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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시끄럽구나……]

       

       새카만 동굴 속.

       웅크리던 거대한 몸체가 꿈틀거린다.

       

       새빨간 비늘은 마치 고귀한 광석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며,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홍옥처럼 빛난다.

       

       동굴을 지배하는 거대한 몸체.

       

       가히 50m에 달하는 생명체이자, 마법의 종주, 세계를 만든 드래곤의 자식,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파멸적인 재앙.

       

       레드드래곤.

       레힐리스 아트레이나는 눈을 떴다.

       

       그녀는 매우 심기가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둥지 근처가 소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분명 저번에 경고를 줬을 텐데…….]

       

       그녀는 고귀한 드래곤.

       그 어떠한 종과도 태생을 달리하는 고귀한 몸이니만큼, 직접 행차하는 일이 무척이나 적었다.

       

       그녀는 귀한 몸이니까.

       사소한 일들에 신경을 쓸 여유 따위 없었다.

       

       하는 거라고는 황금이 보이면 부리나케 달려나가 주워서 레어에 고이 모아두고, 지나가는 인간이 보이면 은근 슬쩍 겁을 먹게 하고, 언제부턴가 동굴에 들어온 사슴과 같이 낮잠을 퍼질러 자는 것 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무척이나 바빴다.

       

       아무튼.

       그런 그녀에게 있어 이런 소란은 매우 신경 쓰이기 마련이었다.

       

       처음엔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파도 소리가 저렇게 크게 들리고, 바람 소리가 고막을 때려부술 것처럼 앵앵 대는데 잠이 들 리가 있나.

       

       [후우… 한 번 정리해줘야 겠구나.]

       

       그녀가 거체를 일으키자 곤히 자던 사슴이 깜짝 놀라 튀어올랐다.

       

       레힐리스는 그런 사슴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 진정시켜 주고는, 마법진을 만들었다.

       

       텔레포트.

       물체를 이동하게 만드는 마법.

       

       원래라면 생물한테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매순간 생체 신호가 바뀌며, 그 생물을 구성하는 모든 게 아주 짧은 단위로 달라지니까.

       

       그걸 맞춰서 정확히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건, 그 어떠한 생물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본녀는 다르지.]

       

       다른 누구도 아닌 드래곤.

       그 위대한 마법의 종주이자, 이 세상의 모든 종족들에게 처음으로 마법을 알려준 위대한 종족이다.

       

       그러니 이런 일 따윈 껌이었다.

       

       [흠… 꽤나 멀구나.]

       

       그녀의 레어로부터 족히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져있는 거리. 하지만 그녀의 귀가 밝아서일까, 혹은 저 소리가 그렇게나 시끄러워서일까. 비록 지금은 잠잠해져 있었으나, 레힐리스는 저 소리의 원인이 궁금했다.

       

       [수백 년 전에 소란스럽고 끝인 줄 알았건만….]

       

       그때는 아직 어린 아성체라 겁을 집어먹어 동굴에서 나서지 않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제는 무려 성체가 된 레힐리스였다.

       

       더군다나 드래곤 중 가장 포악하고 강하다는 레드 드래곤이니만큼, 그녀에게 있어서 두려운 건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거대한 자연의 소리가.

       위대한 레드 드래곤 레힐리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본디 드래곤이란 호기심의 생물.

       길가에 떨어진 황금을 줍는 것도 참기는 힘들지만, 그 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이 호기심을 참는 거였다.

       

       레힐리스는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텔레포트를 완성하고,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

       

       [흠…….]

       

       두 생물이 있었다.

       그것도 그녀보다도 무려 수십 배는 더 커다래 보이는 괴물들이!

       

       그 두 시선을 마주한 순간 레힐리스의 몸이 바짝 굳었다.

       

       ‘마, 말도 안돼!’

       

       나보다 더 큰 생물이 존재했단 말인가?

       

       게다가 저 뱀!

       도대체 저 크기는 뭔데?

       

       무슨 지평선에서 지평선 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기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할 것 같았다.

       

       그런 괴물들이 둘이나 있다니.

       게다가 그 신묘한 눈동자들이 흥미롭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레힐리스는 자신이 마치 드래곤 앞에 콩벌레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나, 나는! 자랑스럽고 위대한 드래곤!’

       

       설령 크기가 조금 크다고는 하나!

       

       ‘조금 큰 게 아니라 많이 크지만!’

       

       고작해야 크기가 클 뿐이다.

       덩치는 이 세계에서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커다랗다면 싸움에 있어서 불리한 점만 있을 뿐. 드래곤인 레힐리스의 몸이 50m에 그친 것도 딱 적당한 크기라 생각한다.

       

       그보다 더 크면.

       귀한 황금이 너무나 작아 놓칠 수도 있고, 밥을 먹어도 포만감이 차지 않아 울상을 지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레힐리스의 몸은 그만큼 실용적인 것이다.

       

       ‘싸움은 다르지.’

       

       거기다 자신은 드래곤이다.

       

       모든 생물의 정점!

       고작해야 많이 커다란 뱀과, 이상한 수염을 달고 있는 거대한 미꾸라지와는 궤를 달리했다.

       

       [크, 크흠.]

       

       레힐리스는 어깨를 쫙 폈다.

       그리고는 그 둘을 향해 당당히 이빨을 들이밀었다.

       

       [크르릉! 네놈들은 누구냐!]

       

       그녀가 생각해도 용맹한 외침이었다.

       

       [크흡…….]

       

       [윽…….]

       

       저 두 녀석들이 아무말 못하고 몸을 움찔움찔 떨고 있는 것 또한, 자신이 매우 두렵기 때문에 그런 게 틀림없다!

       

       레힐리스는 자신감을 얻었다.

       더욱 몸을 크게 부풀리고, 입에 위협용 브레스를 모았다.

       

       대부분의 생물이라면 이것만으로 압도적인 두려움을 느낀 채 자신의 발 밑에서 벌벌 떨 터.

       

       [내가 묻고 있지 않느냐! 네 녀석들은 누구냐!]

       

       아아,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인가?

       

       자신의 위엄 앞에서 아무말도 못하고 벌벌 떠는 꼴이라니.

       

       더군다나 저렇게도 큰 뱀이 자신의 앞에서 가만히 있는 것에 레힐리스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역시, 덩치만 컸지 내 상대가 안 되는 군.]

       

       당연하다.

       그녀는 생물의 정점, 드래곤이었으니까.

       

       자신만만한 붉은 눈동자가 둘을 향한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던 그들은, 이내 동시에 격을 해방했다.

       

       [난, 요르문간드.]

       

       [청룡이다.]

       

       물론 그 소개가 레힐리스의 귀에 닿는 일은 없었다.

       

       [에.]

       

       둘이 격을 해방하는 순간, 그녀는 기절한 채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 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기억한 것은.

       

       ‘아, 바다가 맑네.’

       

       풍덩—!

       

       어쩐지 수영하고 싶더라.

       

       

       * * *

       

       

       […….]

       

       요르문간드는 자신의 몸 위에 쓰러져있는 드래곤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더니 둘을 보곤 깜짝 놀라 몸을 발발 떠는 것이, 솔직히 이게 드래곤?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거기다 겁 먹은 병아리처럼 자그마한 몸을 부풀리고 자신만만하게 덤빌 때는, 솔직히 귀엽기만 했다.

       

       갑자기 바닥에 곤두박질 치길래 잡아주긴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무튼.

       일단 드래곤은 그렇다 치고.

       

       [청룡, 너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나?]

       

       [그래. 어느날 눈을 떠보니 이런 곳에 와있더군. 질량도, 크기도, 사람도 완전히 다른 이곳에.]

       

       질량, 크기.

       이건 대충 짐작이 갔다.

       

       이 행성은 크기가 지구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알기로 지구의 둘레는 46,250km 일 터였다.

       

       하지만 이 행성은 그런 지구와 궤를 달리했다. 일단 이 몸을 두 바퀴 휘감을 수 있다는 것도 그것에 속했다. 이 몸은 정확히 재기는 어렵지만 대충 재더라도 수십만 km 그 이상일 터였다. 이 정도 크기라면 지구를 몇 번이고 감아도 남을 크기.

       

       당연히 지구에서 살기엔 한없이 버거운 사이즈였다.

       

       그런만큼 지구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도 다르다?]

       

       [그래. 분명 생김새는 똑같지만… 무언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군. 아, 그들이 악하다는 뜻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본질이 다르다는 뜻이니.]

       

       본질이 다르다라.

       그건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자신의 눈으로 인간들을 본다면, 그 본질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교 대상이 있을 때의 얘기다.

       

       내가 살던 지구의 인류가 어떤 본질을 지녔는지 모르는 만큼, 지금의 내게 그 둘을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정보는 얻었다.

       

       ‘이 세계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 압도적인 질량이 그를 증명한다.

       보통 이 정도 크기의 행성이라면, 그 질량이 매우 압도적이라 중력도 인간들이 버티기엔 불가능할 터.

       

       무엇보다도 이 정도 질량을 지닌 별이라면, 보통 항성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세계가 인공적이라는 걸 증명하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가 버젓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행성 하나를 입맛대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닐 터.

       

       물론 자신도 신적 존재가 되긴 했지만… 아직 진정한 신이라 불리우는 이들에 비해 신격이 모자란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거기다, 요르문간드로도 모자라 사신수까지 끌고 오다니.’

       

       목적이 무엇인 지는 모르겠지만, 무시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조금 더 생각해 봐야 겠군.’

       

       자신을 이곳에 끌고온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지만, 지금은 알아낼 수 없는 정보였다.

       

       그렇게 자신 또한 이곳에 끌려왔다는 사실을 청룡에게 전하고, 요르문간드는 자그마한 드래곤을 업은 채 자신의 동굴로 돌아왔다.

       

       ‘역시 동굴이 편하단 말이지.’

       

       뱀이라서 그런 걸까?

       인간들의 문명에서 지내는 것 보단, 그냥 이런 자연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편이 안정감 있었다.

       

       그렇게 레드 드래곤을 고히 눕혀두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음…….]

       

       졸음을 떨쳐내듯 두 눈을 꿈뻑 거리던 드래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일어났나?]

       

       [히, 히익…!]

       

       눈을 마주치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동굴 구석에 웅크려 몸을 발발 떨었다.

       

       [사, 살려만 주세요! 죄송합니다아!!]

       

       음.

       

       아무래도 겁을 단단히 먹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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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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