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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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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리안의 신성력 덕분에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의식은 쉽게 찾지 못했다. 체력이 부족해 깨어나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마검의 말에 리안은 걱정을 내려놓고, 노아를 등에 업은 채 다른 일행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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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주인이 죽은 덕분에 안개가 걷혀 일행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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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스터들도 안개의 정신적 공격을 당해 뻗거나 미쳐버린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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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모인 일행은 곧바로 공작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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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분위기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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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가로 돌아가는 마차 안, 리안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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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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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 아이리스와 그런 아이리스를 흘긋거리는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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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이에 낀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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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막히는 침묵 속에 리안은 말라죽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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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한 탓에 기사단의 분위기가 침울하긴 하지만… 적어도 이 두 사람 사이에선 아름답고 감동적인 분위기가 펼쳐져야 하는 거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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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끌어안고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작의 시선이 온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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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나? 내가 없는 사이 싸웠다거나 -… 공작님과 만난 후로 따로 떨어져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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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달라붙어 다닌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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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으응… 갑자기 나타난 가족이 당황스러워서…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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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나마 납득이 될 법한 답을 찾아낸 후 뒷목을 쓸어내렸다. 아이리스는 그런 리안을 흘긋 훔쳐보다가 공작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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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 구겨지는 얼굴과 사나워지는 눈가, 기분 나쁘다는 티가 팍팍 나는 표정이었다. 아이리스는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휙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공작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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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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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곳을 바라보는 아이리스의 표정이 공작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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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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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고 있는 색이 같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서로의 마력이 비슷한 성질을 가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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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이리스는 공작을 마주한 순간 그녀가 제 가족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인정하진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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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은 오빠 하나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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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에게 본능적인 끌림을 느낄 때마다 아이리스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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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우린 가족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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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부정하고, 끝내 제 곁을 떠나겠다고 속삭이던 오빠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아이리스의 머릿속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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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가족은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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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한 간극을 몰랐기에 리안은 그저 끙끙거리며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소리 없는 갈등 속에서도 공작가로 향하는 발걸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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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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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행의 속도는 빈말로라도 빠르다고 할 수 없었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체력 때문이었다. 부상은 리안의 신성력과 마법사들의 힘으로 쉽게 해결되었지만, 정신을 뒤흔드는 안개 속에서 소모된 체력은 여전히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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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이유는 이 사건을 저지른 ‘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언데드의 흔적이나, 숲의 주인이 머물던 터에 남은 마기의 잔재를 봐선 진짜 적은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 -… 라고 일행은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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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적의 습격이나 함정이 쏟아질지 몰랐기에 그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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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해가 저물지도 않은 오후 3시, 4시쯤 되는 시간임에도 일행의 발걸음이 멈춘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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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야영을 준비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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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널찍한 터를 바라보며 명령하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공작을 기다리게 할 순 없었기에 기사들도 손을 보탰다. 빠르게 천막이 쳐지고 모닥불이 지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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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식사 시간대였기에 이동 중 사냥을 통해 얻은 고기로 간단한 스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주변에 누군가가 접근할 경우 알람이 울리는 마법을 설치했다. 기사들은 야영지 주변을 크게 빙 돌며 얼쩡거리는 몬스터를 베었고, 레인저들은 적의 흔적이 없는지 면밀하게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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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이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나서야 일행은 마음 놓고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언제 습격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반 정도만 휴식하고 나머지 반은 주변 경계에 힘을 썼다. 그러는 사이 먹음직스러운 음식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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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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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병의 말에 휴식 중이던 일행의 반이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그들의 식사가 끝나자 주변을 경계하던 이들이 교대하여 식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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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가 끝나자 일행은 각자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무기를 손질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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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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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분주한 상황 속에서 침묵만이 내려앉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리안과 아이리스가 나란히 앉아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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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을 떠난 이후 어느 순간부터 말 수가 현저하게 떨어진 아이리스는 리안과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말을 걸면 대화가 이어지긴 했지만,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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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공작님 때문에 혼란스러운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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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가 뭔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해결 방법을 모르겠다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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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붙여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설득하자니,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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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문제다 보니 함부로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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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이런 공감과 설득은 노아가 잘할 텐데..! 노아 대체 어딜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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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식사가 끝나고 나면 노아는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일행이 출발할 즘이 되면 돌아왔다. 큰 소리로 부르면 곧바로 돌아오는 데다가 공작이나 기사단장이 아무런 말 없이 내버려 두는 걸로 봐선 그다지 멀리 가는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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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노아를 찾으며 눈물을 흘리다가 이내 고개를 가볍게 털어버린 후 (다른 이에겐 리안의 머리가 거의 드릴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행히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주먹을 꾹 말아쥐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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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서로 삽질만 하게 내버려 뒀다간 어떤 파국이 찾아올지 몰라. 여긴 그런 세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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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가 삽질을 하다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해지는 그런 엔딩은 ‘드라마 세계’라고 불리는 그런 곳에서나 허용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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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다크 판타지 세계에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때쯤 한쪽이 죽어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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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둘 순 없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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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진지한 얼굴로 아이리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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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아이리스 공,작님을 만나보니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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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아이리스가 조용히 리안을 올려다보았다. 리안보다는 덜 하지만 여전히 하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찰랑거렸고 섬세하게 조각한 것만 같은 아름다운 얼굴이 리안을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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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꽃처럼 미모가 피어날 나이대라 그런지 홀릴 것처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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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왜?”
    “어,어?”
   “왜 물어보는 건데? 그 사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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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의 역질문에 리안은 겨우 정신을 추스른 후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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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헤어졌다 만난 가족이니까 궁금 -…”
    “그 사람은 내 가족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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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싸늘한 목소리가 말을 툭 끊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이리스를 바라보자, 눈을 내리 깐 채 미간을 한껏 찌푸린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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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족은 오빠뿐이야.”
    “아이리스 하지만..”
   “다른 가족은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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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번쩍 들어 리안과 눈을 맞췄다. 그 눈동자 속에는 제 의견이 옳다는 오기와 함께 불안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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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걸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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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득을 시도해보려다가 도리어 경계심만 올려버리고 말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리안은 속으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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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이런 건 노아가 제격인데…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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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야 아이리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 머리를 팽팽 돌려보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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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쭈인님!”
    “우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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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에서 익숙한 기척이 습격해왔다. 어깨 옆으로 붉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흔들리고 볼 위에 제스의 말랑한 볼이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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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잠깐 제스!”
    “그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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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꼬리를 마구 팔랑거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등 뒤에 닿는 폭력적인 무언가에 허리가 자동으로 교정되어 곱게 펴지고 어깨가 위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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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히히, 쭈인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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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기분을 숨김없이 내보이는 제스의 모습에 긴장으로 굳었던 몸에 힘이 슬며시 풀어졌다. 크든 작든 제스는 제스구나 싶어 손을 올려 쫑긋거리는 귀 사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제스의 꼬리가 정말… 힘차고 빠르게 흔들렸다. 저러다가 날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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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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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곁에 오는 걸 허락했다고 생각했는지 냅다 리안의 무릎 위에 누워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리안의 손을 제 머리 위로 끌어당겼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순간 옆에서 하얀 손이 뻗어와 새빨간 제스의 짐승 귀를 잡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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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앗! 아파아!”
    “당장 내 오빠 위에서 안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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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이 제 가족이 아니라고 소리칠 때보다 몇 배는 더 서늘한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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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노아는 리안의 신성력 덕분에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의식은 쉽게 찾지 못했다. 체력이 부족해 깨어나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마검의 말에 리안은 걱정을 내려놓고, 노아를 등에 업은 채 다른 일행을 찾아다녔다.

숲의 주인이 죽은 덕분에 안개가 걷혀 일행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몬스터들도 안개의 정신적 공격을 당해 뻗거나 미쳐버린 덕분이었다.

그렇게 모인 일행은 곧바로 공작가로 향했다.

‘…이거 분위기가 이상한데..?’

공작가로 돌아가는 마차 안, 리안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

“…”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 아이리스와 그런 아이리스를 흘긋거리는 공작.

그 사이에 낀 리안.

숨 막히는 침묵 속에 리안은 말라죽을 것만 같았다.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한 탓에 기사단의 분위기가 침울하긴 하지만… 적어도 이 두 사람 사이에선 아름답고 감동적인 분위기가 펼쳐져야 하는 거 아닌가..?’

서로 끌어안고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작의 시선이 온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나? 내가 없는 사이 싸웠다거나 -… 공작님과 만난 후로 따로 떨어져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

딱 달라붙어 다닌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본 적도 없었다.

‘끄으응… 갑자기 나타난 가족이 당황스러워서… 그런 거겠지?’

리안은 그나마 납득이 될 법한 답을 찾아낸 후 뒷목을 쓸어내렸다. 아이리스는 그런 리안을 흘긋 훔쳐보다가 공작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확 구겨지는 얼굴과 사나워지는 눈가, 기분 나쁘다는 티가 팍팍 나는 표정이었다. 아이리스는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휙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공작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

다른 곳을 바라보는 아이리스의 표정이 공작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다.

‘가족…’

품고 있는 색이 같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서로의 마력이 비슷한 성질을 가져서일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이리스는 공작을 마주한 순간 그녀가 제 가족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인정하진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가족..은 오빠 하나면 충분해.’

공작에게 본능적인 끌림을 느낄 때마다 아이리스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이리스, 우린 가족이 아니야.

두 사람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부정하고, 끝내 제 곁을 떠나겠다고 속삭이던 오빠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아이리스의 머릿속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른 가족은 필요 없어.’

이러한 간극을 몰랐기에 리안은 그저 끙끙거리며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소리 없는 갈등 속에서도 공작가로 향하는 발걸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일행의 속도는 빈말로라도 빠르다고 할 수 없었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체력 때문이었다. 부상은 리안의 신성력과 마법사들의 힘으로 쉽게 해결되었지만, 정신을 뒤흔드는 안개 속에서 소모된 체력은 여전히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사건을 저지른 ‘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언데드의 흔적이나, 숲의 주인이 머물던 터에 남은 마기의 잔재를 봐선 진짜 적은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 -… 라고 일행은 판단했다.

언제 적의 습격이나 함정이 쏟아질지 몰랐기에 그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해가 저물지도 않은 오후 3시, 4시쯤 되는 시간임에도 일행의 발걸음이 멈춘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

“여기서 야영을 준비하도록 한다.”

꽤 널찍한 터를 바라보며 명령하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공작을 기다리게 할 순 없었기에 기사들도 손을 보탰다. 빠르게 천막이 쳐지고 모닥불이 지펴졌다.

슬슬 식사 시간대였기에 이동 중 사냥을 통해 얻은 고기로 간단한 스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주변에 누군가가 접근할 경우 알람이 울리는 마법을 설치했다. 기사들은 야영지 주변을 크게 빙 돌며 얼쩡거리는 몬스터를 베었고, 레인저들은 적의 흔적이 없는지 면밀하게 살폈다.

주변이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나서야 일행은 마음 놓고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언제 습격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반 정도만 휴식하고 나머지 반은 주변 경계에 힘을 썼다. 그러는 사이 먹음직스러운 음식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조리병의 말에 휴식 중이던 일행의 반이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그들의 식사가 끝나자 주변을 경계하던 이들이 교대하여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가 끝나자 일행은 각자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무기를 손질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

“…”

다들 분주한 상황 속에서 침묵만이 내려앉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리안과 아이리스가 나란히 앉아있는 장소였다.

숲을 떠난 이후 어느 순간부터 말 수가 현저하게 떨어진 아이리스는 리안과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말을 걸면 대화가 이어지긴 했지만,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역시 공작님 때문에 혼란스러운 거겠지?’

이유가 뭔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해결 방법을 모르겠다는데 있었다.

‘억지로 붙여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설득하자니, 음…’

가족 문제다 보니 함부로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러웠다.

‘으으… 이런 공감과 설득은 노아가 잘할 텐데..! 노아 대체 어딜 간 거야!’

항상 식사가 끝나고 나면 노아는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일행이 출발할 즘이 되면 돌아왔다. 큰 소리로 부르면 곧바로 돌아오는 데다가 공작이나 기사단장이 아무런 말 없이 내버려 두는 걸로 봐선 그다지 멀리 가는 것 같진 않았다.

속으로 노아를 찾으며 눈물을 흘리다가 이내 고개를 가볍게 털어버린 후 (다른 이에겐 리안의 머리가 거의 드릴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행히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주먹을 꾹 말아쥐며 생각했다.

‘이대로 서로 삽질만 하게 내버려 뒀다간 어떤 파국이 찾아올지 몰라. 여긴 그런 세계니까..!’

서로가 삽질을 하다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해지는 그런 엔딩은 ‘드라마 세계’라고 불리는 그런 곳에서나 허용될 터다.

이곳 다크 판타지 세계에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때쯤 한쪽이 죽어있을 터였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암!’

리안은 진지한 얼굴로 아이리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아이리스 공,작님을 만나보니까 어..때?”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아이리스가 조용히 리안을 올려다보았다. 리안보다는 덜 하지만 여전히 하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찰랑거렸고 섬세하게 조각한 것만 같은 아름다운 얼굴이 리안을 직시했다.

한창 꽃처럼 미모가 피어날 나이대라 그런지 홀릴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건 왜?”

“어,어?”

“왜 물어보는 건데? 그 사람에 대해.”

아이리스의 역질문에 리안은 겨우 정신을 추스른 후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헤어졌다 만난 가족이니까 궁금 -…”

“그 사람은 내 가족이 아니야.”

리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싸늘한 목소리가 말을 툭 끊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이리스를 바라보자, 눈을 내리 깐 채 미간을 한껏 찌푸린 모습이 보였다.

“..내 가족은 오빠뿐이야.”

“아이리스 하지만..”

“다른 가족은 필요 없어!”

아이리스는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번쩍 들어 리안과 눈을 맞췄다. 그 눈동자 속에는 제 의견이 옳다는 오기와 함께 불안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설득을 시도해보려다가 도리어 경계심만 올려버리고 말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리안은 속으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생각했다.

‘역시 이런 건 노아가 제격인데…크윽..’

어떻게 해야 아이리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 머리를 팽팽 돌려보고 있을 때.

“쭈인님!”

“우왓!”

등 뒤에서 익숙한 기척이 습격해왔다. 어깨 옆으로 붉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흔들리고 볼 위에 제스의 말랑한 볼이 맞닿았다.

“자, 잠깐 제스!”

“그르릉..!”

제스는 꼬리를 마구 팔랑거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등 뒤에 닿는 폭력적인 무언가에 허리가 자동으로 교정되어 곱게 펴지고 어깨가 위로 치솟았다.

“히히히, 쭈인님 좋아!”

제 기분을 숨김없이 내보이는 제스의 모습에 긴장으로 굳었던 몸에 힘이 슬며시 풀어졌다. 크든 작든 제스는 제스구나 싶어 손을 올려 쫑긋거리는 귀 사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제스의 꼬리가 정말… 힘차고 빠르게 흔들렸다. 저러다가 날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흐헤헤헤!”

리안이 곁에 오는 걸 허락했다고 생각했는지 냅다 리안의 무릎 위에 누워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리안의 손을 제 머리 위로 끌어당겼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순간 옆에서 하얀 손이 뻗어와 새빨간 제스의 짐승 귀를 잡아챘다.

“으앗! 아파아!”

“당장 내 오빠 위에서 안 비켜?”

공작이 제 가족이 아니라고 소리칠 때보다 몇 배는 더 서늘한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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