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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159화. 황금 나무 ( 1 )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다.

       

       드넓은 하늘에 느닷없이 생겨나, 고고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일곱 개의 별자리.

       

       이르기를 신의 눈동자.

       

       누구라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면 지상을 굽어보는 신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고, 이는 악마와 악마 숭배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비상사태였다. 신의 존재가 온 세상에 확실하게 알려진 상황.

       

       신들의 침묵과 공백을 이용해 지상을 누비던 악마들에게는 끔찍한 사태였다.

       

       《끄릅, 그래서. 끄르릅! 우리를 전부 부른 이유가, 끄릅! 뭐냐.》

       

       까맣고 거대한 진흙 덩어리라고 불러야 할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까만 오물 군체의 말 중간중간 기포 터지는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멍청한 똥 대가리 녀석. 그러니까 네가 평생 오물 덩어리 신세인 거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봐라, 생각을.》

       

       눈동자가 여러 개 달린 염소 비스무리한 짐승이 오물 덩어리에게 타박을 준다. 염소의 몸 곳곳에 박힌 눈동자들은 쉬지 않고 잘게 경련하며 끊임없이 시선을 움직였다.

       

       그 외에도 땅속 깊은 곳에 위치한 거대한 동공에는 각기 모독적이고 타락한 것들이 가득했다. 

       

       끝없는 허기짐을 품은 심장과 쉴 새 없이 턱을 딱딱거리는 거대한 메뚜기의 형상, 여섯 쌍의 뿔이 자라나고 황소의 뒷다리와 사자의 앞발, 뱀의 머리를 가진 짐승의 형상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악마들이 가득하다.

       

       만약 이 동굴을 누군가 봤다면, 여기기 바로 지옥이라고 확신했으리라.

       

       《너. 가까이. 오지 마라. 죽인다.》

       《꾸릅, 쓰레기 같은 버러지가. 꾸릅! 감히 나를?》

       

       본디 악마들은 협력, 친화, 단결과는 거리는 먼 족속들. 이렇게 많은 수의 악마가 한자리에 모인 것도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사아악.

       

       거대한 비늘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끄럽게 떠들며 다투던 악마도, 조용히 침묵하던 악마도 멀찍이서 관망하던 것들도.

       

       일시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비늘 끌리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자르륵ㅡ하고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악마들이 자리를 채워도 한참이나 공간이 남던 동공을 가득 메우는 존재감. 이윽고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까맣고 붉은색의 비늘, 피의 색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이빨에 맺힌 독액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동공의 바닥에 구멍이 생긴다.

       

        생기기는 마치 평범한 도마뱀처럼 생겼지만, 악마들은 알고 있었다.

       

       저것은 결코 도마뱀 따위가 아니었음을.

       

       단언컨대 이 자리에 모인 악마들 중에서 저 도마뱀이 가장 위험하다. 능력도 이름도 아는 이가 없는 자.

       

       하여 도마뱀이라고 부를 뿐.

       

       《오. 내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나의 부름에 이렇게나 모여주다니, 참으로 감사하군.》

       

       듣는 이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드는 낮고 묵직한 음성. 머리를 숙이고 있던 악마들이 저도 모르게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지금 크나큰 위험을 마주하고 있네. 안정적이고 즐거운 유희는 끝나고, 우리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것이 돌아왔지.》

       《…■!》

       

       도마뱀의 말에 누군가 씹어먹듯 내뱉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그들 모두가 하늘의 눈동자를 피해 지하와 음지로 숨어들었거늘.

       

       악마들의 분위기가 흉흉해진다. 이를 본 도마뱀의 눈이 싱긋 웃는 듯 보였다.

       

       《이렇게 물러나서 다시 축축하고 더러운 오물로 숨어들건가? 패배한 짐승처럼 꽁지 빠지게 도망쳐서, 진흙 사이에 몸을 파묻고 곰팡내 가득한 곳에 쳐박힐 거냔 말이야.》

       

       그럴 리가.

       

       동공에 모인 악마들의 눈동자가 분노, 혐오, 복수 따위의 것으로 이글거렸다. 좋은 반응이다.

       

       도마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속삭였다.

       

       《나에게 좋은 수가 있네, 형제들이여. 재수 없게 틀어 앉아서 고고하게 내려다보는 저 ■에게 한 방 먹일, 아니! 어쩌면 아예 ■을 죽일 수도 있는 방법이!》

       

       그런 방법이 있단 말인가? 악마들의 귀가 솔깃하며 도마뱀을 향해 좀 더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방법이네. 그래서 형제들을 불렀지. 혼자서 안된다면, 힘을 합치면 되는 일 아니겠나?》

       

       도마뱀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동공을 가득 채운다.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증폭되고 반사되며 악마들의 머릿속을 뒤흔든다.

       

       《내 말을 들어보게. 오, 물론 쉬운 방법은 아니야. 약간의 수고로움과 사소한 희생이 따르겠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내가 눈물을 머금고 앞장설 의향이 있네. 그러니 내 말을 들어보게.》

       

       신뢰감을 준다. 믿을 수 있다. 이 자의 말은 진실되고 한 치의 거짓이 없다. 악마들의 눈동자가 점차 풀리기 시작한다. 도마뱀의 눈동자에 드리운 웃음이 점차 진해진다.

       

       《그래, 형제들이여. 좀 더 가까이 오게. 와서 내 말을 들어보게. 귀를 기울이고 내 눈을 바라보는 거야. 그렇지, 좀 더 가까이.》

       

       스스스스.

       

       방울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먹잇감을 먹어 치우기 직전의, 흥분감에 가득 찬 포식자의 소리.

       

       《내가 그대들과 하나 되어 마지막 신성을 먹어 치우고, ■을 먹겠네.》

       

       쩌어억. 

       

       동공을 가득 채우는 포식의 소리. 이제 동공에 홀로 남은 도마뱀이 배부른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으음. 그대들이 앞장서서 도와준다고 하니, 내 사양하지 않겠네 형제들이여.》

       

       도마뱀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지상에 현현한 그의 위신에, 형제들의 힘이 깃드는 것이 느껴진다. 이 정도라면 그의 본신을 불러오는 것도 가능할 터.

       

       이제 마지막 열쇠의 차례다.

       

       《신성이라… 그것은 과연 무슨 맛일까.》

       

       도마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형제들의 자발적인 희생을 통해 모은 힘으로, 본신을 부른다면. 그리하여 마지막 신성을 먹어 치운다면.

       

       《■은, 무슨 맛이 날까…》

       

       스스스스ㅡ

       

       방울 흔들리는 소리가 동공을 채우다가 서서히 작아졌다.

       

       그리고 동공 안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

       

       

       

       

       

       녹음이 짙푸르고, 야생과 생명이 가득한 원시의 숲.

       

       탓. 타탓!

       

       기둥처럼 자라난 나무들의 가지와 가지 사이를 넘나드는 인영이 있었다. 널찍한 간격의 나뭇가지 사이를 익숙하게 뛰어다니는 존재.

       

       “후우. 거의 다 왔네.”

       

       어깨까지 짧게 친 단발이 금빛을 뽐낸다. 생기를 머금은 초록빛 눈동자가 반짝이며 숲을 둘러본다. 단발 사이로 길고 뾰족한 귀가 유독 존재감을 자랑했다.

       

       스읍ㅡ 숨을 크게 들이쉬며 숲의 내음을 즐긴다.

       

       젖은 흙의 냄새, 야생 동물의 냄새, 나뭇잎의 냄새… 그녀는 비로소 고향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오래 걸렸네 정말.”

       

       결투 축제를 통해 신의 존재를 확신한 그녀, 에스텔이 곧장 고향으로 돌아왔음에도 긴 시간이 걸렸다.

       

       먼 길을 달려왔음에도 짐은 단출했다.

       

       어깨에 돌려맨 활 하나, 허리춤에는 단검 여러 개, 작은 어깨 가방에는 결투 축제에서 받아온 팔찌가 있었고, 끈으로 묶어둔 나막신이 가방에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놀랍게도 에스텔은 맨발로 나뭇가지를 넘나들고 있었다.

       

       타앗!

       

       “흣차.”

       

       거친 나뭇가지가 뽀얗고 여린 발바닥을 파고들어 상처 낼 법도 하건만, 에스텔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볍게 몸을 날렸다. 자신이 떨어질 가능성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듯, 과감하고 가벼운 몸동작.

       

       “아.”

       

       허나 그녀의 짐은 그렇지 못했다. 조금 헐겁게 고정된 단검 하나가 스르륵 빠져나오더니, 허공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툭 하고 땅에 떨어진다.

       

       “…아깝게.”

       

       내려가서 주워 오면 될 것을. 에스텔은 그저 땅에 떨어진 단검을 물끄러미 내려보다 다시 몸을 날렸다. 

       

       그렇게 하염없이 나뭇가지를 박차며 날아가던 에스텔이 우뚝 멈춰 섰다. 저 멀리, 그녀의 고향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하늘을 떠받치는 거인처럼 굳건하게 솟아오른, 선명한 황금빛의 나무.

       

       어찌나 거대한지 아직 거리가 있음에도 가까이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눈에 보인다는 사실은 좋은 징조였다.

       

       “얼마 안 남았구나.”

       

       마지막 남은 신화의 유산, 종족의 어머니이자 고향.

       

       황금 나무.

       

       황금 나무가 눈에 보인다는 것은, 그것이 펼쳐둔 영역 안에 들어왔다는 의미니까.

       

       에스텔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그녀의 머릿속은 동족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로 가득했다.

       

       ‘장로님한테 먼저 말씀을 드려야겠지? 우선 신께서 돌아오셨다는 걸 말씀드리고, 황금 나무로 다른 사람들을 전부 불러서ㅡ’

       

       콰앙ㅡ!

       

       “…어?”

       

       뜨거운 열기가 에스텔의 얼굴에 와닿는다.

       

       찬란한 황금빛의 잎사귀를 자랑하는 황금 나무가,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불에 타오르고 있다.

       

       “어, 어어. 아아아아!!”

       

       그럴 리 없다. 눈에 보이는 광경이 아득하니 현실에서 괴리감마저 느껴졌다. 에스텔의 입에서 단어가 되지 못한 감정들이 튀어나오고, 나뭇가지가 부서져라 박차며 달려 나간다.

       

       콰아앙ㅡ!

       

       또 다시 들려오는 폭음. 황금 나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튼다. 검붉은 화염이 끈적하게 타오르며 황금 나무를 갉아 먹는다.

       

       미친 듯이 달렸다. 질 나쁜 환상이나 악몽 같은 현실.

       

       에스텔이 가까스로 황금 나무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지옥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다들 자세를 낮춰! 연기를 마시지 말고 낮게 이동해라!”

       “모두 도망쳐! 도망쳐!!”

       “꺄으읍. 내, 내 다리! 내 다리가아!!”

       “아, 아아아!! 황금, 황금 나무가, 황금 나무가…!”

       

       다른 이들을 대피시키는 자, 다리 한쪽이 없어진 자, 불타는 황금 나무를 보며 오열하는 자.

       

       나무를 연결하여 만든 공터에는 이미 부상자가 한가득이다.

       

       끔찍했다.

       

       부모의 시체를 부여잡고 오열하는 아이와 불구덩이를 향해 소리 지르며 뛰어가는 청년,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는 여인.

       

       에스텔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에스텔, 에스텔! 무사했구나!”

       “…장로님?”

       “습격이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더러운 악마 새끼가 쳐들어왔어!”

       

       습격.

       

       멈춰있던 에스텔의 정신을 채찍질하는 단어. 멍하니 풀려있던 에스텔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손은 유일한 무장인 단검으로, 눈은 사방을 경계한다.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적은 얼마나 되죠? 어디서, 어떻게?”

       “…적은 저 불꽃, 한 놈이다.”

       “네?”

       

       장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쩌적ㅡ 쿵!

       

       불에 까만 숯이 된 황금 나무의 일부분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에스텔이 떨리는 눈으로 황금 나무를 올려다봤다.

       

       하늘을 가득 채운 나뭇잎과 가지, 기둥. 그 모든 것들이 검붉게 타올라, 마치 온 세상이 타오르는 듯하다.

       

       검붉은 불꽃이 황금 나무를 타고 오르며 연신 불을 뱉어낸다.

       저 불꽃이, 악마라고?

       

       “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본신으로 쳐들어왔어. 우리로써는…막을 수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ㅡ!”

       “에스텔!”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려는 에스텔을 장로가 붙잡았다. 장로의 눈에는 분노, 자괴감, 슬픔 등의 것들이 가득했다. 꽉 쥔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이미 늦었다. 황금 나무는… 우리를 위해 희생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도대체 왜, 왜!”

       “…에스텔, 가자. 여길 벗어나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복수를 하든 포기를 하든 할 수 있는 거야.”

       

       장로가 당기는 손을 따라 에스텔이 힘없이 끌려갔다. 

       

       도대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자신은 그저 신의 귀환을 동족들에게 알리고ㅡ

       

       ‘…신!’

       

       장로의 손을 뿌리친 에스텔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기도한다.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실 신에게 간절히 자비를 기도한다.

       

       “에스텔? 에스텔!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 어서 빨리ㅡ”

       

       족장의 재촉은 한 귀로 흘린다. 에스텔은 간절하게 기도했다. 긴 침묵을 끝내고 다시 지상에 임하신 그 분의 기적이, 그들에게도 닿기를. 부디 이 하찮은 자의 기도가 닿기를.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쐐애애액ㅡ!

       

       끝내 그녀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았음일까.

       

       하늘을 가로지르는, 마치 거대한 화살이 쏘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ㅡ

       

       쩌저적!

       

       황금 나무를 갉아 먹던 불의 일부가 커다랗게 얼어붙었다. 나무 아래에서 바삐 움직이던 이들도 덩달아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이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더러운 악취를 풀풀 풍기는구나.》

       

       고고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짙푸른 얼음을 두르고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최후의 서리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찮은 버러지 녀석.》

       

       그리하여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의 왕이 강림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참기름처럼 고소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후원!!! 감사합니다!!!

    ??? : 옆 집에 불이 났다고 해서 구경갔죠. 근데 보니까 우리 집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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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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