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

       

       

       

       

       “하하하하! 여행자님께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주인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크흠. 죄송합니다. 사연 있는 여행자님이 찾아오시면 한번 해 보고 싶었던 것이라.”

       

       주인장이 헛기침을 하자, 해츨링을 들고 있던 소녀가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이 귀여운 애 주인이에요?”

       

       소녀가 해츨링을 살짝 고쳐 들자 작게 쀼, 소리가 났다.

       

       “으음…. 뭐, 그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지.”

       “무슨 대답이 그래요?”

       

       당돌한 소녀의 물음에 나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뒀던 변명을 슬쩍 꺼냈다. 

       

       “한 번만 설명해 줄 거야.”

       “좋아요.”

       

       왜냐하면 말이 많아질수록 말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거든.

       

       “결론부터 말하면 얘는 와이번의 새끼고, 나랑 사역마 계약을 맺었어.”

       “와이번이요? 그 커다란 박쥐 같이 생긴 마물? 안 닮았는데?”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주인장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벨라, 원래 용족은 새끼 때 모습과 성체의 모습이 꽤나 다르단다. 특히 새끼 때는 용족끼리도 구분이 잘 안 되는 걸로 알려져 있지.”

       

       주인장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드레이크인가 싶었는데, 와이번의 새끼였군요. 역시 범상치 않은 분이다 했는데, 테이머(Tamer)셨다니….”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런데 와이번 중에 저런 은빛 비늘을 가진 종이 있었던가요? 있다는 소문조차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답도 미리 생각해 뒀다는 말씀. 

       

       “아무래도 그 점 때문에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모양이에요. 혼자 떨어져 나와 울고 있던 녀석을 제가 데려왔고, 사역마 계약을 하게 됐죠.”

       

       나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런. 돌연변이가 따돌림을 받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지요. 보통 그런 경우 얼마 안 있어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귀인을 만났군요.”

       

       내 이야기에 조금 감동한 듯, 주인장이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전 제가 테이밍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그냥 평범하게 한 곳에 정착해 농사나 짓고 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이 녀석을 만나서 이렇게 좀 떠돌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마물이라 데리고 살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도 안 좋을 거고…. 일단 테이머라는 직업 자체가 인식이 안 좋기도 하고요.”

       

       완벽하다. 

       

       이 정도면 완벽한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나는 주인장과 소녀의 눈치를 살폈다. 

       

       내 예상대로 둘의 눈빛은 아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그때 주인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 와이번 말고 다른 사역마도 있으십니까?”

       “아뇨…?”

       “그럼 사역마 계약을 하고 이곳이 첫 여행지십니까?”

       “네, 맞아요. 근데 그건 어떻게….”

       “흐음, 역시 그렇군요.”

       

       주인장은 의도를 알 수 없는 톤으로 중얼거리더니, 곧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그런 거라면 아마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그럼 이 사역마가 쏙 들어갈 가방을 구한다고 하신 건, 사역마를 눈에 띄지 않게 숨기고 싶으셔서였군요.”

       “어, 네에.”

       

       주인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 고지식한 사람들 중에서는 여전히 테이머 자체를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긴 하니까요. 허나, 방금 말했듯 여행자님의 경우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으실 겁니다.”

       “…왜죠?”

       “그건….”

       

       주인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행자분의 사역마는 귀엽기 때문입니다.”

       “예?”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아니, 귀여운 건 맞는데….

       

       “조금 말을 바꾸도록 하지요. 사람들에게 불안이나 공포를 조장할 수 있는 외모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기는 하죠…. 네.

       

       “사람들이 테이머를 경계하는 이유는, 본디 마을이나 도시 안으로 들어와선 안 되는 위험한 마물이 ‘테이머와 함께다’라는 이유로 들어오는 게 허락되기 때문이지요. 테이머는 해당 마물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처음 본 사람들은 그걸 쉽사리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맞아요. 실제로 관련 사고도 종종 발생하니까요.”

       

       그건 레키온 사가를 오랫동안 해 온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역마는 그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언제든지 그럴 것처럼 생겼지요.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테이머가 데려온 마물이 아무리 순한 마물이라도 오우거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면 여행자님이라도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그 역시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행자님의 사역마는 그런 면에서 반대로 아주 유리하지요. 공격성도 없어 보이고…. 보통 사역마는 계약자 이외의 누군가가 접촉하면 곧바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손녀가 이렇게 안고 있어도 얌전한 걸 보면 실제로 아주 순한 것 같고요.”

       “얘가 순하긴 해요.”

       

       순한 걸 넘어서서 눈물이 좀 많아요, 애가.

       

       “하여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사역마의 경우 그렇게 애써 숨기지 않으셔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인장의 말은 상당히 타당했다.

       생각해 보면 실제로 내가 아는, 배척받던 테이머들의 사역마들은 죄다 파이어울프, 블랙보어, 미니 스톤 골렘 같은 것들이었으니까.

       

       ‘빙의하자마자 험한 환경에 내던져져서 그동안 뭐든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네. 주인장 말대로면 조금은 안심해도 되겠어. 물론 드래곤이라는 걸 들키지 않는다는 가정 하의 얘기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숨기지 않아도 되니 굳이 가방은 안 사도….”

       “아뇨. 가방은 사시는 게 좋지요.”

       “…?”

       

       단호하게 대답한 주인장은 내 표정을 보고 다시 한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가까이서 보게 해 달라고 말을 걸지도 모르니까요.”

       “…….”

       “하하하. 농담입니다. 저희 가게는 절대 손님에게 강매하지 않으니 여행자님께서 판단해 구매하십시오.”

       

       나는 또 다시 호탕하게 웃는 주인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괜찮은 걸로 하나 추천 좀 해 주세요.”

       

       결국 나는 해츨링이 쏙 들어가는 가방을 하나 구매했다. 

       

       ***

       

       “쀼우!”

       “헤헤, 너 진짜 귀엽다. 우리 집으로 안 올래?”

       “쀼… 쀼우!”

       “치잇, 그냥 해 본 소린데 그렇게 싫어?”

       

       내가 추천받은 가방 몇 가지를 비교해 구매하고, 주인장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인장의 손녀 벨라는 해츨링과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해츨링이 마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가 적극적으로 다가가 친해지는 걸 보니 나 역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저 모습을 보니 확실히 좀 마음이 놓이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하하, 저희 손녀가 저렇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오랜만에 보는군요. 최근에 동네에서 친구들과 싸웠다고 우울해했는데, 덕분에 기운을 좀 차린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자님.”

       “뭘요. 전 한 것도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다른 이야기를 얹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마을에 할 만한 의뢰는 좀 있는 편인가요? 막 도착한 터라 아직 용병 길드에 등록을 못 했거든요. 내일 가긴 갈 건데 이쪽 마을 사정은 요즘 좀 어떤가 궁금해서….”

       “의뢰라…. 저도 들은 정보라 확실하진 않지만 그거라도 괜찮으시다면 아는 대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저야 감사하죠.”

       “우선 숲의 바위산 건너편에 서식하는 커먼 울프들이 최근에….”

       

       나는 스미스 씨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그걸 머릿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맞추는 작업을 했다. 

       

       ‘아직 주인공이 서부 파견 시에 초반에 하게 되는 의뢰들이 상당수 남아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주인공은 동부 파견 루트를 탔을 가능성이 높겠네.’

       

       레키온 사가에서 주인공을 직접 플레이하면 동부 파견, 서부 파견 루트 이외에 다른 루트도 선택이 가능하지만, 조연이나 다른 랜덤 캐릭터로 플레이할 경우 주인공은 동부 혹은 서부 파견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알아서 진행하게 된다.

       

       ‘동부로 갔으면 쑥대밭이 된 바냐스 마을도 한 번 들렀을 텐데…. 그거 보고 주인공이 분노해서 나중에 하무트교 놈들 좀 싹 다 소탕해 줬으면 좋겠다.’

       

       하여간 하무트교 놈들의 광기는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니까.

       

       “…이것저것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다양한 정보를 알려준 주인장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얘야, 이제 가자.”

       “쀼우우!”

       

       그리고 벨라와 놀고 있던 해츨링을 받아서 안아 들었다. 

       

       나는 해츨링에게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내가 먹을 거 준다고 아무나 따라가지 말랬지?”

       “쀼우우…!”

       “따라간 게 아니라 와서 먹을 거 준 걸 받아먹은 것도 마찬가지야.”

       “쀼우….”

       

       그 모습을 본 주인장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계약한 사역마라 그렇게도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시는군요.”

       “아하하, 네에.”

       

       사실 계약 같은 건 안 했지만….

       며칠 밤낮을 같이 지내며 여러 일을 겪다 보면 이 정도는 가능하지.

       

       “그럼 이제 진짜 가 보겠습니다. 좋은 가방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쀼우!”

       

       어느새 푹신한 가방 속에 쏙 들어간 해츨링이 고개를 내민 채 한손을 번쩍 들며 인사했다. 

       

       “아,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행자님.”

       “네?”

       

       주인장은 잠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곧 의류 한 세트를 가지고 나와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옷이 많이 낡아 있으면 여관에서 행색을 보고 지레짐작해 대우를 못 받습니다. 길에서 시비 걸릴 확률도 높지요. 가시기 전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십시오.”

       

       …그러고 보니 지금 꼴이 말이 아니긴 하지.

       

       “그렇게 하는 게 낫겠네요. 이 옷은 얼만가요?”

       

       내가 돈주머니를 꺼내려 하자 주인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제가 여행자님께 선물로 드리는 겁니다. 저희 손녀가 덕분에 기운을 차렸으니, 답례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아니, 그래도…. 이거 꽤 비싸 보이는데 공짜로 받을 수는….”

       

       딱 봐도 꽤나 튼튼한 고급 옷감을 사용한 옷 같았다. 

       

       주인장은 허허 웃더니 덧붙였다. 

       

       “정 그러하시면 추후 마을을 떠나시기 전에 사역마를 데리고 저희 가게에 한 번 다시 들러 주십시오. 벨라가 아주 좋아할 겁니다.”

       “…그 전에라도 시간 날 때 꼭 들를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가게를 나오며 스미스 씨와 벨라에게 인사했다. 

       

       “히잉, 벌써 가다니….”

       “쀼우우.”

       

       벨라는 굉장히 아쉬워했지만 마지막에 해츨링의 말랑한 손을 꼬옥 잡고 잠시 동안 주물거린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 듯 손을 흔들어 우릴 배웅해 주었다.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