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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8

        

       

       별이 일러주는 것을 눈에 담은 진성은 얌전히 생활관으로 돌아갔고, 생활관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군 인권 센터의 사람들은 서로 고스톱도 치고, TV를 보거나 느려터진 통신망을 이용해 인터넷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다가 피곤 때문에 그런 것인지 전부 잠자리에 들었다.

         

       악귀와 악령의 침입을 대비해 창문 없이 통풍구와 에어컨만 달랑 존재하는 생활관은 불이 꺼지자 칠흑 같은 암흑이 되었고, 딱딱한 매트릭스가 깔린 침대에 몸을 뉘면 마치 자신이 동굴에서 생활하던 원시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리 하나씩을 잡고 잠이 들었고, 진성은 사람들이 잠드는 모습을 전부 눈에 담은 채 자정이 되기까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정이 되자 진성은 슬그머니 2층 침대에서 내려왔다.

         

       생활관은 문 근처에 박힌 취침등 하나만을 제외한다면 완전한 어둠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고, 구석에 위치한데다가 일부러 침구류를 쌓아놓은 진성의 자리는 진성이 내려오든 말든 그 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마 날이 밝지 않는 이상은 진성이 사라졌음을 쉬이 눈치챌 수 없으리라.

         

       진성은 쓴 냄새가 풍기는 누더기를 걸치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아까 놓아두었던 지게를 등에 메고, 자신이 걸치고 있는 누더기를 늘어뜨려지게 전체를 덮었다. 그리곤 어둠 속에 몸을 숨기듯 가만히 있다가 아까 별이 말했던 것처럼 북쪽을 바라보았다.

         

       ‘자고 있구나.’

         

       북쪽 초소에는 장교 두 명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피곤해서 그런 것일까?

         

       한 명은 CCTV가 비치고 있는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처박고 그대로 자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 역시 총안구 밖으로 삐져나온 커다란 망원경에 눈 대신 이마를 처박은 채 자고 있었다.

         

       진성은 둘이 자는 모습을 확인하자 망설임 없이 축지를 사용했다.

         

       그렇게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자 진성은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움직였던 안전지대 내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몸 가려줄 것이 하나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도 볼 테면 보라는 듯 움직였다.

         

       이는 진성이 위성에 찍히는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가 걸치고 있는 천은 전자장비가 제대로 된 형상을 파악할 수 없게 노이즈를 일으키는 기능이 있었다.

         

       이것은 전자장비를 망가뜨리고 관측이 제대로 되지 않게 하는 ‘강력한 악령’의 특징과 같았고, 악령과 악귀가 넘쳐나는 북한의 특징을 생각해본다면 진성이 노이즈를 두르고 아무리 활보한다고 한들 그것이 악령인지 진성이 몰래 빠져나가서 활동한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하리라.

         

       진성은 그렇게 노이즈를 두른 채 계속해서 축지를 사용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때 멈추어 서곤 가만히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옴 도나 바아라 하.”

         

       그가 진언을 외우자 그의 솜털이 곤두섰다. 그리고 솜털 하나하나가 육감을 가진 것처럼 흔들리며 그의 인지 범위를 확장하였고, 깜깜한 어둠에서도 흐릿하게나마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머릿속에 꽂아주었다.

         

       넓어진다.

       솜털 하나하나가 안테나처럼 빳빳하게 서서 사방의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고, 눈을 감아서 생긴 어둠에 하얀 잔상으로 그림을 그리듯 움직여 형상을 만든다.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비문(飛蚊)의 불규칙함이 사라지고, 통일성을 갖고 움직이며 형상을 그려낸다.

         

       유리체 속에 떠다니는 부유물이 면을 만드는 듯 뭉쳐 사람 머리의 형상을 이루고, 빛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흐릿한 형체들이 구체를 만들고 팔과 다리를 뽑아내어 귀신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그의 인지 능력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눈을 감고도 세상을 보는 듯한.

       혹은 눈을 감아 ‘다른 세상’을 흐릿하게나마 훔쳐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른쪽. 축지 두 번.’

         

       진성은 확장된 감각이 알려주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품속에서 동물의 털을 꺼내서 태워 몸에 짐승 냄새를 가득 풍기게 했다. 그리곤 자기 머리털을 뽑아 삼매진화로 태우고, 그 재를 자기 어깨 위에 뿌렸다.

         

       “사람의 몸에서는 벌레가 태어나며, 그 형상은 눈에 간신히 보이는 점과 흡사하다. 점은 제각기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며 구더기를 낳기도 하고, 몸을 기어 다니며 새까맣게 물들이기도 한다.”

         

       그가 주언을 읊자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필로 가볍게 콕 찍은 듯한 자그마한 크기의 점은 진성의 말처럼 살아있는 벌레라도 되는 양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어떤 것은 누더기에 붙어 곰팡이가 피듯 사방을 검게 물들이고, 어떤 것은 하늘에 둥둥 떠서 진성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날기 시작하자 진성의 몸에 풍기는 냄새도 무언가 달라졌다.

         

       아까는 단순히 노린내였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약간 썩은 듯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 것이다.

         

       진성은 자기 몸에서 썩은 냄새가 풍기는 것을 맡고는 그제야 되었다는 듯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축지를 사용했다.

         

       한 번.

       두 번.

         

       그가 두 번 축지를 사용하자 황량하기 짝이 없었던 공간 대신에 다 쓰러져가는 집이 즐비한 마을이 보였고, 사람의 육감을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스산한 공기가 그를 맞이해주었다.

         

       끼이이익-

         

       마을 전체에 감도는 불길함이 진성이 방문했다고 알려주기라도 한 것일까?

         

       반쯤 무너져내린 허름한 집의 문이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경첩 하나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문은 나무 찢어지는 소리와 땅을 긁는 소리와 함께 열렸고, 그 자리에서 비쩍 마른 발이 바깥으로 나왔다.

         

       [ 거 누요? 있으면 밥찌끼라도 한 술 달라. ]

         

       그리고 발을 시작으로 팔, 그다음에는 머리,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몸을 드러내었으니.

         

       그 형체가 참으로 혐오스러웠다.

         

       아귀(餓鬼).

       배가 터져 죽을 때까지 먹기만을 반복하는 악귀, 아귀(餓鬼)였다.

         

       아귀는 나뭇가지를 생각나게 만드는 앙상한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마디가 하나밖에 없는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있었다.

       팔은 도저히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듯 허공을 이리저리 휘저었다가도 남산만 하게 부풀어 오르는 배를 감싸 안기를 반복하였고, 살에 파묻혀서 제 형상도 알아보기 힘든 머리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 밥찌끼가 아니면 밥티라도 좀 주디. ]

         

       아귀는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와 진성의 앞에까지 걸어왔다.

       그것이 걸어올 때마다 점차 부풀어 오르는 배가 땅에 닿을 듯 늘어지고, 도대체 뭐가 담겼는지 모를 배가 땅에 질질 끌리면서 꾸르륵거리는 역겨운 소리를 내었다.

         

       꾸르륵-

       꾸드드득.

         

       뱃속의 내용물이 섞이는 소리.

       내장이 꿈틀거리며 절규하는 소리.

       안에 있는 살아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려는 듯한 기괴한 소리.

         

       그 모든 것이 뒤섞이며 진성의 귀를 어지럽혔다.

         

       [ 아고, 하이고, 거 위장에 채울만한거이 아무것도 없네? ]

         

       아귀는 배가 뒤틀리자 위로 빠져나오려는 가스조차 아깝다는 듯 목구멍을 제 손으로 꽉 조이며 진성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아귀는 그렇게 다가오다가 무언가 이상한 듯 발걸음 속도를 늦추고, 고개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진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거 요상타. 따끈따끈해 보이는 거이 얼된거이 오도마니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 보이 동무 아니네? ]

         

       아귀는 진성의 앞에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갸웃 움직였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퀭한 눈깔로 진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으며, 진성의 주위에서 벌레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날름 혀를 뻗어 삼키기도 하였다. 그러더니 실망했다는 듯 몸을 축 늘어뜨리고는 다시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간식도 없으니, 거 배가 고프다 고파. 아고 고파라. 아고….]

         

       그렇게 아귀가 사라지자 진성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아귀가 살던 집을 지나쳐 앙상한 나무가 세워져 있는 마을 한가운데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나무에 다다르자 한때는 마을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죽은 나무와 다 쓰러져 이제는 흔적만 간신히 남은 집터를 볼 수 있었다.

         

       한때는 마당이었을 집터에서는 여인네로 보이는 것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썩은 피가 엉겨 붙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벅벅 긁으며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그러다가 진성이 온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퍼뜩 들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기괴했다.

         

       썩어 문드러져 이제는 구멍밖에 남지 않은 눈깔에, 해골에 거죽만 간신히 붙어있는 듯한 모습, 그리고 모기처럼 길게 쭉 삐져나온 입을 가지고 있었다.

       가시처럼 삐죽 솟아 나온 입의 끝에는 쩍쩍 말라붙은 입술이 간신히 붙어있었는데, 그것은 진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우물우물 움직여 소리를 내었다.

         

       [ 꾸우우우- ]

         

       다 망가진 악기에서 나오는 것과 흡사한 소리였다.

       그것은 쪼그라진 폐로 간신히 바람을 불 듯 소리를 내었고, 바닥을 벅벅 긁으며 진성에게로 기어 왔다. 네발로 기면서 진성에게 다가오다가도 팔다리의 힘이 빠졌는지 바닥에 털썩털썩 주저앉았고, 그럴 때마다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이동하고는 다시 힘이 돌아온 팔다리로 기어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 것인지 벅벅거리는 소리가 울렸는데, 꾸우우 거리는 기괴한 소리와 합쳐지면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만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진성의 앞까지 도달한 그것은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을 진성에게 쭉 뻗으려 했다.

         

       하지만 손이 진성에게 닿으려고 하는 찰나, 그것은 무언가 냄새라도 맡은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입술과 코를 몇 번 움직였다. 그리곤 실망이라도 한 것인지 몸을 축 늘어뜨리곤 그 자리에 그대로 무너져버렸고, 그 자세 그대로 몸을 웅크리고 다시 땅바닥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진성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나무를 지나쳐갔다.

         

       그리고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딸-랑—-

         

       그가 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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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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