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

       떨어지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대로라면 지면에 물이 깔려 있더라도 몸이 터져 죽고 말 거다.

         

        어떻게든 속도를 줄여야 한다.

         

        촤악!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벽면을 잡았다.

         

        촤자자작!

         

        게코 도마뱀일 때의 특성이 아직 남아 있기에, 벽을 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특성은 지금도 통용되는 게 아니었다.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었을 뿐, 벽에 매달리진 못했다.

         

        더, 더 줄여야 한다.

         

        겨우 자라난 꼬리를 최대한 넓게 활용해 벽면에 닿는 면적을 늘렸다.

         

        치이이익!

         

        더럽게 아프다.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가 그대로 마찰열에 노출되고 말았다.

         

        살이 익는 기분, 아니 실제로 익어가고 있을 거다.

         

        고통스럽지만 손과 꼬리를 벽면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떼는 순간, 땅에 떨어져서 죽고 말 테니까.

         

        마찰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손과 발을 번갈아 가면서 벽을 짚었다.

         

        그렇게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며 땅으로 떨어지던 중, 내 손이 무언가를 확 잡아챌 수 있었다.

         

        콱!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떠한 실오라기 같은 것이었다.

         

        짐승의 털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아니면 식물의 줄기인 걸까.

         

        그걸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실오라기 덕분에 잠깐 공중에 매달린 상태가 됐다.

         

        뜨겁게 달궈진 내 몸을 식힐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뚜둑.

         

        물론 그 천운은 오래 가지 않았다.

         

        빠르게 떨어지는 내 무게에 손상이 간 그 실오라기는 금세 끊어지고 말았다.

         

        파바박!

         

        발톱이 실시간으로 갈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벽을 타보려고 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즉사는 면할 수 있을 거다.

         

        쿠웅!

         

        내 작은 몸이 지면에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게에엑!”

         

        엄살 같은 거 부리지 않는 도마뱀인데, 나도 모르게 비명 소리가 났다.

         

        하지만 비명을 질렀다는 건 아직 소리를 지를 힘이 남아 있다는 것.

         

        즉 살아있다는 거다.

         

        [「단단한 피부 LV1」을 획득합니다.]

         

        [「화염 저항 LV1」을 획득합니다.]

         

        어후.

         

        줄 거면 빨리 좀 주지.

         

        …아니지. 또 뺏어갈라.

         

        잘 쓸게요, 상태창님.

         

        【그린 바실리스크 LV6】

        HP:24/75

        MP:25/32

         

        HP가 많이 깎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끝난 것에 감사해야 했다.

         

        속도를 조금만 더 늦추지 못했다면 나는 그대로 도마뱀 패티가 되고 말았을 거다.

         

        마찰열에 노릇노릇 구워져서 마이야르도 엄청 잘 됐겠지.

         

        …씁, 이 지경이 되어서도 먹을 걸 생각하네.

         

        점점 사고방식도 도마뱀이 돼가는 거 같은데.

         

        배가 고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카이만에게 쫓기면서 사용한 열량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꼬리가 자라면서 소모된 열량도 무시하지 못할 거다. 이런 상황에서 열량 보충을 원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평범한 도마뱀과 달리,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그저 그런 생후 3일 차 도마뱀이었다면 게게겍 울었겠지.

         

        배가 고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거 같진 않다.

         

        배고픔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게 있었다.

         

        대체 이곳은 어디인가.

         

        엘리트 도마뱀의 머리로 고민해도 답이 바로 나오진 않았다.

         

        지반이 무너진 후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늪지대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니.

         

        상상도 못 했다.

         

        내가 떨어진 곳에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빛이라고 해도 지금은 밤이라, 겨우 달빛 조금만이 비칠 뿐이었다.

         

        그래도 어두컴컴한 것보단 몇 배나 나았다.

         

        이곳의 전체적인 모습이 대강 보였다.

         

        천장에 달린 종유석. 바닥에 자란 석순.

         

        뻔한 이야기겠지만, 내가 떨어진 곳은 바로 동굴이었다.

         

        미세하지만 바람이 불어왔다.

         

        이 말은 어딘가에 출구가 있다는 뜻일 거다.

         

        질식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날렵하게 생긴 고개를 쓱 내밀어 떨어진 구멍을 올려봤다.

         

        내 보법과 벽 타기라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좋아. 한 번 해보자.

         

        빨간 모자와 콧수염을 달았다고 생각하며 벽을 향해 도약했다.

         

         

        *

         

         

        결과부터 말하자면, 보기 좋게 실패했다.

         

        난 이탈리아 배관공이 아니었다.

         

        차라리 구멍이 일자로 뚫어져 있다면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구조라,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게 불가능했다.

         

        일정 높이 이상은 벽면이 미끄러워서 버티는 것도 힘들었고.

         

        그래도 소득이 없던 건 아니었다.

         

        [「암시야 LV1」를 획득합니다.]

         

        암시야를 얻었다!

         

        물론 벽 타기를 한 것과 하등 관계는 없을 거다.

         

        어두운 곳에 오래 있으니 생긴 거겠지.

         

        그래도 암시야가 있으니 뭔가 든든해진 기분이었다.

         

        누군가 기습을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대비가 되겠지.

         

        본의 아니게 위기 감지도 6레벨이나 찍었고.

         

        이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다 끝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스킬】

        「소룡등천보」「소주천」「십독불침」「백란심법」

        「꼬리 자르기LV9」「질주LV8」「위기 감지 LV7」「꼬리 자르기 LV2」「야생의 눈 LV2」「차가운 피 LV1」「포식 LV1」「미식 LV1」「단단한 가죽LV1」 …….

        __________________________

         

        조금 정돈된 모양의 스킬창.

         

        나는 그대로 스킬창을 노려봤다.

         

        지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었다.

         

        내 스킬 중에 배신자가 하나 있었다.

       

        너 말이야, 너.

         

        「꼬리 자르기 LV2」

         

        꼬리 자르기인 척하는 당신 말이야.

         

        손톱을 들어 꼬리 자르기인척하는 무언가를 툭 건드렸다.

         

        치지직.

         

        「%! 자■□  LV2」

        %!를 자릅니다.

         

        스킬창이 일렁거리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이 바뀐 것보단, 게임 중 에러가 뜬 거 같은 느낌이었다.

         

        기묘한 저 설명.

         

        난 이걸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물갈퀴 걸음이란 스킬을 얻었을 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들에 영향을 받아 물갈퀴 걸음이 큰 물갈퀴 걸음으로 진화하려 했다.

         

        그리고 그때, 이 녀석이 나타났다.

         

        꼬리 자르기인 척하는 이 녀석이 물갈퀴 걸음에 호응했고 그 덕분에 소룡등천보라는 보법을  배우게 됐다.

         

        그다음으로 본 건 카이만에게 쫓겼을 때다.

         

        분명 꼬리 자르기를 시전했는데, 꼬리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잘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영향 때문에 카이만이 날 쫓다가 위 안에 있는 걸 모조리 토해냈고.

         

        게다가 상급 내단이 조각 난 채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시기적절했다.

         

        꼬리 자르기인 척 하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노려봤다.

         

        슬슬 대답하지?

         

        …….

         

        상태창은 아무 말 없었다.

         

        「꼬리 자르기 LV2」

        꼬리를 자릅니다.

         

        꼬리 자르기의 설명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직 내게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건가.

         

        물론 이 스킬 때문에 손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득만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딘가 찜찜했다.

         

        분명 도움이 되는 건 맞는데, 내 통제가 안 되는 무언가와 함께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 스킬의 정체는 대체 뭘까.

         

        확실한 건 단순한 꼬리 자르기는 아니라는 거다.

         

        카이만에게도 확실한 데미지를 준 걸 보면 내 생각보다 대단한 놈일지도 모른다.

         

        “게엑….”

         

        열심히 생각해 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쓸모가 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게겍.”

         

        일단은 데리고 다니자.

         

        다만, 허튼짓하면 바로 버리기로 하고.

         

        스킬을 버리는 방법을 알지도 못하고 데리고 다닌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지만,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내 생각을 읽고 얘가 얌전히 굴 수도 있는 거 아니던가.

         

        꼬리 자르기 조무사에 대한 문제는 일단락됐다.

         

        이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갈 때다.

         

        지금의 내게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일까.

         

        동굴에서 탈출하는 것?

         

        물론 중요할 거다. 그게 제1의 목표다.

         

        그러나 그 전에 선행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주린 배를 채우는 것.

         

        HP가 많이 닳아있고 공복감도 장난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동굴에서 탈출하기 전에 아사하고 말 거다.

         

        적을 만난다면 이길 적한테도 잡아먹힐 테고.

         

        무자비한 사냥꾼, 그린 바실리스크로 돌아갈 때였다.

         

        암시야가 있다지만 먹잇감이 있는지 파악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 사는 놈들은 자연적인 위장색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겐 야생의 눈이 있다.

         

        눈에 힘을 주어 스킬을 활성화했다.

         

        보인다.

         

        무수히 많은 이름과 레벨들이.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 더 자세히 뿐만 아니라 더 넓게 볼 수도 있게 됐다.

         

        내가 있는 곳 반경에는 도합 30마리 정도의 생명체가 존재했다.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스쿠티게로모르파 LV1】

         

        【스쿠티게로모르파 LV1】

         

        【스쿠티게로모르파 LV1】

         

        씁.

         

        아냐.

         

        어차피 레벨 1짜리면 굉장히 약한 벌레일 거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

         

        그런데 스쿠티게모르파?

         

        이름이 왜 저런담.

         

        스파게티 비슷한 맛이 나려나.

         

        커다란 입을 벌리고 녀석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암시야의 레벨이 올라갔다.

         

        [「암시야 LV1」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순식간에 시야가 밝아졌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스쿠티게로모르파】

         

        집 지네라고도 알려진 지네목의 생명체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으며 생긴 것과 달리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입니다.

        다리의 개수는 허물을 벗을 때마다 늘어나며 성체의 경우 평균 30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

         

        잠깐만요.

         

        저거 그거잖아.

         

        그리마잖아!

         

        치이익!

         

        급하게 앞발을 땅에 박아 넣었다.

         

        그리마 수십 마리가 모여 있는 지옥에 대가리를 한 번 걸쳤다가 나왔다.

         

        “키이이이?”

         

        그리마들이 날 일제히 쳐다봤다.

         

        나는 바실리스크 도마뱀이다.

         

        저런 벌레 따위, 내게 아무런 해도 못 끼친다.

         

        첫날 사냥했던 진딧물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물방개처럼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생물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저건….

         

        너무 징그럽게 생겼다!

         

        카이만과는 또 다른 공포였다.

         

        자세히 묘사하면 스스로가 힘들어질 거 같아 최대한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지웠다. 그럼에도 숨이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그리마의 비주얼은 잊기가 힘든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뒷다리만 이용해 뒤로 쓱 빠졌다.

         

        【메가라크네 LV4】

         

        【메가라크네 LV2】

         

        저쪽에 거미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 거미라면 안심이지.

         

        …투스랑 푸스는 잘 도망쳤으려나.

         

        어차피 영양가도 없는데 잡아먹을 생각도 안 했겠지.

         

        거미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갔다.

         

        나는 거미들의 아이돌이니까.

         

        그린 바실리스크 교의 교도들을 모을 기회였다.

         

        몰래 내 배를 채울 수도 있는 거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

        【메가라크네】

         

        이름은 거대한 거미라는 뜻입니다.

        몸길이만 55cm로 굉장히 거대한 종이며, 거미가 아닌 바다 전갈로 분류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키에에에엑!”

        “게에엑!”

         

        …거미가 아니었다?

         

        아니, 생긴 건 완전 거미잖아.

         

        이름도 거대한 거미라면서.

         

        이번에도 발을 살금살금 뒤로 뺐다.

         

        그래도 적대적인 관계가 되진 않았으니 안심이다.

         

        어디, 좀 귀여운 녀석들 없나.

         

        귀뚜라미처럼 작고 맛있는 걸로.

         

        그렇게 슬금슬금 뒷걸음질 칠 때였다.

         

        툭.

         

        무언가 내 발에 걸렸다.

         

        7레벨을 달성한 위기 감지가 사이렌을 울렸다.

         

        위이잉.

         

        고개를 들면 안 될 거 같은 기분.

         

        그러나 호기심을 참을 순 없었다.

         

        【아르트로플레우라 LV17】

        【상태】

        「언짢음」

         

        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르트로플레우라】

         

        몸길이는 최대 2.6m 넓이는 55cm 무게는 50kg까지 자라는 가장 거대한 노래기입니다.

        강한 독을 품고 있으며 육식보단 초식을 선호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보랏빛에 가까운 무지갯빛 껍질. 카이만에 버금간다고 생각되는 두꺼운 갑주. 노래기 주제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치익.

       

       입에서 흐르는 저 부식성의 침이 위압감을 한층 더 증폭시켜 줬다.

         

        절대 겁먹은 티를 내면 안 된다.

         

        원래부터 이 동굴에 있던 것처럼, 도마뱀이 아닌 절지동물인 거처럼 행동해야 한다.

         

        “시아아아앗!”

         

        통하지 않았다.

         

        절지동물이 두 발로 서 다니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 듯했다.

         

        아트로플레우라.

         

        거대한 노래기.

         

        “게에에엑!”

         

        내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열 받네.

         

        질주를 활성화.

         

        꼬리 자르기까지 쓸 각오를 하며 비기를 사용했다.

         

        투다다다다닷!

         

        그건 바로 줄행랑이다.

         

        아니, 전략적인 후퇴라고 봐야 할 거 같다.

         

        운 좋은 줄 알아, 노리개.

         

        내가 HP만 많았어도 둘 중 하나는 오늘 제사상에 올라갔을 거다.

         

        “게겍!”

         

        쿠구우우우!

         

        …따라오지 마. 그냥 해본 말이야.

         

        구우우우우!

         

        나 상급 내단 꿀꺽한 도마뱀이야. 이러다가 진화하면 후회할걸?

         

        쿠과가가각!

         

        미안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발 쫓아오지 말아 주세요.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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