대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자주 말썽을 부렸는데, 마치 그 시기는 사춘기였고 지금은 다 컸다는 것처럼 세계수는 완벽하리만치 훌륭하게 동작해주는 중이었다.

     

    “그때는 역시 뭔가 날이 안 좋았던 거라니까.”

     

    거듭된 오작동으로 요즘에는 ‘아예 세계수를 새로 심어야 하나’하는 생각도 할 정도였으니까.

    그는 오늘 확실히 줄어 있는 서류더미의 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좀 놀면서 해도 제 때 퇴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적인 관측을 하면서.

     

    그렇게 제라드가 컴퓨터를 켜자, 그의 계정으로 낯선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발신인은 바로 길버트.

    이전에 함께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아카데미 동창 드워프였다.

     

    “웬 메일이지?”

     

    툭툭, 수정구를 두드려 메일을 열어보는 제라드.

     

    -메일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네, 제라드.

    -전화나 문자는 지금 내가 에이레스가 아니고 베리튼이라서 추가요금이 들어서, 부득이하게 메일로 보낸다.

    -소설 집필을 위해서 잠깐 여행을 왔거든. 아참, 엘프들이 술은 기가 막히게 만든다는 거 알지? 너도 나중에 베리튼에 올 일이 생긴다면 베리튼의 수제 과일주는 꼭 먹어보길 바란다.

    -아무튼, 그래. 몇 주 전에 술자리에서 내게 한 말 기억하나? ‘에레’에 대해서 물어봤었지?

    -한참을 떠올려 봤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아서 최근까지 연락을 못 했었다. 그런데 베리튼에 오니까 기억이 났어. 그건 여행중에 치매걸린 늙은 엘프한테 얼핏 들은 말이었거든. 그 땐 한 300살 되었다고 했나? 아직도 살아있는 줄 모르겠네. 아무튼 그건 엄청 오래 된 말이라고 들었어. 그 애는 대체 어디서 에레라는 말을 주워들은건지 참 궁금하네.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아는 건 이거니까. 알아서 전해줘.

     

    여기서 끝나는 페이지.

    제라드는 ‘와, 까먹은게 아니었네.’라고 다음페이지를 넘기기전에 생각했다.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자신과는 달리, 역시 드워프라서 그런가 정신이 멀쩡했나보다.

    제라드는 수정구를 조작하여 화면을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에레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어. 그건 말이지…….

     

    ——

     

    구름 하나 없이 쾌청한 하늘, 덕분에 훨씬 후텁지근한 느낌의 날씨.

    정오에 가까워지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 산을 타는 한 아이와 성인 엘프 남성은 전혀 덥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시루드는 그 체질이 특이하여 계절의 마나를 잘 받아 더위를 쉽게 타는 모양이지만, 사실 엘프는 원래 더위나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종족이다. 한 겨울에도 코트 한장만을 걸치고 생활하던 예르나처럼.

     

    그러나 수인은 그렇지 않았다.

    더위라면 더위, 추위라면 추위, 온도에 굉장히 민감한 종족일 터.

    극히 희귀한 케이스로, 파충류적 특성을 지닌 드래고니안 수인이라면 더위엔 강하다곤 하지만, 이 아이는 딱히 드래고니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비늘이 피부에 드러난 부분이 없었으니.

     

    “혹시 덥지 않니?”

    “으음, 전혀.”

     

    더위는 그냥 두어도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추울 때는 일부러 ‘파이어’로 열을 내서 온도를 뎁혀야 했지만, 지금은 굳이 아이스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루크의 몸 일부가 드래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대 돼?

    “후훗, 당연히 그렇지 않겠느냐?”

    -응! 기대되네!

     

    파이 역시 데미라이트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인지, 그 정령어에서 전해져오는 감정이 루크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게 이 시대의 데미라이트를 직접 본다는 생각에 그저 웃으며 등산을 하고 있으니, 엘프 남성인 그가 묻는다.

     

    “루크.”

    “왜 부르는가, 밀레드?”

     

    ‘밀레드 지크핀드’

     

    그것은 루크가 남성의 목에 걸린 증에 적힌 사원증을 보고 알아낸 이름이었다.

     

    “너는 왜 꽃이 좋은 거야?”

    “비밀이라네!”

    “하하, 뭐야 그게.”

     

    루크의 엉뚱한 대답에 그는 맥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무엇이길래 비밀이라고 하는 걸까?

    경쾌한 발걸음으로 잔뜩 흥얼거리면서까지?

     

    밀레드는 그게 어찌나 귀엽게 보였는지, 그저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로 귀여웠냐면, 나중에 딸을 낳는다면 이렇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

    이렇게, 종종 같이 등산도 좀 하면서, 이야기도 좀 나누고.

     

    “루크는 취미가 뭐야?”

     

    취미라? 박스에 들어가 시간을 때우는 것은 딱히 취미라고 할 게 아니겠지, 마법을 연구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 둘은 루크에게 있어서는 본능적인 욕구인 셈이니까.

    마치, ‘잠을 자는 것’ 이나, ‘밥을 먹는 것’ 또는, ‘숨을 쉬는 것’ 은 취미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흠……”

     

    그렇다면, 가장 취미에 가까운 것은 아무래도…….

     

    “화단 가꾸기나, 요리 정도는 취미라고 할 수 있겠구나.”

     

    “취미도 식물 가꾸는 거야? 대단하네.”

     

    “뭘 대단할 것 까지야. 그냥 방치된 화단을 좀 가꾸었을 뿐이다. 흠, 여행이 끝나고 돌아갔을 때 별 일이 없었다면 좋겠구나.”

     

    “화단 걱정도 하는 거야?”

     

    “그야 당연히 하지, 되도록 정성을 쏟고 있으니 말이다.”

     

    루크의 명랑한 대답에 밀레드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애가 말을 참 잘 하네. 어린애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리있게 또박또박 말을 지어내는 것을 보면, 상당히 똑똑한 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마 공부도 잘 하겠지?

     

    “그럼 집에선 보통 뭘 해?”

     

    그 물음에 루크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연다.

     

    “음, 평범하지. 아침에 일어나서 목욕 후, 빨래를 걷고, 식사를 준비하고, 다음엔 청소하고. 대략적인 집안일이 끝나면 남는 시간엔 대부분 공부를 하거나, 낮잠을 잔다. 나라고해서 딱히 특별한 일은 없다.”

     

    그거 완전 모범생이잖아.

    그것도 정말 교과서로 그려낸 듯한 모범생이다.

    밀레드는 다시금 이런 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직 여자친구도 없지만…….

     

    “하하, 그러면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시겠네.”

    “흠, 내게 부모님은 없다만…….”

    “……어?”

     

    밀레드의 몸이 멈췄다.

    뭔가 질 나쁜 농담인가?

    그 뒤로 드는 생각은 ‘하하, 루크 같은 모범생도 장난을 치는구나’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크의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은 이미 대답과도 같았다.

     

    루크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밀레드의 시선에 조금 부담스러움을 느껴 그에게서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내 어머님과 아버님은 아주 행복하게 돌아가셨으니.”

     

    10살짜리 아이를 두고 죽은 부모가 행복했을 리가 없지.

    그 것은 그저 부모가 아이에게 슬픔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하다.

    다가온 죽음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그 정도 뿐이었을 테니까.

     

    밀레드는 확연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안.”

     

    “미안할 것 없다, 그대여.”

     

    “…….”

     

    루크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지만, 밀레드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덥지만 분위기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고요한 상황에 오한이 들 정도.

     

    이럴때는 차라리 벌레라도 날아와서 귀찮게 굴어줬으면 좋겠는데, 하필이면 벌레 한 마리도 없이 쾌적한 산길이라니.

    평소라면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돌아가실 정도로 답답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안 울어서 다행이다.’

     

    루크는 정말 씩씩한 아이구나.

     

    ———

     

    산꼭대기에 위치한 베리튼 식물 연구소는 상당히 규모가 있는 건물.

    성과 같은 크기의 거대한 유리 온실과도 같은 모습은, 가까이서 보니 저 밑에서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박력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 꽤 나이가 들어보이는 엘프가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왔다.

     

    “앗, 박사님…….”

     

    노인의 등장이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지, 밀레드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가온 노인이 말을 건넸다.

     

    “밀레드, 내가 시킨 온실 식물들 관리는 벌써 다 끝냈느냐? 음? 이 꼬마는 누구지?”

    “박사님, 얘는 여행온 티그아카데미 학생인데, 데미라이트를 보고 싶다고 해서요. 잠시 구경 좀 시켜주면 어떨까하고…….”

     

    그러자, 노인의 한쪽 눈썹이 움찔거린다.

    그와 동시에 노인의 벽사목 지팡이가 빠르게 움직였다.

     

    “악! 박사님!”

    “예끼, 이 놈아! 니가 그럴 시간이 어디있어? 지금 네가 관리할 식물들이 한두개냐?”

    “그래도, 애가 엄청 보고싶어 한다구요!”

    “…….”

     

    할 말이 없어지니 자신을 내세우다니, 루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밀레드를 흘겨보고는 물었다.

     

    “밀레드, 설마 나를 이곳으로 안내해준 것이 ‘식물 관리를 하기 싫어서’인 것은 아니겠지?’

    “…….”

     

    밀레드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확실히,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밀레드의 표정에서 그런 기색을 읽은 루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못 쓴다네, 하아…….”

     

    자신의 부탁이 예기치 못하게 해가 되었으니, 자신이 응당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맞을 터.

    루크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이것은 내가 미안하게 되었군. 면목이 없다. 혹 그대가 명한다면 밀레드와 함께 바로 하산하도록 하겠네.”

    “이렇게까지 하는데, 한번만 봐주세요. 박사님. 자라나는 꿈나무라고요.”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늙은 엘프는 흥미롭다는 듯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 이 꼬마는 밀레드, 네 녀석이랑은 달리 싹수가 있구나.”

    “……윽.”

     

    노인의 말에 밀레드는 부끄러움에 시선을 어쩌지 못하고 몸을 배배 꼬았다.

    얼굴은 이미 상당히 붉어져서, 붉은 장미와 색비교를 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아무튼, 노인은 루크의 언행이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좋아, 데미라이트는 보여주지. 하지만 밀레드, 이번만 봐주는 게다. 딱 데미라이트만 보여주고 다시 일 하러 가.”

    “하아……. 네, 알겠습니다. 자, 이쪽으로 가자.”

     

    다행히 승낙이 떨어졌다.

    밀레드는 한숨을 쉬며 루크의 발길을 이끌었다.

    원래 계획은 연구소 전체를 소개시켜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박사님도 오시나요?”

    “그럼. 당연히 가지. 네놈이 똑바로 설명하는 지 확인도 할 겸.”

    “…….”

     

    저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내심 박사님도 루크가 귀여웠던 모양이다.

    저 손녀를 보는 듯한 눈동자를 보면.

    하긴, 이 식물 연구소에 루크 같은 여자애가 올 일은 없다시피 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을 위해서는 루크에게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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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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