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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8

       

       

       

       

       

       158화. 다섯 종족 ( 5 )

       

       

       

       

       

       지금처럼 인공위성이나 전화기 같은 통신수단이 없었던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재빨리 신호를 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는 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정석적인 파발마부터, 판타지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전서구 등등.

       

       그중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역시 봉화를 꼽을 것이다.

       

       불을 피워서 연기의 개수로 신호를 보내는 방법. 직관적이고 편리하고 빠르다.

       

       까만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멀리서도 눈에 잘 보이니 확인하기도 쉽다.

       

       

       “진짜 불났나?”

       

       

       요컨대 새하얀 안개들 사이에서 까만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은,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는 뜻이다.

       

       내가 그 연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까지 화면을 옮길 이유도 충분했고.

       

       하지만 막상 연기가 올라오는 곳까지 화면을 옮겨도 별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맵은 안개에 둘러싸여서 보이지도 않고, 까만 연기는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확대를 최대로 해도 안 보이네.’

       

       

       혹시나 보일까 싶어 최대로 줌을 당겨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까만 연기는 점점 더 짙어져 간다.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하늘 높이 솟구치는 연기.

       

       이쯤 되면 오기가 생긴다.

       

       언제나 답을 알고 있는 만능 해결책, 상점창으로 향한다. 맵을 가리는 안개들은 게임 시스템으로 해석하면 아직 해금되지 않은 지역이다.

       

       저기는 이세계니까 아직 나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땅 혹은 신도가 없는 땅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제로 타일을 해금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마침 얼마 전에 월급도 들어왔다.

       

       지금의 나는 무적이다. 내 통장은 신이고.

       

       상점 카테고리를 뒤적거리며 원하는 상품을 찾아낸다. 없을 리가 없다. 없다면 보고 있을 것이 분명한 케넬름이 만들어서라도 팔 것이다.

       

       멈칫.

       

       ‘…아니 잠깐만. 이거 혹시 현질 안 해도 할 수 있으려나?’

       

       

       열심히 패키지를 뒤적이던 와중 번개처럼 스친 하나의 가설. 

       

       현질을 안 해도 타일을 해금할 수 있다면?

       

       …

       

       너무나 당연하게 현질부터 생각하고 있는 흑우적 사고방식. 깊이 반성한다. 

       

       열심히 돌아가던 흑우 회로를 종료하고 ‘세계 탐험 모드’로 향한다. 별다른 타일 해금 아이콘은 없었지만, 우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부분을 꾹ㅡ 누른다. 

       

       

       “…”

       

       

       안되나? 그런 생각이 떠오를 정도의 시간, 한 4초 정도 지났을까.

       

       

       삥뽕ㅡ!

       

       《미해금 지역을 확인했습니다! 신앙심을 소모하여 해금하시겠습니까?》

       

       ‘나이스.’

       

       

       섣부른 판단으로 무의미한 과금을 할 뻔했다. 과금은 항상 효율적으로, 필요한 소비에만 해야 하는 법.

       

       어쩐지 밀려오는 약간의 아쉬움을 애써 뒤로 하고, 신앙심을 지불한다.

       

       상단에 표시된 신앙심이 우수수 줄어든다. 모으기는 힘든데 떨어지기는 순식간이다. 마치 내 주식과도 같은 모습.

       

       

       《신규 지역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짧은 로딩이 지나간다. 로딩바 밑으로 케넬름을 닮은 SD 캐릭터가 열심히 망치를 뚝딱거리며 무언가 만드는 모습이 나타났다.

       

       

       빠밤ㅡ!

       

       《새로운 지역 해금! ‘황금 나무의 숲’ 개방! 》

       

       “어, 황금나무의 숲?”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기시감이 강하게 몰려온다. 어디서 ‘황금 나무’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어디서 들었지?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타일이 해금되면서 안개가 사라지고, 까만 연기의 원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내 눈을 의심한다.

       

       

       “나무가… 불에 타고 있네?”

       

       

       세상의 기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거대하고 울창한, 황금빛의 잎사귀가 가득한 나무가 검은 화염에 휩싸여 불타고 있다. 새까만 화염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거대한 나무를 갉아 먹고 까만 연기를 뿜어낸다.

       

       하늘 끝까지 닿을 듯 거대한 나무와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연기.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상황. 케넬름도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급하게 메시지 창을 띄웠다.

       

       

       삐익ㅡ!

       

       《돌발 상황 발생!》

       

       《화재를 진압하세요!》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할 참이었다. 척 보기에도 저 커다란 나무가 불타는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다. 검은 화염도 불길하기 짝이 없고.

       

       문제는ㅡ

       

       

       ‘뭘로 불을 끄지?’

       

       

       내가 가진 스킬 중에서는 불을 끌 만한 스킬이 없다. 상점에서 새로 살 수도 있겠지만, 머리 한구석이 간질간질 하는 것이 뭔가 방법이 있을 거 같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한다. 안개처럼 어렴풋한 무언가가 떠오를 듯 말 듯 한 느낌.

       

       본능과 직감,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 내게 속삭인다.

       

       생각보다 그 해결책은 가까이 있다고.

       

       뭐지? 뭘 할 수 있는 거지?

       

       

       “아.”

       

       

       막힌 핏줄이 팍ㅡ하고 터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성은 나를 말린다. 하지만 이성과 본능보다 더 앞선 무언가가 나를 움직이게 한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당연히 실패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 보면 멍청한 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알 수 없는 확신이, 이 방법이 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진다. 

       

       ‘세계 탐험 모드’를 종료하고, 성지로 화면을 바꾼다. 이리저리 화면을 빠르게 옮기며 내가 원하는 녀석을 찾아 헤맨다.

       

       

       ㅡ 첨벙! 첨벙!

       

       ㅡ “삐히이익!”

       

       

       

       찾았다.

       

       한창 온천에서 물놀이하던 이베르가 내 터치에 반응해 귀엽게 고개를 까딱거린다.

       

       

       ㅡ “삐익?”

       

       

       가자, 이베르.

       

       ‘차원 관문’을 통해 밖으로, 세상으로 나갈 시간이다.

       

       

       

       

       

       *****

       

       

       

       

       

       차원. 

       

       시간과 중력, 그리고 미지의 힘이 작용하여 유지되는 얇고도 질긴 벽. 벽을 뚫고 차원을 넘나드는 행위는 매우 신비로운 동시에 위험한 행위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는 안전하게 제 목적지에 도착하고는 한다.

       

       허나, 천문학적인 확률로.

       

       천분의 일, 만분의 일, 어쩌면 억, 조의 하나로.

       

       신께서 장난을 쳤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는 한다.

       

       뚜둑.

       

       신화 시대의 지배자, 용.

       

       그들의 마지막 후손이라고 불러도 좋을 서리비룡 이베르가 차원 관문을 통해 비행하는 동안.

       

       으득ㅡ 뿌드득!

       

       차원과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한 힘이 기묘하게 부딪히고 흐르고 부서지며 용의 몸에 스며든다.

       

       아직 어리고 미숙한 뼈가 급속도로 성장하며 굵고 튼튼하게 변한다. 여린 비늘은 질기고 억세게 변하고, 순둥한 눈매는 용 특유의 길쭉한 마름모 모양으로 찢어진다.

       

       연한 하늘빛의 몸은 점점 더 시리고 차가워진다. 마치 서리처럼, 몸 곳곳에 얼음이 자라난다.

       

       그리하여 성장한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고 또 성장하여, 비룡에서 성숙한 용으로 탈바꿈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뚫고, 신의 장난 같은 기적이 이베르의 몸에 깃든다.

       

       이윽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서리용이 거세게 포효하며 절대자의 귀환을 세상에 알린다.

       

       

       ——————!!!

       

       “꺄아아악!”

       

       “우와아아악! 괴물, 괴물이 성지의 문에서 나왔다!!”

       

       

       아비규환.

       

       성지의 문 주변에서 기도하던 이들이 이베르의 날갯짓에 밀려 우당탕 굴러간다. 처녀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달아나고, 아이는 부모의 손을 잡은 채 끌려간다.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의 왕이 귀환하니, 그저 비명 지르고 달아난다.

       

       이베르는 그 모든 것들에 시선을 두지 않고, 고고하게 날갯짓하며 간만의 바깥세상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저 구름, 신선한 공기와 수많은 생명체의 숨결. 성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척 척ㅡ!

       

       “모두 방패 들어!”

       

       “한 치의 두려움도 갖지 마라! 여긴 성도다! 여섯 번째 신께서 너희를 보우하신다!”

       

       

       무리 지은 성기사들이 단단하게 진열을 이뤄 이베르를 향해 창을 겨눈다. 성도의 정예답게, 갑작스러운 소동에 대처하는 성기사들의 태도는 흔들림이 없다. 

       

       펄럭 펄럭.

       

       《…》

       

       

       이베르의 목적은 성기사들이 아니다. 하여 별다른 시선을 두지 않고 지나치려 했다.

       

       

       《음? 저건…》

       

       

       익숙한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이베르의 마름모 눈동자가 잔뜩 수축되며 지상을 바라본다.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듯 시야 한가득 보이는 낯익은 얼굴.

       

       바람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는 까만 머리와 까만 눈동자, 인간 여성임에도 사나운 목소리…

       

       모든 것이 그의 기억과 일치한다. 

       

       씨익.

       

       반가운 악우를 만났다.

       

       

       《호오. 이런 곳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는데.》

       

       

       여섯 번째 신께서 그에게 중대한 임무를 주셨지만, 짧은 장난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이베르가 길쭉한 혀를 뻗어 이빨을 훑었다. 인간 여성 또한 하늘 높이 비행하는 이베르를 봤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표정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봤다는 얼굴이다.

       

       자신을 알아본 모양. 더럽게 아픈 도끼도 없으면서 자신을 계속 따라 달려오는 걸 보니 확실하게 알아봤다.

       

       

       《잠깐의 여흥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갈 길이 멀지만, 오랜만에 만난 악우에게 가벼운 인사 정도 할 시간은 있다.

       

       이베르가 커다란 턱을 살짝 벌리더니 숨을 들이마셨다. 들숨을 따라 입 안에서 미약한 불꽃이 일렁이다 쩍ㅡ하고 얼어붙는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얼음 덩어리.

       

       슬쩍 지상을 내려다본 이베르는 인간 여성이 성난 원숭이처럼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이래서야 누가 저것을 사도라고 하겠는가?》

       

       쌔액!

       

       

       입에서 날아간 얼음 조각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다. 정확히 인간 여성의 머리를 노리며 날아가는 얼음.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인간 여성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머리를 까딱이며 피했다. 

       

       맞을 거라는 기대도 안 했다.  

       

       애초에 목표는 성질은 건드리는 것. 잔뜩 성이 나서 방방 뛰는 모습을 보니 충분히 달성한 듯싶다.

       

       

       “야이 씨! 도마뱀 새끼야, 너 그때 어? 내가 가슴에 도끼빵 놔준 새끼 맞지! 너 인마, 내려와! 안 내려와?”

       

       《하하하! 그렇게 흉흉하게 말하는데 누가 내려가겠나!》

       

       “아니! 내려오ㅡ”

       

       쐐애액! 쐐액!

       

       “야!! 너, 너 이 씨 내려오라고!! 도끼만 있었어도 뒤졌어 너는!”

       

       

       인간 여성의 말을 끊으며 얼음 조각이 날아들고, 인간 여성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손에 잡히는 걸 모조리 잡아다 던졌다.

       

       물론 이베르가 있는 곳까지는 닿지도 못했다.

       

       

       《아, 이런. 너무 시간을 지체했군. 재밌었다 악우여. 다음에 또 보자꾸나.》

       

       

       깐족거리며 충분히 재미를 본 이베르가 유유히 날개를 움직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갈 길이 멀었으니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하리라.

       

       저 아래에서, 닭 쫓던 강아지 꼴이 된 프리가가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야 이 도마뱀 새끼야아ㅡ!!!”

       

       

       그녀의 오갈 곳 없는 고함이, 성도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설탕처럼 달콤하고 초콜릿처럼 달달한 후원!!! 감사합니다!!! 그리 중요한 설정은 아니지만…!! 뱀파이어는 야쓰를 통해 번식합니다!!! 구울과는 별개의 존재…!!! 다만 번식 확률이 극도로 희박…!! 매우 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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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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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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