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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나는 서둘러 프란체와 소미레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파티장에서 뛸 수도 없기에 최대한 빠른 걸음을 유지하며 다가갔다.

         

       금세 다시 소란스러워진 파티장. 모든 귀족이 프란체와 소미레를 바라보며 수근거린다.

         

       ―또 데카르트 공녀님이네요?

       ―이번에는 무슨 일이시래요?

       ―갑자기 성녀님의 뺨을 때리셨어요.

       ―성녀님이 주목받으니 질투하신 게 아닐까요?

       ―데카르트 공녀님도 참 단순하신 분이네요.

         

       아니, 무작정 프란체만 욕하지 말고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정확하게 살피라고.

         

       ‘망할 귀족 새끼들 수준.’

         

       내가 프란체에게 도착했을 무렵엔 사태를 수습하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다.

         

       황태자, 레제프 페델리안이 프란체 앞에 서서 분노하고 있었으니까.

         

       망나니 새끼가 오만상을 구기며 프란체에게 소리쳤다.

         

       “데카르트 공녀,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갑자기 뺨을 때리다니!”

       “전하. 저 평민이 제게 무슨 말을 하신 줄 아십니까?”

       “소미레는 평범한 평민이 아니다!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성녀란 말이다!”

       “그게 어쨌다는 거죠? 저 사람이 제게 모욕을 준 건 사실인데.”

         

       아무리 레제프라고 해도 공작가의 영애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거다. 그렇기에 지금 빠득 이를 갈며 프란체를 노려보기만 하는 거겠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대체 프란체가 이런 기행을 벌인 이유가 뭐지?’

         

       지금까지 봐온 프란체는 조금 허술해 보여도 상황을 읽는 능력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이러한 행동 자체가 그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소미레가 대체 뭐라고 속삭였길래?’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걸 생각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프란체에 뒤에 붙어 물었다.

         

       “주인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프란체가 부채를 펼치며 입가를 가렸다. 눈을 얕게 뜨고 소미레를 날카롭게 응시한다.

         

       “저 성녀라는 년이 나를 대놓고 모욕했단다.”

       “…모욕이요?”

       “그래. 그것도 제대로 된 모욕을.”

         

       그녀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가면을 쓰는 데 익숙한 프란체가 표정 관리를 못 하다니,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것인가.

         

       “일단은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단다.”

       “더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자리를 비우죠.”

         

       내가 프란체를 데리고 빠져나가려던 그때였다.

         

       “데카르트 공녀. 대체 어딜 가는 거지?”

         

       개 같은 망나니 새끼… 아니, 황태자가 우리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신지요?”

       “소미레에게 사과하지 않는 건가?”

       “제가 사과를 해야 할 이유를 못 느끼겠군요.”

       “그렇게 세게 뺨을 때려놓고선 사과할 이유를 못 찾겠다고?”

         

       허, 레제프가 헛웃음을 지었다.

         

       “소문대로 미친년이 맞았군. 데카르트 공녀.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는 건가? 그대의 앞에 서 있는 건 제국의 황태자다.”

         

       황태자라는 직함으로 프란체를 위협할 생각인가. 저 미친놈.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하다니, 내가 생각하는 망나니 새끼가 맞았다.

         

       프란체는 태연하게 웃었다.

         

       “전하가 제국의 황태자인 걸 누가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이게…!”

       “이게? 저는 데카르트 공작가의 영애, 프란체 데카르트입니다. 아무리 태자 전하라고 하셔도 저를 무시할 수 없으실 텐데요.”

         

       크윽, 레제프가 이를 악물었다. 미간이 종이 구겨지듯 망가졌다. 저러면 주름 생기는데.

         

       그나저나, 프란체가 나름대로 대처를 잘 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 가면을 쓰고 사교계에서 주름을 잡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살기 어린 시선이 오가던 때. 뺨을 부여잡던 소미레가 반듯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태자 전하.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제가 말실수를 했을 뿐이랍니다.”

         

       정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미소.

         

       “아아- 소미레. 그대는 어디까지 자비로운 것인가…….”

         

       그걸 또 좋다고 받아들이는 망나니 새끼.

         

       미친놈. 여자한테 홀딱 빠져서 황태자라는 이름에 먹칠하는 새끼. 망나니라는 별명을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기가 막히게 지었어요.

         

       다시 말하지만 내가 지은 별명이다.

         

       “데카르트 공녀님.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프란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조용히 소미레를 째려봤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주인님. 여기서는 한 발자국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요.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제야 흥분한 프란체가 고개를 돌려봤다. 파티장의 모든 귀족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상태를 계속 끌고 가면 프란체만 불리할 뿐이다.

         

       상대는 황태자의 신임을 얻은 성녀. 그리고 이쪽은 온갖 사치를 부리며 사교계를 힘으로 휘어잡은 공녀.

         

       “그렇네. 여기서는 물러나는 게 좋겠어.”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때. 프란체를 살기 어린 시선으로 응시하던 레제프가 눈동자를 굴려 나를 힐끔 바라봤다.

         

       “허, 이게 누구야. 망국의 왕자 아닌가?”

         

       씹새끼, 결국 아는 척을 하는구나.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내가 노예로 만들었을 텐데, 왜 여기에 있지?”

         

       레제프의 말을 들은 귀족들이 수군거린다. 노예가 어떻게 이 파티장에 있는 게 궁금한 거겠지.

         

       “아, 혹시 데카르트 공녀가 이 노예를 구매한 건가?”

       “…….”

       “인제 보니 정말 웃기는 공녀군. 호위기사로 데려온 녀석이 노예? 하.”

         

       레제프는 오만한 얼굴로 프란체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데카르트 공녀. 야만인과도 같은 그대의 수준에 맞는 호위기사를 얻었어. 내 이것만큼은 칭찬해주지.”

         

       저 개 같은 놈이? 나는 눈을 부릅뜨고 레제프를 노려봤다.

         

       “…지금 나를 노려본 건가?”

         

       빠악! 레제프가 내 복부를 걷어찼다. 하지만 진의 몸은 겨우 발길질에 신음을 낼 수준이 아니었다. 가죽으로 만든 채찍은 가져와야지.

         

       이 모습을 본 프란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제 호위기사에게 뭐하시는 건가요?”

       “보면 모르나?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짐승에게 교육을 시켜준 거다.”

         

       견고한 벽과도 같던 프란체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 감동했다.

         

       “지금은 노예라는 미천한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한 나라의 왕족이었습니다. 교류의 장에서도 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쉴드까지 쳐주는 거니? 정말 고맙다……. 비록 짧지만 처음 받아보는 최고의 취급이었어…….

         

       내가 감동을 하고 있는 와중. 프란체와 레제프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제는 멸망해버린 왕국의 왕족 출신이 무슨 의미가 있지? 데카르트 공녀. 그대도 참 웃기는군.”

       “그는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입니다. 제국에도 소드 마스터는 얼마 없을 텐데요?”

         

       소드 마스터라는 소리를 들은 레제프가 고개를 뒤로 빼며 움찔거렸다.

         

       “하, 저자가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이제는 미천한 노예 신분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것만이라도 가치가 있는 노예지요. 그리고, 그 어떤 누구보다 강한 제 호위기사입니다.”

         

       프란체…….

         

       지금까지 보여준 충성과 생쇼가 통했구나…….

         

       “쯧. 더이상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으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소미레. 우리는 휴게실이라도 들리자고.”

         

       먼저 걸음을 뗀 레제프. 그러나 소미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소미레…?”

       “태자 전하. 먼저 자리를 옮기시지요. 저는 할 일이 남아있답니다.”

       “아직 이야기할 게 남아있다고?”

       “그렇습니다. 먼저 자리를 옮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미레의 부탁에 레제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곤 휴게실로 향했다.

         

       다행히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상황이 종료됐다. 보고 있는 귀족들이 많기도 했으니 탁월한 선택이다.

         

       “저희도 자리를 옮깁시다. 지금은 시선이 너무 많이 몰려있어요.”

       “그래. 그러는 편이 좋겠구나.”

         

       프란체는 손에 든 샴페인을 쭉 들이켰다. 화끈하게 원샷.

         

       “후. 이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구나. 바람이라도 쐬러 테라스에 나가자꾸나.”

       “예.”

         

       또각. 또각. 프란체가 구두 소리를 내며 테라스로 향했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를 따랐다.

         

       “저기.”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소미레였다. 이년이 왜 나한테 말을 걸어?

         

       “망국의 왕자라고 하셨죠? 나라가 멸망한 것도 모자라 노예까지 되셨네. 참으로 안타까워요.”

         

       갑자기 뭔 소리야. 나라가 멸망하고 내가 노예가 된 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아, 예.”

         

       간단한 답변. 사실상 대화를 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소미레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솔깃한 제안을 하나 할게요.”

       “제안이요?”

       “저의 기사가 되시는 건 어떠세요?”

       “저는 데카르트 공녀님의 노예입니다만.”

         

       소미레가 슬쩍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이밀며 내게 속삭였다.

         

       “제게 부탁한다면 노예라는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어떠세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합니까?”

         

       이번에도 소미레는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누군가 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소미레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황태자 전하에게 말씀드려 볼게요. 그분이시라면 제 부탁을 들어주실 거예요.”

       “그걸 어떻게 단정합니까? 당장 저를 노예로 만든 사람이 태자 전하이십니다.”

       “그분은 제가 하는 말이면 뭐든지 들어주시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정말 솔깃한 제안이다. 안 그래도 이 노예라는 신분이 나를 붙잡았는데 그걸 단번에 풀어줄 수 있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프란체를 배신하고 소미레의 편을 들었을 거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녀에겐 심리적 거부감이 생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를 거절하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 이 또한 진의 감정인가?

         

       ‘그래, 이년은 나도 마음에 안 드니까 너의 바람을 들어주마.’

         

       나는 그녀의 제안을 칼 같이 거절하기로 했다. 진의 감정이 느껴진 것도 있지만, 나 좋자고 프란체 데카르트를 혼자 둘 수 없기에.

         

       여기서 내가 그녀를 배신하면 프란체는 외로이 혼자 남겨질 거다. 그럼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

         

       그게 노예 처지가 된 내가 신경 쓸 문제인가 싶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고 마음을 알게 된 이상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를 위해 움직이기로 마음먹었고.

         

       내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데카르트 공녀님의 것입니다. 오직 그분의 명령만을 따릅니다.”

         

       소미레의 눈가에 그늘이 졌다.

         

       “…대단한 충성심이네요. 제국이 밉지는 않으신가요? 데카르트 공작가는 페델리안 제국의 중심축이 되는 가문입니다. 그런 가문의 영애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들진 않으세요?”

         

       그것도 진 바렌베르크한테나 해당하는 말이지, 나는 100만 뮤튜버 김공략이란다.

         

       “의미 없는 질문입니다. 더이상 할 말은 없으신 거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주인님이 기다리실 것 같아서.”

         

       나는 그리 말하고 등을 돌렸다. 소미레가 “잠시만…!” 하면서 부르는 거 같긴 한데, 그냥 못 들은 척 테라스로 나갔다.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던 거니?”

       “소미레라는 사람이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프란체의 미간이 일순 찌푸려졌다.

         

       “…그년이 뭐라고 말하던?”

       “자신의 기사가 되어주면 노예 각인을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정적. 무거운 분위기가 알 수 없는 침묵으로 다가온다. 프란체가 긴장한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그녀는 그만큼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대답했니?”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어째서?”

         

       너를 이 개 같은 세상에서 구해주겠다고 마음 먹었으니까. 누가 와서 내게 바보라고, 병신이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따라서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아직 주인님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으니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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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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