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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아, 그냥은 못 보내지!

       

       삐끗하면 그대로 내 인생을 날려먹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남자 캐릭터들이라면 몰라도, 여주인공 세 명은 내 목숨의 구명줄이 되어줄 것이다. 관계를 잘 다지고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내 삶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소희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착하고 남들 잘 도와주는 인물이었다. 얼굴이 밝게 빛나는 것만 봐도 딱 그래 보이지 않는가. 사실 학교 바깥의 캐릭터이긴 했고, 신소희 루트가 단일 루트로서 받는 좋은 평가와는 별개로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학교 바깥’에 존재하는 캐릭터의 도움을, 언젠가는 받을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하루 정도 몸을 숨기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속으로 그런 계산을 하며 걷고 있는데, 한동안 말없이 따라오던 신소희가 나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그래서, 사준다는 밥은 뭔데?”

       

       아무래도 우리 교복을 보고 부자일 거로 생각했는지, 무심하게 물어보는 척하긴 했지만, 은근히 궁금하긴 한 모양이었다. 하긴, 화영 고등학교에 대한 바깥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화영 고등학교 학생들은 십만 원 밑의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신소희의 그런 은근한 기대감을 깔끔하게 밀어냈다.

       

       “사준다니?”

       

       “……?”

       

       내 말에, 신소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방금 전에는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면서……?”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 그런데 사주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애초에 나는 지갑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 화영 고등학교 내라면 그냥 학생증을 제시하기만 하면 나중에 알아서 집으로 청구되고, 화영 고등학교 밖에선 내가 혼자 다닐 이유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내가 돈을 낼 이유도 없고. 물론 그 전에 바깥에 돌아다닌 적이 없기는 하지만.

       

       ……분명, 내가 아닌 진짜 예사라라면 지하철에서 일회용 교통카드 사는 것도 못 할 것이다. 본인이 직접 돈을 내 본 적이 없으니까. 현금이 어떻게 생기고 카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알겠지만, 지하철 교통카드 판매 기기는 돈은 물론이고 전자기기와도 한참 떨어져 산 사람에게는 크나큰 고비 그 자체였으니까.

       

       “그럼 뭐야, 너희 집에서 먹여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응.”

       

       내 대답에, 나를 열심히 따라오던 신소희의 걸음이 딱 멈췄다.

       

       몇 걸음 정도 더 가다가 신소희가 걸음을 멈췄다는 것을 깨닫고, 나도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니 양손을 카디건 주머니에 쿡 찔러넣은 채로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보는 신소희가 있었다.

       

       “내가 너희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식사에 초대했으니까 그렇게 되겠지.”

       

       그리고 나는 나를 따라오던 유하늘과 이수아도 한 번씩 보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어때? 괜찮지?”

       

       “어? 아, 응. 나는 괜찮은데.”

       

       “응. 나도 괜찮아.”

       

       이수아는 다소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유하늘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표정은…… 아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 집에 초대받은 것이 기쁜 것일까. 하긴, 고등학교 처음 와서 사귄 친구에게 초대받으면 기쁘긴 하겠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오늘 처음 보는 애 집에 가면 엄청 어색할 것 같은데.”

       

       신소희가 아주 지당한 말을 했다.

       

       “가족들도 있을 거 아니야?”

       

       “아, 내 가족들이 있을 거라는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나는 그 저택에서…… 음, 완전히 혼자 사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혼자 사는 거랑 다를 거 없이 살고 있으니까.”

       

       “어…….”

       

       신소희의 말문이 막혔다.

       

       물론 나에게 가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뿐이라는 가족도 피 한방울 안 섞여 있고, 솔직히 가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하나뿐인 수양딸을 대놓고 방치하고 있었다.

       

       “내 가족 만나서 어색할 일은 없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고용인이 몇 명 있지만 먼저 말 걸기 전까지는 절대로 말도 안 걸 거고. 아마 그냥 고급 레스토랑 가서 식사하는 거랑 별로 다를 것도 없을 거야.”

       

       “그, 그러냐…….”

       

       내 ‘가족 없음’ 선언에, 신소희는 차마 나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역시 한국인은 탈룰라 공격에 취약한 법이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더 유리하긴 했다. 나는 적어도 신소희의 신상 정보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 신소희도 예사라처럼 부모님이 한 분만 있었다. 다만 예사라와는 반대로 남아있는 부모님은 아버지 한 분이었고, 부녀간의 관계도 몹시 양호하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CG로는 나오지 않는 여동생도 하나 있었고.

       

       가족을 하나 잃어본 입장에서 가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잘 알 거고, 그걸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라면 얼마나 그 상황에 무덤덤해져야 하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물론 조금 전에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긴 했지만. 뭐 말이 그렇다는 거다.

       

       뭐, 적어도 앞으로 말조심하기에 좋은 정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

       

       “…….”

       

       “…….”

       

       잠깐 기분이 업 된 것 같은 분위기였던 유하늘도, 조금 어색하게 대답했던 이수아도,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내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아니,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그런데 말이야.”

       

       한참을 말없이 걷던 신소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희 집은 언제 도착하는 거냐.”

       

       “아, 그거 말인데.”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길을 잃은 거 같아.”

       

       차로 5분이면 가는 거리라서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는데, 출발한 위치가 달라져서 그런지 사실 나는 아까부터 길을 정처 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큰 저택이 보이지 않는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 거라면 먼저 말을 했어야지!”

       

       결국, 이제 해가 거의 다 져서 제법 쌀쌀해진 밤길 한가운데서 신소희가 그렇게 소리치고 말았다.

       

       *

       

       “……그러니까, 방금 뭐라고 검색했었다고?”

       

       신소희가 이수아에게 물었다.

       

       “에, 아, 그…… ‘마쓰다 백화점’이라고.”

       

       그렇다. 내가 사는 저택의 진짜 제대로 된 이름은 마쓰다 백화점이었다. 물론 진짜로 아직까지 마쓰다 백화점이라는 소리는 아니고, 과거에 이름이 그랬다는 뜻이다.

       

       길을 잃었으면 길 찾기 앱에 주소라도 쳐서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신소희가 울분을 터뜨리자, 나름대로 재계에 대한 지식이 있던 이수아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쓰다 백화점을 입력했다.

       

       ……무슨 등록문화제라더니, 진짜로 지은지 100년은 훌쩍 지난 건물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백화점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작은 2층 저택이지만, 사람 한 명이 살기에는 오버스러울 정도로 큰 이유가 있었다. 

       

       해방 이후 유진 그룹의 창시자가 백화점으로 쓰려고 샀다가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 한가운데 정말로 큼지막한 백화점을 하나 세워버리는 바람에 전쟁 중 용케 살아남은 이 저택은 쓸모가 없어졌다, 라는 것이 인터넷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예사라를 격리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고. 물론 이 건물은 예사라의 재산이긴 했지만.

       

       “백화점이라니, 역시 부자들은 사는 스케일이 다르네…….”

       

       신소희가 감탄하며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유하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사람이 사는 저택치고는 나름대로 벽에 LED 조명을 달아서 밤에도 잘 보이게 만들어 두었으니까. 마치 문화제가 보존된 관광지에 가면 보일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거기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만 우리를 여기까지 안내한 이수아만이 조금 불안한 표정이었다.

       

       “들어가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닫혀 있던 대문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갔다.

       

       “누구…… 아, 아가씨!”

       

       대문 앞을 지키던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이, 나를 보자 놀라 그렇게 외치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먼저 말을 걸지 말라’라는 규칙을 어긴 것에 당황한 모양이지?

       

       “메이드를 불러주시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경호원은 고개만 끄덕이고는 대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에 손가락을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끼익, 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자, 들어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세 사람은 조금 압도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경호원은 차마 그 세 사람을 막지는 못했다.

       

       길을 따라 조명이 있는 정원을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저 앞에서 이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양혜인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아가씨.”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었지만, 양혜인은 나의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늦게 들어와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회장님께 보고했나요?”

       

       “…….”

       

       양혜인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했다는 건가?

       

       뭐, 따로 말이 없는 것을 보면 큰일이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적어도 당장은.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후, 옆으로 비켜선 양혜인을 지나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

       

       양혜인은 내가 지나가자,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따랐다.

       

       “식사 준비는 4인분으로 해 주세요.”

       

       “예, 아가씨.”

       

       평소에는 다소의 감정 변화를 보이던 양혜인이었지만, 세 명의 ‘외부인’ 앞에서는 감정을 완전히 숨기고 행동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저택 문 앞에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경호원 두 사람이 문을 한 쪽씩 잡고 열었다.

       

       “와.”

       

       뒤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커다란 계단 하나가 있는 1층 로비는,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백화점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싶은 모습이었다. 원래 백화점이었으면 있었을 매대는 없어서 다소 휑해 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기는 했다.

       

       양혜인이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 손길을 따라 그대로 코트를 벗었다.

       

       양혜인은 나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세 명의 외투도 그렇게 받아 갔다.

       

       “앗, 저기, 저 혼자서도……”

       

       무려 메이드가 직접 겉옷을 벗겨준다는 것에 다소의 저항감을 보인 유하늘도,

       

       “…….”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나를 따라 하듯 코트를 벗은 이수아도,

       

       “아, 으…….”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신소희도, 모두 결국 양혜인에게 외투를 건넨 형태가 되었다. 네 사람의 외투가 꽤 무거웠을 텐데도 양혜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우리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이더니, 곧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우리는, 솔직히 나 혼자 식사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식탁이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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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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