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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바이크를 타고 오로솔 아카데미까지, 약 1시간.

     “다음번에도 그러면 제가 뒤에서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을 겁니다.”

     “어머, 한 손으로 잡으려고 해도 안 잡힐 것 같은데요?”

     “뒤에서 꽉 잡고 사랑한다고 계속 속삭일 겁니다만.”

     “어…. 그러면 다음에도 장난을 쳐야 하나…?”

     

     아스타시아가 손장난을 치는 바람에 좀처럼 속도를 즐기기는 어려웠지만, 어쨌든 우리는 오로솔 아카데미까지 바이크를 타고 돌아왔다.

     니드호그?

     하늘에서 나와 아스타시아를 내려다보며, 바이크와 속력 경쟁을 즐기며 따라왔다.

     

     하늘을 나는 새와 땅을 달리는 마도차량은 기본적으로 생물과 무생물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런 무생물이 자신만큼 속도를 낸다는 것에 흥미가 동한 모양.

     “들어가죠. 시간이 늦었습니다.”

     “다음에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나는 거야 항상 만나는 거지만, 앞으로 며칠 동안은 바빠질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는 방학을 맞이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다음 학기를 준비해야죠.”

     “으음….”

     “방학 동안 혹시 제국으로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아카데미 제국 유학생들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수업도 없는 곳에서 두 달가량을 기숙사에 처박혀 지내느냐.

     아니면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제국으로 잠시 돌아가서 고향에서 지내다가 오느냐.

     물론 전부 제국 그림자라 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하는 일들은 첩보원으로서 정보를 직접 교류하는 정도겠지만, 겉으로는 학생의 본분을 다할 것이다.

     “교통이 발달한다는 게 참 이럴 때는 문제가 되네요. 먼 거리를 빨리 이동할 수 있게 된 바람에, 핑계가 통하지 않으니까.”

     “핑계?”

     “방학 동안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제도까지 오가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다음 학기 시작에 제대로 맞춰서 돌아올 수 없다는 핑계요!”

     “그건 확실히, 아쉽군요.”

     기존 마차의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방학이 시작함과 동시에 출발해서 제도까지 가는데 한 달.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데 한 달.

     사실상 제도에 도착하고 한 2~3일 정도 머무르다가 다시 마차에 올라야 2학기 시작에 맞출 수 있기에, 방학이랍시고 제국으로 가는 건 시간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마차 여행을 두 달 동안 하며 시간을 버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머. 정말요?”

     “예. 대신 제가 함께 마차에 타야 하겠지만.”

     “…그건 좀 끌릴지도?”

     객관적으로 보면 시간을 버리는 행위가 되겠지만, 그러한 시간조차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시간을 즐기는 일이 될 수도 있는 법.

     “으음, 하지만 별로 내키지는 않네요. 그렇게 하면 제가 너무 당신의 시간을 많이 빼앗아 버리니까.”

     “공주님과의 시간이라면 빼앗기는 게 아니라, 기꺼이 즐기는 거죠.”

     “라고 말은 하지만, 나중에 제게 준 시간만큼 따로 벌충하려고 잠을 줄일 거 아녜요?”

     “…….”

     아스타시아의 말에 나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일찍 자야 몸이 자란다고 한 건 누구?”

     “저였죠.”

     “지금 다 자란 거라고 시위를 하는 건가요? 흐음…?”

     “뭐, 어느정도 육체는 완성되었다는 점에서는 다 자랐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이렇게까지 말하면 조금 부끄럽기는 한데….”

     아스타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내 머리를 향해 가볍게 주먹을 콩 두드렸다.

     “일찍 자세요! 저는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지만, 더 컸으면 좋겠으니까.”

     “그건….”

     “헤헷, 근육 이야기인 거 아시죠?”

     “근육은 근육이죠.”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까지 저를 배려해 주시겠다면, 그 배려를 받지 않는 게 죄. 알겠습니다.”

     “네, 저도 일찍 잘게요. 으음, 그냥 떠나기는 애매하니까.”

     아스타시아가 잠시 내 목을 붙잡아 당기더니-

     “…힛.”

     입술에 아주 짧게, 따스한 온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건 지브롤터의 맹세에 위배되는 행위인가요?”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입으로 하는 건 문제 없다고 하더군요.”

     “아앗!”

     침착하게 답했으나, 아스타시아는 어딘가 억울한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그런 거였다면 좀 더 제대로 할 걸!”

     “제대로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어, 으음….”

     아스타시아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눈치를 보더니, 곧 뒤로 물러났다.

     “여, 연습해 올게요!”

     “연습? 잠깐. 누구랑?”

     “아니, 그! 실제 사람이랑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손목을 잡자, 아스타시아는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혼자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겠다는 거죠!”

     “연습도 실전처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주님. 실전에서 바로 연습을 해보시는 건 어떠신지?”

     “으, 으으…! 정말!”

     

     아스타시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를 올려다봤다.

     “남들, 볼 수 있으니까…!”

     아직, 우리만의 개인적인 공간은 아니다.

     아무래도 주변이 탁 트인 공간이기에, 아스타시아의 장난이 아무래도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남들 안 보는 곳에서는 뭐든지 해도 된다는 겁니까?”

     “…아시잖아요. 그, 그래도 오늘은 안 돼요!”

     

     아스타시아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기숙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늘은, 저도 저만의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하니까!”

     “…….”

     나는 항복하겠다는 듯 두 손을 얌전히 들었다.

     덜커덩.

     제국 기숙사 문이 닫히고, 아스타시아는 그대로 기숙사로 들어갔다.

     마음같아서는 4층까지 그대로 쫓아가서 아스타시아의 장난에 계속 어울려 주고 싶지만, 여기에서 더 나갔다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면 백은 피우고 자야겠네.’

     아스타시아도 아스타시아지만, 나도 나만의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아스타시아는 모른다.

     남녀의 사랑이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넘어, 어떤 관계를 이어 나갈 때 엄청난 행복이 온다는 걸.

     ‘회귀한 게 참 좋긴 하지만, 이건 진짜 매번 고역이라니까.’

     모르니까 그런 손장난을 칠 수 있는 거지.

     회귀 전의 아스타시아였다면, 결코 그런 손장난을 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지.’

     하긴…했나?

     종종, 아니 자주 했던 것 같기는 한데, 적어도 바이크를 탄다거나 안전사고가 날만 한 상황에서는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손장난을 치는 게 남자에게 얼마나 큰 고충을 키우는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기에, 함부로 그런 행위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싫냐고 묻는다면-

     ‘싫지는 않아.’

     오히려 좋다.

     그런 장난을 칠만큼, 그녀가 내게 가까워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성인이 될 때까지만 기다려라.’

     성인이 되고 난 뒤.

     회귀 이후로 참아왔던 7년 반.

     그리고 앞으로 더 참을 2년 반.

     도합 10년 동안 쌓이고 쌓인 사랑을 그대로 표현할 테니까.

     욕정은 아니다. 

     단순한 욕정이었다면, 참을 필요도 없이 바로 해갈했을 테니까.

     ‘그레이 지브롤터. 다른 건 몰라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매력을 물려받은 만큼 제법 괜찮지.’

     제법 괜찮은 게 아니라 훌륭한 편이다.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반쯤 공식적으로 넘겨주고 재단 이사장이나 하고, 지팡이를 짚어야 할 정도로 다리가 망가지고, 공식적으로는 그 실력이 알려진 바가 없는 남자.

     황손녀 꽁무니만 종종 쫓아다니지만 않았다면, 백작가의 영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작가 이하의 영애라거나 지방 재벌의 아가씨들은 어떻게 비벼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제법 많이 연락이 오고 있다.

     황손녀를 향한 러브레터 같은 걸 제국의 그림자-특히 스칼렛 305가 처리하는 것처럼, 나 또한 나를 향해 오는 온갖 투서 아닌 투서를 지속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일절 열어보지 않는다.

     열어보더라도 아버지가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일괄적으로 무시할 뿐이다.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이성적 관계를 요구하는 여인이 있다거나, 혹은 그런 관계를 만들어 보려고 사교 파티에 초대하는 부분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다.

     ‘변했네.’

     

     이전에는 어땠더라.

     

     그래.

     

     -태어난 값을 해라. 그레이. 네가 그 얼굴과 화술로, 지브롤터에 비벼보려는 여자들의 마음을 농락해라.

     

     회귀 전의 아버지, 매국노 변경백의 명령에 따라 수많은 여자를 희롱했다.

     학생회에서 일하면서 학생회 임원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고, 동아리 회장이나 부회장을 초청하여 입을 맞추고, 양옆으로 여인을 끼고 서로 다투지 않게 만들며 사랑을 속삭이고는 했다.

     ‘모순이었지. 참.’

     아무리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본심이 아니라고는 하더라도, 행동은 회귀 전 누아르 뺨칠 정도로 난봉꾼으로 지내면서 정작 순수한 사랑을 요구하다니.

     그런 의미에서, 회귀 전의 아스타시아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내 본심을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 내가 여기저기 다리를 걸쳐놓은 여자들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나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좋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충실하게 느껴진다.

     비록 기억과 영혼은 더럽혀졌지만, 적어도 ‘이번’은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로 아스타시아를 대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아스타시아와 데이트를 즐기고.

     에르윈 회장과 아스타시아의 관계를 어느정도 반쯤 공식적으로 좋게 만들어 주고.

     나아가서는 합스베르크 황태자에게 아스타시아와 관계를 어필하여, 그가 아스타시아를 더더욱 폐기하거나 버릴 수 없게 만드는 단서를 모았다.

     합스베르크 쪽은 당사자가 도촬이나 도청을 하고 있다는 가정으로 말하는 거지만, 아마도 그의 다음 행동에 따라 봤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지.

     봤다면 앞으로도 더 깊게 아스타시아와의 사랑을 나누면 되고, 보지 못했다면 다음에는 좀 더 잘 보이는 곳에서 사랑을 나누면 그만이다.

     아스타시아를 지키기 위해.

     합스베르크를 죽이기 위해.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은 얌전히 몸을 씻고, 백은을 피워 꿈속에서 쌓인 열기를 배출해야 하는데-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거늘.”

     아무래도, 곱게 자지는 못할 것 같다.

     

     정정.

     자는 건 곱게 잘 것 같은데, 잠을 자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항상 기분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는 법이지. 그래, 어쩌면 지금까지 이렇게 가만히 있었던 게 이상할 지경이었어.”

     끼이익.

     이사장실의 문을 연다.

     문을 열면서 들리는 날카로운 경첩 소리부터 내 기분을 나락으로 처박는다.

     보통 사람은 집에 들어오면 편안해지고 아늑함을 느껴야 하는데, 바깥에서의 행복이 워낙 컸던 나머지 아스타시아와 헤어진다는 슬픔이 몸을 잠식하는 걸까?

     아니다.

     자기 전에 얼마나 많은 걸 치워야 할까, 그 걱정 때문에 지금 살짝 짜증이 났다.

     ‘비싼 가구랑 융단만 잔뜩 놔뒀는데.’

     사치와 허영을 즐기는, 지브롤터답지 않은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재단 이사장실에는 엄청 비싼 가구들만 엄선하여 놔뒀다.

     가구가 원래 시간이 지나면 흠집이 생기고 어딘가 망가지거나 하기도 한다지만, 그냥 안전하게 사용만 하면 10년도 넘게 쓸 수 있는 법.

     그게 오늘, 일부 망가지게 생겼다.

     “나와라.”

     이사장실 중앙에 서서 지팡이를 땅에 짚으며,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는다.

     “어디에서 온 누군지 정체를 밝힌다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잠시 결례를 범한 손님 정도로 용서해주마.”

     반응이 없다.

     대화라는 건 원래 상대와 주고받아야 대화가 성립되는 건데, 상대는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시 한번 말하지. 이렇게 내가 자비를 베푸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거다. 세 번은 없다.”

     두 번째에 경고하고, 세 번의 기회를 준다.

     새삼, 나도 회귀 이후로 사람이 성격이 참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

     “그대는 운이 좋다. 예전 같았으면 ‘두 번은 없다’라고 말하고, 대답이 없으면 바로 처리했을 거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나도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꼭 내가 너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줘야겠나? 어디에 숨었는지 그걸 전부 다 말해야 직성이 풀리겠나?”

     어쩌면 회귀 전의 기억 때문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걸지도 모른다.

     “투명 마법으로 모습을 숨기면 뭘 하나. 방에 그림자들 특유의 땀내가 가득한데.”

     빈정거리자마자.

     타ㅡ앙!

     파공성이 일며, 내 볼을 스치듯이 무언가가 날아왔다.

     스치지는 않았다.

     원래라면 눈 아래에 그대로 처박혔겠지만, 그보다 더 빨리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걸로 피했으니까.

     “뭣-”

     “참고로, 하나 말해두지.”

     나는 지팡이를 가볍게 움켜쥔 다음.

     “너희들도 이미 알겠지만, 이 방에는 캐롤라인 저택의 방과 같은 결계가 구축되어 있어.”

     그대로 바닥을 크게 지팡이로 찍었다.

     “알고 왔겠지? 모르고 왔다면 실망이다.”

     문과 벽, 창문에 회색의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하자, 곧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하나둘 검은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능왕의 파수견들.”

     “이…!”

     “참고로, 이 결계 안에서는 그 어떤 통신도 외부로 나갈 수 없어.”

     나는 지팡이를 수평으로 든 다음.

     “너희들이 누구든, 전할 소식은 하나뿐이다.”

     딸칵.

     지팡이의 손잡이 끝을 비틀어, 천천히 손잡이를 옆으로 당겼다.

     “죽음.”

     지팡이가 벌어지며, 회색의 빛이 반짝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격 작가가 독자 감상 망가뜨리기

    ㄸ치고 자려고 했는데 암살자와서 빡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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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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