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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8

     

    왕국의 장군이 땅콩차를 후루룩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수분 덕에 혀가 풀렸는지 그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계속하지. 우리 왕국도 범대륙적 위기에 대응할 의사는 충만하오. 제국이 협조적인 태도를 안 보이니 내가 이 자리까지 온 것이오.”

     

    여태 강하게 나오던 태도는 상대를 선제압하기 위함. 본론은 이후에 천천히 꺼낸다. 알기 쉬운 협상법이다.

     

    “국제 조약을 들이밀려면 사전에 우리 국가와 조율했어야지, 다짜고짜 쳐들어오는 게 말이나 되오? 마계와 전쟁을 홀로 하겠다는 제국의 오만한 태도밖에 안 보이오!”

     

    “착각하고 있구나, 군인 아이야.”

     

    차가운 목소리가 회담장에 내려앉았다.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셀라였다.

     

    “지금 뭐라고?”

     

    “여기는 덴글리우드 제국이다. 두말할 것도 없는 대륙의 최강국이야. 제국이 선두에 선다. 나머지 국가는 뒤따르며 협조한다. 당연한 모양새지 않겠니.”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진다는 듯, 아셀라는 당연한 세상의 진리를 말하는 태도였다.

     

    “분수를 알거라. 제국과 맞먹으려면 더 국력을 키워와라. 억울할 일이 있는가. 너희가 나약한 것을.”

     

    장군은 아셀라의 오만한 태도에 벙찐 모습이었지만 뭐라 즉시 반박하진 못했다.

    실제로 맞는 말이었다.

     

    “네가 누구 앞에 앉아있는지 모르고 있는 듯하니 상기시켜주마.”

     

    탁, 아셀라가 매섭게 찻잔을 놓았다.

     

    “본녀는 제국의 황녀다. 차기 황제가 될 몸이지. 평생의 영광으로 알고 예의를 갖추어라. 본녀가 옥좌에 오른 후엔 네놈은 평생 그 목에 시퍼런 칼날을 달고 살아야 할 터이니.”

     

    아셀라의 당당한 태도에 장군이 긴장하며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상대가 여자들이니 윽박지르며 나가면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겠지. 사람을 잘못 봤다.

     

    아셀라의 패기를 정면에서 받아냈으니 제정신일 리가 만무했다.

     

    “…예의를 못 지킨 점은 사과드리겠소이다, 황녀 전하.”

     

    바로 호칭부터 바꾸는 장군이었다.

     

    “허나 그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소. 그럼 제국은 마계와의 전쟁 내내 대륙의 국가를 모두 수탈하겠다는 뜻이오? 정복 전쟁 시기로 돌아가겠다는 의미오이까!”

     

    장군도 장군대로 본분을 잊지 않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이번 성검 건은 확연한 약탈 행위로 보고 보상을 받아야겠소.”

     

    본론이 나왔다.

    장군은 메신저다. 왕국의 목적은 우리에게 팔 성검의 제값을 받는 것이었다.

     

    아셀라는 그런 장군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보상이라니? 그 성검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지. 본녀가 주워왔을 뿐이었단다.”

     

    “그럴 리가 없잖소! 현장에 여단장을 포함해 우리 군병의 시체가 발견됐단 말…”

     

    그때였다.

     

    장군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얼굴을 굳혔다. 자리의 모든 이가 그의 이상행동에 주목했다.

     

    “발견, 됐단…”

     

    말을 마치지 못하고 목을 부여잡는 장군.

    숨이 쉬어지지 않는지 괴로워하며 코를 씰룩거린다.

     

    “장군님?”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사람들 사이로 내가 나섰다.

     

    “아나필락시스 반응입니다. 아까 마셨던 땅콩차에 대한 알러지가 원인입니다. 즉시 응급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헤이케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군, 이쪽은 제국에서 가장 실력 좋은 치유사요. 그의 조언대로 치료를 받으시오.”

     

    장군은 자존심 때문인지 고개를 저으며 한사코 거부했다. 아직도 회담을 이어갈 생각이다.

     

    의지력은 인정해 줄 만했다.

     

    허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곧 균형을 잃고 쿵! 장군이 바닥에 쓰러졌다.

     

    “장군님!”

     

    그의 부하들이 바로 달려들어 부축한다.

     

    아셀라의 눈치를 본다. 그녀가 내게 눈짓으로 허락 사인을 보냈다.

    우당탕! 나는 바로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가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가까이 오지 마라!”

     

    그의 부하들이 나를 보고 기겁했다. 휘날리를 백의를 보고 유령으로 착각했나.

     

    “바로 처치 안 하면 생명의 위험으로 직결될 수도 있어. 정말 내버려 둬?”

     

    “그, 그럼 당신이 손댄다고 뭘…”

     

    “나 아니면 살릴 사람 여기엔 없어.”

     

    “으윽….”

     

    부하들이 망설이자 헤이케가 나섰다.

     

    “그의 실력은 황실의 명예를 걸고 1황녀인 내가 보증하겠다.”

     

    헤이케까지 그렇게 나오니 그들도 더 막아설 수 없었다. 나는 바로 환자를 살폈다.

     

    ‘기도가 부풀었어. 호흡곤란, 발작. 동공도 확대됐고.’

     

    전형적인 알러지에 의한 아나필락시스 현상이다. 처치법은 정해져 있었다.

     

    “에피네프린 주사한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가락 끝으로 상황에 필요한 주사기를 찾는다.

     

    이미 진단도 마쳐놨으니 증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꺼내 들어 단숨에 허벅지에 대고 주사한다.

     

    “허억, 허억…”

     

    벌벌 떨리던 장군의 몸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다만 한 가지. 폐쇄된 기도는 여전히 호흡곤란을 유발하고 있다. 잘못하면 질식한다.

     

    ‘실험해볼까.’

     

    주사기를 하나 더 꺼냈다. 안에는 살짝 노르스름한 기름기 같은 액체가 들어있다.

     

    ―――――――――――

    · 수중호흡 포션

    · 피부로 호흡할 수 있게 됩니다.

    · 지속시간 5분

    ―――――――――――

     

    연금술 연성 스킬로 포션을 이것저것 만들다가 나온 샘플 중 하나다.

     

    환자의 상태에선 산소 공급에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했다.

     

    톡, 버튼을 누르니 금방 포션이 쑤욱 체내로 들어간다.

     

    그리고 30초.

     

    “허억, 허억.”

     

    조금씩 환자의 호흡이 안정되어갔다.

    부푼 피부는 그대로이니 포션 덕에 호흡 보조가 되고 있다는 뜻.

     

    쓸만한 데이터를 얻었다.

     

    “응급팀이 도착했습니다.”

     

    기사가 보고했다. 장군이 쓰러진 지 3분도 지나지 않았으니 파스타집 배달보다 빠른 속도였다.

     

    “어떻게 벌써 왔어?”

     

    아셀라가 의아해하며 내게 물었다.

     

    “장군이 제 조언을 무시하고 차를 마시지 않았습니까. 그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지요.”

     

    “준비성이 철저하구나. 계속 그렇게만 해.”

     

    참, 다른 사람들 앞이라고 강하게 말하기는.

     

    최근엔 아셀라가 내게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면 전보다는 조금 귀여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뭐라고 할지 궁금해져서 더 심기를 건드리고 싶어진다.

     

    “내의원으로 모시고 가시오. 회담은 나중에 재개하도록 하지. 혹 그대들은 이쪽이 술수를 부렸다고 의심할 수도 있겠소만.”

     

    헤이케가 상황을 정리하며 왕국을 상대로 선제를 쳤다.

     

    “정황은 여지가 없도록 지금 바로 검증하도록 하시오. 독 같은 건 어디에도 없소.”

     

    “으음… 그리 하겠습니다.”

     

    왕국 사절단이 자신 없는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흥이 식었구나.”

     

    기사들이 장군을 들것에 실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셀라가 한 마디 했다.

     

    “시간이 비었네. 라스, 그동안 뭘 하고 있으면 좋겠니.”

     

    “자료라도 검토하고 있을까요. 장군이 정신을 차리면 방금 건으로 또 시비를 걸어올지 모를 일이니까요.”

     

    “생명의 은인에게 덤벼대는 무뢰한이라면 더 말을 섞고 싶진 않구나. 향이 고소하니 괜찮은 차 같던데.”

     

    아셀라가 찻잔 모서리를 검지로 부드럽게 반 바퀴 훑었다.

     

    “같이 티타임이라도 즐기고 오련?”

     

     

     

    ***

     

     

     

    회담은 밤에 재개됐다. 내일로 연기할 수도 있었으나 장군의 의지가 보통이 아니었다. 회복되자마자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는 즉시 자리를 요청했다.

     

    “몸은 좀 어떻소, 장군.”

     

    “멀쩡하오. 심려에는… 으음.”

     

    장군이 콧잔등을 씰룩였다. 그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렀다.

     

    “감사를 표하오.”

     

    결국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이미 준비한 협상 전략은 물거품이 됐으니 뭐.

     

    “장군의 급환은 제국이 의도하지 않은 사고였다고는 이해하셨소?”

     

    “…그렇소.”

     

    이미 그의 부하들이 검증은 끝냈다. 검출된 독도 없고 현장에서 찻잔은 임의의 잔에서 그가 직접 집었다. 차의 종류도 상단이 유통하는 기성품이다.

     

    장군 자신도 모르고 있던 알러지로 우리가 독살을 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

     

    “제국의 내의원을 본 소감은?”

     

    “상당히 발전했더군.”

     

    “의학을 도입한 내의원의 신식 체제가 없었다면 그대는 이승에 없었을지도 모르오. 운이 좋았군.”

     

    “으음…”

     

    장군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한층 태도가 누그러졌다.

     

    “제국의 의학과 치유술은 인정하겠소. 치유사는 훌륭할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제국이 모든 면에서 대륙 최고라는 뜻은 아니오. 왕국에는 수도 없이 마물과 싸우고 던전을 공략하며 단련된 전사와 군병이 있소.”

     

    장군이 서서히 밑밥을 깔며 본론을 꺼냈다.

     

    “성검은 본래 우리 왕국의 물건이오. 그것을 멋대로 강탈해 간 제국의 행동은 진정 대륙의 미래를 생각한다 볼 수 없소. 과정에서 희생된 병사들은 어떻겠소?”

     

    그가 힘을 주어 강조했다.

     

    “위쪽에서는 대륙을 위해 이번 군사도발을 평화롭게 넘어갈 의향도 있다고 했소. 몇 가지 조건만 맞는다면.”

     

    “그 전제조건부터 하고 싶은 말은 많소만, 일단 조건을 들어보지.”

     

    장군이 헤이케에게 말했다.

     

    “추후 만들어질 연합군 편성에 있어 제국과 동등한 권한을 주시오.”

     

    여기에서 시작됐군.

     

    얼핏 보면 함께 조화롭게 군대를 꾸리자는 평화로운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저 안에는 결국 용사 파티의 편성권도 달라는 의도가 숨어있다.

     

    “음.”

     

    헤이케는 여러 가치를 저울에 올린 듯했다. 그녀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아셀라가 나섰다.

     

    “말이 틀렸구나. 제국은 왕국에게 군사도발을 한 적이 없단다.”

     

    “그걸 부정하시는 게요? 현지의 조사결과가 전부 있소. 성검이 뽑힌 호수에 난투의 흔적과 함께 우리 병사의 시체만 있었지.”

     

    “그 현장에 있었던 이로서 말씀드리자면.”

     

    내가 나서니 장군이 놀란 눈치를 보였다.

    설마 내의원의 주치의가 그 장소에 있었다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제국군이 싸운 건 마물이지 왕국군이 아니었습니다. 왕국군은 마물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 장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모르는 소리. 그들은 정예병이었소. 숲의 마물 수준으로 전멸할 순 없지.”

     

    “재해급이 여섯 마리였다면 어떻습니까.”

     

    “재해급이라고?”

     

    장군이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 반응을 보니 우리를 속이려던 게 아니라 진짜 몰랐나?

    성검이 없어져서 나머지 세이렌은 흩어졌고 시체는 마나로 분해됐든지 그랬나 보다.

     

    “더욱 현실성 없는 이야기요. 재해급이 여섯이면 단순한 마물 숲이 아니라 지옥도 아닌가. 그런 곳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주장하시는 것이오?”

     

    “저희는 소드마스터가 있는데요.”

     

    내 말에 장군이 입을 다물었다.

     

    “5위계 마법사님도 계시고요.”

     

    아셀라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 올렸다.

     

    장군이 소심하게 반박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이쿠, 실례. 안주머니에서 뭐를 떨어트려서. 이게 뭐지? 아, 마침 재해급 마물의 전리품이 있네요.”

     

    나는 병 안에 담긴 세이렌의 눈물을 흔들어 그에게 보여줬다. 성역화 포션을 만들고 남은 한 개다.

     

    “음….”

     

    장군이 팔짱을 끼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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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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