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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평민의 영웅 펠레이.

     

   어느 날 갑자기 붙은 이명의 무게감을 느끼는 그는 지금 다른 의미로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윽!”

     

   펠레이의 입에서 침음이 터져 나왔다.

     

   황색의 하늘 아래, 눈이 소복이 쌓인 설산 위.

   펠레이는 어느 한 동굴 앞에 서 있었다.

     

   하덴하르츠 산맥을 가로지르는 동굴 중 하나이자 평상시 위급 상황일 때 대피구로 사용되는 동굴이었다.

   그리고 그 동굴 앞에는 개떼 같이 몰려든 침식종들이 있었다.

     

   세계 침식이 발생하며 나타난 그들은 오랫동안 굶주린 듯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털은 하나도 없고, 피부만 존재했으며 몸에는 울긋불긋 종기가 돋아 있었다.

     

   들짐승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그 크기는 인간보다도 거대한 괴물.

   화농낭.

     

   개개인을 따지면 그리 강한 개체는 아니나 산을 뒤덮을 만큼 많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특성 탓에 5성급으로 책정된 침식종이었다.

     

   현재 하덴하르츠의 산을 가득 메웠다고 봐도 무방한 놈들이었지만.

   지금 놈들의 목적은 단 하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저 동굴 안에는 수많은 먹잇감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캥!”

   “캐행!”

     

   그들이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며 또다시 참지 못하고, 동굴을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화농낭들을 본 순간 펠레이의 검이 즉시 번뜩였다.

     

   방금까지 숨이 턱까지 차올라 쉬고 있었던 그임에도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서걱!

     

   “켕?!”

     

   화농낭이 베어 갈라지며 놈의 몸이 반토막이 났다.

   그러자 놈의 몸에서 터져 나온 종기가 주변에 흩뿌려지며 눈을 녹였다.

     

   종기에 든 산성 탓이었다.

     

   치이이익!

     

   펠레이의 몸에 일부 튄 고름이 펠레이의 피부를 태웠다.

     

   라헬른 아카데미 제복이 아무리 자가 수복 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벌써 오랜 시간을 전투했다.

   동굴 앞에 쌓인 화농낭의 시체들만 봐도 펠레이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제복도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덕분에 화농낭이 죽으며 종기에서 발생한 폭발은 계속해서 펠레이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그 꾸준한 상처는 펠레이의 체력을 자꾸만 깎아 먹었고,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으윽, 단장, 나, 라도!”

   “괜찮아. 쉬어.”

     

   그러는 순간 동굴 입구 쪽에 다리 한쪽이 새까맣게 타버린 단원 한 명이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펠레이는 그를 제지하며 다시금 동굴의 앞에 섰다.

     

   이미 앞선 다른 5성급 침식종과의 전투로 펠레이의 거해단 인원들은 엉망이 되었다.

   평균 5성급 침식종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상황.

     

   아무리 라헬른 아카데미 1기생들이라고 할지라도 대처 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사자 단원들은 무사하겠지.’

     

   중간에 전투가 이루어지며 샬롯의 사자단과도 흩어졌다.

   그들의 생사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부디 무사하기를 펠레이는 속으로 빌었다.

     

   “캥!”

     

   그러는 사이, 화농낭들이 다시금 동굴을 향해 뛰어들었다.

   처음과 다르게 그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들도 슬슬 펠레이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펠레이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마음속 어딘가,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은 약한 생각이 들었다.

     

   펠레이도 사람이다.

   영웅이라 칭송받고 있지만, 그 또한 살고 싶고, 죽음이 두렵다.

     

   그래서일까, 이런 약한 마음이 불쑥불쑥 들 때마다 그는 인정하고 만다.

   자신은 영웅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캐앵!”

   “캥!”

     

   챙. 채엥!

   서걱!

   콰직!

     

   평민의 영웅.

   정말 거창하기 그지없다.

     

   영웅이라 하면 이 자리에서 조금도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이를 말하지 않던가.

   그리고 결국 위기를 이겨내어 모두를 구하는 그런 이야말로 영웅이 아니던가.

     

   ‘나 같은 놈은 그런 영웅이랑 거리가 멀어.’

     

   세계 침식에 취약했던 고향이 그저 안타까워 들었던 검이다.

   자신의 알량한 정의감은 영웅을 부르짖기에는 너무나 작고 우습기 그지없었다.

     

   채에엥!

   퍼걱!

     

   하지만 그럼에도 펠레이는 동굴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워 두 다리가 자꾸만 떨리고 있음에도 그의 다리는 동굴 앞에 굳건하게 서 있었다.

   펠레이의 숨소리가 아까 전보다 더 가쁘게 내쉬어졌다.

     

   채엥!

     

   그의 가슴팍이 부풀어 올랐다가 줄기를 거칠게 반복했다.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고, 하덴하르츠의 설산에서도 땀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챙!

     

   뜨겁다.

   머리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전부 거친 호흡의 열기로 뜨겁다.

     

   “캐행!”

     

   땀과 주변의 공기가 식혀주지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펠레이의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지금 이 동굴 안에는 하덴하르츠의 산에서 거주하던 수많은 이들이 있다.

   자신이 꺾이는 순간 침식종의 이빨이 그들을 갈기갈기 찢을 것이다.

     

   알량한 정의감이라도 좋다.

   그 정의감을 오직 여기서 토해낼 수 있다면 펠레이는 뭐든 할 수 있었다.

     

   채엥!

     

   “단장!”

     

   거해단 단원이 펠레이를 향해 비명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펠레이가 화농낭의 발톱에 옆구리가 찢겼기 때문이었다.

     

   울컥하고 핏물이 옆구리를 타고 흘렀다.

   하지만 펠레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농낭의 머리를 갈라 버린 뒤 입구 앞에 섰다.

     

   출혈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응급처치로 오러를 불어 넣어 근육을 강제 억세게 눌러 대충 막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의 출혈은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푸른 두 눈은 더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거해단 단원들의 눈에 펠레이의 등이 비췄다.

   그들은 펠레이와 모두가 같은 평민이었다.

     

   그들 또한 필사적인 노력에 노력한 끝에 라헬른 아카데미까지 입학한 이들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펠레이를 보며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평민의 영웅,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는 다름 아닌 펠레이라고 말이다.

     

   비록, 그가 아무리 부정하고 또 부정하더라도.

   펠레이는 그들에게 있어 영웅이었다.

     

   펠레이는 자만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낮추고, 고뇌하고 또 고뇌한다.

     

   그리고 그 고뇌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자리에 언제나 물러서지 않고 서 있었다.

     

   달아오른 몸과는 별개로 정신이 냉정해졌다.

     

   “캐헹!”

     

   또다시 화농낭들이 달려들었다.

   그 수는 또 이전보다도 더 많아졌다.

     

   어째서일까.

   화농낭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천재란 위기의 순간에도 성장하는 이를 일컫는다.

   그리고 천재의 반열에 올라 있는 펠레이 또한 이 순간 한 걸음 또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기라는 건 수많은 천재의 성장에도 그들을 앗아간다.

     

   그가 한 걸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육체는 이미 진작에 한계를 맞이했다.

     

   콰직!

     

   그리고 그 대가는 그의 왼쪽 팔이었다.

   달려든 화농낭의 이빨이 펠레이의 왼쪽 전완근 안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저주를 품은 이빨은 펠레이의 팔을 순식간에 붉게 물들여 나갔다.

     

   달려들던 화농낭의 반응이 늦어 치른 대가였다.

     

   “……!”

     

   펠레이의 입에서 거친 비명이 스쳐 나왔다.

   그러나 그는 비명을 마저 지를 틈도 없었다.

     

   펠레이가 왼팔을 당한 틈을 타 한 마리가 더 그의 어깨를 발톱으로 찢어발겼기 때문이었다.

     

   튀어 오른 핏물이 동굴 벽면에 흩뿌려졌다.

   화농낭 들은 피 냄새를 맡아 더욱 흥분한 듯 거칠게 콧바람을 내쉬었다.

     

   “캥!”

     

   그리고 펠레이가 무너진 틈을 타 곧장 화농낭 몇 마리가 동굴 입구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돼!”

     

   악을 쓰듯 휘두른 검이 화농낭 한 마리를 베어 갈랐다.

   그러나 펠레이의 검은 한 자루뿐이었다.

     

   그가 베어 가른 한 마리 말고, 다른 녀석들은 그대로 동굴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는 다친 거해단 단원들이 있었다.

   펠레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거해단 단원들의 눈을 본 순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희생을 결심했다.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화농낭에 맞서 싸우겠다는 그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지와는 별개로 그들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펠레이가 만신창이였던 만큼 그들이라고 해서 덜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장!”

     

   소리친 거해단 단원이 떨리는 미소와 함께 마지막 오러를 지폈다.

     

   “당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우리에게 당신은 영웅이었어!”

     

   유언과도 같은 그 미소를 보면서도 펠레이는 악을 쓰며 달리고 있었다.

     

   영웅, 이게 어딜 봐서 영웅이란 말인가.

   자신의 단원 한 명 지킬 수 없는 이가 어딜 감히 영웅이란 말을 입에 올린단 말인가.

     

   “멈춰어어어어!”

     

   펠레이의 보법이 펼쳐졌다.

   그가 자주 사용하던 천리십보(千里十步)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닿기에는 멀었다.

   펠레이의 얼굴이 무너지고 있었다.

     

   평생 품어왔던 희망의 불씨가 꺼지는 듯한 감각이 그의 마음속에 드리웠다.

   단원의 마지막 미소와 화농낭의 모습이 교차한 그때.

     

   펠레이의 사력을 다한 질주보다 먼저 움직인 것이 있었다.

     

   빠각!

     

   두개골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달려들던 화농낭이 하늘을 날았다.

     

   빠각!

     

   그와 동시에 이어진 두 번째 충격이 화농낭을 뒤흔들었다.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 화농낭은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며 몸을 떨었다.

     

   분명 주먹을 한 번 휘둘렀음에도 울려 퍼진 두 번의 타격음에 펠레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그의 눈에 흩날리는 검푸른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펠레이 또한 아는 얼굴이 서 있었다.

     

   “크, 라슈 발하임?”

     

   펠레이가 멍하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자기 손목을 두둑하니 푼 크라슈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펠레이.”

     

   그의 이름을 부른 크라슈는 어느새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들고 있었다.

   그러곤 걸어 나가며 펠레이의 가슴팍에 툭하니 그걸 건네주었다.

     

   “저번에 말하지 않았느냐. 강해지라고.”

     

   멍하니 있던 펠레이의 두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가 무투 대회에서 몇 번이고 곱씹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강해져.」

     

   특이한 외모의 밤까마귀 단원이었던 그는 무투 대회에서 펠레이를 꺾고, 그리 말했다.

     

   「네 희망이 끝내 무너지더라도 불씨를 남겨둘 수 있게.」

     

   크라슈를 따라 펠레이의 고개가 움직였다.

     

   “더 강해져라. 앞으로도 계속 네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짧게 그 말을 남긴 크라슈가 어느새 동굴 앞에 서 있었다.

     

   “크라슈, 넌!”

     

   펠레이가 말을 잇기도 전 크라슈가 우뢰성을 뽑았다.

   그러고는 가벼운 숨을 내쉬며 화농낭들을 노려보았다.

     

   참, 징글맞게도 모였다.

   하덴하르츠 산이 이 정도라면 도심 쪽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겠지.

     

   ‘그쪽은 일검과 하덴하르츠 기사단이 잘 막고 있기를 믿을 수밖에.’

     

   무려 라이와 세나가 갔다.

   두 사람이라면 확실하게 세계 침식의 주인을 정리해주겠지.

     

   [ 제 몸 하나 간사하기도 힘든 놈이 온갖 허세는 다 부리기는. ]

     

   그러자 크림슨가든의 핀잔이 다시금 이어졌다.

   그녀의 말마따나 크라슈의 상태는 여전히 정상이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걱정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안 왔잖냐.”

     

   쿠웅, 쿵!

     

   크라슈의 말이 이어진 순간 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농낭들도 갑자기 흔들리는 산에 의해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이 당황한 틈 사이.

   눈 덮인 산의 땅 아래에서 다수의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하얀 백골로 이루어진 괴물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쥔 채 두 눈을 흉흉하게 번뜩였다.

   그들은 다름 아닌 에벨아스크의 백골 군단이었다.

     

   화농낭들의 눈에 경계심이 서렸다.

   수적 우위가 단 한 번에 뒤집혔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크라슈의 옆에 하링이 인비저블을 해제하며 나타났다.

     

   그녀의 비수에 묻은 독기를 보건대 어느새 몇 마리 처치했던 모양이었다.

     

   “크라슈.”

   “그래.”

     

   크라슈가 어깨를 가볍게 두둑 풀었다.

     

   “청소하자.”

     

   깔끔하게 한 놈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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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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