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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외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론단 외곽 산림지대로 나가게 되었다.

         

       나와 무연이라는 여기사 단둘이서!

         

       평소였다면 여자와 함께 나올 수 있어 기분이 좋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 향하는 곳은 외신이 있는 곳.

         

       잘못하면 죽음보다 더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무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것도 슈퍼 겁쟁이 모드의 효과인 걸까.

         

       그에 비해서….

         

         

       “후우,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잇, 아 혀 씹었다. 아파. 으으.”

         

         

       내 뒤에서 스토커처럼 걸어 다니는 무연은 예전의 나를 방불케 할 정도로 벌벌 떨어댔다.

         

       솔직히 아가르타와 마찬가지로 사냥꾼과 함께 외신을 사냥할 거로 생각했던 나도 그와 떨어진 건 뼈아팠지만, 같이 함께 할 인원이 붙는다는 소식에 그나마 반겼었다.

         

       그런데 하필 함께 하는 파트너가 겁쟁이라니.

         

       왜 이런 사람이 기사단에 있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감옥 때를 생각해보면 도끼로 지면을 부숴버릴 정도로 신체 능력 하나는 굉장했던 것 같은데.

         

       상태가 이래서야.

         

       뒤를 힐끗 바라보자 무연이 흠칫하며 놀랐다.

         

         

       “가는 길 이쪽 맞죠?”

         

       “네, 네네. 그쪽으로 쭉 가면 된다고 약도에 그려져 있어요.”

         

         

       가는 김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외신 잡으러 가라고 했는데 저희 두 명이서 가는 거는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불만을 슬쩍 풀어보았지만, 역시 뻔한 답변만 다시 돌아올 뿐이었다.

         

         

       “기사단에 관련된 사항은 외부인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리고 그렇게 계위가 높지 않은 녀석이니 걱정하지 마라, 라고 하시기도 했고….그, 그으

         

       범죄자면서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신지….”

         

         

       범죄자.

         

       그래, 솔직히 맞는 말이긴 했다.

         

       내가 아니긴 하지만, 레이단 탄튼에게 붙은 꼬리표가 있는데 주변 시선이 고울 리가 없지.

         

       저쪽의 시선에선 우린 외신을 잡으면 좋고 잡지 못하면 상관없는 그런 존재다.

         

       그래서 이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이런 불합리한 조건과 내 목을 맞바꾼 것이 아니겠나.

         

       이번에도 외신에서 살아남아 자유로운 신분을 얻어 기사단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부스슥.

         

         

       “헛.”

         

       “…왜 그러세요?”

         

         

       그러고 보니까 시간이 좀 많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무연에게는 말 못할 사정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굴리던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죄, 죄송한데 볼일 좀 보고….”

         

       “아, 으음 그렇군요. 제가 생각을 못했네요. 그, 편하게 하세요….”

         

         

       괜히 부끄럽네.

         

       차라리 나도 남자가 붙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아까 옥구슬에서 들렸던 물음을 생각하니 별로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이게 낫지.

         

       그렇게 근처 아무 수풀로 들어가서 무연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녀를 등진 채 고개를 수그렸다.

         

       볼일을 보러 온 것은 아니었다.

         

       호주머니에 박혀서 지내고 있는 소외신을 잠깐 꺼내주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살포시 꺼내자, 소외신이 퐁 튀어나왔다.

         

       그대로 날아서 내 얼굴에 달라붙더니, 얼굴을 비벼대는 게 얼마나 갑갑했을지 체감이 되었다.

         

         

       집게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잡아서 살포시 떼어낸 뒤에 손바닥 위에 올렸다.

         

       처음에는 얼떨떨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예전의 세상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랑말랑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많이 답답했지? 미안해, 계속 꺼내주지 못해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소외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빵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애가 말을 안 하네.

         

       지하감옥에 있었을 땐 어눌하게 말은 하긴 했었는데.

         

       저번에도 아무 말도 안 한 걸 보면 리더 소외신이 무리에서 떨어지면 약해진다고 했던 말이랑 연관이 있는 걸까.

         

         

       그 전이랑 다르게 묘하게 차분한 것도 그렇고.

         

         

       “타, 탄튼 씨?”

         

       “네.”

         

       “이제 슬슬 가셔야 하는데….”

         

         

       고개만 뒤로 돌려보니 무연이 조금 초조한 표정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짬 내서 꺼내주려고 했던 거라 어쩔 수 없나.

         

         

       그렇게 생각하며 소외신을 쳐다보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으, 윽!”

         

         

       이, 이럴 수가.

         

       세상 그 어떤 동물을 데리고 와도 이 정도로 반짝반짝한 눈으로 쳐다볼 수 있는 개체는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놀고 싶다는 의미가 잔뜩 담긴 눈빛 공격을 받고 있으니 지금 이 눈빛을 무시했다가는 천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안 돼…. 이제 들어가야….”

         

         

       눈빛 공격으로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소외신이 아예 푸드덕 날아올라서 아예 넥라인에 매달렸다.

         

       심지어 그대로 몸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그, 그래도 안….”

         

         

       폭력적인 귀여움에 뇌가 순응하려던 것을 억지로 저항하며 부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보고 말았다.

         

         

       옷에 폭 파묻고 있던 얼굴을 슬쩍 들어서 촉촉해진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소외신을.

         

       그대로 얼굴까지 갸웃하는 모습을.

         

         

       “아.”

         

         

       결국 나는 내 패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무연 씨… 죄송해요, 바지 끈이 조금 문제가 생겨서….”

         

       “아, 그런 거였구나…. 최대한 빨리 해결해주세요.”

         

         

       무연한테는 조금 미안하게 됐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건 내가 아니라 그 어떤 누구를 데려다 놔도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매치업이었다고!

         

         

       내 말을 들은 소외신이 환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날아올라서 내 뒷목을 온몸으로 안았다.

         

       …그래, 너만 행복하면 됐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무려 그 론단의 기사를 기다리게 하고 있는 거 아니야.

         

       더 웃긴 사실은 또 그 기사가 죄인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이고.

         

         

       뭘까.

         

       묘하게 이 갑과 을이 반전된 거 같은 기분은.

         

         

       수풀에서 무연을 쳐다보니 초조한 것처럼 보였다.

         

         

       나쁜 생각이긴 하지만, 잘하면 잘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남편의 외도를 목격해도 한마디도 못한 채 묵묵히 떠안는 아내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내가 그 정도의 인간은 아니지만 말이야.

         

         

       소외신의 턱을 손가락 끝으로 긁어주고 있으니, 아까보다 더 초조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제 다 끝나셨나요? 진짜 가야 하는데….”

         

         

       이제 진짜 슬슬 가야겠지.

         

       소외신도 이번에는 만족했는지 그대로 내 호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간 뒤 손 따봉을 해주었다.

         

         

       그러자 점점 주머니가 가라앉더니 이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여태까지 알 수 없었지만, 같이 있으면서 깨닫게 된 소외신의 능력 중 하나였다.

         

       이걸로 아가르타나 다른 기사들에게 들키지 않은 거겠지.

         

       냄새는 숨기지 못하는 건지 사냥꾼에겐 들켰지만 말이다.

         

         

       “탄튼 씨…?”

         

       “네, 막 끝났어요! 나갈게요.”

         

         

       더 있다가는 괜히 의심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뛰어나갔다.

         

       나를 발견하자 무연의 표정이 아까보다 훨씬 한결 나아 보였다.

         

         

       “대답이 없길래 도망가신 줄 알고 문양을 발동하려고….”

         

       “저는 목숨이 한 개에요.”

         

         

       내 손에 찍힌 곰 인형 문양이 무연에게도 있었는데 이걸 사용하면 계약 사항과 관련해서는 절대적으로 준수된다고 한다.

         

       죽으라는 명령은 듣지 못하지만 내가 외신을 사냥할 마음이 없거나 도망치려고 한다면 거기에 관련한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죄송해요, 이제 다시 출발해요.”

         

       “네….”

         

         

       무연이 살짝 뒤로 숨으며 쉐도우 파트너처럼 내 뒤를 걷기 시작했다.

       

       

         

       “다음 갈 길도 알려주고요.”

         

       “아, 아앗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길을 걸은 지 몇 분이 지나고.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고 걷고 있는 데다가 어째선지 불편한 분위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찡찡대던 아가르타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다니.

         

         

       “무연 씨?”

         

       “….”

         

       “무연 씨?”

         

       “아, 네에. 무슨 일이신가요?”

         

       “저희가 사냥할 외신 ‘정원사’에 대해 좀 알려주시겠어요.”

         

         

       어떤 외신을 사냥할 건지 듣긴 했지만,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했다.

         

       감시자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편법으로 쓰러뜨린 것에 불과하니까.

         

       애초에 못 이기는 보스를 기믹으로 파훼한 느낌이 강했다.

         

       일단 말은 하긴 했는데 같이 있으면서 짧게나마 느꼈던 무연 성격상 말을 잘 못할 것 같았다.

       

       

         

       “저기…천천히 알려주셔도….”

         

       “저희가 맡게 된 외신 정원사는 사냥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긴 했지만 그리 위협적인 외신은 아니에요.

       

       왜곡 현상은 없고 산림지대에 똬리를 튼 경우로 불편하긴 해도 진입과 퇴장이 간편해 탈출하기는 어렵지 않죠. 그러나 심부에 진입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편에 속해요. 하지만 산림지대 밖으로 나오진 않아서 방치되었어요.”

       

       “어, 으음.”

         

       “도, 도움이 되셨나요?”

       

       

        

       순식간에 입 밖으로 나오는 말에 압도 당하고 말았다.

       

       

        

       “도움이 되었네요.”

         

       “다, 다행이다. 다른 기사 선배님들 발목을 잡지 않을려고 공부 많이 했거든요.”

       

         

       후드 밖으로 튀어나온 분홍 머리카락을 살짝 귓등으로 넘기며 붉은 볼이 빛났다.

         

         

       “탈출은 쉽지만, 정원사의 근처로 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에요…. 근처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위험도는 급증하니까요.”

         

         

       다가가는 게 힘들 다라.

       

         

       “대체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 건가요?”

         

       “그건, 저도 잘, 모, 모르겠어요. 심부까지 들어간 인원은 정보도 남기지 못한 채 전부 사라졌으니까요.”

       

          

       나도 정보가 없으면 함부로 움직이기가 조금 쉽지 않았다.

         

       슈퍼 겁쟁이 모드도 완벽한 편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무섭지 않게 현실을 치환시켜줄 뿐.

         

       이건 어디까지나 스킨 모드였고 내포된 힘은 변하지 않는다.

         

         

       감시자 정도로 말이 통하면 좋겠는데.

         

       외신의 태도에 따라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변하겠지.

         

         

       현재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외신과 대화가 된다는 점.

         

       외신이 나에게 호의적이면 소위 말하는 ‘날먹’이라고 하는 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외신이 나에게 적대적일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외신으로 만들어진 검이라고 해서 나한테 피해를 못 주는 게 아니듯, 외신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나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무연의 말을 정리해보았을 때,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외신이 있는 곳에 거의 다 왔어요.”

         

         

       무연의 말에 앞을 보았다.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는지, 녹이 슬어 있는 철창과 그것들을 기둥 삼아 징그럽게 자라있는 줄기가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이 철창 너머로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러한 분위기였다.

         

         

       “여, 여기서부터는 진짜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탄튼 씨? 그, 그거 읽으시면 안 돼요!”

         

         

       대문으로 보이는 곳 근처를 둘러보다가, 뭔가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고 나도 모르게 그 글귀를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원사의 정원’에 대해서 알아볼까 해요!

         

       정원사의 정원은 정원사가 지키고 있는 곳으로써 인간들이 발을 잘 들이지 않고 있어요.

         

       정원사가 조금 외로울 것 같은 기분도 드네요 ㅠㅠ

         

       어쨌든! 정원사의 정원은 들어가는 게 힘들어서 사람들이 소위 ‘죽음의 땅’이라고 부르지만, 한 번 들어가면 나오는 건 오히려 쉽다고 해요!

         

       그 안에 정원사가 아끼는 어떤 ‘식물’ 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없어서 입증할 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정원사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씨발.

         

       진짜 이 글귀 적는 외신은 머리가 텅텅 빈 게 분명하다고, 나는 굳게 믿기로 했다.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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