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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쀼우우! 벌써 다 대써?”

       

       아르는 국수 먹을 준비가 다 됐다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말들에게 직접 건초를 먹여 주던 아르는 어쩔 수 없이 건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안뇽, 아르두 밥 머그러 가야 해서 가 보께! 건초 마시께 머거!”

       

       아르는 아공간에서 건초를 더 꺼내서 풍성하게 말들의 식탁을 차려 주고 흐뭇한 미소를 지은 뒤, 젤리로 말을 토닥여 주었다. 

       

       “히힝.”

       

       그러자 말들도 아르에게 밥 맛있게 먹으라는 듯 히힝 소리를 냈다.

       

       “지굼 나한테 인사 해 준 고야?”

       

       아르는 감동을 받은 듯, 다가가서 말을 꼬옥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내 입에도 저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진짜 귀여워 죽겠네.’

       

       귀여운 아르가 동물들과 순수한 교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힐링 되는 일이었다. 

       

       ‘말들도 금세 아르를 잘 따라 주니 다행이네.’

       

       그야 일반 동물들이 드래곤을 따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경계심을 아예 풀고 친근하게 대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역시 아르한테는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순수함이 있다니까.’

       

       아까 블랙 울프들한테 있는 힘껏 포효를 한 후폭풍으로 말들이 잠시 무서워하긴 했지만, 그거야 동물적인 본능이 발동한 거니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반응이었다. 

       

       맘만 먹으면 자신을 손가락질 하나로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온몸의 피부가 떨릴 정도의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는데 안 쫄면 그게 동물인가. 

       

       ‘나 같아도 쫄겠다.’

       

       만약 그런 동물이 있다면 아마 조상 선에서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진즉 멸종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쫄고도—실비아 씨가 진정시켜 주긴 했지만— 금방 아르에게 악의가 전혀 없다는 걸 알고 저렇게 친해지다니.

       

       “히힝…!”

       “아르야, 너무 꽉 안았어.”

       “미, 미안!”

       “히히힝.”

       

       실비아의 말에 아르가 바로 사과하자 말은 괜찮다는 듯 아르의 볼을 핥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아르를 불렀다.

       

       “아르야, 국수 다 식었다!”

       “쀼욱?! 벌써 식어써? 금방 가께!”

       

       아르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왔다. 

       

       역시 식사 준비 됐다고 했을 때까지도 딴짓 하다가 음식 다 식었다고 외치면 헐레벌떡 뛰어 오는 건 어느 나라 아들딸들이나 똑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두두두 뛰어온 아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이미 다 식었지. 메밀국수는 원래 시원하게 먹는 거니까.”

       “쀼…! 속아따!”

       

       아르가 손을 들어 관자놀이에 젤리를 댔다. 

       나와 실비아는 그 모습에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됐고, 앉으렴. 먹자.”

       

       간이 식탁에는 그릇 여섯 개가 올려져 있었다. 

       

       각자의 앞에 두 개씩 놓인 그릇에는, 각각 국수 면과 시원한 살얼음이 떠 있는 육수가 담겨 있었다. 

       

       “잘 목겠씁니당!”

       

       아르는 배가 고팠는지, 어서 젓가락을 들었다. 

       

       “면이랑 국물이랑 따로 있넹?”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면을 전부 국물에 쏟아 부으려 했다. 

       

       “잠깐!”

       

       내가 다급히 외치자 실비아가 재빨리 아르를 막아 주었다.

       

       “휴우. 고마워요, 실비아 씨.” 

       “쀼우?”

       

       왜 자신의 행복한 메밀 국수 흡입 타임을 막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아르가 아련한 눈빛을 했다.

       

       “그거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면을 다 국물에 푹 넣어서 먹는 거였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줬겠지.”

       “구건 구래.”

       

       아르도 이상하다곤 생각했지만 식욕이 모든 의문을 잠시 차단해 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메밀국수라고 해서 다 이렇게 먹는 건 아니지만, 이번엔 일부러 이렇게 준비를 했거든. 자, 잘 봐. 아르야.”

       

       나는 젓가락으로 면을 적당히 집어 올렸다. 

       

       그리고 쭉 집어 올린 면을 육수 그릇에 쏙 담가서 휘휘 저었다. 

       

       “이렇게 살짝 국물이 배어들게 한 다음에 먹으면….”

       

       후룹.

       

       “이야. 이 맛이지.”

       

       시원하면서도 진한 육수를 머금은 국수를 먹은 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육수가 아주 기가 막히는구만.’

       

       만약 평범한 국수처럼 처음부터 면을 넣고 끓였다면, 이렇게 진한 육수는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정도 간으로 국물 만들어서 면이랑 끓여 버리면 짜서 못 먹지.’

       

       하지만 면을 따로 삶고 육수를 따로 끓이게 되면, 이렇게 농축된 육수를 만들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일반 국물 국수와는 다른 아주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집구석에서 소바 전문점 같은 느낌을 내려면 이만 한 게 없거든.’

       

       게다가 육수는 대용량으로 한 번 끓여 두고 나면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두고 두고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말이야.’

       

       간장, 설탕, 요리용으로 쓸 증류주 조금, 그리고 가쓰오부시라고 흔히 부르는 가다랑어포만 있으면 대략적인 모양새는 나올 정도니 조리법도 어렵지 않다. 

       

       물론 거기에 다시마나 멸치액젓, 생강이 들어가 주면 완전체긴 하지만, 없어도 얼추 맛은 나온다.

       

       여튼 그렇게 재료만 있으면 끓여 놓고 보관해 두었다가 먹을 때만 딱 꺼내서 육수:물의 비율을 1:2에서 1:3 정도로 간 보면서 맞추고 양파와 대파를 썰어 올리면 국물 준비는 끝. 

       

       ‘원래는 냉장고에서 식혀 가지고 얼음 동동 띄워 주는 게 정석이지만….’

       

       여기는 마법이라는 아주 편한 수단이 존재하는 세계다.

       

       프로스트(Frost) 마법을 육수에 대고 아주 약하게 쓰면서 주걱으로 완전히 얼어 버리지 않게 살살 저어 주면, 마치 슬러시처럼 고운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시원한 육수가 완성된다.

       

       “우아, 그러케 먹는 거여써!”

       

       아르도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는 얼른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육수에 넣고 휘휘 저었다. 

       

       “냠.”

       

       그리고 후룹 면을 빨아들인 아르의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쀼! 마, 마시써!”

       

       아르는 곧바로 한 젓가락을 더 집어 먹고는 행복이 담긴 쀼 소리를 냈다. 

       

       “몬가 국물이 완젼 찐해! 짭짤하면서두, 모라구 해야 하지? 깊은 맛이 이써!”

       

       실비아도 면을 국물에 푹 담갔다가 먹어 보고는 감탄했다. 

       

       “처음엔 저도 왜 굳이 이렇게 나눠 놓았나 싶었는데, 먹어 보니 확실히 알겠네요. 국물도 국물이고, 면을 따로 삶아 식혀서 그런지 전혀 불지 않은 일정한 상태로 계속 먹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확실한 장점이긴 하죠.”

       

       이미 국물과 같이 끓인 국수는 국물이 다 배어 들어간 상태인 데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불기 마련.

       

       하지만 이렇게 따로 삶아서 식혀 놓은 면은 순수한 수분기만을 적당히 머금고 있게 되고, 그 상태에서 차갑게 식혀 놓으면 메밀면 특유의 식감이 특히 잘 보존된다. 

       

       그리고 그 보존된 면을 한 젓가락씩 집어서 진한 육수에 담가 먹으면… 어우. 나도 일단 한 입 더 먹고.

       

       “후룹. 크으. 시원짭짤하니 좋네.”

       

       아르가 말했던 ‘깊은 맛’의 대부분은 사실 간장도, 액젓도, 생강도 아닌 가다랑어포에서 나온다. 

       

       ‘진짜 이게 치트키라니까.’

       

       짭짤한 국물 만들 때 이거 하나 넣고 안 넣고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냥 간장 베이스만 가지고는 절대 이 맛이 안 나지.’

       

       출발하기 전날 저녁, 로멜드에서 마지막 쇼핑을 할 때 우연히 발견한 가다랑어포를 사 놓길 정말 잘했다. 

       

       “그런데 이거 국물은 언제 끓여 놓으신 거예요? 미리 해 놓으시지 않았으면 이렇게 빨리 됐을 리가 없는데.”

       “어제 실비아 씨가 저녁 수련 나갔을 때 끓여 가지고 아르한테 아공간에 보관해 달라고 해 놨었죠.”

       

       그 말에 정신없이 국수를 흡입하던 아르가 고개를 들었다. 

       

       “아, 마쟈! 그때 그랬어써. 갑짜기 레온이 웬 까만 국물을 넣어 달라구 해서 모지 싶었는데 이거였구낭!”

       

       아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구러면 앞으로두 남은 국물로 언제든 머글 수 있는 고네?”

       “그렇지. 국수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렴. 바로 해 줄 테니까.”

       “구럼 지금 해 조!”

       

       아르는 어느새 비어 버린 면 그릇을 내밀었다. 

       

       “…빠르네, 아르.”

       

       역시 덩치가 커진 만큼 먹성도 좋아진 아르였다. 

       

       ***

       

       국수를 맛있게 먹은 우리는 후식으로 로빈슨 아저씨가 준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먹었다. 

       

       옐로베리 맛, 멜론 맛, 망고 맛, 딸기 맛, 초코 맛, 바닐라 맛, 초코칩이 박힌 초코바닐라 맛, 딸기바나나와 초코바나나 맛 등 맛이 보장된 아이스크림도 있었고.

       

       아저씨가 현재 개발 중이라던 신메뉴 중 피넛버터바닐라 맛, 쿠키크림치즈 맛, 딸기크림치즈 맛, 그리고….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민트초코 맛도 있었다. 

       

       ‘뭐, 민트초코는 호불호 문제니까.’

       

       다른 사람이 민트초코를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딱히 상관은 없다. 

       

       그냥 아이스크림 담을 때 다른 맛이랑 같이 담지만 않으면 된다. 

       

       “자, 원하는 맛 네 개 고르면 내가 그릇에다가 나눠서 퍼 줄게.”

       “우움, 그러면 아르는…!”

       

       퍼도 퍼도 줄지 않는 커다란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은 우리는, 진짜 진짜 마지막 후식으로 마카롱, 아니 크림꾸덕쿠키샌드를 먹었다. 

       

       원래는 이드밀라의 아공간에 들어가 있던 샌드였지만, 이드밀라가 레어에서 잠들기 전에 아르가 좋아하는 샌드라고 전부 아르의 아공간으로 옮겨 주었었다. 

       

       “냠.”

       

       아르는 크림꾸덕쿠키샌드를 먹으면서 이드밀라 생각이 나는지 조금 우수에 찬 눈빛을 했다. 

       

       나와 실비아도 이드밀라와 보냈던 짧다면 짧은 시간을 떠올리면서 크림꾸덕쿠키샌드를 먹었다. 

       

       “레온, 아르는 이짜나. 꼭 이모처럼 엄청엄청 강한 용이 댈 꼬야.”

       

       아르는 마왕과의 전투를 떠올린 듯,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모의 희생이 헛대지 안토록 마니 강해져서 앞으로는 아르가 다 지켜 줄 고야.”

       

       나는 그런 아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르야, 그렇게 말하면 이드밀라 님이 돌아가신 것 같잖아. 이드밀라 님 아직 멀쩡하셔.”

       “앗, 구런가?”

       

       ***

       

       이드밀라의 레어.

       

       “하암….”

       

       정순한 마나를 흡수하며 꿀잠을 자고 있던 이드밀라가 잠깐 깨어 하품을 했다. 

       

       “좋구만.”

       

       대륙 남부 이곳저곳에서 설쳐 대던 헤카르테교 녀석들을 전부 족친 뒤여서 그런지 레어 근처의 마나 흐름이 개선되었고, 그에 따라 이드밀라도 기분 좋게 회복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아르는 잘 지내고 있겠지.”

       

       이드밀라는 귀여운 아르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리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레온 녀석, 그래도 아르를 생각하는 마음은 지극정성이니 잘 키우겠지. 잘 먹고 잘 자라렴, 아르야.”

       

       이드밀라는 일어난 김에 아공간에 조금 남겨 두었던 크림꾸덕쿠키뚱샌드를 꺼내서 먹었다. 

       

       “음. 달달하니 맛있구만.”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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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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