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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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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조금 과거로 돌려, 리안과 공작이 막 식사를 하고 있을 시점. 리안이 없는 깊은 숲속에선 장르가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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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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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목구멍 안쪽에서 단내와 비릿한 혈 향이 동시에 느껴졌다. 거친 숨결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몸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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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옆으로 굴리는 것과 동시에 노아가 서 있던 위치에 거대한 뿔이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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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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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주인의 등에서 부패한 기운이 물이 끓는 것처럼 공기 방울을 만들어내더니 이내 채찍처럼 치솟아 올랐다. 하늘 위로 솟아오른 섬뜩한 기운은 얇게 나뉘더니 이내 화살처럼 노아에게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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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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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는 나무 사이를 오가며 쏟아지는 공격을 피했다. 공격 하나하나가 얼마나 강한지 나무가 우지끈 소리와 함께 쓰러지거나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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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익 -… 조금이라도 공격에 스친 곳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살이 녹아내렸다. 노아는 이를 악문 채 고통을 삼키며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숲의 주인과 거리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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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숲의 주인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을 막아낸 건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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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드득,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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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과 뿔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거친 소리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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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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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주인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충격으로 근육이 당겨왔다. 그 탓에 빈틈이 생겼다. 얼굴 쪽에 우글거리던 부패한 기운이 촉수처럼 튀어나와 노아의 목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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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길게 늘어지고, 1초가 1시간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노아는 다리에 마력을 밀어 넣어 승천하는 용처럼 위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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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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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를 발아래로 스쳐 지나간 부패한 기운이 바닥과 호수에 박혔다. 치이익..하는 소리를 봐선 기운이 닿은 곳이 녹아내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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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노아는 검을 뿔과 뿔 사이를 정확히 노려 휘둘렀다. 거칠게 넘실거리는 마력을 쏟아부은 채 떨어져 내리자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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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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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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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아내린 머리를 단번에 반토막 내 버릴 것 같던 공격은 부패한 기운에게 쉽사리 막혀버렸다. 노아는 검으로 놈을 밀어내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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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읍,하앗…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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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릉, 놈은 정말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고개를 털며 노아를 바라보았다. 앞발로 땅을 가볍게 털어대는 모습이 다시 한번 더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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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너덜너덜한 입술을 짓씹으며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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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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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이 향한 곳은 그녀의 공격이 몇번이고 스쳤던 가죽 위였다. 갈라진 상처 사이로 부패한 기운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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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저 기분 나쁜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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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제대로 된 일격을 가할 때마다 부패한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 공격을 막아냈다. 처음에는 숲의 주인 자체의 내구도가 높은가 싶었지만, 가죽이 베이는 걸로 봐선 그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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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기운이 약해지지 않는 이상 승기를 잡는 건 불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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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정보를 솎아내고 답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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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기운을 뚫고 공격을 성공한 경우는 전부 강한 공격을 가한 후 빠르게 연속으로 치고 들어가 공격했을 때 뿐이었어.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 놈은 기운을 한곳으로 응집해서 내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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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패한 기운이 노아의 공격을 가뿐하게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게 아니라, 노아의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제 기운을 공격이 들어오는 곳에 뭉쳐 막아냈던 거라면 연속적으로 들어온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유가 설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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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략 방법은..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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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주했다고는 하나 마력을 한 바가지 써버린 탓에 노아의 마력은 반조차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강한 공격과 약한 공격을 반복적으로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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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검을 들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몸을 내던지는 것. 노아의 행동은 훌륭한 ‘영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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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따라 지금의 도전이 ‘시련’취급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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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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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뒤가 없는 사람처럼 끈질기게 격이 다른 존재에게 달려들었다. 뿔이 왼쪽 팔뚝을 스쳐 찢겨나가고 허벅지 일부가 녹아내려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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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모습은 숭고했지만, 한편으론 광기에 차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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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늘어만 갔고, 부패한 기운이 그녀의 정신 속에 파고들어 이성을 어지럽혔다. 그에 따라 승기는 숲의 주인 쪽으로 기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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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그녀가 무력하게 밀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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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주인은 뿔 한쪽이 사라진 상태였고 하나 남은 눈이 있던 곳에서 부패한 기운을 줄줄 흘려보내고 있었다. 몸 곳곳에 남은 상처에서도 부패한 기운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부 노아가 남긴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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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하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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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하게 풀린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이 기계적으로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고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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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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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가에 이명이 울리고 머릿속이 몽롱하게 풀렸지만, 몸은 여전히 날렵하게 움직여 공격을 피하고 틈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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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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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도, 정신도 극한까지 몰리니 그런 의문이 불쑥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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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저 괴물과 싸우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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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쉽게 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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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그를 지키기 위해서. 그를 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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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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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의문이 반사적으로 툭 뱉어진다. 종알종알 답을 내놓던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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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리안을 지켜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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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까지 몰린 정신은 제대로 된 사고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 탓에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져 답을 구해야 했다. 노아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분노나 의심에서 시작된 질문이 아닌 순수한 궁금증에서 파생된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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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나보다 강한데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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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어디까지나 마검의 부정적인 모습을 감춘 거지 실력을 숨긴 건 아니었다. 카르디샨에서 지내는 3년 동안 노아는 리안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눈으로 보고 대련이란 이름으로 몸으로 겪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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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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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개그 필터의 힘 덕분에 웬만한 상처는 곧바로 나아 버리고 독조차도 피를 한 사발 토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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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리안을 걱정하고 보호하려는 건, 토끼가 늑대를 보호하려고 싸고도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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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노아는 리안을 과보호했다. 그를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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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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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던져진 의문이 파문을 만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의 뿌리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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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끝에 자리한 건 -… 어둠이 내려앉은 감옥, 코끝을 스치는 재의 냄새,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혈향 그리고 너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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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깨달았다. 제 집착적인 생각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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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제 몸을 ‘사용’하고 밝게 웃는 너와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았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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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과거로부터 시작된 죄악의 사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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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그래,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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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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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리안을 지켜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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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그림자에 숨어 안온함을 누려왔던 과거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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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가 늘어가고 몸이 비틀비틀 흔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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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구원이자 죄악이자 이기심이자 평온을 위해 몸을 내던져 죄악을 씻어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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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근원에 자리한 욕망을 자각한 순간 숲의 주인이 갑작스럽게 멈추어 섰다. 동시에 부패한 기운이 어째서인지 옅게 빛나며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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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크로맨서가 땅을 열라는 명령이 내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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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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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살벌하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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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득,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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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툼한 목이 베어지다 못해 부러져버렸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숲 주인의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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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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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주인에게만 단단한 땅이 되어주었던 호수가 제 형태를 찾은 것처럼 떨어진 머리를 삼켜버렸다. 몸통 또한 같은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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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노아의 몸 또한 호수로 곤두박질쳤다. 모든 마력을 끌어다 쓴 탓에 숲의 주인과 다를 바 없이 물속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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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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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삼켜지기 직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에도 무슨 소리가 더 들렸던 거 같은데 물에 온몸이 삼켜져 더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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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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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 방울이 무리를 지어 떠오르고 시야가 뭉개졌다. 노아는 멍하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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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호수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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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었던 호수는 어느새 푸른색을 되찾아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푸름에 섞여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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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륵,쿠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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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고장 난 것처럼 멍청한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물속을 헤집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누군가에게 잡혀 끌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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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힘이 쭉 빠져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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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하…!”
    “커흑,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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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밖으로 끄집어져 나온 후에야 자신을 구해준 이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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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말하지 말고 몸에 힘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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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함께 익숙한 신성력이 몸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노아는 멍하니 필사적으로 자신을 구하려는 리안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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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난… 널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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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흐릿한 정신 속에서 제 진짜 욕망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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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 위해 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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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구원의 대가이며 죄악을 털어내기 위한 속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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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영원히 너의 죄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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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그의 구원에 죄악으로 묶였던 것처럼, 리안 또한 그녀의 구원에 묶여 영원히 기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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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뿌려진 죄악의 씨앗은 순수하고 질척한 사랑으로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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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약 때문에 연재 일정을 다 말아먹어서 병원 가서 새 약을 타왔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연재 주기 회복을… ㅠㅠ
13일 오전에 한편, 오후에 한편 가져오는 게 목표입니다! 요번 주는 수요일, 일요일 휴재 없이 업로드 예정(목표)입니다.
(급하게 부모님 입원하시게 되어서 오늘은 저녁에 한편만 가져오겠습니다..ㅠㅠㅠ 내일은 반드시 두편 가져올 것…)

+

개그 주민인 리안이 나사 하나 빠진 로봇같이 살아가는 것처럼,
다크 판타지 주민인 노아는 어딘가 싸한 느낌으로 돌아버린 사랑을 합니다.

노아는 한마디로 ‘기사’에 적합한 사람 입이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약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망가지려는 자신의 정신을 지킵니다.
그런 노아에게 리안의 희생을 묵인한 행동은 명백한 ‘죄’입니다.

타인에게 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올바른 행동’입니다.
동시에 죄악감을 덜어내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노아가 리안을 대신해 ‘희생’당하여, 리안을’구원’하고 싶어 하는 것 또한 이러한 사과(속죄)의 일종입니다.

죄악감에 사랑이라는 간질간질한 감정이 합쳐져 리안을 구원하여 영원히 그의 기억 속에 화상자국처럼 남고 싶다는 삐뚤어진 욕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사랑은 단맵단맵이라고… 아주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드셔보시는 게 어떠신지… ‘ㅂ’9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시간이 조금 과거로 돌려, 리안과 공작이 막 식사를 하고 있을 시점. 리안이 없는 깊은 숲속에선 장르가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악…학…”

노아는 목구멍 안쪽에서 단내와 비릿한 혈 향이 동시에 느껴졌다. 거친 숨결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몸을 멈출 수 없었다.

몸을 옆으로 굴리는 것과 동시에 노아가 서 있던 위치에 거대한 뿔이 스치고 지나갔다.

부르르륵.

숲 주인의 등에서 부패한 기운이 물이 끓는 것처럼 공기 방울을 만들어내더니 이내 채찍처럼 치솟아 올랐다. 하늘 위로 솟아오른 섬뜩한 기운은 얇게 나뉘더니 이내 화살처럼 노아에게 쏘아졌다.

콰드득!

노아가는 나무 사이를 오가며 쏟아지는 공격을 피했다. 공격 하나하나가 얼마나 강한지 나무가 우지끈 소리와 함께 쓰러지거나 녹아내렸다.

치익 -… 조금이라도 공격에 스친 곳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살이 녹아내렸다. 노아는 이를 악문 채 고통을 삼키며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숲의 주인과 거리를 좁혔다.

노아는 숲의 주인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을 막아낸 건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뿔이었다.

콰드득,콰앙!

검과 뿔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거친 소리가 퍼져나갔다.

“크윽…!”

숲 주인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충격으로 근육이 당겨왔다. 그 탓에 빈틈이 생겼다. 얼굴 쪽에 우글거리던 부패한 기운이 촉수처럼 튀어나와 노아의 목을 노렸다.

시간이 길게 늘어지고, 1초가 1시간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노아는 다리에 마력을 밀어 넣어 승천하는 용처럼 위로 솟구쳤다.

쿵! 쿠궁!

노아를 발아래로 스쳐 지나간 부패한 기운이 바닥과 호수에 박혔다. 치이익..하는 소리를 봐선 기운이 닿은 곳이 녹아내린 듯했다.

몸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노아는 검을 뿔과 뿔 사이를 정확히 노려 휘둘렀다. 거칠게 넘실거리는 마력을 쏟아부은 채 떨어져 내리자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콰가가각!

“큭…”

녹아내린 머리를 단번에 반토막 내 버릴 것 같던 공격은 부패한 기운에게 쉽사리 막혀버렸다. 노아는 검으로 놈을 밀어내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흐읍,하앗…하아..”

푸르릉, 놈은 정말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고개를 털며 노아를 바라보았다. 앞발로 땅을 가볍게 털어대는 모습이 다시 한번 더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노아는 너덜너덜한 입술을 짓씹으며 눈을 번뜩였다.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건 아니야.’

시선이 향한 곳은 그녀의 공격이 몇번이고 스쳤던 가죽 위였다. 갈라진 상처 사이로 부패한 기운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문제는… 저 기분 나쁜 기운.’

노아가 제대로 된 일격을 가할 때마다 부패한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 공격을 막아냈다. 처음에는 숲의 주인 자체의 내구도가 높은가 싶었지만, 가죽이 베이는 걸로 봐선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저 기운이 약해지지 않는 이상 승기를 잡는 건 불가능하겠지.’

빠르게 정보를 솎아내고 답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저 기운을 뚫고 공격을 성공한 경우는 전부 강한 공격을 가한 후 빠르게 연속으로 치고 들어가 공격했을 때 뿐이었어.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 놈은 기운을 한곳으로 응집해서 내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걸 거야.’

부패한 기운이 노아의 공격을 가뿐하게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게 아니라, 노아의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제 기운을 공격이 들어오는 곳에 뭉쳐 막아냈던 거라면 연속적으로 들어온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유가 설명되었다.

‘공략 방법은..그것 뿐이다.’

폭주했다고는 하나 마력을 한 바가지 써버린 탓에 노아의 마력은 반조차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강한 공격과 약한 공격을 반복적으로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검을 들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몸을 내던지는 것. 노아의 행동은 훌륭한 ‘영웅’적이었다.

이에 따라 지금의 도전이 ‘시련’취급 되었다.

“흐아아앗!”

노아는 뒤가 없는 사람처럼 끈질기게 격이 다른 존재에게 달려들었다. 뿔이 왼쪽 팔뚝을 스쳐 찢겨나가고 허벅지 일부가 녹아내려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은 숭고했지만, 한편으론 광기에 차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늘어만 갔고, 부패한 기운이 그녀의 정신 속에 파고들어 이성을 어지럽혔다. 그에 따라 승기는 숲의 주인 쪽으로 기울어갔다.

그렇다고 그녀가 무력하게 밀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숲의 주인은 뿔 한쪽이 사라진 상태였고 하나 남은 눈이 있던 곳에서 부패한 기운을 줄줄 흘려보내고 있었다. 몸 곳곳에 남은 상처에서도 부패한 기운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부 노아가 남긴 상처였다.

“학…하악…학…”

멍하게 풀린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이 기계적으로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고 검을 휘둘렀다.

삐이이 -.

귓가에 이명이 울리고 머릿속이 몽롱하게 풀렸지만, 몸은 여전히 날렵하게 움직여 공격을 피하고 틈을 파고든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몸도, 정신도 극한까지 몰리니 그런 의문이 불쑥 치솟았다.

‘왜 저 괴물과 싸우고 있는 거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쉽게 답이 나왔다.

리안, 그를 지키기 위해서. 그를 구하기 위해서.

‘어째서?’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의문이 반사적으로 툭 뱉어진다. 종알종알 답을 내놓던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왜 리안을 지켜야 하는 거지?’

한계까지 몰린 정신은 제대로 된 사고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 탓에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져 답을 구해야 했다. 노아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분노나 의심에서 시작된 질문이 아닌 순수한 궁금증에서 파생된 물음이었다.

‘리안은 나보다 강한데 어째서?’

리안은 어디까지나 마검의 부정적인 모습을 감춘 거지 실력을 숨긴 건 아니었다. 카르디샨에서 지내는 3년 동안 노아는 리안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눈으로 보고 대련이란 이름으로 몸으로 겪어보기도 했다.

그뿐일까?

리안은 개그 필터의 힘 덕분에 웬만한 상처는 곧바로 나아 버리고 독조차도 피를 한 사발 토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회복되었다.

노아가 리안을 걱정하고 보호하려는 건, 토끼가 늑대를 보호하려고 싸고도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노아는 리안을 과보호했다. 그를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어째서?’

머릿속에 던져진 의문이 파문을 만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의 뿌리를 파고들었다.

그 끝에 자리한 건 -… 어둠이 내려앉은 감옥, 코끝을 스치는 재의 냄새,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혈향 그리고 너의 웃음.

노아는 깨달았다. 제 집착적인 생각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타인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제 몸을 ‘사용’하고 밝게 웃는 너와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았던 나.

그건 과거로부터 시작된 죄악의 사슬이었다.

‘아아… 그래, 맞아.’

그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리안…리안을 지켜야 해.’

그의 그림자에 숨어 안온함을 누려왔던 과거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상처가 늘어가고 몸이 비틀비틀 흔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구원이자 죄악이자 이기심이자 평온을 위해 몸을 내던져 죄악을 씻어내야 하기에.

제 근원에 자리한 욕망을 자각한 순간 숲의 주인이 갑작스럽게 멈추어 섰다. 동시에 부패한 기운이 어째서인지 옅게 빛나며 움직이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땅을 열라는 명령이 내린 순간이었다.

타닷!

노아는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살벌하게 검을 휘둘렀다.

카드득,우득!

두툼한 목이 베어지다 못해 부러져버렸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숲 주인의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첨벙..!

숲의 주인에게만 단단한 땅이 되어주었던 호수가 제 형태를 찾은 것처럼 떨어진 머리를 삼켜버렸다. 몸통 또한 같은 처지였다.

동시에 노아의 몸 또한 호수로 곤두박질쳤다. 모든 마력을 끌어다 쓴 탓에 숲의 주인과 다를 바 없이 물속에 빠져버렸다.

“노아!”

물에 삼켜지기 직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에도 무슨 소리가 더 들렸던 거 같은데 물에 온몸이 삼켜져 더 들을 수 없었다.

구르륵.

공기 방울이 무리를 지어 떠오르고 시야가 뭉개졌다. 노아는 멍하니 생각했다.

‘아, 호수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구나.’

붉었던 호수는 어느새 푸른색을 되찾아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푸름에 섞여가는 게 보였다.

구르륵,쿠르륵!

머리가 고장 난 것처럼 멍청한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물속을 헤집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누군가에게 잡혀 끌려가기 시작했다.

몸에 힘이 쭉 빠져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갔다.

“푸하…!”

“커흑,콜록콜록..”

물 밖으로 끄집어져 나온 후에야 자신을 구해준 이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리안…”

“말하지 말고 몸에 힘 빼!”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함께 익숙한 신성력이 몸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노아는 멍하니 필사적으로 자신을 구하려는 리안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난… 널 위해…’

그녀는 흐릿한 정신 속에서 제 진짜 욕망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널 위해 죽고 싶어.’

그것이 구원의 대가이며 죄악을 털어내기 위한 속죄였다.

‘그리하여 영원히 너의 죄가 되고 싶어.’

그녀가 그의 구원에 죄악으로 묶였던 것처럼, 리안 또한 그녀의 구원에 묶여 영원히 기억해주길.

과거에 뿌려진 죄악의 씨앗은 순수하고 질척한 사랑으로 꽃피웠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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