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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8

     합스베르크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실제로 당사자가 있다는 건 아니고, 그의 눈과 귀는 대륙 곳곳에 퍼져있다는 말.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곳에서 그가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그가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움직이면 속 편하다.

     대외적으로 공적인 상황에서는 적당한 립 서비스.

     나름 사적인 자리에서도 너무 띄우지는 않지만 적당히 인정하고 경계.

     

     안에서나 밖에서나 찬양하고 숭배하면 그건 광신도처럼 보이겠지만, 겉으로는 대우하고 속으로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를 합스베르크는 가장 선호한다.

     그리고 그런 자가 자신의 편이 되는 걸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즐기는 자다.

     그러니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한다.

     “이 바이크, 이제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타고 다닐 수 있겠군요.”

     

     나는 바이크를 손으로 쓸었다.

     일부러 손에 마나를 적당히 흘려, 바이크 내부를 훑는 것처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미 없는 짓이지.’

     내부를 통찰하려고 하는 순간, 바이크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는 바로 멈춘다.

     자체적으로 ‘쇼트’되어, 마나를 흘려 내부를 탐색하려는 행동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

     아마도 합스베르크는 이 바이크 내부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겠지.

     이곳은 세이레네 백작령이고, 원격 마도 무선 통신을 이용하면 이곳에서 있었던 대화나 장면은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듣고 볼 수 있다.

     “훗.”

     잠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합스베르크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흘린 웃음이었지만, 저쪽에서는 아마 다르게 생각하겠지.

     “좋은 선물이군요.”

     그저, 선물에 기뻐한다는 것.

     “세인트 지오가 배를 빼앗아 갔을 때는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었는데.”

     혼잣말하듯 중얼거리지만, 사실 진심을 전하고 있다.

     황태자는 알까?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하는 말이 혼잣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역으로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뭐.

     그러면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너를 죽이겠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아니지.’

     직접 말하기도 했는데, 무슨 대수랴. 

     사실은 내가 회귀를 했고, 합스베르크와 어떤 부분에서 절대적으로 타협할 수 없고, 합스베르크는 설령 내가 그를 위해 사위나 재상이 되더라도 결코 꺾을 수 없는 신념이고, 그런 부분 때문에 미래에서 그는 나를 숙청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아스타시아.”

     “네!”

     아스타시아가 활기찬 목소리로 다가온다.

     눈이 살짝 충혈된 걸로 보아, ‘어머니’와의 시간을 잠시 보내며 감상적이게 된 게 아닐까.

     “제국으로 돌아갈 일은 없겠지만, 혹시 저를 떼어놓고 제국으로 가게 된다면 적어도 이 말만큼은 황태자에게 전해주십시오.”

     “뭔데요?”

     “당신을 위한 바이크를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

     황태자의 마도 바이크 선물.

     내가 기뻐할 물건인가? 맞다.

     하지만 내가 자주 타고 다닐 목적이 있어서 기쁜 건 아니다.

     “원하는 걸 골라보세요. 아스타시아. 100여 대의 바이크가 전부 오로솔 아카데미에 ‘기부’되기 전에, 제일 좋은 녀석을 고를 시간입니다.”

     내가 기뻐한다면, 그건 아스타시아가 바이크를 타고 다닐 상황이 되었기에 기쁜 것.

     대륙 모두가 안다.

     그레이 지브롤터의 행복은 그레이 개인의 행복이 아닌, 아스타시아의 행복이라는 걸.

     “정말 그래도 될까요?”

     “예. 무엇이든 올라타셔도 됩니다. 해당 녀석은 오로솔 아카데미 장학재단 전용으로 분류될 테니.”

     마도자동선은 한 대 밖에 보내지 못했고, 그 뒤로는 도시 간 이동용 기차 느낌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바이크는 대량으로 보내도 그게 전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빼앗길 염려는 없다.

     “혹시 막 하나 정했는데, 국왕 전하께서 막 자기 거라고 가져가고 그러지는 않겠죠?”

     “100대 가까이 되는 것 중 하필 장학재단 이사장용 바이크를 빼간다면, 그건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레이 지브롤터를 향한 불만 표출이겠죠?”

     마도자동선은 그럴 수 있다.

     황태자가 국왕을 거르고 그레이에게 먼저 보냈으니까.

     “우리 대ㅡ단하신 세인트 전하를 위해 합스베르크 전하께서 직접 마도 바이크를 비롯하여 몇 가지 선물을 보내셨는데, 그걸 가지고도 그레이 지브롤터의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그때는 저도 참을 수 없지요.”

     하지만 바이크는 안 될 말이다.

     “그냥 제가 아무거나 산 바이크는 빼가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 바이크는 당신을 위한 것.”

     명의는 내 것이지만, 아스타시아가 타고 다닐 바이크를 빼앗기는 건 말이 안 될 일이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명확하게 제 의사를 표현하는 게 맞겠죠.”

     “어떤 의사요?”

     “노스트럼의 왕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국왕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을.”

     “…….”

     아스타시아가 슬쩍 바이크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혹시나 황태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 그레이 지브롤터가 무능왕을 상대로 분개하도록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면?’

     

     이라는 눈빛.

     너무 과하게 말을 한 게 아니냐는 걱정.

     “괜찮습니다, 아스타시아. 무능왕도 마냥 미친 인간은 아니며, 그도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요.”

     “눈치가 있어서 마도자동선을 약탈해간 것 같지는 않은데….”

     “아스타시아.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아스타시아의 귀가 쫑긋 선다.

     “우리끼리…?”

     “예. 아스타시아와 저만 아는 비밀.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

     하지만 이제 곧 합스베르크 황태자까지 알게 될 비밀.

     “사람들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무능하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

     “그는 무능하게 유능한 자입니다.”

     “……나라를 망치는데 재능이 있다, 뭐 그런 말인가요?”

     “비슷합니다. 다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그는 어쩌면, ‘이번’에는 망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번…?”

     “뭐, 추측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이것도 그냥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나는 바이크에 슬쩍 몸을 기댄 채, 아스타시아를 당겨 안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꾸미고 있든, 저는 ‘현재’에 충실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로.”

     “아, 그, 그게…!”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당신을 사랑할 것이기에.”

     합스베르크의 앞에서 사랑을 나누는 건, 이미 익숙한 일이다.

     “저, 저기!! 엄ㅁ…에르윈 회장님!! 보고만 있지 말고 좀!!”

     저 멀리 에르윈 회장이 있는 건 나도 처음이기는 하지만.

     찰칵.

     “화보가 따로 없네. 이거 얼마에 팔릴까?”

     에르윈 회장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진을 찍었다.

     “제가 저랑 아스타시아가 이렇게 있는 사진을 남들에게 팔리게 놔둘 것 같습니까?”

     “너한테 팔 건데?”

     “캐롤라인 몇 병 드리면 될까요?”

     “5병!”

     거래는 성립되었다.

     * * *

     그 시각.

     벌떡.

     “전하?”

     “나가봐.”

     “네?”

     “잠시, 나 혼자 시간을.”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집무실에 대기하고 있던 부관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부관은 군말 없이 허리를 숙이며 자리를 떠났다.

     “그대도.”

     합스베르크가 천장을 향해 말하자, 천장에 있던 기척도 사라졌다.

     “후.”

     곧, 그는 혼자가 되었다.

     집무실이라는 공간에서, 그는 오롯이 세상에서 혼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눈치를 챘나?”

     그리고 그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문답하기 시작했다.

     “아냐. 아니야. 그렇다면 그렇게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았겠지. 아직은…아니야. 알 수도 있어. 알고 있으니까 나 듣기 좋으라고 그런 소리를 한 걸 수도 있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그는 심각한 얼굴로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만일 노스트럼 왕가의 특권을 알고 있다면, 그는 왜 노스트럼 왕가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아스타시아가 옆에 있으니까.”

     황태자는 즉시 해답을 내어놓았다.

     “아스타시아, 아스타시아. 다른 건 몰라도, 아스타시아를 향한 행동이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었어. 심장박동, 흘러나오는 마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 그는 영락없는 지브롤터다.”

     그레이 지브롤터의 진심은 언제나 아스타시아에게 맞춰져 있다.

     그렇기에 판단하기도 쉽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역시나 판단할 수 없다.

     “역시, 그대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나. 하하. 나는 20살이 되어서야 내놓은 답을, 그대는 아무래도 진작 파악한 모양이군.”

     드르륵.

     황태자가 몸을 돌려 서랍 안에 있는 모래시계를 하나 꺼냈다.

     “노스트럼.”

     그러고는 모래시계를 그대로 뒤집었다.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시간을 되돌리는 자들. 그 누구도 그렇다고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그들은 모래시계를 뒤집었어.”

     전부 바닥에 떨어졌던 모래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비어있던 바닥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알아냈구나. 그레이 지브롤터. 그래. 노스트럼은 시간을 되돌린다. 너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태초의 골드 드래곤으로부터 받은 축복이지.”

     합스베르크는 쓰게 웃으며 모래시계 위를 손가락으로 계속 두드렸다.

     “하지만 궁금하군. 나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예상한 부분인데, 너는 어떻게 벌써 그걸 눈치챈 거지? 아버지의 일 때문에?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나?”

     합스베르크가 모래시계를 향해 묻는다.

     “너도, ‘카디안’경처럼 특수 케이스인가?”

     카디안.

     “그가 다른 노스트럼의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너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건가?”

     과거, 제국의 병사들을 상대로 1만이 넘는 수를 단신으로 썰어버린 소드 마스터.

     “아니지, 아니야.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할지도 모르겠어.”

     합스베르크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레이 지브롤터는 사실 노스트럼 황실의 핏줄이다, 라거나.”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모래시계를 뒤집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아마도 그게 가장 그럴싸하겠지.

     “외탁. 혹은…아니지. 외탁일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 가능성이 큰 건 역시 모계에서 흘러들어온 피인가.”

     합스베르크가 빠르게 펜을 들어 끄적이기 시작했다.

     “샤를로트 렘부르 군터. 그 위에 누구였지? 그래, 자크 렘부르 군터. 그레이 지브롤터가 상종도 하기 싫으면서도, 제국 문화를 퍼뜨리기 위해 우리 쪽으로 아부하게 만들려고 하는 남자. 제국주의자의 일원이 될 자.”

     혈통조사. 최소 500년.

     샤를로트 지브롤터는 왕실의 혈통인가.

     “…후. 오랜만에 즐겁군.”

     합스베르크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래. 나의 뒤를 이어받을 자라면 역시 이 정도는 눈치채야지. 설령 그 저주받을 노스트럼의 핏줄 덕분에 한 번 감았다고 하더라도….”

     합스베르크는 잠시 쓴웃음을 지었으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과거로 돌아와, 사랑을 쟁취한다.”

     곧, 서랍 아래에서 빈 공문서용 종이를 하나 꺼냈다.

     “설령 누군가가 다시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현재에 충실하겠다.”

     공문서의 첫 줄은 비어있었으나, 합스베르크는 바로 펜촉을 종이에 붙였다.

     “지브롤터. 그래. 설령 세계가 뒤집혀도,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야 하는 법이지. 세계를 뒤집을 수 있다고 남의 선물을 훔쳐 가고 진탕 술만 퍼마시고 여자나 매일 안고 다닐 게 아니라.”

     합스베르크가 공문의 제목을 적었다가 지우기를 몇 번 반복하다 문구를 하나 적었다.

     “설령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지. 아암, 그렇고 말고. 그러니….”

     공문의 제목.

     [신임 황태자비 선출 계획].

     “…아니지.”

     합스베르크는 몇 번이고 망설이던 문구, 단어 하나를 수정했다.

     “결재할 날을 생각하면, 이쪽이 맞지.”

     [신임 황후 선출 계획].

     “내정자. 에르윈 아이페리아.”

     합스베르크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조금 빨리 움직여야겠어.”

     펄럭.

     등 뒤에 걸린 망토를 빠르게 걸치며, 합스베르크는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 * *

     바이크를 하나 정한 뒤.

     “꺄ㅡㅡㅡ아!”

     “좋으십니까?”

     “처음 모는데, 잘 모시네요!”

     나는 등 뒤에 아스타시아를 태워 직접 바이크를 몰았다.

     “즐거우십니까?”

     “네! 엄청!”

     “그러면 직접 몰아보시는 건 어떠신지?”

     “우웅, 글쎄요ㅡㅡㅡ!”

     아스타시아는 내 등에 얼굴을 비비며 키득거렸다.

     “헬멧 쓰라고 잔소리할 거니까, 싫은데요!”

     “나 참. 겉으로 짝다리 짚으면서 다니는 사람에게 바이크 밟으라고 하다니.”

     “둘이 있을 때는 괜찮거든요!”

     “아, 예.”

     본인이 내가 모는 게 더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있잖아요, 바이크에는 이런 손잡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공주님.”

     “앗, 화났다!”

     “…집에 돌아가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부ㅡㅡ웅.

     

     “자꾸 그렇게 더듬으시면 니드호그 불러서 날아가 버릴 겁니다.”

     “앗, 치사해요!”

     “그러면 좀 자제하세요. 안 그래도 요즘 고생하고 있는데.”

     “고생은 저만 하나!”

     “…….”

     꿈속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히로인 무브

    전력가동 ON

    아래는 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스포일러입니다

    그레이 : 회귀에 관한 매커니즘 및 혈통에 관한 비밀은 그냥 추측만 할 정도로 자세히 모르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스베르크의 행동 방향은 정확하게 알고 있음

    합스베르크 : 추측이지만 99%에 가깝게 모든 진실을 파악해냈으나
    그레이가 자기를 무조건 죽이려고 한다는 건 모름

    엇갈림 따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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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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