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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8

       눈이 흩날리는 평야.

        

       두 다리를 땅에 뿌리내린 기사의 갑옷 위에 눈송이들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는 증거. 등 뒤, 그가 지키는 첨탑에 접근하는 이조차 없었다는 의미였다.

        

       전장은 전방이었고, 적진이었다. 적의 손아귀에서 이 거점을 탈환한 순간부터 계속하여 그러했다. 적의 진영은 끝없이 붕괴했고, 재정비를 위해 후퇴하기 급급했으니.

       

       감히 아군의 심부까지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 했으리라.

        

       그럼에도, 고요한 평야에 홀로 선 기사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부디 함께 발을 디딜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전장이었다.

       

       감히 탐내었다가 부정 탈까 두려워 그 욕망을 입 밖으로 쉬이 내지도 못 했던, 그런 자리.

        

       영광스러운 첫 승리는 눈앞에 있었으나, 아직 손아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수세에 몰린 적들은 분명, 일발 역전을 노리기 위해 이 거점을 재탈환하기 위해 몰려오리라.

        

       소수 인원을 빼돌려 거점을 빠르게 점령하고, 수호병과 함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마지막 결전을 벌여보려 하겠지.

        

       그런 변수를 허용할 생각은 없었다.

        

       기사는 몸을 가벼이 털며 발걸음을 옮겼다. 전장의 크기와, 마지막으로 적의 모습이 보였던 위치. 적들이 입고 있던 갑옷의 무게와, 그들이 이동에 걸릴 시간을 계산해보면- 조금 더 전방으로 움직일 시간이다.

        

       혹시 상대가 거점 공략을 포기한다면 빠르게 본대에 합류할 수 있는 위치까지 이동한 후, 기사는 다시 몸을 조금 낮추며 주변을 살폈다.

        

       ‘이 시간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건……. 아니다. 온다면 지금이야.’

        

       찾아오는 이들과 멋진 결투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지 않더라도 좋다. 관중의 주목을, 찬사를 받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방관형 기사니, 집만 지킨 개니 하며 깎아내리는 이들이 있더라도 괜찮다.

        

       승리할 수 있다면. 손에 우승컵을 들려줄 수 있다면, 그딴 건 아무 상관없었다.

        

       개같이도 구른 1년이었다.

        

       게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감독과 코치, 포아글 시대부터 축적된 VR 전투 경험치가 차원이 다른 유럽의 팀들과 비교하며 욕과 비난을 일삼는 자칭 팬들, 이게 사람의 삶인지 의문스러운 연습량…….

        

       그 3박자에 고통받으면서도 힘들다는 불평을 차마 하지 못한 건, 그 옆에서 묵묵히 2배는 더 구르는 노장 때문이었다.

        

       ‘언제였더라.’

        

       모두가 잠든 밤. 맥주나 한 캔 마시고 잘까, 하고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났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방으로 돌아가다가- 무언가가 삐걱거리는 소리에 들러 본 연습장에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몸을 날리는 오소독스가 있었더랬다.

        

       의문을 품기는 했었다. 제대로 해본 적도 없을 도적 숙련도가 대체 어떻게 그렇게 높을 수 있는 건지. 더군다나, 팀 연습 시간에는 도적 몇 번 꺼내보지도 못하게끔 코치가 막지 않았나.

        

       저 숙련도가 말이 되는 거냐며, 그 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렸었는데.

        

       재능차이 심하네, 라고 누군가 가볍게 웃어넘겼던 그 의문의 해답이 눈앞에 있었다.

        

       말을 걸려다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손에 들린 맥주가 새삼 부끄러워진 탓이었다.

       

       냉장고에 맥주를 돌려두고, 스포츠 음료를 두 캔 챙기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그제야 뒤늦게 그를 발견한 오소독스는, 조금은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오버워크니 뭐니 한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 코치한테는 비밀로 해달라며.

        

       ‘프로게이머 간판 달고 반 평생 뛰면서, 나름 매번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싸우긴 했는데. 이번엔, 정말로 마지막 기회라는게 느껴져. 그래서 그래. 부탁한다.’

        

       그리 말하며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오소독스는 다시 장비를 착용하고는, 쌍수단검 연계 동작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지루하디 지루한, 공을 던져주는 상대조차 없는 펑고.

        

       3천배를 올리는 수도승이 저러할까. 그날 밤, 같은 동작을 정갈하게 거듭 이어나가는 오소독스의 뒷모습을 보며- 바이오는 결심했다.

        

       반드시. 반드시, 저 굳은 살 배긴 손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말겠노라고.

        

       《법사 끊었어. 광전사 안 보인다. 거점 조심해.》

        

       기사, 바이오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풀숲이 살짝 흔들리는 움직임이 포착된 건 거의 동시였다.

        

       ‘왔다.’

       

       칼을 고쳐 들며, 미세하게 자세를 틀었다.

       

       그 모션만으로 들킨 걸 깨달은 걸까.

       

       은폐를 포기하고 모습을 드러낸 광전사가 땅을 힘껏 박찼다. 발걸음 소리가 쿵, 쿵 울릴 정도의 돌진. 비스듬히 들린 병장기가 위협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광전사, 얀센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거대 도끼.

        

       유럽을 제패한 V7 내에서도 에이스로 평가받는 선수가, 패색이 짙은 게임을 뒤엎고자 찾아왔다.

        

       바이오의 귀에,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발걸음 사운드보다도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승부의 향방을 가를 첫 합. 달려드는 얀센의 오른쪽 어깨가 움찔거리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페인트일지, 아닐지. 상대의 시선은 상체, 좌상단을 향하고 있으나- 시선을 이용한 속임수에 능한 놈이다.

        

       충돌 직전.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방어. 회피. 카운터. 선제공격. 온갖 선택지가 바이오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첫 공격 회피하고, 카운터 꽂아 넣기만 하면……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 하나 나오겠는데. 장례식장에서 틀어주겠어 아주.’

        

       지루한 후방에 불과하던 이곳은 이제 승부의 향방이 결정될 핵심지로 변했다. 모든 카메라가, 그리고 그 뒤에 있을 수십, 수백만명의 관중들이, 다 함께 이곳을 주목하고 있을 터.

        

       이제 겨우 20살. 죽도록 연습하여 쌓은 기량을, 모두의 앞에서 뽐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실낱 같은, 그러나 반드시 찔러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카운터의 기회를 눈에 가득 담으며-

        

       바이오는 방패를 들어 방어자세를 굳혔다.

        

       -쾅!

        

       오른쪽 중단을 노린 도끼가 방패와 부딪히며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을 토해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정확하게 읽어냈던 공격이었다. 다시 말해, 만약 회피 후 카운터를 노렸다면 분명 성공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스태미나를 듬뿍 내어주는 대신, 역으로 상대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히면서.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바이오는 그런 변수를 원하지 않았다.

        

       첫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 기사는 우수의 검을 짧게 뻗었다. 예상대로, 도끼를 회수하며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회피하는 얀센. 검의 리치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광전사의 시선이 기사의 오른쪽 어깨를 향했다.

        

       그렇게, 광전사는 당연히 이어질 기사의 연계기를 받아칠 준비를 하였으나-

        

       바이오는, 두 걸음 물러섰다.

        

       “광전사 중앙 거점. 시간만 끌게요.”

        

       V7의 마법사는 죽었다. 광전사는 본대에서 이탈했고.

        

       그러니까……아무리 추하더라도, 광전사를 여기 붙잡아두기만 한다면. 교착상태를 만들어서 견뎌내기만 한다면.

        

       수적 우위까지 갖춘 본대는, 5분……아니, 3분 내로 성을 뚫어낼 것이 분명했다.

        

       ‘거북이니, 겁쟁이니……욕 실컷 하라 그래.’

        

       영광은 누가 가져도 상관없다.

        

       ‘손에는, 승리만 남으면 되니까.’

        

       모든 것은, 오로지 승리를 위해.

        

       그리 생각하며- 바이오는 방패를 들어, 방어자세를 굳혔다.

        

       * * * *   

        

       《버팁니다! 버텨요! 바이오 선수, 멋지게 버티고 있습니다! 저 얀센의 도끼를 상대로 벌써 15합째! 거점 근처도 못 가게 막아내고 있어요!》

        

       『승 객 행 동』

       『안전벨트 꽉 메는거 보소ㅋㅋㅋ』

       『해설 똥꼬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걍 방패 들고 서있는 걸 ㅈㄴ 포장해주네 ㅋㅋㅋㅋㅋㅋ해설 극한직업이다 진짜루』

       『나는 버스를 타겠다 선언』

       『칼 버리고 대방패나 들어라 ㅋㅋㅋㅋ』

       『마 고추 떼라 새끼야』

       ㄴ 임시차단되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해설의 호들갑으로도 부족했던 걸까. 채팅창은 바이오에 대한 비난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2지하를 파머로 뛰면서 게임 내내 보조적인 역할만 해서 더 그러는 거겠지. 보는 눈이 없으면, 그 성과가 잘 보이지도 않았을 테니. 파머의 숙명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바이오의 실력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파머 역할이 아직 익숙할 리가 없음에도 페이스를 완벽하게 잡았고, 승부의 맥도 정확하게 짚어냈으니.

       

       그때, 레반과 함께 2대2를 하며 가르쳐줄 때 보인 모습을 생각해보면……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역시 프로는 다르다는 거겠지.

        

       《오소독스 선수, 돌파! 돌파했습니다! 이 선수 도적 왜 이렇게 잘하나요! 이런 비밀병기를 결승까지 대체 어떻게 숨긴 겁니까!》

        

       물론, 진짜 캐리는 도적이 하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이렇게 잘 한 파머가 욕먹는 분위기는 싫었다. 

        

       “바이오……님인가? 잘하네요. 멋있다.”

        

       “……영혼 좀 담아봐요. 도적이 날아다닌다고 아주 정신줄 놓지 말고.”

        

       ……최대한 영혼을 담은 칭찬이었는데. 광전사가 찌그러졌다고 삐져서 저러는 거 아닌가.

        

       부루퉁하게 튀어 오르려는 서운함을 붙잡고, 자세를 앞으로 고쳐 앉으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진짠데. 얼마나 멋있어요. 센스 좋고, 희생할 줄도 알고……저런 사람을 만나야 돼요. 만났으면 절대 안 놓아줘야 되고. 저라면 그럴 거 같은데.”

        

       저런 파머 하나 잡으면 랭크 올리기 얼마나 편한데.

        

       나야 듀오를 별로 안 좋아했지만, 어지간한 도적은 게임 끝나자마자 친구 추가부터 신청했을 거다. 접속할 때마다 득달같이 ‘듀오 ㄱ?’ 따위 메시지도 보냈을 거고.

        

       하지만- 2지하의 개념을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잘하는 파머의 희소성을 몰라서 그런 건지.

        

       레반과 아크, 별포크 중 누구도 동의해주지 않는 사이, 해설의 흥분한 목소리만 스튜디오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GP, 동시에 앞으로 뛰어듭니다! 이건 대놓고 외치는 거예요. 너희, 진형 무너졌잖아. 쐐기 돌진 어떻게 막을 건데?》

        

       《돌진을 기사가 막아줘야 되는데- 이건 못 막아요! 아니, 막으면 안 됩니다! 사제 힐도 없이 저걸 혼자 맞으면 3초도 못 버텨요!》

        

       《아- 크뤼거 선수, 사망! V7의 마지막 기사가 쓰러집니다! 이거 누구나 공감하는 상황이죠. 사제 어딨어! 힐 내놔! 그런데 도적이 목에 칼 들이밀고 힐 하지 말라고 하고 있는데, 사제가 힐을 어떻게 합니까! 오소독스 선수의 도적! V7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어요!》

        

       《얀센 선수가 허겁지겁 복귀했는데, 늦었어요! 집 다 불타고 복귀하면 뭐합니까! GP, 성문! 성문 두들깁니다!》

        

       《승리-! 3시드로 올라왔던 GP가, 유럽의 강호! 유럽의 맹주! V7을 상대로 월드 시리즈 결승에서 첫 세트를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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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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