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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딸-랑

         

       딸—랑

         

       흐릿하게 들리는 방울 소리.

       하지만 기이하게도 공기를 매질로 소리가 옮겨지는 것이 아닌, 공간을 뛰어넘어 영혼에 직접 닿아 소리를 옮기는 듯한 기이한 소리였다. 소리를 듣고 있자면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들었으며,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끌림이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있으면 격정적인 감정이 끓어오기도 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올바른 길을 찾아간다는 편안함이 품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정신이 몽롱해지고, 멍한 상태에서 앞사람의 등만을 바라보며 행군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품기도 하였다.

         

       사람을 홀리는 소리.

         

       악령.

       그것도 아주 강력한 악령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진성은 자신의 감정을 진탕을 시켜놓으려는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그 어떠한 것도 나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을 수는 없느니라.’

         

       오직 정신만이 멀쩡한 상태에서 시체나 다름없는 육신을 이끌고 다녔던 것이 진성이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마약성 진통제를 미친 듯이 투약한 상태로 죽을 날만 기다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신체와 누적된 대가 탓에 뒤틀린 영혼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정신.

         

       주술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그리고 주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여기는 그의 날카로운 정신이었다.

         

       회귀하고 육체가 깨끗해지고, 영혼이 정화되었지만, 오직 정신만은 그때와 이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이자 과거에서 온 정신이 그를 지배하고 있으니 그 어떠한 것도 진성의 정신을 범할 수는 없었다. 악령이 아닌 대악령이 떼로 몰려든다고 한들 끔찍한 광기를 품은 그의 정신을 흔들어놓을 수는 없으리라.

         

       ‘다만 나의 정신이 아닌 다른 이들의 정신이라면, 그래. 심약한 능력자 정도라면 능히 홀리고도 남을 정도로구나. 아주 훌륭하구나.’

         

       진성은 방울 소리를 이정표로 삼아 계속해서 걸어갔다.

         

       딸-랑딸랑딸랑

         

       그가 걸어갈수록 방울 소리는 점차 또렷하게 들렸고, 그와 비례해 드문드문 들리던 것이 귓가를 가득 메우는 듯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의 눈에 알록달록한 형체가 보였을 때, 방울 소리는 그의 머리를 뒤흔들어버릴 정도로 강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딸랑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딸랑.

         

       귀에서.

       눈에서.

       머리의 가장 안쪽에서.

         

       방울 소리는 진동과 함께 머리로 향했고, 그의 몸 안을 방울 소리로 가득 메우려는 듯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진성은 이러한 악령의 시도에 코웃음을 치며 그저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천한 무당 주제에 어딜 홀리려 드느냐?”

         

       진성의 말이 밖으로 나오자 그 순간 방울 소리가 뚝 멈췄다.

         

       그 대신 저 멀리 있던 알록달록한 것이 몸을 돌렸고, 고무공이 통통 튀듯 두 발로 그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퉁-

         

       퉁-

         

       그것은 두 발을 모으고 손에 든 것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고개를 미친 듯이 뒤흔들며 진성에게로 다가왔다. 그것이 뛸 때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고, 그것이 하늘 높이 치솟았을 때에는 도리어 땅을 박차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퍼졌다. 하지만 소리는 아까와 같이 공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성의 몸을 울리는 듯한 기이한 진동으로 행해졌다.

         

       이 역시 사람을 홀리려는 악령의 수작이었다.

         

       상식과 동떨어진 것을 보여줘서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시각에 혼란을 줘서 정신의 방벽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혼을 빼놓는다.

         

       정신이 나가 얼떨떨하게 만든다는 표현이었는데, 이 표현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 옛 조상들은 혼과 정신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도 정신이 약해지면 영혼 역시 흔들리고, 외부의 존재가 행하는 사악한 짓에 대한 방비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비슷한 표현으로 ‘넋이 나가다’라는 것이 있으며, 이 역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거나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뜻이 있다. 위의 표현과 같이 정신과 영혼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뜻을 품은 표현이다.

         

       그리고 진성에게 다가오는 악령 역시 시각으로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고, 그 사이로 침투해 빙의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사람을 혼란하게 만들고 육체에 깃들어 갖가지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 위해서 말이다.

         

       다만 악령에게 있어서 불행은, 정신을 뒤흔들려 하는 인간이 끔찍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리라.

         

       퉁-

       투우웅-

         

       결국 악령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빠르게 진성의 앞까지 도달했다.

         

       딸-랑.

         

       진성의 앞에 도달한 악령은 노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이는 기다란 백발을 늘어뜨린 노파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살이 어찌나 늘어졌는지 주름을 품고 축 늘어져 쇄골까지 피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게다가 쥐라도 잡아먹은 것인지 새빨갛게 물든 이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목을 매서 죽은 것인지 발끝까지 닿을 것 같은 기다란 혀를 제 목에 칭칭 감고 있었다.

         

       악령은 무당이 입을법한 오방색으로 이루어진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낡고 해져서 간신히 그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곳곳에 뚫린 구멍에서는 피부가 보이고 있었는데, 두들겨 맞아서 죽기라도 한 것인지 멍 자국으로 보이는 것이 온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정상적인 사람의 피부색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멍이 몸에 가득했다.

         

       그것은 한 손에는 방울을, 다른 한 손에는 기다란 하얀 천 하나를 들고 진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성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화가 나기라도 한 듯 소리쳤다.

         

       “혹세무민을 일삼고 괴력난신을 믿고 미신을 퍼뜨리는 천하기 짝이 없는 것아. 어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나를 보고 있느냐!”

         

       마치 양반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가 소리를 치자 무당은 위축되기라도 한 듯 목을 슬쩍 움츠렸다. 하지만 이내 눈을 하얗게 뒤집고 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 히이히히히히히히! 어허이 어허! 얼쑤어어어어억! 양반님네 무당 종년 부르시니 냉큼 대답을 하여야 하렷으렷다. 어른나 하나이 없으니까이 무당년 부르거나 무당당이 부르거나 근본있고 세본있고 머루 다래 곡절있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놈들이 궁상시리 어이 어이 어이 양반 부르는 대로 부르렸다. 어허이야 어허이! 당아 무당아 천하기 짝이 없는 무당년아 종만도 못한것아 썩 부르는대로 바삐 오지 못할꼬! ]

         

       무당은 양반 흉내를 내는 진성을 조롱하듯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그렇게 소리쳤다.

       진성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으려는 시도였다.

         

       만약 진성이 실제 양반이고, 정신이 약했다면 저 말에 화가 끓어올라 정신이 뒤흔들렸을 것이며, 그 사이를 틈타 저 악령은 망설임 없이 빙의를 시도했으리라.

         

       하지만 진성은 양반도 아니었으며.

       정신이 나약하지도 않은 이였다.

         

       오히려 진성은 방방 뛰는 무당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고 무당은 그 모습에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를 높이며 진성을 조롱하였다. 하지만 진성이 꿈쩍도 하지 않자 모가지를 늘렸다가 줄였다가를 반복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 사람 아닌 것이 정신머리는 제대로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어렵다. 한양에서 온 한량 같은데 어디 굿이나 보고 가거라! ]

         

       악령은 이를 드러내며 진성을 보며 웃었다.

         

       그러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늘어뜨린 천을 칼이라도 되는 듯 휘둘렀으며, 몸에 걸치고 있는 오방색의 천을 이리저리 나풀나풀 움직이며 착시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방방 뛰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 영산가망에 부정가망 시위들 하소사! ]

         

       신령님안전에 조라영정은 전물도 부정이요

       날리도 영정에 들리도 부정이요

       외상문 부정에 내상문 영정이면

       은하수 곡성소리 나던 부정 머리 끝에

       백나비 부정에 시나비 영정이요

       날묵고 해묵은 부정 산에 올라 산너구리 들로 나리면 들너구리

       기다서는 너구리 땅너구리 길이 짐승 날버러지 길짐승 날버러지 살생도 부정이면

       두엄도 영정에 수많은 인간이 산 넘어 물 건너오던 오든부정

         

       [ 어허이야 어허! 히이히히히히히! 히히히히! ]

         

       무당은 방울을 미친 듯이 움직이며 굿을 하기 시작했다.

       굿과 함께하자 방울 소리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그 소리를 듣고 굿판을 구경하러 온 이들이 하나둘 접근하기 시작했다.

       뱃살을 축 늘어뜨린 아귀가 다가왔고, 기다란 대롱 같은 입을 가진 아낙네 악령이 기어 왔으며, 비쩍 마른 해골 같은 것이 걸어왔고, 몸을 뱀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천 쪼가리처럼 움직여 다가왔다.

         

       마을에 있던 온갖 귀신들이 무당 악령의 소리에 홀린 것이다.

         

       [ 히이히히히히히! ]

         

       옷자락 입자락 따라든 부정에 묻어든 영정이요

       눈으로 보던 부정 귀로 듣던 부정 입으로 옮긴 부정

       소죽어 우마부정 말죽어 대마부정 상마도 부정이요

       이웃근방 목판기장반기 익은 음식 따라들던 부정 묻어들던 부정이면

       재수위에 끓인 부정 산 이승 몸 부정 이 무엇이 래산도 부정이요

       길아래 열부정 길 위에 뜬부정 오늘은 열부정 뜬부정

       물부정 불부정 산후부정 다 젖혀 주소사

         

       [ 온갖 부정 다 모였네! 하고 부정이야, 많고 많은 부정이야. 먹다가는 배가 터져 죽고 빨아먹다가는 목구멍이 찢어 죽을 부정이야! 아고 부정이야 넘실넘실 춤을 추니 거 덩실덩실 파도를 쳐 마을을 덮치겠거니 아고 끔찍하다 끔찍해. ]

         

       무당 악령은 주위에 악귀와 악령들이 몰려들자 더 힘이 솟는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리고 굿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자신이 들고 있는 천을 다시 한번 칼처럼 휘둘러 악령을 덮쳤고, 그러자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악령이 무방비 상태로 천에 얻어맞고는 그대로 몸이 흩어져버렸다.

         

       제령(除霊)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도 아닌 같은 악령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그리고 무당은 굿을 하는 도중에 이러한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천을 휘둘러 악령을 흩어버렸고, 방울을 무기처럼 휘둘러 악귀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진성은 그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묵묵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리고 굿이 거의 끝나갈 때쯤 등에 메고 있던 지게를 풀어 황금 피라미드를 바닥에 놓았다.

         

       쿠웅.

         

       황금 피라미드는 무게가 늘기라도 한 듯 땅에 닿자마자 육중한 소리를 냈다.

         

       진성은 바닥에 놓인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손을 가져다 댔고, 그러자 단단하게 굳어있던 황금이 몽글몽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그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면을 이루고 있던 것은 한곳에 모여 비비 꼬이기 시작했고, 비비 꼬인 것은 길게 늘어지며 막대기가 되었다. 그리고 지팡이의 위쪽에 황금이 뭉치고 꼬여가며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둥근 손잡이가 달린 십자가의 모습 같았다.

         

       진성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앙크(☥) 지팡이를 쥐고는 이제는 해방되어버린 주물을 바라보았다.

         

       주물은 황금 피라미드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끔찍한 부정을 사방에 퍼뜨렸고, 황량하기 짝이 없던 땅에 독을 뿜어내는 곰팡이를 피워내었다. 뿐만이 아니라 굿에 홀려서 멍하니 서 있는 악귀의 영체를 새까맣게 물들여 썩게 했고, 악령의 형상을 삭아버리게 만들어 토막 내기 시작했다.

         

       그 부정은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는 것이라.

         

       무당 귀신이 하던 굿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물을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다.

         

       진성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하늘로 치켜올리더니.

         

       퍼어어억-!

         

       부정을 뿜어내는 주물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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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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