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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만18세부터 25세의 어린 인재들이 다니는 왕립 학술원.

       누군가는 팬드래건 아카데미라고 더 자주 부르는 아카데미는 일종의 사관학교와도 비슷했다.

       사회적 신분은 관계없이 오로지 학도이자 생도일 뿐.

       바깥에서 무얼 하고 왔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범죄자는 예외지만.

         

       어찌됐건 이러한 특성이 있다 보니 아카데미에는 무수한 인간군상이 모이며, 신분의 한계를 뚫기 위해 입학한 여러 학생도 즐비하기 마련이었다.

       허나 아카데미 시험은 어렵기 그지없으며, 설사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졸업하는 것도 어렵다.

       학점 이수는 물론이지만, 일정 특기 과목에서 평균 점수를 획득하지 못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기준치 미달이라면 퇴학당하는 경우도 흔한 편이니.

         

       평균 졸업자 10%.

         

       천명이 입학할지언정 졸업할 때는 단 100인이 졸업하는 드문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졸업만 한다면 왕국의 고위직까지 올라갈 길이 열리는 격이니, 귀족이라 한들 아카데미를 쉽게 그만두지 않는 실정이었다.

         

       뭐, 이토록 어렵다고 한들, 입학생들은 겁을 먹지 않았고, 도리어 자신감이 흘렀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라면 무조건 졸업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도 그럴 게 그들은 ‘재능’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입학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릴 때부터 영재나 수재 소리 듣던 이들이 대부분이란 뜻.

       그러니 그들은 오만하게도 퇴학당하리란 걱정 따윈 없었다.

         

       …다만 최고가 되리란 자신감은 현저히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학기에는 역대급 천재란 이들이 대거 있었으니까.

         

       예를 들자면.

         

       “저 여성이 바로 그 마법사인가?”

       “독학만으로 주문세계를 열었다죠?”

       “천재로군.”

         

       금발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여성.

       마치 신비 종족인 요정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움이었으나, 그러한 아름다움보다 더욱 돋보이는 건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물빛 물결이리라.

         

       마력.

         

       몇몇 인간만이 타고나는 마법사의 재능.

       타고나는 것만으로도 귀하기 그지없으며, 자연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린 윈들러.

         

       천민 출신이며 이번 입학생 중 단 열 명밖에 없는 마법사 중 한 사람.

       허나 그 재능이 열 명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이기에 모두가 그녀를 주목했다.

       전날 나온 신문 내용이 사실이라면 무려 그 갈라하드 공작이 수양녀로 삼았다고 하니….

         

       이렇듯 그녀에게 시선이 모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리라.

         

       “…으응.”

         

       허나 남들의 시선을 즐기는 성정은 아닌 것인지. 아이린 윈들러는 시선을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러자 자동적으로 다른 이들의 시선은 또 다른 인물들에게 향했다.

         

       용병왕의 제자.

       검공가의 장남.

       재상가의 차녀.

       대상인의 아들.

       신비종족의 후예들.

         

       확실히 말해 저들이야말로 이번 학기 최대의 대어가 아닐 수 없으리라.

         

       “이런 말을 하는 건 역대 기수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번 기수는 확실히 말해 풍요롭다 못해 엄청나군.”

       “누가 아니랍니까.”

       “왕실에서도 벌써 주목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음음.”

       “그래도, 저런 쟁쟁한 이들 중에서도 이번 학기 수석은 저자가 아닐까 싶군요.”

       “확실히….”

       “동감합니다.”

         

       쟁쟁하기 그지없는 인재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인물상이 있다.

         

       고고하기까지 한 분위기와 수려한 외모.

       압도적인 분위기로 무장한 남성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각상을 연상케 한다.

         

       로엔 드미트리 드 라이오넬.

         

       대공가의 서자. 하지만 서자란 신분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천재.

         

       그 실력은 이미 웬만한 기사와 맞먹는다 알려졌으며, 투기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아이린 윈들러를 향하던 시선이 신비함과 놀라움이었다면 로엔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희미한 질시와 경탄이 반반씩 담겼다.

       서자란 신분을 가진 그를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는 저열함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았고.

         

       “—–.”

         

       한데도 그의 얼굴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안 보였다.

       인간미가 없는 얼굴은 언뜻 차가워 보였다.

       마치 ‘난 너희와 다르다’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듯.

         

       그것이 아마 그를 좀 더 비호감이 들게 하는 요소일 테지만, 평범한 이들은 그를 동경하기 바빴다.

         

       고귀한 핏줄과 압도적인 재능. 그동안 쌓은 경력과 수석 입학이란 성과까지.

         

       평민을 비롯해 귀족까지 그에게 동경을 품은 눈길을 보내는 자들은 상당한 바였다.

         

       [지금부터 입학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생도 여러분은 자리에 착석하여 주시고, 보호자 및 내빈 여러분 또한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다시금 말합니다. 지금부터 입학식을 거행하니, 보호자 및 내빈 여러분은 부디-!]

         

       무수한 파란을 예고하는 쟁쟁한 생도들을 뒤로 하며 드디어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 * *

         

       ‘…떠, 떨린다.’

         

       아이린 윈들러.

       그녀는 애써 참고 있지만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이러한 관심이 상당히 불편한 사람이다.

       마음 같아선 아카데미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다니고 싶지 않고,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놀고먹고 싶은 게 다인 애완 다람쥐 같은 여성.

         

       그게 아이린 윈들러였다.

         

       허나 아이린 윈들러는 이 아카데미를 다녀야만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와아, 아린아, 이것 좀 봐! 사람이 정말 많아, 우와…!]

         

       ‘떠들지 마. 나 지금 긴장해서 토할 것 같으니까.’

         

       [아린이는 너무 소심해서 그래, 상황을 즐기면 되는데.]

         

       ‘내가 너 같은 인싼 줄 아니?’

         

       [인싸가 뭐야?]

         

       ‘딱 너 같은 애.’

         

       […아린이는 가끔 못 알아들을 소리만 하는 것 같아.]

         

       아이린 윈들러의 뇌리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음성.

       그 음성의 정체는 무려 7년간 그녀와 함께한 어느 여성의 음성이며, 동시에 이 몸.

       그러니까 현재는 그녀가 차지한 ‘본체’의 주인이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정신분열증이 아닌가 의심하겠지만, 아이린은 정신분열증이 아니었으며 그녀에겐 자신이 원래 살고 있던 세상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반드시 돌아갈 필요가 있으며, 이 몸 또한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망할 천사, 반드시 찾아내서 그 날개를 다 뽑아버리고 말 거야!’

         

       저를 이 세계로 끌고 온 장본인을 떠올리며 아이린은 이를 갈았다.

         

       [근데, 아린아. 이제 와서 의심하는 건 아닌데, 정말 이 아카데미에 네가 말한 <천사>가 있는 거야?]

         

       ‘있어, 무조건! 원작 막바지에서 여주를 돕기 위해 등장하니까.’

         

       [아아, 그 공작님의 친딸이란 사람?]

         

       ‘그래.’

         

       [흐음, 공작님의 친딸이라,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다, 히히.]

         

       ‘…넌 생각이 단순해서 좋겠다.’

         

       자신은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지금까지는 원작대로 진행되고 있어, 그러니 여주도 무조건 등장할 거야.’

         

       지금껏 확인했지 않은가.

       원작의 내용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음을.

       그러니 마지막 순간 천사를 잡아 천사를 제압하든, 혹은 협박해서라도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동거를 끝내고 서로가 해피엔딩으로 나아갈 방법을 말이다.

         

       ……다만.

         

       ‘…왜 남주가 여기 있는 걸까?’

         

       아이린 윈들러가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그건 다름 아닌 저 한쪽에서 고고하게 기세를 발산하는 어느 남성 때문이었다.

         

       로엔.

       원작의 남주이자, 원래 같으면 아카데미가 아니라 대공가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대공가를 젊은 나이에 차지했을 철혈의 대공.

         

       한데 원작과 달리 로엔은 피의 반란을 일으키는 대신 수도에, 그것도 아카데미에 입학한 상태였다.

       이를 보며 아이린은 속내가 복잡해진다.

       원작과 다른 흐름이 어떠한 나비효과를 안겨줄지 모르니까.

         

       스윽.

         

       흠칫!

         

       일순 아이린의 시선을 알아차린 건지 로엔이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고, 아이린은 재빨리 시선을 회피하듯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칼날 같은 시선이 이어지는 건지 정수리 부근이 따끔따끔하지만, 쳐다보면 안 된다.

         

       [아린이, 겁쟁이.]

         

       ‘닥쳐.’

         

       [히잉, 아린이 나쁜 말 해.]

         

       …역시 짜증나는 애다.

       다섯 살이나 어린 게, 확!

         

       ‘…아, 나 꼰대 아닌데.’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애를 7년 동안 상대하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성격이 조져지는 느낌.

       하루라도 빨리 원래의 착한 성격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천사를 잡을 그날이 오길 기원했다.

       망할 깃털을 모조리 다 뽑아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도.

         

       ‘내 수능 진짜…!’

         

       수능 전날 고3을 이 세상으로 데리고 온 천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수능생의 분노는 한없이 깊고도 뜨거웠다.

         

       [어, 아린아, 저것 좀 봐! 선생님들이야,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라 교수님들이야. 말은 좀…. 어라?’

         

       아이린 윈들러는 순간 눈을 끔뻑거렸다.

       눈앞에 단상.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하는 교수들을 확인하던 중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남다른 이가 있어서.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순정만화 속에 왜 톰 하디가 있지…?’

         

       정확히는 톰 하디가 영화 속에서 연기했던 어느 마피아 역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는 그녀만의 착각이 아니란 것처럼 사람들은 침묵했다.

         

       ……일순 장르가 바뀐 것처럼.

         

       * * *

         

       ‘…옷을 잘못 입었나?’

         

       최대한 단정한 복장을 갖추고 오라기에 맞춘 연미복.

       허나 파티도 아니니, 대충 어떤 옷을 입을까 싶다가 대충 양복 비스름한 걸 입었다.

       대충 깔끔하기도 하고 단정한 복장이니까.

         

       거기다 추가로 향유까지 머리에 발라 넘겨주니 제법 괜찮다 자부했다.

       이 정도면 지저분한 건 아니었고, 첫 인상도 나쁘지 않을 터이니.

         

       다만 좀 조인다.

       살이 쪄서 그런 게 아니라, 요새 근육이 좀 더 커져서 그런지 팔뚝부터 가슴까지 딱 달라붙는다.

       옷을 만든 재단사의 솜씨가 좋았는지 다행스럽게도 신축성이 있었고. 터지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 미묘하다.

         

       ‘아니, 진짜 편한 복장일 줄 몰랐지, 나도….’

         

       딴 인간들은 그냥 정말 깔끔한 복장이다.

       드레스니 연미복이니 하는 걸 입은 양반은 드물었고, 대충 가벼운 옷을 입은 이들이 대부분.

       그가 너무 과도하다는 느낌이 아닐 수 없었고, 이게 느낌이 아니란 걸 증명하듯 그가 단상에 서니 일순 침묵이 흐른다.

         

       ……집에 돌아가면 이거 당장 버려야겠다.

         

       ‘후딱 끝내자.’

         

       이한은 정면을 바라봤다.

       그중 로엔이란 놈에게만 시선을 집중했다.

       이유는 하나다.

       놈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고, 시선이 중구난방 퍼지는 것보다 한 놈만 보는 게 도리어 더 시선이 안정되기에도 좋았으니까.

         

       그렇게 이한은 대충 적어온 대본을 펼치며 간단히 제 소개를….

         

       “흥, 좌천된 기사 주제에.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미는군.”

         

       쩌적…!

         

       일순, 강당 안은 다른 의미로 침묵이 돌았다.

         

       또한 저가 떠들고도 너무 시끄러웠음을 인지한 어느 생도는 제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그걸 보며 이한은 활짝 웃었다.

         

       ‘…그래, 나답지 않게 뭔 대본이냐.’

         

       나답게 가자, 나답게.

         

       콰직.

         

       연단이 부서졌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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