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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겉보기에도 굉장히 좋아 보이는 호텔답게,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과하게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단순하지도 않은 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곳. 그렇기에 오히려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장소보다 훨씬 비싸 보였다.

        

       보통 자기 가문이 운영하는 호텔이 이 정도로 완벽한 곳이라면 이런 곳을 선보이면서 자랑 정도는 할만하다. 실제로 그레이스 가는 그 칙칙한 도시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푸른 잔디밭을 가꾸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윈터필드는 강인한 영지민들에게, 노스우드는 화려한 거리에 자부심을 품고 당당하게 드러내곤 했다.

        

       아니지, 여기도 그 화려함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긴 했다. 정작 그 주인이 될 사람은 그냥 얼굴에 옅은 미소만 짓고 있을 뿐 자랑하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제이크는 오히려 아카데미에서와는 다르게 몹시 차분했다.

        

       “방 배정은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나름대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상대와 모아두었으니 너무 걱정할 건 없다.”

        

       나는 앨리스와 같은 방이었다. 그냥 4인실 정도 되는 방에 학생들을 꽉꽉 눌러 넣어도 될 법한데, 굳이 널찍한 2인실에 두 명씩 넣은 것은…… 아마 아카데미 측의 의도보다는 린드버러 측 의향이 더 강하게 반영되었으리라.

        

       이 정도로 베풀 수 있는 아량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 사업차 방문했을 때 꼭 여기를 쓰게 만들겠다는 의지.

        

       평민반에도 똑같이 베푼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린드버러가 ‘진취적’이라서 가능했던 것이리라. 모든 귀족 가문 중에서 가장 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가문이다. 거기에 언제나 인력이 부족한 곳이기도 했다. 평민 반의 학생이 부르주아가 되건, 아니면 전문직이 되건, 이 가문에서는 미리 친해져서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진취적이라는 말은 순수한 제국민, 나아가 백인들에게나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며칠이나 걸렸으니 여독이 많이 쌓였으리라 본다. 오늘은 푹 쉬도록. 다만, 아까 말했듯 호텔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는 로비에 대기 중인, 나를 비롯한 선생들에게 보고할 것. 그리고 반드시 세 명 이상 함께 다닐 것. 추가로 조언하자면 누가 꼬드기는 말에는 함부로 넘어가지 마라.”

        

       제니퍼의 마지막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일었지만, 제니퍼의 표정은 꽤 진지했다.

        

       “이 근방은 치안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만, 그렇다고 제도만큼 훌륭한 것도 아니다. 다들 정신 바싹 차리고 행동하도록. 이상.”

        

       뭐, 사실 여기 있는 학생 대부분은 제도 출신이 아니었으니 여기보다 훨씬 치안이 좋지 않은 곳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을 직접 가보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지 모르니까.

        

       “실비아.”

        

       제니퍼의 말이 끝나고 학생들이 웅성웅성 자기네 그룹끼리 모이기 시작하자 앨리스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우리 방으로 한 번 가볼까? 꽤 위층이던데.”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의 표정은 꽤 들떠 보여서,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

        

       이쪽 세상에 와서 단 한 번도 마음이 들떠본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내가 들어온 세상이 내가 좋아하던 게임 시리즈의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어쩌다 황녀로서 앨리스 옆에 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주인공 일행이 다니는 아카데미에 들어갔을 때나, 메인 스토리에 함께 휘말리게 되었을 때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하는 때도 많았지만, 동시에 가슴 한편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자신이 좋아하던 게임 안에 들어와서 들뜨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빙의물 같은 거 보면 다들 처음에는 좆됐다느니 이 세상은 망했다느니 하는 말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히로인 만나서 잘 먹고 잘 살더만.

        

       ……난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아무튼.

        

       “대단하네, 굳이 우리를 이 호텔에서 묵게 한 이유를 알 것 같아.”

        

       앨리스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72층, 꼭대기.

        

       아무리 호텔이 크게 지어졌다고 해도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그 많은 학생의 방을 전부 몰아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우리 두 사람의 방이 이 제일 전망 좋은 곳에 있는 이유는 방의 배분이 무작위는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깨끗한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가 반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자로 반듯하게 재서 만든 듯, 시야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도시의 경계까지 도로가 1자로 쭉쭉 뻗어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도로가 하나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처음부터 계획되어 세워진 도시라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시야 끝부분에는 바로 공업지대가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도시의 경계 바깥으로 보이는 곳에서 검은 매연과 하얀 수증기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아마 저것보다 더 먼 곳에는 플랜테이션 농장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처럼 우리가 린드버러 영지 성에서 지냈다면 이런 기분은 내지 못했겠지.”

        

       “린드버러 성은 오히려 제국 본토의 영지 성들보다 검소한 편이니까요.”

        

       문자 그대로 ‘성’인 다른 영지의 중심과는 다르게, 린드버러 가문의 건물은 그냥 도시 한가운데 있는 저택이었다. 물론 ‘그냥’이라고 말하고 넘어갈 정도로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성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했다.

        

       가문끼리 중세식 공성전을 할 이유가 없는 시대에 만들어졌기에 그런 형태가 되었다나.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사업인가…….”

        

       앨리스는 창밖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뭐, 좋아. 일단 방이랑 짐은 다 확인했으니 밖에 나가서 근처를 돌아보자. 샤를로트는 밖에 나가고 싶어서 안달일 테니까 애들 모아서 다 같이 다니면—”

        

       앨리스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누군가 우리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방문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나는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했다.

        

       이건 원작에서도 나오는 스토리 중 하나였으니까.

        

       넓은 방을 가로질러 방문 앞까지 가는 도중에 노크 소리가 다시 들리는 일은 없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방 안의 우리를 채근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두꺼운 문을 잡아 열자, 문밖에 서 있던 로티와 눈이 마주쳤다.

        

       “황녀님.”

        

       로티는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아카데미에서 마주칠 때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기품있게 인사하던 로티였지만, 지금의 인사법은 그것과도 달랐다.

        

       스커트 끝을 살짝 잡은 채 무릎을 굽혀 보이는 기품있는 인사.

        

       ‘절’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려나.

        

       “무슨 일이신가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기에는 영 민망할 것 같아 그렇게 물었다.

        

       “오늘 밤, 린드버러 저택에서 열리는 연회에 두 황녀님을 초대하고 싶다는 린드버러 공작의 전언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로티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초대장을 두 장 겹쳐서 건넸다.

        

       받아서 보니 멋들어진 필기체로 한쪽에는 ‘앨리스 팬그리폰 황녀 전하 앞’이라고 쓰여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실비아 팬그리폰 황녀 전하 앞’이라고 쓰여있었다. 양쪽 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보라색 봉투에 들어있었고, 붉은 밀랍으로 봉인되어있었다. 밀랍에 찍힌 도장에는 앞발을 든 말이 그려져 있었다.

        

       “두 황녀 전하께서 연회에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로티는 더없이 공손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로티?”

        

       뒤쪽에서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하기라도 했는지 따라왔다가 나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로티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여전히 교복 차림이긴 했지만 마치 메이드복이라도 입고 있는 것 같은 자세였으니까.

        

       나는 말없이 앨리스 몫의 초대장을 앨리스에게 넘겼다.

        

       “오늘 밤 린드버러 영지에서 열리는 연회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래?”

        

       앨리스는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로티를 보았다.

        

       “로티, 그래도 그렇게 공손하게 전달할 필요는 없어. 지금은 너나 나나 같은 교복을 입고 있잖아.”

        

       “하지만 초대장은 린드버러 공작의 이름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많은 뜻이 함축된 말이었다.

        

       로티는 제이크의 전속 메이드다. 그러니 이런 것을 전달할 때도 당연히 메이드로서 전달해야 했다.

        

       교복을 입고 있건 아니건, 귀족을 귀족으로 대해야 하는 순간에는 로티도 자기 본업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알았어.”

        

       그런 뜻을 읽었는지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티는 다시 한번 우리를 향해 깊게 머리를 숙이더니 뒷걸음질 쳐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내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구나. 로티는 린드버러의…….”

        

       “메이드겠죠. 제이크는 소꿉친구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자연스럽겠지. 아카데미에서 너무 오래 있었더니 그런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네.”

        

       앨리스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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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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