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59

       

        

        

        

        

        

        

        

        아시아 예선전 사전 브리핑.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홀 대관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프로게이머들에게 있어서 친목의 장이었다. KSM을 통해 정해진 스무 명, 그리고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이들을 채울 40명에 각 구단의 코칭 스태프들까지.

        

        거의 8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앞날을 어떻게 풀어갈지를 논의하고, 1년 동안 꽁꽁 숨겨왔던 각자의 비법들을 약간이나마 공유하며, 구단 소속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표로서 타국을 어떻게 꺾을지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게다가 그것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들은 거의 한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10개의 구단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커리큘럼을 동시에 학습하는 한편, 같은 정보를 배분받고, 훈련받는다.

        

        

        비록 본선으로 올라가는 인원들은 네 명 뿐이었지만, 대회의 규모가 국내에서 아시아로 올라감에 따라 구단 간의 힘싸움에서 나라 간의 자존심 대결로 변질됨에 따라, 많은 이들이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대관식은 좀 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이야, 드디어 유진 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겠구만.”

        

       “내기 고? 나는 인간흉기처럼 생겼을 것 같다에 3만원 건다.”

        

       “그래? 받고 몸에 칼자국이나 수술 자국 있을 거다에 5만원.”

        

       “이거 완전 정신나간 놈들 아냐, 아주.”

        

        

        

        유진이 온다.

        

        고작 한 달만에 눈 앞에 놓여있는 모든 장애물들 – 다른 단어로 표현하자면 프로게이머라든가, 대회라든가, 아무튼 뭐 그런 것들 – 을 전부 치워버리고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정상에 선 유저.

        

        이번 사전 브리핑의 수많은 의도들 중 하나가 각 선수들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상현실에서 아무리 만나봐야 현실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큼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들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토요일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 기대는 그들만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는데, 특히 40명의 선발 인원들 중 방송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요컨대, 이런 것이었다.

        

        

        

       <유진꼬리허물절도죄로잡혀온다이스 님이 5,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십자형 토요일에 유진눈나보면 어케생겼는지 썰좀풀어주세요젭알

        

       “유진꼬리허물절도죄로잡혀온다이스…야! 닉네임이 왜 이래! 아무튼 썰은…토요일에 유진 씨에게 허락 받아온 다음 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작년에 만난 애들이랑은 다르게 그 분은 이번에 처음 오는 거니까.”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솔직히 궁금하긴 하잖어~

       -그러고보니 크로스라인 얘는 다이스 어케 생겼는지도 알겠네? 알려주십쇼 제발!!!!!!!!!!!!!

       -안알려주는 이유가 다 있겠지 ㅋㅋㅋㅋㅋㅋㅋ

       -리빙포인트)다이스의 모습이 궁금하면 프로게이머가 되서 KSM 상위 40명 안에 들면 된다

        

        

        

        생애 처음으로 유진의 실물을 보게 될 예정인 프로게이머들을 부러워하는 시청자들은 말 그대로 차고 넘쳤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고작 한 달 동안 수없이 많은 질문이 들어왔지만, 유진은 현실에 관련된 질문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의도적으로 무시해왔기 때문이었다. 단지 Q&A 시간에 밝혀진 ‘발현자일 것이다’란 가능성이 유일할 뿐.

        

        그마저도 확실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발현자 사칭죄로 잡혀가지 않고, 멀쩡하게 방송하고 경기에 나가 1등을 거머쥐는 행동 자체가 당위성을 부여한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유진이 보여준 행보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것들 말고는 확실한 것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각도 여러 개가 모이면 퍼즐의 윤곽이 잡히듯, 한 달 동안 보여준 모습들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대략적으로나마 추측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말투는 중성적.

        

        이름은 유진.

        

        하드코어 유저임에도 저 정도 피지컬이란 점을 미루어보아 최소 3대 800 이상에, 근지구력은 그 이상으로 뛰어나다. 게다가 총기 숙련도는 일반인이라면 절대 불가능할 수준.

        

        꼬리를 자유롭게 쓰는 것으로 보아, 최소 E2 등급의 발현자거나 서드테일 기술을 인게임에서 시험 중인 유저. 그러나 아바타의 두툼한 꼬리와는 상반되는 섬세한 움직임을 보여주기에 후자의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거대한 전장을 손쉽게 읽어내는 숙련도 및 9-Line 브리핑 중 – 심지어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로 – 나눴던 대화를 보아 최소 JTAC, 즉 합동최종공격통제관 자격이 있는 것도 확실했다.

        

        이를 종합하자면,

        

        

        

       -미국에서 살면서 공군 공정통제사, 즉 최소 티어 2 이상, 혹은 24th 특수전술대대에서 근무한 한국계 미국인이 귀화해 죄다 때려잡고 있다!

        

        

        

        라는 괴상망측한 결론이 나온다.

        

        

        

       ‘이거 양학 아닌가…?’

        

        

        

        물론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다크 존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E스포츠 계열로 흘러들어오는 건 일상다반사의 일이었다.

        

        당장 게임 정보 종합 및 정보 전달이 일인 유어스페이스 채널 운영자 언리얼 역시도 특전사 전역자고, 이번 KSM에서 우승하여 국가대표 명단에 든 이들 중에서도 특전사, UDT, 그리고 707 인원들도 한두 명씩 찾아볼 수 있는 판에.

        

        한편 시선을 해외로 돌려보면, 자위대 특수작전군에서 14년간 근무하다 최근 다크 존을 시작하여 일본 굴지의 1위로 올라선 케이스Keith 같은 경우도 있었고, 미국은…그냥 말을 말자.

        

        거긴 스크림에 전직 델타 요원들까지 간혹 굴러다니는 걸 볼 수 있는 인외마경 그 자체인 곳이었으니.

        

        

        게다가 애초에 하나하나 걸고 넘어지자면 유진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끝도 없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의 행보와는 별개로 워낙 신비주의인 부분이 많았기에 당연한 일이었기도 하고.

        

        한편 프로게이머이자 동시에 스트리머인 이들은 유진의 정체 좀 알려달라는 시청자들의 원성에 그저 네네 하고 영혼없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당장 다이스에 대한 정보조차 공개할 수 없는 판에, 유진이라고 될까.

        

        허나 어차피 가봐야 알았다.

        

        그렇기에 다이스를 포함한 79명의 인원들은 그저 간절히 토요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래서 그 100명에 가까운 인원들의 궁금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 이르되,

        

        

        

       “…이런 건 왜 보내주는 거야?”

        

        

        

        아직 9월도 안 됐는데 집에 도착해버린, 온 세상의 한기를 다 막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무지막지한 두께를 자랑하는 각양각색의 패딩.

        

        파충류 영양제와 전용 약품.

        

        고양이 귀 모양 헤드셋. 심지어 내 귀 끄트머리가 너무 뾰족한 탓에 제대로 착용할 수도 없었다.

        

        서바이벌 샵에서 보내준 진또배기 택티컬 해머와 도끼.

        

        왁스? 광택용? 이걸 어디다 바르라고. 꼬리에 발라서 반짝반짝하게 관리하란 뜻인가?

        

        마지막으로는 리얼 아나콘다 가죽으로 만든 지갑까지.

        

        

        

       “하이구.”

        

        

        

        시청자들에게 랜덤으로 갖다 던져야만 할 물품들이 차고 넘쳤다.

        

        유진은 그렇게 오만가지 쓸모없는 택배들에 의해 파묻히고 있었다.

        

        흔한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의 시간이 흘러, 토요일.

        

        

        

       “으아암, 한숨도 못 잤어…망했다아….”

        

        

        

        다이스.

        

        다르게 말하면 잠을 설친 자.

        

        본래라면 오늘을 대비해서라도 푹 잤어야만 하는 그녀는, 안타깝게도 전날까지 유진과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다 기어코 잠잘 타이밍을 놓쳐버렸으며, 그것도 모자라 기대감으로 인해 적잖아 한 시간 이상을 뒤척였다.

        

        그리하여 최종 취침 시간은 오전 3시 경, 그리고 기상 시간은 오전 9시. 대여섯 시간 정도의 잠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다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양이었다. 즉 당연히 자연스레 아침이 피곤할 수밖에 없단 뜻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평소보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다. 어디 적당한 곳에 가는 것도 아니고, 모두의 앞에 나서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어으, 죽겠다….”

        

        

        

        평소보다 목욕은 빡세게.

        

        욕조에 뜨끈한 물을 받아놓고 샴푸 먼저, 그 후 해당 과정이 끝나면 트리트먼트를 꼼꼼히 바른다. 15분 동안 기다려야 했기에 잠시 몸에 긴장을 풀고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을까, 갑자기 정신이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15분이 1초로 압축된다.

        

        다르게 말하면, 잤단 소리였다.

        

        알람이 세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삐삐삐삐삑!

        

       “우왓, 어으으!”

        

        

        

        첨벙!

        

        시원한 물장구 소리. 그래도 살짝 잤기에 정신이 좀 개운해졌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물로 트리트먼트를 씻어낸 다음 마찬가지로 컨디셔너까지. 그 후 10분 가량 또다시 취침이 이어진 뒤 씻어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다음으로는 평소 사용하던 바디워시 대신 잘 쓰지도 않던 샤워 오일을 샤워볼에 묻히고는 몸의 노폐물을 다 닦아낸 뒤, 자잘한 볼일까지 끝마치고는 드라이 룸으로 향한다.

        

        오일 에센스를 머리에 좀 바른 뒤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헤어스타일링 기능을 발동하자마자 섬세하게 조정된 바람이 볼륨을 잡음과 동시에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칸막이 안에서 기계팔이 나와 머리카락 섹션도 나누고 이쪽저쪽 잡고 들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드라이 룸 없었으면 샤워는커녕 꾸밀 엄두도 못 냈을 거다, 진짜. 문명의 진보를 통한 편리성이 사람을 글러먹게 만드는 법이다.

        

        

        아무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와, 괜찮네.”

        

        

        

        볼륨이 빵빵하게 들어간 금발이 나를 반겼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은 화장 차례. 세안은 이미 끝났으니 기초화장품 차례. 화장수로 건조한 피부만 좀 적셔준 후 마스크팩 10분. 그동안 오늘의 코디를 결정한다. 그 후엔 당연히 베이스 메이크업.

        

        본래라면 프라이머니 컨실러니 파운데이션이니 전부 해야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다간 숨 쉬기도 힘들기에 선 프라이머를 골고루 발라준다. 그 후 쉐이딩, 하이라이팅 정도만 해준 뒤 눈화장.

        

        아이 프라이머를 바른 후 섀도우니 뷰러니 아이라이너니 마스카라니 열심히 해준다. 물론 이 모든 건 인터넷에서 배웠다. 인터넷 없었으면 아마 화장은커녕 그냥 적당히 기초적 피부관리만 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아무튼 마지막은 입술이다. 몇 가지 색으로 적당히 그라데이션 느낌만 넣은 뒤, 마무리로 립글로즈로 광택만 조금 넣으면 끝.

        

        근데 지금이 몇 시지?

        

        

        

       “어으, 벌써 11시야? 세상에.”

        

        

        

        목욕하고 화장하니 벌써 11시다.

        

        하지만 까놓고 말하자면 코디는 가장 하기 쉬웠다. 애초에 9월이기도 하고. 게다가 오늘 온도는 이례적으로 선선한 22도 정도였기 때문에, 뭘 입고 나가든 크게 문제는 없었다.

        

        언더웨어를 갖춰입은 뒤 옅은 흰색의 와이셔츠를 덧입고, 아래는 평범한 데님. 거기에 얇은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 정도만 걸친다. 양말은 좀 답답했기에 적당한 샌들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물받은 브랜드 숄더백까지.

        

        뭐라고 해야 하나, 비주얼은 괜찮았다. 단지 숄더백 안에는…화장품은 무슨, 그냥 카드 지갑이랑 일반 지갑 정도만 있다. 휴대폰은 트렌치 코트 주머니에 넣어놨고.

        

        

        

       “너무 꾸미고 가는 것처럼 보이려나, 으음….”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 만나러 가는 건데, 사람 구실은 해야지.

        

        아무튼 바깥으로 나섰다. 날씨는 아까 말했듯 그리 덥지는 않았다. 구단 숙소에서 스위스 그랜드 호텔까지의 거리는 버스를 탄다면 대략 40분 정도. 오랜만에 플렉스라도 할 겸 택시를 잡아탔다.

        

        현재 시간은 11시 20분. 목적지를 말함과 동시에 결제를 끝내고는 앞좌석과 뒷좌석의 칸막이를 차단, 음소거를 시행. 그 후 아까까지 이어가던 유진 씨와의 통화를 재차 시작했다.

        

        

        

       “다 와가요? 전 이제 택시 탔는데. 오늘 엄청 열심히 꾸며서 그런지 시간이 엄청 많이 들었네요. 유진 씨가 저 보면 놀라 자빠질걸요.”

        

       “어련하시겠어요. 저도 다 와가네요. 근데 12시 정각보다 한 5분 전에 도착할 것 같아요. 먼저 컨벤션 홀에 들어가계세요.”

        

       “와, 저도 엄청 늦은 줄 알았더니 여기 더 늦잠꾸러기가 있었네요. 레전드다. 도대체 어제 몇 시에 주무신 거예요? 남자는 기상한 후 씻고, 향수 조금 뿌린 다음 옷 입고선 나오면 되지 않나?”

        

       “글쎄요.”

        

        

        

        글쎄…요?

        

        무슨 뜻이지? 물론 그렇지 않은 남자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가보다 했다. 더군다나 유진 씨는 바른 생활을 하는 만큼 아침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나올 수도 있겠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물론 요상꾸리한 그런 게 아니라, 저 사람이 날 보면 어떤 반응을 할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유진 씨의 실물이 어떨지도 너무 궁금했다.

        

        어제 밤잠까지 설치게 만들었던 이 양반의 실물은…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후하, 후하후하….”

        

       “왜 숨을 그렇게 쉬고 있어요?”

        

       “이게 다 유진 씨 때문이거든요.”

        

        

        

        그렇게 떠들다보니 어느샌가 호텔의 앞.

        

        바로 옆이 차도였기에 문을 후딱 열고 내렸다. 쌩하니 사라지는 택시를 뒤로 하고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건물의 내부로 들어간다. 시간은 11시 45분. 유진 씨가 도착하기까지 대략 10분 정도 남은 셈이다.

        

        그러나 넋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는 얼굴들이 슬슬 보였기 때문이었다.

        

        

        

       “와, 세상에. 이게 누구야. 혹시 다이스야? 진짜로?”

        

       “하이구, 작년에 비해서 무지막지하게 꾸미고 오셨네요. 누가 보면 귀빈이라도 만나러 온 줄 알겠어.”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께선 작년에 내 옆자리에 앉았을 때 나한테 한 마디도 말 못 붙였죠?”

        

        

        

        반응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갈렸다.

        

        작년 KSM 선발을 통해 다이스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이들은 그나마 덜 긴장한 척과 함께 공통적인 화두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작년에 이 자리에 없었기에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신인들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뜬 채, 같이 온 멘토에게 다이스가 여자였냐면서 어버버하는 와중이었다. 말도 못 붙이는 경우는 태반이었고.

        

        그나마 그 가운데서 본래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들은 작년 다이스와 함께 본선에 진출했던 TK1의 서밋과 Xi의 잉크 뿐. 그래서인지 그 셋의 사이는 평범하다기보단 약간은 악우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웠다.

        

        

        한편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SSM 뿐만 아닌 타 구단의 코칭 스태프들까지 함께 찾아왔기 때문에, 다이스는 뒤늦게 이들과 안면을 트며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10분 중 9분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분위기가 조용해지며, 누군가가 다이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유진 씨는 왜 안 오신다냐.”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아!”

        

        

        

        삑!

        

        그와 동시에 울리는 전화기.

        

        다이스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잽싸게 물었다.

        

        

        

       “아, 유진 씨! 곧 있으면 저희 들어가야 해요. 어디세요?”

        

       “거의 다 왔어요. 아마 30초 안에 도착할 것 같아요.”

        

       “아유, 드디어.” 

        

        

        

        그러더니 별 생각 없이 이어지는 말.

        

        

        

       “그나저나 이제 1분 정도 있으면 현실에서 만날 텐데, 언제까지 아바타 통신으로 하실 생각이예요? 이제 슬슬 본래 목소리 들려주실 때도 됐잖아요?”

        

       “아, 본래 목소리라. 그것도 맞긴 하네요. 그럴 때가 됐긴 하죠. 근데…음, 뭐라고 해야 하나.”

        

        

        

        그 순간 이어지는 말.

        

        

        

       “여태까지 듣고 있던 게 제 목소리예요.”

        

       “…네?”

        

       “아, 저기 보이네요. 끊을게요.”

        

        

        

        으에?

        

        그런 멍청한 신음소리와 함께 다이스의 시선이 저 너머 정면으로 돌아간다. 온통 대리석 투성이인 바닥. 천장의 백색 조명이 빛나며 사방에서 반사되고 있는 사이, 그 가운데에서 한 명의 인영이 공간을 가르며 등장했다.

        

        

        허리 언저리까지 늘어진 검은 생머리.

        

        그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뾰족한 귀.

        

        주먹만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작은 머리와 백옥 같은 피부. 그 위로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이목구비. 서늘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눈매 아래의 벽안. 그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일리 룩.

        

        그러나 그 사이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거대한 꼬리는….

        

        

        

       “세상에.”

        

        

        

        저게 왜 진짜야.

        

        도대체 누가 중얼거렸는지도 모를 외마디 단말마와 함께, 다이스는 입을 틀어막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가 조삼모사를 한 이유를 깨달으셨길 바라겠읍니다..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