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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8

       복도는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은 없었다. 수업 시간에는 교직원들도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으니, 복도에서 누구를 마주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학교의 수업 시간이 조용한 건 아니니까.

        

       학교 내의 먹이 사슬 제일 위에 있는 것은 언제나 이 학교의 학생이었다. 돈을 내고 다니는 학생.

        

       그리고 그 학생들의 위치도,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정해진 위치조차도, 학교 바깥에서 들어오는 돈에 의해 바뀔 수도 있고.

        

       돈.

        

       모든 것이 돈 때문이다.

        

       비단 학교생활 뿐만이 아니라, 내 인생 자체가 돈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다.

        

       흔히 돈이라는 건 묵직한 지폐 다발로 표현되곤 하지만, 진짜로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지폐 다발을 직접 봐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돈은 실물이 아닌, 계좌의 숫자와 주식과 부동산 사무실에 쓰여있는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억 단위의 돈이 오가고, 회사 하나의 존망이 위태로워지고,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기도 한다.

        

       이제는 그 실체조차 분명하게 남아있지 않은 ‘돈’이라는 개념이, 나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돈만 아니었다면……

        

       하긴, 돈이 아니었다면, 어머님을 만날 일도 없었겠지만.

        

       “…….”

        

       교무실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니면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문 앞에 서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크게 내쉰다.

        

       가슴의 두근거림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이 문 너머에 어머님이 있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그립기도 했다. 설레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하긴, 사람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감각에 따라오는 감정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심장은 그저 물리적으로 뛸 뿐이니, 그 위에 감정을 덧씌우는 것은 그저 사람의 몫일 뿐이라고, 어디서 들어봤던 것 같다.

        

       내가 어머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의 종류가 많은 것도 결국 그런 것 때문일까.

        

       “…….”

        

       그 사람을 부르고 싶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다.

        

       만약 그 사람이 나와 다른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데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아니, 만약 그 사람이 나와 다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나의 반쪽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겠지.

        

       이런 이중적인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것을 보면,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간사한지.

        

       “후우.”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숨을 내쉬고, 나는 교무실 문손잡이 위에 손을 올렸다.

        

       철컥.

        

       손에 힘을 주자, 손잡이가 돌아가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아무래도 교무실이다 보니, 어머님의 얼굴이 바로 보이지는 않았다.

        

       넓은 교무실에 선생이 한 명도 없었다. 수업 시간이 아닌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텐데도. 아마 어머님이 ‘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보상’을 건넸을지도 모르지.

        

       아니, 아마 무조건 그랬을 것이다. 이 학교의 생태를 생각하면 돈만큼 잘 먹히는 방법이 없으니까.

        

       마치 바로 조금 전까지 일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사무실을 떠올리게 하는 기묘한 분위기의 교무실을 고개를 돌려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

        

       그러던 중, 교무실 저 끄트머리에 닫힌 문이 하나 보였다.

        

       ‘교사 휴게실’이라고 쓰여 있는 곳이었다.

        

       교무실 안에서 더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저곳 뿐이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나는 맥이 쭉 빠졌다.

        

       한 번 긴장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다시 긴장감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긴, 굳이 긴장할 필요도 없지.

        

       긴장하지 않는 쪽이 차라리 낫기도 하고.

        

       차라리 이렇게 한 번 마음이 편해진 쪽이, 어머님께 내 생각을 말하기에 더 좋을 것이다.

        

       나는 교사 휴게실 쪽으로 걸어가,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

        

       이름 모를 꽃향기가 났다.

        

       아마 향수를 뿌리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님은 나를 만날 때마다 항상 그랬으니까.

        

       “사라.”

        

       어머님은 문을 마주 보는 방향에 앉아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이 마주친 것을 보면, 어머님은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심장이 뛴다.

        

       하지만, 기절할 정도로 뛰지는 않았다.

        

       “어머님.”

        

       나의 대답에, 어머님의 얼굴이 설핏 굳었다. 언제나처럼 바로 달려가 품에 안기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가 생각해도 나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 불과 어제까지 내가 일부러 어머님을 피해 다녔던 것은, 어머님을 보고 또다시 이성을 잃을까 봐서였으니까.

        

       ……아, 그렇구나.

        

       나는 작년까지, 오로지 ‘어머님만을’ 알았다.

        

       처음에는 타의로,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그렇기에 나와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어주는 사람은 어머님 하나뿐이었다.

        

       나의 인생이 인생처럼 느껴지게 해주는 존재는 어머님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 주변에는 이미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나를 그저 소유물로 보는 것이 아닌, 나의 배경이나 돈을 보고 다가오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보고 다가와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작이 ‘내’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사람들은 ‘나’까지 자기 친구로,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었다.

        

       그러니, 나의 인생은 이미 인생다웠다.

        

       어머님이 아니더라도.

        

       나의 인생을 망쳐버린 어머님이, 굳이 아니더라도.

        

       아마 그랬기에, 그 두근거리는 감정을 참아낼 수 있었던 거겠지.

        

       나는 뒤이어 아무 말도 없이 걸어가서 어머님과 마주 앉았다.

        

       어머님의 짙푸른 눈동자가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마치 뭔가 판단하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오랜만이야.”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어머님은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 ‘오랜만’이었잖아요.

        

       일 년에 딱 네 번,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만날 수 있는 어머님은 나에게 있어 언제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네, 그렇네요.”

        

       “…….”

        

       어머님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자신의 앞에 있는 찻잔 중 하나를 내 쪽으로 스윽 밀었다. 찻잔에는 홍차가 담겨 있었다.

        

       아마 어머님께서 직접 타신 모양이다.

        

       나는 그 찻잔을 받아들었다.

        

       어머님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찻잔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가 지나치게 진하게 타졌는지, 평소 마시던 차보다 다소 썼다.

        

       “무슨 일로, 학교까지 찾아오셨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그야…….”

        

       어머님은 입을 열었다가 잠시 다물었다. 그리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집에서 딸이 사라졌으니, 엄마 된 도리로 찾아와야지.”

        

       아마, 이 말을 하면서도 본인조차 이상하게 느꼈기 때문이겠지.

        

       “평소에는 관심도 없으시잖아요?”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말은 바로 튀어나왔다.

        

       “정말요? 몰랐네요.”

        

       “……딸, 갑자기 왜 이러니?”

        

       “갑자기…….”

        

       갑자기, 라.

        

       하긴, 어머님은 그렇게 생각할만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달려들어 얼굴을 비볐으니까.

        

       아니, 강아지‘마냥’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는 어쩌면 어머님께 그런 취급을 받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찻잔을 탁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갑자기가 아니에요.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생각했어요. 지금 저의 어머님이, 과연 저에게 있어서 ‘엄마’가 맞는지.”

        

       “하지만—”

        

       “지금까지, 관심도 없었잖아.”

        

       다시 한번 강조하듯 말했다.

        

       어머님이 숨을 삼켰다.

        

       당황한 모양이다.

        

       아마, 어머님 인생에서는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반항하는 것일 테니까.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가 반항하면 받아주는 것은 사용인뿐이었다. 어머님은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쯤부터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으니까.

        

       “일 년에 고작 네 번 보는 것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터질 듯이 뛰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이상하게 머리는 차분했다.

        

       지금까지 차마 어머님 앞에서 하지 못한 말이었지만, 이렇게 한 번 꺼내놓기 시작하자 말이 끊어지지 않고 나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당연히 갑자기 바뀌었다는 생각밖에는 못 하겠지.”

        

       1월달에 내가 생각하는 것과 4월달에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다르다.

        

       ‘엄마’였다면 내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서서히 깨달았겠지만, 이 사람은 아니다.

        

       고작 15분이라는 시간은,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주고받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딸.”

        

       “정말로, 나를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요?”

        

       나는 지금까지 해오던 고민을, 드디어 꺼내놓을 수 있었다.

        

       “사실은 그냥 돈 때문인 거 아니야? 그냥 내 뒤에 있는 배경 때문에…….”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다가, 도중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어머님의 얼굴이 이상했다.

        

       슬슬 ‘본색’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은,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처절하게 상처받는 것 같은 얼굴이었으니까.

        

       어머님은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숨기지 않았다.

        

       “미안해.”

        

       “……어?”

        

       “엄마가, 정말로 미안해…….”

        

       그녀는 눈물을 쏟아내며 그렇게 말했다.

        

       심장은 계속 뛰고 있었다.

        

       아플 정도로.

        

       “어?”

        

       눈앞이 흐릿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딸, 지금부터 엄마가 다 보상해줄게. 미안해.”

        

       어머님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안된다.

        

       지금은 안 돼.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반쯤 일으키던 몸은, 그대로 다시 소파로 쓰러졌다.

        

       “으……에……?”

        

       팔에 힘이 없다.

        

       아니, 팔 뿐만이 아니다.

        

       다리에도, 등에도, 배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숨이 가쁘다.

        

       “지금, 이게 무슨…….”

        

       “괜찮아. 전부 괜찮을 거야, 이제. 불안해할 건 없어.”

        

       어느새, 어머님은 소파에 쓰러진 내 옆에 앉았다.

        

       둔탁해진 감각 너머로, 어머님의 손길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내 옆머리에, 어머님의 다리가 들어왔다.

        

       나는 어느새 어머님의 다리를 베고 옆으로 누워있었다.

        

       반항할 수가 없다.

        

       아니, 이건 감정 때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더 직접적인……

        

       …….

        

       아.

        

       아까 마신 홍차.

        

       평소에 마시던 것보다 썼던…….

        

       “괜찮아. 다 보상해줄게. 엄마는…….”

        

       내 왼쪽 귀에, 어머님의 숨결이, 목소리가 와닿는다.

        

       “엄마는, 애초부터 돈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니까.”

        

       그게 내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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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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