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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내 기억이 맞다면, 귀족 총회의는 사흘에 걸쳐 열린다.

       

        황궁에서 열리는 회의이니만큼 틸레트의 교수들도 아카데미를 잠시 떠나서 있어야만 했다. 그들 또한 교육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작위를 받은 귀족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아카데미는 한산했다. 자기주도학습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시내에 나와 있었다. 대학로를 따라 걸으며 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산책하긴 좋은 날씨다. 나는 트랜치 코트에 손을 넣은 채로 느긋하게 걸었다. 그렇게 한참, 하늘과 지평선을 번갈아 응시하던 내 눈이 측면으로 기울어졌다.

       

        그곳에는 붉은 머리칼을 지닌 한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는 머리색보다 더 맹렬히 타오르는 진홍색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잘 세공된 스피넬 보석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눈빛이었다. 이는 그녀가 보통 총명한 아이가 아님을 방증한다.

       

        용모단정한 이 아이의 이름은 ‘로테 살리에르’,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처음 사귄 소중한 친구였다.

       

        “흥, 흐흥, 흥~”

       

        무어가 그리 좋은지, 로테는 놀이동산에 처음 온 어린아이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뚝, 하고 엿가락처럼 늘어지던 노랫소리가 멈췄다. 로테가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그녀의 고개가 내 쪽으로 슬쩍 향했다. 나를 흘겨보던 그녀의 입가에는 어느새 호선이 새겨졌다.

       

        흡사 성모와도 같은, 자애로운 미소.

       

        “나, 친구와 이렇게 데이트 한번 해 보고 싶었어.”

       

        숙련된 권투 선수가 날리는 펀치처럼 훅, 치고 들어온 말이었다.

       

        허어, 데이트라니. 하마터면 그 말을 듣고 난감한 표정을 지을 뻔했다.

       

        ‘데이트’, 동향 사람인 버멜이 들으면 기절할 법한 말이다. 한국도 그렇고, 그가 속한 엘프 나라에서 데이트는 연인들이 바깥에서 노닥거리는 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의 서양이나, 아니면 이곳 제국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로테가 제안한 ‘데이트’는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할 수 있는 야외 활동이라는 뜻이었다.

       

        이걸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의외로 간단한 이야기다. 

       

        덕분에 조금 전엔 웃지 못할 오해가 만들어졌었다. 금안족 특유의 포커페이스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자칫했다간 서로 멋쩍은 상황만 연출하고 끝날 뻔했다.

       

        나는 가을바람을 쐬며 상념을 털어냈다. 소풍(消風)에는 ‘바람을 쐬며 마음을 정돈하는 일’이라는 뜻도 있다. 그 의미가 잘 어울리는 경우가 바로 지금이었다.

       

        시내를 걷던 중,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로테를 흘끗흘끗 쳐다보던 나는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런데 왜 시내부터 나오자고 한 거야?”

        “응?”

       

        살짝 틀어졌던 로테의 고개가 완전히 이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하고 새하얀 얼굴이 정면에서 보였다

       

        화려하기보다는, 단정하고 수수한 느낌을 주는 미모였다. 한 마디로, 청순파 미소녀였다.

       

        “왜냐니….”

       

        그런 로테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변하는 건 일순간이었다.

       

        “네가 뭐든지 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래, 여기까지는 맞는 말이다.

       

        로테를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이 친구에게는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기숙사에 늦게 들어와 걱정을 끼친 것을 핑곗거리 삼아 무언가를 해줄 심산이었다.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귀족의 딸인 로테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건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계획이었다. 그 시기가 계속해서 뒤로 늦춰졌을 뿐이지.

       

        “그건 그런데….”

        “왜?”

       

        내 질문의 요지는 조금 달랐다.

       

        “다른 일도 많잖아. 무료 과외라든가,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대신 대출해 준다든가….”

       

        공붓벌레인 로테라면 그런 걸 주로 시킬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정반대로, 로테는 날 시장가에 데리고 나와 쇼핑하길 원하는 듯하였다.

       

        사람은 과거 행적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나는 유독 그 경향이 강했다. 틀림없이 로테라면 그럴 줄 알았는데.

       

        나는 그런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대로, 로테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넘어가는 시늉을 벌였다.

       

        “에테르.”

       

        내 이름을 부른 로테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그녀는 땅이 꺼질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로테치고는 흔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패턴 예측에 실패한 나는 그녀의 눈길을 살피며 입을 우물거렸다.

       

        그녀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그 대신 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냈다. 그 손거울에는 곧 한 소녀의 얼굴이 비쳤다.

       

        삼백안을 치뜨고, 거무죽죽한 눈가를 지닌 금안의 소녀였다. 석탄처럼 시커먼 소녀의 머리카락은 돼지 꼬리처럼 이리저리 뒤엉키고 꼬여 있었다.

       

        “너 빗질 한 지는 얼마나 됐어?”

        “그러게.”

        “최근에 여덟 시간 이상 잔 적은?”

        “없어.”

        “뭐? 그럼 여섯 시간 이상은?”

        “그건 있… 을걸? 어어…. 아닌가?”

       

        로테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입가에선 다시 한번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미용실 간 게 언제야?”

        “없어.”

        “없다고?”

        “없을걸?”

       

        내가 미용실을 왜 가.

       

        “네 눈으로 거울 좀 봐.”

       

        로테의 말에 따라 내 고개가 앞으로 젖혀졌다. 거울 속의 소녀도 날 따라 머리를 앞으로 내빼었다.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를 지닌, 경국지색의 미소녀였다. 금안족이란 하나같이 이런 외모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로즈마리도 아름답기로는 보통이 아니었지.

       

        “뭐 느껴지는 거 없어?”

        “나 좀 잘생긴 듯.”

        “이상한 소리 말고!”

       

        농담조로 대답하였으나, 돌아온 건 걱정 어린 시선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로테의 의도가 무엇인지 기민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무심코 로테의 발자국에 맞춰 걷다 보니, 어느새 내 눈앞에는 거대한 헤어살롱 입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 어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이런 곳을 더럽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게 미용실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발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머리 다듬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시간에 책 한 자라도 더 봐야 한다.

       

        그러나 독심술이 없던 로테는 그런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 알더라도 작정하고 들여보낼 심산이었다.

       

        “하루쯤은 좀 쉬고, 몸도 단정해. 그래야지 나중에 졸업하고 귀족이 되어서도 품위 있게 행동할 수 있지.”

        “아니, 그게 아니라….”

       

        웬만하면 졸업 안 하고 튈 건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으나 도로 삼켰다. 이 사실을 로테에게 말해주었다간 그건 그것대로 대참사가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다른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난 지금 머리가 좋아.”

        “너무 길잖아. 여기 봐.”

       

        로테의 손이 내 엉치뼈에 닿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나는 돌연 사레가 들려 켈룩거렸다. 그러나 로테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타까움 섞인 어조로 내뱉었다.

       

        “대체 얼마나 안 깎은 거야…. 허리를 넘어서 이젠 다리까지 내려오잖아.”

        “한 4년?”

        “4년?”

        “그 정도 됐어.”

        “얘가 미쳤나 봐.”

       

        로테는 ‘안 되겠어’를 남발하며 내 등을 떠밀었다. 내 입에선 어엇, 엇 하며 조각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 들어감과 동시에 코끝을 간질이는 미용실 특유의 냄새. 인싸 종업원들이 건네는 인사말까지.

       

        촉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생소한 정보가 들어온다. 온몸에 알레르기가 돋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질색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로테는 내 질겁하는 표정을 읽고도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오늘내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고 말했잖아.”

        “어….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 오늘 널 사람으로 만들 거야.”

       

        그 말을 들으니 전신에서 묘한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소리잖아.

       

        [수고하세요. 전 밥 먹고 올 테니까.]

       

        나는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단말마를 최대한 삼키면서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 뒤로는 예상대로의 전개였다. 배정받은 사람이 내 눈이 예쁘다며 칭찬하고, 이후로는 로테와 언니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내 머리 스타일을 결정하는 중이다. 여기까지 10분.

       

        “요즘엔 장발 C컬도 유행이에요.”

        “얘는 글램도 괜찮을 것 같아요.”

        “으음, 머리가 원래부터 곱슬이니까 아예 스트레이트로 해 보는 것도 어떨까요?”

       

        도대체 뭐라는 거야.

       

        “S컬이랑 섞어도 나쁘지 않아요.”

        “아예 중간까지는 곧게 해 보는 편이 예쁘게 보일 수도 있지도 몰라요.”

        “아, 더블로 말이죠?”

       

        두 여자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새삼 내가 남자였다는 것이 체감된다. 아니다. 이건 남자여도 알 사람은 다 알려나? 모르겠다.

       

        “친구 의사도 물어봐야죠. 우리 언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미용사가 내 머리를 빗질하며 물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뻣뻣하게 굳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 온 것도 처음이거니와, 들려오는 용어 하나하나가 전부 낯설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일단 머리부터 다듬고, 가볍게 컬을 넣어볼게요.”

       

        내 머리는 벡터가 아닌데.

       

        재미도 감동도 없는 농담을 속으로 되뇌고 있던 사이, 나는 미용사의 안내를 받아 머리 감는 곳으로 이동했다. 펌을 하면 대략 2일은 머리를 감으면 안 돼서 이렇게 먼저 감긴다더라.

       

        척, 하며 내 눈가에 뜨듯한 수건이 얹혔다. 수건은 귀까지 덮혔는데, 이 때문에 바깥소리가 조금은 희미하게 들려왔다.

       

        미용사는 내 머리를 커다란 세면대 안으로 그러모았다.

       

        곧이어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들린다. 미미한 마력의 기척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날 담당하고 있는 이 언니가 파란색 눈을 하고 있었지. 수도꼭지에 담긴 생활용 스크롤에 직접 마력을 불어넣어서 동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덧 머리가 묵직해졌다. 따뜻한 감각이 들었다. 머리가 물에 적셔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미용사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 온도 어떠세요?”

        “네에…. 무릉도원이네요.”

        “아뇨, 물 온도 어떠시냐구요….” 

       

        아.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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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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