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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3평짜리 방의 한 가운데에 펴진 밥상 위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치킨이 식어가고 있었다.

        

       그 치킨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서 빨갛게 충혈되고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여자가 약간 쉬어버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서 먹어, 예나야. 식겠다.”

        

       “……어, 언니도 먹어.”

        

       혀를 씹을 뻔했다.

        

       언니라니.

        

       평생 입에 담아보지 않은 단어가 마치 괴상한 외국어처럼 느껴졌다.

        

       이예나의 언니, 이예리.

        

       이예나의 핸드폰에는 그다지 자료도 정보도 없었지만, 이예리와 함께 찍은 사진들은 그나마 조금 찾을 수 있었다.

        

       졸업모를 쓰고 서울대의 ‘샤’자 앞에 선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이예리의 사진처럼, 이예리의 독사진도 몇 장 저장되어 있었고.

        

       셀카 한 장 없는 사진첩에서 이예리가 차지하고 있던 비중을 고려할 때, 이예나와 이예리는 꽤 가까운 사이였을 거라고 추측했었다.

        

       그래도,

        

       지난 6개월 동안 특별히 연락은 없었다 보니, 형제들이 그렇듯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슬로건 하에 각자 알아서 잘 지내는 자매일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너무나 무방비한 상태로 마주치게 되어 버렸다.

        

       대체 이 사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훌쩍.

        

       포크를 집어든 자세로 여전히 얼어붙어있자, 이예리가 다시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려오는 숨이 막힐 듯한 적막 속에서, 드디어 닭다리를 하나 가져간 이예리는 포크 두 개로 능숙하게 살을 발라내어 내 앞에 놓인 접시에 올려놓았다.

        

       “우리 예나, 어렸을 때 언니가 치킨 먹으면 항상 옆에 와서 쪼그려 앉아있었던 거 기억나?”

        

       모르겠어요……. 전 뼈에서 바로 뜯어먹는 게 좋아요…….

        

       “으응……그…랬나? 그랬던 것 같네……?”

        

       “응. 그랬어. 너 유치원도 가기 전에. 뼈 주면 다칠까봐, 이렇게 살 발라서 주고 그랬었는데. 기억 안나?”

        

       “아, 응. 기억 나. 근데 이제 정말, 정말 괜찮으니까 언니 어서 먹어…….”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을 발라서 접시에 올려주는 이예리의 압박에 못이겨, 나는 포크를 움직여 치킨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분명 맛있는데…….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바쁘게 입에 치킨을 털어놓고, 하나 남은 닭다리를 집어들어 이예리의 접시 위에 올려 놨다.

        

       그리고 또다시 발라내진 치킨 살이 전달되기 전에, 바로 닭날개를 하나 집어 내 접시에 올려 놓았다.

        

       “내가 먹을게. 괜찮아.”

        

       “그래. 어서 먹어.”

        

       또다시 흐르는 침묵 속에서, 치킨을 베어 물며 눈치껏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렸다.

        

       ……얼마나 충격적인 몰골이었던 걸까.

        

       거울을 볼 기회도 없이 자리에 앉혀졌지만, 일단 머리가 봉두난발이었다는 건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현관문이 하도 난폭하게 열려서, 몸이 조금. 아주, 아주 조금 움츠러들어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항의를 위해 눈을 찌푸리고 째려본다고 째려본 거였지만, 이예나의 얼굴과 꼬리가 쳐져있는 눈매를 생각해보면…….

        

       -후.

        

       옅은 한숨을 살짝 내쉬다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안아주려 움직이는 이예리를 보고 급하게 멈췄다.

        

       “뜨…뜨겁네! 치킨이!”

        

       ……더 좋은 핑계를 떠올릴 수는 없었을까.

        

       아……제발 화재경보라도 울렸으면 좋겠다. 아니, 불이 났으면 좋겠다.

        

       * * * *

        

       29살, 이예리를 수식하는 단어는 참 많았다.

        

       대형 로펌 변호사.

       서울대 졸업생.

       그리고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학창시절 만인의 첫사랑.

        

       하지만 이예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소중한 동생 예나의 언니라는 점이었다.

        

       어디에서든 훈장마냥 자랑할 수 있는 자녀의 성취에만 관심을 가지던 부모님 밑에서, 대신 업어 키우듯 한 늦둥이 동생.

        

       기저귀를 갈아줄 때조차 방실방실 웃던, 작고 소중한 동생.

        

       훌쩍 커버린 그 동생은 어느새 이예리보다 10센치는 더 커졌고, 동생이 독립하여 자취방에 틀어박힌 때부터 사이가 많이 멀어졌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어른인 척하는 애기였다.

        

       -쏴아아아아

        

       예리는 같이 정리하겠다는 동생을 집어 들어다가 던지다시피 해가며 침대에 앉혀 놓고는, 다 먹은 치킨 상자를 정리하고 포크와 그릇을 씻었다.

        

       그래도 잔소리한 보람이 있는지 설거지 거리를 쌓아 놓고 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그 날 중 처음으로 작게 웃었지만,

        

       어딘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자꾸 부엌 쪽을 힐끔거리며 몰래 바라보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더 자주 와줬어야 했는데.’

        

       ‘전화로 연락받는 거 무서워해도, 조금씩은 연락했어야 했는데.’

        

       ‘더 자주 챙기고, 더 자주……맛있는 것도 먹이고.’

        

       ‘바쁘다는 핑계로…….’

        

       물론, 이예리 본인 외에는 누구도 그녀가 바쁘다는 것이 핑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형 로펌의 3년차 변호사로서, 매주 80시간에서 90시간을 일하며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으니까.

        

       -우우웅

        

       그녀의 평소 생활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핸드폰이 울리며, 화면에 이메일이 떠올랐다.

        

       [이변호사,

        

       요즘 많이 바쁘지요? 고생 많습니다.

        

       이전에 하시던 건과 연결된 사건이 들어왔습니다. 첨부파일 확인하시고, 이변호사가 적절한 후배와 함께 수행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새로운 일이네.’

        

       그릇을 정리하고 ‘네, 알겠습니다’라고 간략히 회신한 이예리는,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동생의 옆에 부드럽게 앉았다.

        

       “요즘 몸은 좀 어때?”

        

       “몸, 괜찮아.”

        

       “언니한테 손목 보여줄 수 있어?”

        

       “아……응, 여기.”

        

       천천히 이예나의 양 손을 가져가 옷을 걷어올린 이예리는, 굳은 얼굴로 잠시 살피다가 다시 소매를 내렸다.

        

       최소한 새로운 상처는 없었다.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예리는 동생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요즘 뭐하고 지내? 만화는 계속 그리고 있어?”

        

       “아……게임, 조금 하고 있어.”

        

       “그 때 하던 그…뭐였지? 나오나?”

        

       “응.”

        

       “재밌어?”

        

       “그냥, 응.”

        

       조금은 눈치를 보는 듯하던 이예나는, 처음으로 살짝 미소지으며 답했다.

        

       이예리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언니가 저번에 알아봤는데, 그거 원래 VR게임이라며?”

        

       “아니야. 키보드로도 할 수 있어.”

        

       “……저기, 저 방송도 VR로 나오나하고 있는 거 아니야?”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의문을 표시하는 이예리.

        

       이예나가 치킨을 시키기 전부터 보고 있던 방송에서는, 한 인터넷 방송인이 전신에 VR 장비를 착용한 채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건 맞는데, 키보드로도 잘 할 수 있어…….”

        

       얼버무리듯 말을 흐리는 이예나를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이예리는, 이내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언니 이제 돈 많이 버니까, 혹시 갖고 싶으면 꼭 말하고. 다음에 언니랑도 같이 나오나 하자. 언니 잘 가르쳐줘.”

        

       -우우웅.

        

       재차 울리는 핸드폰.

        

       [이예리 변호사님,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내일까지 가처분신청서를 넣어야 하는 건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한가요?]

        

       ‘또……새로운 건이네.’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애써 억누른 이예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은 시간이라 너도 쉬어야 될 텐데. 언니가 너무 오래 있었다. 밥 잘 챙겨 먹고, 요즘 밤에 쌀쌀하니까 따뜻하게 입고 자고. 다음에 또 올게.”

        

       “아, 응. 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래, 쉬어.”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자, 화답하듯 손을 흔들며 어색하게 웃는 이예나.

        

       그 모습을 보며, 앞으로는 자는 시간을 더 줄여서라도 주말마다 찾아와야겠노라고 다짐하는 이예리였다.

        

       * * * *

        

       -끼익. 쿵.

        

       흐아.

        

       평생토록 가장 힘든 1시간이었다.

        

       그래도 본의 아니게 처음에 보여준 충격……적인 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제법 잘 살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잘 보여줘서 다행이다.

        

       이젠 안심했을 테니 또 한 6개월은 안 오겠지?

        

       응, 그럴 거야.

        

       ……그러겠지?

        

       원인 모를 불안감을 애써 치우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역시 이렇게 기분이 싱숭생숭할 때는 나오나다.

        

       사제를 죽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라디오로 틀어 둘 도댓의 방송만 빼고 나머지 방송들을 모두 종료하고, 나오나를 실행했다.

        

       부부부캐가 아직 다이아 하위권일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겜을-

        

       《아, 그러면 오랜만에 시참 6인큐 한 번 할까?》

        

       위해 큐를 돌리려던 찰나,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가 이어폰에서 들려왔다.

        

       《경매? 음~ 첫 판은 아까 12승에 건 사람들 중에 추첨할게. 솔직히 좀 불쌍하잖아. 나 믿었을 뿐인데.》

        

       《3판은 할 거니까 너무 불타지 말고. 암튼, 일단 추첨한다?》

        

       더욱더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에, 신속하게 알트 탭을 눌러서 화면을 전환했다.

        

       분명 엄청난 역배였으니까, 생각보다 당첨 확률이 높을 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슬롯머신처럼 빙빙 돌아가는 아이디들을 보고 있자니, 익숙한 아이디에서 화면이 멈췄다.

        

       《오케이, 어디보자. 우선,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님. 귓말로 나오나 아이디 남겨주세요.》

        

       됐다!

        

       됐어!!!

        

       새벽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애써 환호성을 억누르고, 귓말로 부부부부캐 아이디를 보내려던 순간.

        

       《어. 잠깐. 이거 그 분 아니야?》

        

       『그 분?』

       『누구요?』

       『ㄴㄱ?』

       『저거 걔잖아 아따먹』

       『아따먹이 누군데』

       『그 도적충』

         ㄴ 임시차단되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도적 비하 단어 다 밴입니다. 암튼, 이 분 아따먹?님인가 그 분 아닌가? 혹시 지금 보고 계시면 채팅 좀 쳐주실래요?》

        

       화면을 조작한 도댓이, 내가 대답하면 바로 보이게끔 내 아이디를 클릭해서 내 채팅 내역을 화면에 띄웠다.

        

       아.

        

       그렇게 하면.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도적 드가자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앗 이런! 이 게임은 갔네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을 고르신 평행세계의 도댓 선생님은 승급에 성공하셨을까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을 고르신 평행세계의 도댓쌤께선 승급하셨다고 하네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언제 하나요 7트]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언제 하나요 12트]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언제 하나요 35트]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댓쌤 저희 개가 많이 아픈데 도적이 보고싶대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댓쌤 저도 많이 아픈데 저도 도적이 보고 싶어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댓쌔앵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도적이 보고 싶어요…10…9…8…]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얼굴을 그린 아스키 아트)]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단검을 그린 아스키 아트)]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얼굴을 그린 아스키 아트)]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도적 단검을 그린 아스키 아트)]

        

       『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상적인 채팅이 한 개도 없어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친 도적ㅊ…』

       『얘 차라리 아크 방에 있을 때가 더 매너 유저인 거 아니냐?』

       『대체 어떻게 아직도 밴 안 당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퇴금지 부적이라도 끼고 있냐』

       『무빙 하나는 기가 막혔나보네 ㄹ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참이 아니라 부검 컨텐츠잖아요, 선생님.

        

       

       《……채팅, 좀, 쳐보시겠어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먹고싶다 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스 전환 후 첫 편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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