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


    ​
    ​
    과일은 다양한 방법으로 제 씨를 널리 퍼뜨린다. 리안이 쪼개버린 과일 또한 그런 종류 중 하나였다. 다만, 이 과일은 달콤한 냄새가 아니라 생고기와 비슷한 냄새로 동물을 유혹한다.
    ​
    ​
    이 과일은 딸기처럼 씨앗이 과육에 매우 많이 박혀있어 한 입이라도 동물의 입속을 통해 들어가는 게 이득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다 많은 동물을 꼬실 수 있도록 생고기와 비슷하게 진화한 것이다.
    ​
    ​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주방에 존재하지 않았다. 
    ​
    ​
    ‘도대체,도대체…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
    ​
    노아는 떨리는 시선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
    ​
    그의 희생을 묵인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겠다고 도망쳐버린 그녀지만 피범벅이 된 채 퉁퉁 부어오른 손으로 청소를 하는 리안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
    ​
    “나 똑바로 보고 말해. 정말 벌레의 짓이 맞아? 그런 벌레가 있다면 당장 그 벌레를 찾아야 해. 안 그러면 아이들이 위험할 테니까.”
   “어,그게…사실은…”
    ​
    ​
    진지한 노아의 시선에 당황한 리안은 술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
    ​
    문제는 리안이 너무 당황하는 바람에 주방에 도착한 이후부터 이야기를 방대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
    ‘아, 이게 아닌데!’
    ​
    ​
    리안은 울상을 지으며 주방에서 유리병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를 중단했다. 
    ​
    ​
    ‘요점, 그래 요점만 말하자.’
    ​
    ​
    개그 세계에선 말이 길어지면 대다수의 사람이 말을 늘어놓는 사람을 무시하고 떠난다. 그렇기에 리안은 습관적으로 말을 줄이고 요점만 늘어놓기로 했다. 
    ​
    ​
    “후우…간단히 말해서 주방에 도착했더니 주방이 어질러져 있었어. 주방을 정리하던 중에 라니아님이 찾아오셨고 주방에 숨어있던 침입자를 찾아내셨어 그리고..”
    “뭣?! 자,잠깐! 침입자라고?”
    “아,응. 팔이 이렇게 크고 몸이 홀쭉한 사람…? 아, 맞아 광대뼈가 엄청나게 튀어나와 있더라.”
    ​
    ​
    그 말에 노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
    팔이 기이할 정도로 두껍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우스꽝스럽게 생긴 남자, 노아는 그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
    ​
    쏟아지는 빗소리, 빗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흥정 소리, 누군가의 비명이 숲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메아리처럼 귓가에 스며들었다. 
    ​
    ​
    주변 온도가 꽤 떨어진 탓에 노아는 얼어붙은 듯 통증까지 느껴지는 손을 말아쥐었다. 네로와 체온을 나누며 어떻게든 질긴 목숨을 이어갔다.
    ​
    ​
    “쯧, 여긴 언제나 역겹고 더러워.”
    ​
    ​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체온을 유지하던 그때,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아는 네로를 품에 더욱 끌어안으며 조심스럽게 시선을 좁은 우리 밖으로 돌렸다.
    ​
    ​
    괴이할 정도로 부푼 팔과 비쩍 마른 몸, 아래에서 올려다봐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
    ​
    “어서 오십시오.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
    ​
    도반은 고위 흑마법사만 사용할 수 있는 로브를 두르고 있었기에 노예 상인이 비굴한 얼굴로 달려와 두 손을 파리처럼 문질렀다.
    ​
    ​
    “흐흥,날 모르나?”
    “예? 아 -…도반님이셨군요!”
    ​
    ​
    노예 상인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툭 튀어나온 광대뼈를 흘긋 바라보았다. 
    ​
    ​
    “그럼 내가 찾는 물건이 뭔지도 알겠네.”
    ​
    ​
    노예 상인은 등 뒤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손속에 자비가 없고 잔혹한 실험을 즐기는 미친 흑마법사. 
    ​
    ​
    노예 상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도반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
    ​
    “아! 그,그럼 당연히 알고 있죠! 이리 오시죠. 최고 등급의 노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
    노예 상인이 허리를 접어 버릴 듯 깊게 고개를 숙이며 양팔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런 비굴한 태도가 나쁘지 않았는지 도반은 별말 없이 노예 상인을 따라가려 했다.
    ​
    ​
    도반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가축처럼 목줄이 매여 질질 끌려가던 노예 한명이 도반의 앞으로 쓰러졌다.
    ​
    ​
    힘줄이 잘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데다가 바닥이 질척거려 넘어진 것이다.
    ​
    ​
    철퍽.
    ​
    ​
    바닥에 고인 흙탕물 위에 비쩍 마른 노예가 쓰러졌다. 노예는 물속에서 건져 올린 생선처럼 힘겹게 숨을 쉬며 도반을 올려다보았다.
    ​
    ​
    “….”
    ​
    ​
    도반은 말없이 제 구두와 바지를 바라보았다. 노예가 흙탕물 위에 쓰러지면서 튄 물이 구두 앞부분과 바지 아랫자락을 더럽힌 상태였다.
    ​
    ​
    “감히…”
    ​
    ​
    도반이 살벌하게 눈을 번뜩이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지팡이로 노예를 가리켰다.
    ​
    ​
    그가 입을 열어 무어라 주문을 외우자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마법진이 허공에 떠올랐다.
    ​
    ​
    화르륵!
    ​
    ​
    머리통 반만 한 불덩이가 노예를 향해 날아갔다. 
    ​
    ​
    퍼엉!
    ​
    ​
    “크아아악!”
    ​
    ​
    노예는 새카만 불길에 휩싸여 순식간에 타올랐다. 마치 잘 마른 장작이 타는 것만 같았다. 
    ​
    ​
    인간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냄새에 노아가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천으로 입가를 가리고, 제 동생의 입가도 가려주었다.
    ​
    ​
    퍼억,퍽!
    ​
    ​
    “감히! 감히 내 옷을 더럽히다니!”
    ​
    ​
    도반은 새카맣게 탄 시체에 발길질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
    ​
    우드득.
    ​
    ​
    알고 싶지 않은 끔찍한 소리가 들리자 노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막혔다. 소리 내어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
    ​
    소리 내 울면 좀 더 빨리 팔려 가거나 시끄럽다는 이유로 죽기 직전까지 맞을 수도 있었다. 노아는 그런 이유로 죽은 아이들을 몇 명이나 보았다.
    ​
    ​
    “너, 날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예?예?”
    “죽고 싶나?”
    “끄아아악!”
    ​
    ​
    퍼엉!
    ​
    ​
    도반은 겁에 질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노예 상인에게 마법을 날리며 또다시 화풀이를 했다.
    ​
    ​
    그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게 될까 두려워 훌쩍거리는 네로를 제 품에 숨겼다. 
    ​
    ​
    ‘그 남자가 주방에 침입했었다고?’
    ​
    ​
    노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
    “그런데 별 일은 없…잠,어딜 만지는 거야!”
   “너,너 어딜 다친 거야!”
    ​
    ​
    노아는 붉게 물든 리안의 옷을 확 들쳤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이미 한 번 본 적 있는, 마치 낙서를 한 듯한 상처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
    ​
    “진짜 안 다쳤어!”
    ​
    ​
    리안은 들쳐진 옷을 잡아 억지로 내리며 소리쳤다. 
    ​
    ​
    “하지만 피가…!”
   “아까부터 무슨 피를 말하는 -…아,이거?”
    ​
    ​
    리안은 그제야 노아가 옷에 묻은 과즙을 피로 오해했음을 인지했다.
    ​
    ​
    ‘확실히 피처럼 보이긴 하지. 냄새도 그렇고.’
    ​
    ​
    마왕이 다스리는 땅이다 보니 이처럼 피 냄새가 나거나 심장처럼 맥박치는 과일이 흔하게 널려있었다. 
    ​
    ​
    인간이 먹으면 탈 나는 과일도 있지만 모양새만 기분 나쁜 것도 많았다. 
    ​
    ​
    “이거 피가 아니라 과즙이야. 저 주스를 만드느라고.”
    ​
    ​
    리안이 컵에 곱게 따라진 주스를 가리켰다. 컵에 담긴 주스는 마치 뱀파이어가 마시기 위해 담아둔 피처럼 보였다. 
    ​
    ​
    “저게..주스라고?”
    “응, 맛도 나쁘지 않아. 잠깐만.”
    ​
    ​
    일하면서 주워 먹으려고 과일을 약간 남겨둔 상태였다. 한쪽에 놓아두었던 과일을 가져오자 노아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떨렸다.
    ​
    ​
    “먹어봐.”
   “이걸…?”
   “진짜 맛있어.”
    ​
    ​
    그 말에 노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과일을 집었다. 왜인지 과일은 살짝 말랑했다. 
    ​
    ​
    과일을 들어 올리자 피가 -…아니 과즙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노아는 다시 한 번더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과일을 입에 밀어 넣었다.
    ​
    ​
    “…!”
    “맛있지?”
    ​
    ​
    노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과일은 평범하게 맛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과일을 하나 더 집어먹자 리안이 뿌듯한 표정으로 실컷 먹으라며 그녀의 앞에 접시를 놓아주었다.
    ​
    ​
    “나는 주스 가져다드리고 올 테니까 마저 먹고 있어.”
    “잠…!”
    ​
    ​
    뒤늦게 정신을 차린 노아가 리안을 붙잡으려 했지만, 리안이 슝하고 달려 나간 탓에 붙잡을 수 없었다.
    ​
    ​
    “…그럼 손은 왜 그런 건데?”
    ​
    ​
    노아는 그제야 리안이 또 상처를 숨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
   
   “돌아오면..제대로 물어봐야지.”
    ​
    ​
    어쩌다 생긴 상처인지, 언제 생긴 상처인지.
    ​
    ​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조소 섞인 생각이 떠올랐다.
    ​
    ​
    ‘알아서 뭘 어쩌게? 알아봤자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
    ​
    노아는 말없이 과즙으로 붉게 물든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처럼 붉게 물든 손은 마치 누군가를 상처입힌 흔적처럼 느껴졌다.
    ​
    ​
    타닷,쏴아아 !
    ​
    ​
    노아는 다급히 싱크대에 손을 가져가 물을 틀었다. 그리고 거칠게 붉게 물든 손을 씻었다.
    ​
    ​
    “그냥 과일이야. 그래, 별거 아니야.”
    ​
    ​
    강박적으로 손을 씻어내지만, 붉게 물든 손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
    ​
    쏴아아 -..
    ​
    ​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자, 노아는 도반의 얼굴이 떠올랐다. 몸을 움츠리며 네로 몰래 눈물을 닦아냈던 일이 떠올랐다.
    ​
    ​
    “…”
    ​
    ​
    노아는 말없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비참한 기분이 그녀를 옭아맸다. 
    ​
    ​
    노아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때, 리안은 막 응접실에 도착했다.
    ​
    ​
    “으극,구아아악!”
   “흐응, 하 우에?”
    “스승님 쿠키 다 드시고 말씀하세요.”
    ​
    ​
    문을 열자 보인 건 쇠사슬에 꽁꽁 묶여 바닥을 구르는 도반과 쿠키를 입에 문 채 도반에게 각종 마법을 날리고 있는 라니아의 모습이었다.
    ​
    ​
    미아는 소파에 앉아 두꺼운 책을 넘겨보고 있었다.
    ​
    ​
    “음.”
    ​
    ​
    리안은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았다.
    ​
    ​
    ​
    ​
    ​
    ​
    ​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흑흑 아이리스가 너무 예쁩니다 행복해요…

독자분들이 늘어서 행복합니다 ‘0’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앞으로 노아를 포함한 아이들은 다들 구를 예정입니다.
다만 성향 악이거나 마왕쪽 인물들은 아마도? 구르지 않을 겁니다.
만약 구른다면 히로인 리스트에 추가 될 수 있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과일은 다양한 방법으로 제 씨를 널리 퍼뜨린다. 리안이 쪼개버린 과일 또한 그런 종류 중 하나였다. 다만, 이 과일은 달콤한 냄새가 아니라 생고기와 비슷한 냄새로 동물을 유혹한다.

이 과일은 딸기처럼 씨앗이 과육에 매우 많이 박혀있어 한 입이라도 동물의 입속을 통해 들어가는 게 이득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다 많은 동물을 꼬실 수 있도록 생고기와 비슷하게 진화한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주방에 존재하지 않았다.

‘도대체,도대체…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노아는 떨리는 시선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희생을 묵인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겠다고 도망쳐버린 그녀지만 피범벅이 된 채 퉁퉁 부어오른 손으로 청소를 하는 리안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 똑바로 보고 말해. 정말 벌레의 짓이 맞아? 그런 벌레가 있다면 당장 그 벌레를 찾아야 해. 안 그러면 아이들이 위험할 테니까.”

“어,그게…사실은…”

진지한 노아의 시선에 당황한 리안은 술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문제는 리안이 너무 당황하는 바람에 주방에 도착한 이후부터 이야기를 방대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 이게 아닌데!’

리안은 울상을 지으며 주방에서 유리병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를 중단했다.

‘요점, 그래 요점만 말하자.’

개그 세계에선 말이 길어지면 대다수의 사람이 말을 늘어놓는 사람을 무시하고 떠난다. 그렇기에 리안은 습관적으로 말을 줄이고 요점만 늘어놓기로 했다.

“후우…간단히 말해서 주방에 도착했더니 주방이 어질러져 있었어. 주방을 정리하던 중에 라니아님이 찾아오셨고 주방에 숨어있던 침입자를 찾아내셨어 그리고..”

“뭣?! 자,잠깐! 침입자라고?”

“아,응. 팔이 이렇게 크고 몸이 홀쭉한 사람…? 아, 맞아 광대뼈가 엄청나게 튀어나와 있더라.”

그 말에 노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팔이 기이할 정도로 두껍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우스꽝스럽게 생긴 남자, 노아는 그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쏟아지는 빗소리, 빗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흥정 소리, 누군가의 비명이 숲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메아리처럼 귓가에 스며들었다.

주변 온도가 꽤 떨어진 탓에 노아는 얼어붙은 듯 통증까지 느껴지는 손을 말아쥐었다. 네로와 체온을 나누며 어떻게든 질긴 목숨을 이어갔다.

“쯧, 여긴 언제나 역겹고 더러워.”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체온을 유지하던 그때,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아는 네로를 품에 더욱 끌어안으며 조심스럽게 시선을 좁은 우리 밖으로 돌렸다.

괴이할 정도로 부푼 팔과 비쩍 마른 몸, 아래에서 올려다봐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서 오십시오.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도반은 고위 흑마법사만 사용할 수 있는 로브를 두르고 있었기에 노예 상인이 비굴한 얼굴로 달려와 두 손을 파리처럼 문질렀다.

“흐흥,날 모르나?”

“예? 아 -…도반님이셨군요!”

노예 상인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툭 튀어나온 광대뼈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찾는 물건이 뭔지도 알겠네.”

노예 상인은 등 뒤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손속에 자비가 없고 잔혹한 실험을 즐기는 미친 흑마법사.

노예 상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도반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 그,그럼 당연히 알고 있죠! 이리 오시죠. 최고 등급의 노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노예 상인이 허리를 접어 버릴 듯 깊게 고개를 숙이며 양팔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런 비굴한 태도가 나쁘지 않았는지 도반은 별말 없이 노예 상인을 따라가려 했다.

도반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가축처럼 목줄이 매여 질질 끌려가던 노예 한명이 도반의 앞으로 쓰러졌다.

힘줄이 잘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데다가 바닥이 질척거려 넘어진 것이다.

철퍽.

바닥에 고인 흙탕물 위에 비쩍 마른 노예가 쓰러졌다. 노예는 물속에서 건져 올린 생선처럼 힘겹게 숨을 쉬며 도반을 올려다보았다.

“….”

도반은 말없이 제 구두와 바지를 바라보았다. 노예가 흙탕물 위에 쓰러지면서 튄 물이 구두 앞부분과 바지 아랫자락을 더럽힌 상태였다.

“감히…”

도반이 살벌하게 눈을 번뜩이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지팡이로 노예를 가리켰다.

그가 입을 열어 무어라 주문을 외우자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마법진이 허공에 떠올랐다.

화르륵!

머리통 반만 한 불덩이가 노예를 향해 날아갔다.

퍼엉!

“크아아악!”

노예는 새카만 불길에 휩싸여 순식간에 타올랐다. 마치 잘 마른 장작이 타는 것만 같았다.

인간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냄새에 노아가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천으로 입가를 가리고, 제 동생의 입가도 가려주었다.

퍼억,퍽!

“감히! 감히 내 옷을 더럽히다니!”

도반은 새카맣게 탄 시체에 발길질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우드득.

알고 싶지 않은 끔찍한 소리가 들리자 노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막혔다. 소리 내어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소리 내 울면 좀 더 빨리 팔려 가거나 시끄럽다는 이유로 죽기 직전까지 맞을 수도 있었다. 노아는 그런 이유로 죽은 아이들을 몇 명이나 보았다.

“너, 날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예?예?”

“죽고 싶나?”

“끄아아악!”

퍼엉!

도반은 겁에 질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노예 상인에게 마법을 날리며 또다시 화풀이를 했다.

그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게 될까 두려워 훌쩍거리는 네로를 제 품에 숨겼다.

‘그 남자가 주방에 침입했었다고?’

노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런데 별 일은 없…잠,어딜 만지는 거야!”

“너,너 어딜 다친 거야!”

노아는 붉게 물든 리안의 옷을 확 들쳤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이미 한 번 본 적 있는, 마치 낙서를 한 듯한 상처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진짜 안 다쳤어!”

리안은 들쳐진 옷을 잡아 억지로 내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피가…!”

“아까부터 무슨 피를 말하는 -…아,이거?”

리안은 그제야 노아가 옷에 묻은 과즙을 피로 오해했음을 인지했다.

‘확실히 피처럼 보이긴 하지. 냄새도 그렇고.’

마왕이 다스리는 땅이다 보니 이처럼 피 냄새가 나거나 심장처럼 맥박치는 과일이 흔하게 널려있었다.

인간이 먹으면 탈 나는 과일도 있지만 모양새만 기분 나쁜 것도 많았다.

“이거 피가 아니라 과즙이야. 저 주스를 만드느라고.”

리안이 컵에 곱게 따라진 주스를 가리켰다. 컵에 담긴 주스는 마치 뱀파이어가 마시기 위해 담아둔 피처럼 보였다.

“저게..주스라고?”

“응, 맛도 나쁘지 않아. 잠깐만.”

일하면서 주워 먹으려고 과일을 약간 남겨둔 상태였다. 한쪽에 놓아두었던 과일을 가져오자 노아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떨렸다.

“먹어봐.”

“이걸…?”

“진짜 맛있어.”

그 말에 노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과일을 집었다. 왜인지 과일은 살짝 말랑했다.

과일을 들어 올리자 피가 -…아니 과즙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노아는 다시 한 번더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과일을 입에 밀어 넣었다.

“…!”

“맛있지?”

노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과일은 평범하게 맛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과일을 하나 더 집어먹자 리안이 뿌듯한 표정으로 실컷 먹으라며 그녀의 앞에 접시를 놓아주었다.

“나는 주스 가져다드리고 올 테니까 마저 먹고 있어.”

“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노아가 리안을 붙잡으려 했지만, 리안이 슝하고 달려 나간 탓에 붙잡을 수 없었다.

“…그럼 손은 왜 그런 건데?”

노아는 그제야 리안이 또 상처를 숨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돌아오면..제대로 물어봐야지.”

어쩌다 생긴 상처인지, 언제 생긴 상처인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조소 섞인 생각이 떠올랐다.

‘알아서 뭘 어쩌게? 알아봤자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노아는 말없이 과즙으로 붉게 물든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처럼 붉게 물든 손은 마치 누군가를 상처입힌 흔적처럼 느껴졌다.

타닷,쏴아아 !

노아는 다급히 싱크대에 손을 가져가 물을 틀었다. 그리고 거칠게 붉게 물든 손을 씻었다.

“그냥 과일이야. 그래, 별거 아니야.”

강박적으로 손을 씻어내지만, 붉게 물든 손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쏴아아 -..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자, 노아는 도반의 얼굴이 떠올랐다. 몸을 움츠리며 네로 몰래 눈물을 닦아냈던 일이 떠올랐다.

“…”

노아는 말없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비참한 기분이 그녀를 옭아맸다.

노아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때, 리안은 막 응접실에 도착했다.

“으극,구아아악!”

“흐응, 하 우에?”

“스승님 쿠키 다 드시고 말씀하세요.”

문을 열자 보인 건 쇠사슬에 꽁꽁 묶여 바닥을 구르는 도반과 쿠키를 입에 문 채 도반에게 각종 마법을 날리고 있는 라니아의 모습이었다.

미아는 소파에 앉아 두꺼운 책을 넘겨보고 있었다.

“음.”

리안은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