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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최고 층, 가장 높은 유리 선반에 놓여있는 두 송이의 연 푸른색 눈동자 모양의 꽃망울 화분.

    밀레드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게 데미라이트야.”

     

    “오오, 이것이…….”

     

    처음으로 눈에 담은 이 시대의 데미라이트다.

    루크는 곧장 마력시를 반짝이며 그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색은 내가 아는 것 보다 연한 것 같구나. 하지만 여전히 신비로워.”

     

    과거에 본 데미라이트는 이것보다는 조금 더 짙은 푸른색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딱히 특이할 점은 당장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색 외에는 대부분 5000년 전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은데…….

     

    “하하, 그래? 처음 실물로 보면 조금 다르긴 하지.”

     

    뭐든 직접 볼 때와 사진으로 볼 때는 상당히 느낌이 다르니까.

    루크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괜찮나?”

     

    “……박사님?”

     

    밀레드는 그래도 되냐는 듯 박사에게 시선을 보냈다.

    밀레드에게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루크도, 곧장 노인을 향해 시선을 돌려 부탁했다.

     

    “부탁하네.”

     

    불한당 같은 제자와 귀여운 새싹 같은 아이의 시선을 한눈에 받게 된 노인은 가볍게 눈가를 쓸었다.

    데미라이트는 굉장히 예민한 마력초, 자칫 잘못하면…….

     

    “…….”

     

    그러나 마치 새벽녘에 꽃잎에 맺힌 이슬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아이의 시선을 마냥 무시하기엔 너무나 힘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와서 멀찍이 슬쩍 보고 끝낸다면, 아이는 또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흠. 그래. 대신, 절대 손은 대지 말거라.”

     

    “호의에 몸둘 바를 모르겠군, 정말로 고맙네.”

     

    “그 녀석 말하는 것 좀 보게.”

     

    그는 보면 볼 수록 맘에 드는 꼬맹이라고 생각했다.

    화분을 조심스럽게 꺼내 루크가 볼 수 있는 눈높이로 내리자, 루크는 바로 데미라이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것이…….”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다른 한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꽃의 향기를 맡아본다.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지만, 마력초를 다룰 때에는 마력을 억제하는 편이 더 나았으니까.

     

    예상 외로 전문적인 루크의 모습을 본 밀레드와 박사는 속으로 감탄했다.

    밀레드가 말했다.

     

    “향이 어때?”

     

    루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달콤한 향은 전혀 나지 않는구나. 역시나 꿀은 담겨있지 않은 모양이야.”

    “하하, 그걸 구분하는거야?”

    “전에 맡아본 적이 있었거든. 꽤 그립군 그래.”

    “맡아봤다고? 언제?”

    “흠, 그러니까…….”

     

    그게 언제쯤이었지?

    루크는 대답을 위해 당시의 별자리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순식간에 멈춰야 했지만.

     

    루크는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갑작스러운 아이의 비명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화분을 떨어트릴 뻔한 밀레드는 황급히 화분을 들어올렸다.

     

    “으악, 갑자기 무슨 일이야!?”

     

    왜냐하면, 파이가 바로 데미라이트의 앞에서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장 파이의 몸뚱이를 마력을 두른 두 손으로 낚아챈 루크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파이를 주물거리며 외쳤다.

     

    “파이, 지금 대체 뭘 하는 겐가!”

     

    파이는 루크의 손아귀의 힘에 의해 마구잡이로 돌려지고 주물러지는 와중에 울듯이 말했다.

     

    -하지만…….! 에레도 그립잖아!

     

    “그립다니?”

     

    -내가 보여줄 수 있어. 꽃!

     

    “뭐?”

     

    루크의 손아귀에 힘이 풀려버렸다.

     

    꽃을 보여준다고?

    무슨 꽃을?

     

    “잠깐, 설마……. “

     

    이곳에 꽃이라곤 데미라이트가 유일하다.

    그런데, 파이가 꽃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은, 분명하게 데미라이트를 의미하는 것일 터.

     

    “파이, 네가 할 수 있다고?”

    -응!

     

    루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파이는 그 대답을 끝으로 순식간에 몸을 띄워 데미라이트를 그대로 ‘먹어’버렸다.

     

    “…….”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루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데미라이트가 담긴 화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상황에 긴장했던 밀레드와 노인도 루크의 시선을 쫓아 화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파이의 몸 속에 들어간 데미라이트의 색이 점차 짙어지기 시작한다.

    남자와 노인은 이미 루크의 반응 때문에 커진 눈을 더욱 더 크게 뜨려는 듯이 더욱 눈에 힘을 주었다.

     

    “대체 이게 무슨…….”

     

    “밀레드.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냐?”

     

    푸른색.

    수많은 꽃의 미세한 색의 변화를 구분할 수 있는 그들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푸른 색이었다.

    그것은 마치, 달이 뜨기 전의 짙푸른 하늘 색과 같은 푸른색.

     

    그리고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꽃이 피고 있잖아?”

     

    신의 눈동자, 데미라이트.

     

    아주 오랜 세월동안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눈꺼풀이 지금 열렸다.

     

    “맙소사.”

     

    오랜 기다림 끝에 펼쳐진 데미라이트의 향기는 너무나 강해서, 마치 그동안 아껴둔 향을 모조리 내뿜으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코를 가져다대지 않고도 엄청난 향기, 이것이 정녕 자신들이 연구하던 그 꽃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향기에는 분명히, ‘달콤함’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리라.

     

    “루, 루크. 이거, 설마 네가……?”

     

    천천히 데미라이트에서 눈을 떼며 아래를 내려다보던 밀레드는 굳어버렸다.

     

    “루, 루크야? 대체 왜 울고 있니? 무슨 일이야?”

     

    “울다니, 내가?”

     

    그럴리가, 루크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눈가에 걸려있던 눈물이 주륵,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각이 느껴진다.

     

    “……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째서……?”

     

    -그건 그리워서 그런거야, 에레.

     

    “에레……?”

     

    서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높은 산 꼭대기였다.

    여름철의 마나가 겨우 닿을 정도로 드높은 산.

     

    그리고 자신의 발 밑에는 데미라이트가 한 송이 ‘피어’ 있었다.

     

    “…….”

     

    어딘가 불만족스럽다는 표정.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니, 주욱 이어진 눈밭에 자신의 것이리라 추측할 수 있는 발자국 외에 또 다른 발자국이 옆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발자국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붉은 머리의 여성이 해맑게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다.

     

    “예쁘다, 그치?”

     

    도리도리.

     

    “에레가 더 예뻐.”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니,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얘가, 못하는 말이 없네, 누구를 이렇게 닮았을까.”

     

    여성의 청록색 눈동자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에레는 에레를 닮아.”

     

    “그래, 그렇겠구나!”

     

    스윽, 스윽.

    여성의 손길이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내가 이 꽃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래. 들어줄거지? 우리 에레는 착하니까.”

    “응.”

     

    풀썩, 바닥에 주저앉는다.

    꽃의 주변엔 눈이 쌓이지 않아서, 다른 건 몰라도 앉을 때는 편했다. 엉덩이가 젖지 않으니까.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여성은 그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진짜, 길었다.”

     

    “응.”

     

    여성이 피식 웃으며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거 알아? 데미라이트는 신의 눈동자라는 거.”

     

    “눈동자?”

     

    “그래, 눈동자. 그래서 이건 가장 높은 곳에서, 모두를 지켜보듯이 피어 있는 거야.”

     

    모두를 지켜보는 눈동자?

    아이는 여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금 꽃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눈동자라고 생각하니 상당히 징그러워보인다.

     

    “……징그러워.”

     

    “하하하! 그렇지?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응.”

     

    여성이 또 한번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만히 있으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귀찮은 느낌에 고개를 피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아쉽다는 듯 손을 거두는 그녀.

     

    “맞아, 소름끼치지. ‘신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라니. 정말 재미없는 일이기도 해.”

     

    “응.”

     

    역시, 아무래도 대충 듣는 것 같은데? 별로 흥미가 없나봐.

    여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꽃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있지, 그래도 말이야. 이 꽃을 싫어하지는 않아. 이 꽃의 꿀에는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거든.”

     

    “무슨 의미?”

     

    “이건 눈물이야. 기쁘거나 슬플 때 흘리는 거.”

     

    “…….”

     

    딱히 특별한 것 없는 것 같은데?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신은 항상 제멋대로여서, 절대 쉽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아. 신의 눈물은 그래서 볼 수 없는 거야.”

     

    볼 수 없다니? 그것도 이상한 소리였다.

    원래도 그랬지만, 오늘은 이상한 소리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

    꽃의 중심을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내면 잔뜩 묻어나올 정도로 가득한데.

     

    “여기 꿀 많이 있는 걸.”

     

    그러자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맞아, 지금은 너무 많지.”

     

    그건, 신이 그만큼 인간적이라서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래 인간이었으니.

     

    “하지만, 이제 그것도 마지막이야. 눈을 감을 거니까. 나는 이제 아무것도 보지 않을 거야.”

     

    “……왜?”

     

    “자유……를 위해서 일까?”

    “자유?”

    “그래. 모두의 자유를 위해서.”

     

    여성이 눈을 감자, 데미라이트의 꽃잎이 다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던 감정의 향들이 서서히 흩어져버린다.

    흐릿하게. 세상에 더욱 녹아들듯이.

     

    그렇게 ‘신의 눈동자’가 닫혔다.

    그러니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으리라.

     

     

    그 때였다.

     

    찹찹.

     

    손으로 볼을 치대는 소리, 그것은 아이의 손이 여인의 얼굴을 마구 때리는 소리였다.

     

    “왜? 눈 떠, 감지 마.”

    “으음, 싫어. 나는 이제 슬퍼하기도 지쳤단 말야.”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아이는 조금 물기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레만 두고 갈거야?”

    “가는 게 아냐, 잠깐 자는 거지.”

    “잘거야?”

    “응, 잘거야.”

    “싫어. 안 자도 되잖아.”

    “하지만 나는 자고 싶은 걸.”

    “그래도…….”

    “이젠 조금 쉬어도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에레. 너도 새로운 세상을 배워야지.”

    “그래도…….”

    “너무 길었어, 너무.”

     

    “…….”

     

    더 이상의 말은 의미가 없음을 이미 아이도 알고 있었다.

    너무 오래 함께했다는 것을, 더 이상 떼를 쓰는 것은 그녀를 위한 일도, 자신을 위한 일도 아님을.

     

    “그래도, 한가지는 약속할게.”

     

    그녀는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행복할 거야. 바로 내가 그랬듯이.”

     

    내가,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여인은 사라졌다.

    홀로 남은 아이는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잘자, 레니에.”

     

    ———

     

    꿈을 꾸었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한 그리움이 가슴을 움켜쥔 듯 한 느낌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정녕 불쾌한 느낌 또한 아니었다.

     

    그렇게 상반된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뜬 순간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

    기억에 없는 형태를 보아, 이곳은 한번도 와본 적 없는 장소임을 짐작케했다.

     

    “…여긴?”

     

    나즈막한 중얼거림, 그 중얼거림에 마치 대답이라도 하 듯, 목소리가 쏟아져내렸다.

     

    “루크야,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언니, 괜찮아?”

    “넌 어떻게 사람이 하루도 안심을 할 수 없게 만드냐, 진짜.”

     

    예르나는 아예 루크의 손을 감싸쥐고 눈물까지 흘리는 중이었다.

     

    “예르나? 디아나, 다이튼까지? 대체 여길 어떻게……?”

     

    “나는 네가 이번에 진짜 잘못되는 줄 알고…….”

     

     

    주변을 둘러보니 각종 가구의 배치와 형태, 자신의 손에 꽂혀 영양포션을 주입하는 링겔과 자신에게 입혀진 환자복을 보면 이곳은 바로 병원임을 짐작케하기에 충분했다.

    병원이라, 아.

     

    ‘흠, 데미라이트를 보고난 후에 감정과다로 쓰러졌던건가.’

     

    데미라이트를 본 직후,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서클이 크게 엇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마 그 탓에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지.

    창밖을 바라보니 보이는 거대한 세계수는 이곳이 아직 베리튼임을 증명했다.

    상황의 파악은 빨랐다.

    루크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미안함을 듬뿍 담아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내가 그대를 이 먼 곳까지 불러냈는가…….”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력발전소에 처음 왔을 때, 병원에서 눈을 뜨는 경험을 이미 해보지 않았던가?

     

    ‘나도 참, 발전이 없군.’

     

    안타까운 일이었다.

     

    루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럼 다른 아이들은 다 어디있지? 걱정을 끼치게 해버렸으니, 사과를 해야하는데…….”

     

    “아이들? 이제 없어.”

     

    다이튼의 대답에 루크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아이들이 없다니.”

     

    “너, 3일 동안이나 잠들어 있었거든. 다른 애들은 다 집에 갔지.”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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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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