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

이 아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심하던 그 아이가 맞나…?
     
   성큼성큼- 짧은 다리로도 신나게 나서는 소녀의 모습에 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아이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야 그녀에겐 좋은 일이긴 한데.
     
   문제는 왠지 모르게 소녀의 분위기까지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축 처져서 순둥순둥하던 눈꼬리가 왠지 모르게 살짝 치켜 올라갔다던가.
     
   앙다물고 있던 입술이 배실배실 웃음을 흘린다거나 등등.
     
     
   목각 인형과 마주 선 소녀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강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나. 저건 악마죠?”
     
   …누나?
   …악마?
     
   아이가 아직 어려서 누나, 언니 구분을 못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악마는 어디서 영화나 만화라도 본 거겠지.
     
   강사는 괜히 소녀의 의욕을 꺾지 않고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계 측정이 시작됐다.
     
     
   “죄인, 전능신의 종복. 시험을 시작할게요.”
     
   소녀가 인형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ヮ◕.༽) 표정의 인형 역시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대놓고 무시하던 김성영과는 전혀 다른 반응.
     
   “와, 저거 지금 남녀 차별하는 거야?!”
     
   뒤에서 김성영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소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쓸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끝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마, 죽어서야 세상이 이로워지는 해악.
     
   신께서 내려주신 힘은 악마를 처단하기 위함이요.
     
   그러고도 남은 힘은 불행한 자들에게 베풀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육신이 빛을 다한 초처럼 녹아내릴 때.
     
   나는 모든 속죄를 마치고 천국으로 떠날 수 있으리.
     
     
   번쩍!
     
   눈앞에 스파크가 튄다.
     
   시작은 양조야 강사의 능력이었지만, 지금 소녀의 시야를 농락하는 건 신께서 내려주신 계시다.
     
   시야가 하얘졌다가, 노래졌다가.
     
   몇 번이고 명멸하는 빛에 소녀의 동공이 마치 맹수처럼 세로로 찢어지듯 작아진다.
     
   “…쟤 뭐 해? 겁먹었나?”
     
   계속되는 침묵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소녀가 손을 들어 올린다.
     
   소원을 위해 길게 길러두었던 손톱이 아직 여덟 개나 멀쩡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를 대가로 희생하며 소녀의 몸통이나 커다란 철 덩어리를 소환한다.
     
   “와! 씨! 저거 뭐야! RPG다!!”
     
   FPS 게임을 좋아하는 한 학생이 철 덩어리를 가리키며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그렇다.
     
   몬스터에겐 큰 효과가 없다고 알려진 RPG가 소녀의 어깨 위로 소환된 것이었다.
     
   어떻게 소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거 안 통할 텐데.
     
   김성영이 속으로 낄낄대며 웃었지만.
     
     
   “…축성? 신성 속성의 현대 무기라고?!”
     
   강사는 웃을 수 없었다.
     
   현대 무기는 일종의 ‘차원 막’에 막혀 그 위력이 반감된다.
     
   총알은 이쑤시개쯤으로, 미사일은 총알쯤으로.
     
   때문에, 각성자들의 무기가 게이트 너머의 부산물로 만들어 낸 것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현대 무기의 위력을 그대로 몬스터에게 투사할 수 있다면?
     
     
   소녀가 비틀대며 어깨에 얹어진 RPG를 조준한다.
     
   뾰족한 미사일 대가리가 목각 인형에게로 향하고.
     
   뒤에서 학생들이, 강사가 어떻게 반응하건 신경 쓰지 않은 채 발사 버튼을 누른다.
     
     
   펑-! 피유우우!
     
     
   후폭풍이 터져 나오며 퍼지는 매캐한 탄내.
     
   그러나 모두의 시선은 신나게 날아가는 미사일에 집중되었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찰나.
     
   콰앙-! 인형에 직격한 미사일이 요란한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흩어진 나무 조각만이 그 자리에 목각 인형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1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결과는 100점.
     
     
   “와… 저거 뭐야…?”
     
   시범을 보였던 강사와 같은 최고 점수였다.
     
   “우, 운이 좋네. 딱 봐도 1단계 운빨이잖아.”
     
   제 점수가 손가락 딸깍 한 번에 추월당했다고 생각하자 김성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다른 애들한테 지는 건 몰라도, 저 작은 꼬맹이한테 지는 건 절대 안 되는데.
     
   이게 말이 되냔 말이다.
     
     
   그러나 ‘운빨 좆망겜’을 아무리 외쳐봤자, 소녀의 시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단계 ‘회피’.
     
   1단계 때처럼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듯 목각 인형은 빠른 속도로 소녀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한다.
     
   휙-! 휘익-!
     
   인형의 오두방정으로 일어난 바람에 소녀의 푸른 머릿결이 이리저리 나부낀다.
     
   역시, 누가 악마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경박스럽다.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소녀가 곧장 소원을 빌어 새로운 무기를 소환해 냈다.
     
   일전의 RPG보다 조금 더 두껍고 커다란 원통형 무기.
     
   “와아악! 재블린! 적외선 유도!! 나도! 나도 쏘고 싶어!!”
     
   FPS에 미친 친구가 간질 환자처럼 두 팔을 퍼덕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귀가 아플 정도의 소란이었지만, 저게 뭔가 궁금해하던 학생들이 슬그머니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저게 뭔데?”
   “재, 재블린을 모른다고?! 미사일 한 발에 1억을 호가하는! 현대 전차도 맥을 못 추고, 탑어택과 적외선 유도, 원거리 조종이 가능한 미군의 자신작이라고!!”
     
   오, 그렇구나.
     
   대단한 거구나.
     
   학생들은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런 밀리터리 덕후 친구조차 눈치채지 못한 게 있다면.
     
   ‘축성에 유도 속성까지? 대체 무슨 능력인 거야? 각성 능력이 천조국 소환이라도 되는 건가?’
     
   이 재블린은 소녀의 소원으로 현대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된 물건이란 점이었다.
     
     
   딸깍-
     
   소녀가 자그마한 손가락을 움직여 발사 버튼을 누른다.
     
   피유웅-! 하늘로 솟아오른 재블린이 중력에 이끌리듯 180도 회전하며 지상으로 향했고.
     
   그대로 소녀의 곁을 빙빙 돌던 목각 인형의 정수리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리꽂혔다.
     
   콰과광-!
     
   그 위력이 얼마나 좋았는지, 목각 인형을 부수는 걸로도 모자라 인형이 서 있던 땅까지 새까맣게 그을고 움푹 파일 정도였다.
     
   결과는?
     
   [2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또다시 만점이다.
     
     
   “아….”
     
   이번만큼은 자존감 넘치는 김성영조차 뭐라 말하지 못했다.
     
   처음이야 운이겠지 무시했지만, 이건….
     
   두 눈 멀쩡히 달린 사람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지간한 재능 넘치는 아이들을 가르쳐 왔던 강사조차 이런 독특한 능력은 처음이었으니.
     
     
   이어지는 3단계 ‘방어’.
     
   또다시 나타난 재블린 미사일에 목각 인형은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갔다.
     
   [3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여기에 못 박듯 4단계 ‘반격’.
     
   “재, 재블린은 신이고 무적이야!”
     
   역시나 재블린 한 방에 반격이고 뭐고 할 새도 없이 시험이 끝나버렸다.
     
   이게… 정말 한계를 테스트하기 위한 시험이 맞나?
     
   너무 시시한데?
     
   악마 사냥에 꽂혀 있던 소녀의 표정이 한층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표정은 마치 미아와도 닮아 있었는데.
     
   소녀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채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해결하고자 5단계 시험에 나섰다.
     
     
   여태 소녀가 끌려 나갈 정도의 전장은 B급 이하의 각성자는 순식간에 죽어 나갈 정도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당연히 막 각성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인형이 위협이 될 리 없었다.
     
   김성영은 지레 겁먹고 포기했지만, 이 정도면 5단계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새롭게 나타난 목각 인형 앞에 마주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재블린은 신이 아니야. 신께서 내려주신 무기이지.”
   “어…? 어, 어. 그, 그래….”
     
   한낱 물건 따위를 신이라 지칭한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바로 잡았다.
     
   아무리 악마를 상대하는 싸움이라고 해도, 흘려 넘길 수 없는 발언인 탓이었다.
     
     
   “5단계는 가장 흔한 D급 각성자와 신체 능력이 같아요. 여기서 다친다고 현실에 영향이 있진 않겠지만, 쉽게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세요. 안 아픈 건 아니니까요.”
     
   혹시나 길드장이 감싸고 도는 아이가 폐인이라도 될까, 강사가 긴 경고를 남긴 뒤.
     
   목각 인형의 표정이 (`ط´≠) 흉포하게 변했다.
     
   곧바른 전투가 시작됐다.
     
     
   타탓-!
     
   먼저 자리를 박차고 선공을 시작한 건 인형이었다.
     
   ‘회피’ 모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일격이 퍼어억-! 소녀의 말랑말랑한 복부에 꽂힌다.
     
   “켁!”
     
   소녀의 자그마한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운동장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데굴데굴 몇 번이나 구르며 푸르던 머리가 갈색이 될 정도가 되어서야 멈췄고.
     
   “무, 무리일 것 같으면 포기라고 외치세요!”
     
   이번만큼은 학생들과 강사 역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녀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김성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애한테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으득.
     
   가속 따위가 아니라 그에게 다른 능력이 더 있었다면.
     
   하다못해 가속 능력을 조금만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면.
     
   당장 나서서 저 목각 인형을 대신 제압했을 텐데.
     
     
   그렇게 소녀가 바닥에 축 늘어진 뒤에조차 목각 인형은 멈추지 않았다.
     
   타탓-! 곧장 방향을 틀어 소녀가 쓰러진 곳을 향해 속도를 높였고.
     
   “꺄악!”
     
   히어로 랜딩처럼 쓰러진 소녀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꽂아 넣는다.
     
     
   콰아아앙-!
     
   마치 재블린 미사일이 터지는 듯한 요란한 소음과 진동.
     
   그 끔찍한 결과에 학생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고.
     
   강사만이 희게 질린 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먼지 너머로 소녀의 안위를 확인한다.
     
   “…버, 버텼어?!”
     
   놀랍게도 소녀는 살아 있었다.
     
     
   아니, 그저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다.
     
   “흐히, 히히히. 이제, 진짜 악마 같네…?”
     
   소녀를 공격하던 인형의 주먹이 잘게 깨져나간 공간을 통과해 제 머리를 후려친 꼴이다.
     
   공간계열 능력인가?
     
   그렇다면 여태 보여주었던 소환은, 축성된 무기들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광경에 강사조차 입을 쩍 벌린 채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그 사이.
     
   주륵- 입가로 피를 흘린 소녀가 히히히, 섬뜩한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피해가 상당한 듯 비틀거리는 모습이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또렷하다.
     
   곱게 자라 있던 손톱은 어느새 죄다 빠져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다.
     
   열 살 남짓해 보이는 꼬마가 보이기에는 지나치게 처절한 모습.
     
     
   정작 소녀는 저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제 몸이 미아의 것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눈앞의 ‘악마’를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소원을 빌었다.
     
   악마, 악마는 불타 죽어야 해.
     
   영원한 지옥 불에 빠져서 고통받으며.
     
   지상을 혼란에 빠뜨린 죗값을 치르면서 말이다.
     
     
   화륵-!
     
   소녀의 손 위로 새하얀 불꽃이 피어오른다.
     
   5천 도가 넘는 온도에 소녀의 살갗마저 진득하니 녹아내리기 시작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 불꽃을 목각 인형에게 들이민다.
     
     
   그때였다.
     
   […신 차려! 미친 새끼야! 정신 차리라고!!]
     
   누군가 소녀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듯한 충격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음화 보기

이 아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심하던 그 아이가 맞나…?

성큼성큼- 짧은 다리로도 신나게 나서는 소녀의 모습에 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아이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야 그녀에겐 좋은 일이긴 한데.

문제는 왠지 모르게 소녀의 분위기까지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축 처져서 순둥순둥하던 눈꼬리가 왠지 모르게 살짝 치켜 올라갔다던가.

앙다물고 있던 입술이 배실배실 웃음을 흘린다거나 등등.

목각 인형과 마주 선 소녀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강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나. 저건 악마죠?”

…누나?

…악마?

아이가 아직 어려서 누나, 언니 구분을 못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악마는 어디서 영화나 만화라도 본 거겠지.

강사는 괜히 소녀의 의욕을 꺾지 않고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계 측정이 시작됐다.

“죄인, 전능신의 종복. 시험을 시작할게요.”

소녀가 인형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ヮ◕.༽) 표정의 인형 역시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대놓고 무시하던 김성영과는 전혀 다른 반응.

“와, 저거 지금 남녀 차별하는 거야?!”

뒤에서 김성영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소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쓸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끝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마, 죽어서야 세상이 이로워지는 해악.

신께서 내려주신 힘은 악마를 처단하기 위함이요.

그러고도 남은 힘은 불행한 자들에게 베풀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육신이 빛을 다한 초처럼 녹아내릴 때.

나는 모든 속죄를 마치고 천국으로 떠날 수 있으리.

번쩍!

눈앞에 스파크가 튄다.

시작은 양조야 강사의 능력이었지만, 지금 소녀의 시야를 농락하는 건 신께서 내려주신 계시다.

시야가 하얘졌다가, 노래졌다가.

몇 번이고 명멸하는 빛에 소녀의 동공이 마치 맹수처럼 세로로 찢어지듯 작아진다.

“…쟤 뭐 해? 겁먹었나?”

계속되는 침묵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소녀가 손을 들어 올린다.

소원을 위해 길게 길러두었던 손톱이 아직 여덟 개나 멀쩡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를 대가로 희생하며 소녀의 몸통이나 커다란 철 덩어리를 소환한다.

“와! 씨! 저거 뭐야! RPG다!!”

FPS 게임을 좋아하는 한 학생이 철 덩어리를 가리키며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그렇다.

몬스터에겐 큰 효과가 없다고 알려진 RPG가 소녀의 어깨 위로 소환된 것이었다.

어떻게 소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거 안 통할 텐데.

김성영이 속으로 낄낄대며 웃었지만.

“…축성? 신성 속성의 현대 무기라고?!”

강사는 웃을 수 없었다.

현대 무기는 일종의 ‘차원 막’에 막혀 그 위력이 반감된다.

총알은 이쑤시개쯤으로, 미사일은 총알쯤으로.

때문에, 각성자들의 무기가 게이트 너머의 부산물로 만들어 낸 것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현대 무기의 위력을 그대로 몬스터에게 투사할 수 있다면?

소녀가 비틀대며 어깨에 얹어진 RPG를 조준한다.

뾰족한 미사일 대가리가 목각 인형에게로 향하고.

뒤에서 학생들이, 강사가 어떻게 반응하건 신경 쓰지 않은 채 발사 버튼을 누른다.

펑-! 피유우우!

후폭풍이 터져 나오며 퍼지는 매캐한 탄내.

그러나 모두의 시선은 신나게 날아가는 미사일에 집중되었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찰나.

콰앙-! 인형에 직격한 미사일이 요란한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흩어진 나무 조각만이 그 자리에 목각 인형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1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결과는 100점.

“와… 저거 뭐야…?”

시범을 보였던 강사와 같은 최고 점수였다.

“우, 운이 좋네. 딱 봐도 1단계 운빨이잖아.”

제 점수가 손가락 딸깍 한 번에 추월당했다고 생각하자 김성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다른 애들한테 지는 건 몰라도, 저 작은 꼬맹이한테 지는 건 절대 안 되는데.

이게 말이 되냔 말이다.

그러나 ‘운빨 좆망겜’을 아무리 외쳐봤자, 소녀의 시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단계 ‘회피’.

1단계 때처럼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듯 목각 인형은 빠른 속도로 소녀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한다.

휙-! 휘익-!

인형의 오두방정으로 일어난 바람에 소녀의 푸른 머릿결이 이리저리 나부낀다.

역시, 누가 악마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경박스럽다.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소녀가 곧장 소원을 빌어 새로운 무기를 소환해 냈다.

일전의 RPG보다 조금 더 두껍고 커다란 원통형 무기.

“와아악! 재블린! 적외선 유도!! 나도! 나도 쏘고 싶어!!”

FPS에 미친 친구가 간질 환자처럼 두 팔을 퍼덕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귀가 아플 정도의 소란이었지만, 저게 뭔가 궁금해하던 학생들이 슬그머니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저게 뭔데?”

“재, 재블린을 모른다고?! 미사일 한 발에 1억을 호가하는! 현대 전차도 맥을 못 추고, 탑어택과 적외선 유도, 원거리 조종이 가능한 미군의 자신작이라고!!”

오, 그렇구나.

대단한 거구나.

학생들은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런 밀리터리 덕후 친구조차 눈치채지 못한 게 있다면.

‘축성에 유도 속성까지? 대체 무슨 능력인 거야? 각성 능력이 천조국 소환이라도 되는 건가?’

이 재블린은 소녀의 소원으로 현대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된 물건이란 점이었다.

딸깍-

소녀가 자그마한 손가락을 움직여 발사 버튼을 누른다.

피유웅-! 하늘로 솟아오른 재블린이 중력에 이끌리듯 180도 회전하며 지상으로 향했고.

그대로 소녀의 곁을 빙빙 돌던 목각 인형의 정수리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리꽂혔다.

콰과광-!

그 위력이 얼마나 좋았는지, 목각 인형을 부수는 걸로도 모자라 인형이 서 있던 땅까지 새까맣게 그을고 움푹 파일 정도였다.

결과는?

[2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또다시 만점이다.

“아….”

이번만큼은 자존감 넘치는 김성영조차 뭐라 말하지 못했다.

처음이야 운이겠지 무시했지만, 이건….

두 눈 멀쩡히 달린 사람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지간한 재능 넘치는 아이들을 가르쳐 왔던 강사조차 이런 독특한 능력은 처음이었으니.

이어지는 3단계 ‘방어’.

또다시 나타난 재블린 미사일에 목각 인형은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갔다.

[3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여기에 못 박듯 4단계 ‘반격’.

“재, 재블린은 신이고 무적이야!”

역시나 재블린 한 방에 반격이고 뭐고 할 새도 없이 시험이 끝나버렸다.

이게… 정말 한계를 테스트하기 위한 시험이 맞나?

너무 시시한데?

악마 사냥에 꽂혀 있던 소녀의 표정이 한층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표정은 마치 미아와도 닮아 있었는데.

소녀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채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해결하고자 5단계 시험에 나섰다.

여태 소녀가 끌려 나갈 정도의 전장은 B급 이하의 각성자는 순식간에 죽어 나갈 정도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당연히 막 각성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인형이 위협이 될 리 없었다.

김성영은 지레 겁먹고 포기했지만, 이 정도면 5단계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새롭게 나타난 목각 인형 앞에 마주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재블린은 신이 아니야. 신께서 내려주신 무기이지.”

“어…? 어, 어. 그, 그래….”

한낱 물건 따위를 신이라 지칭한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바로 잡았다.

아무리 악마를 상대하는 싸움이라고 해도, 흘려 넘길 수 없는 발언인 탓이었다.

“5단계는 가장 흔한 D급 각성자와 신체 능력이 같아요. 여기서 다친다고 현실에 영향이 있진 않겠지만, 쉽게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세요. 안 아픈 건 아니니까요.”

혹시나 길드장이 감싸고 도는 아이가 폐인이라도 될까, 강사가 긴 경고를 남긴 뒤.

목각 인형의 표정이 (`ط´≠) 흉포하게 변했다.

곧바른 전투가 시작됐다.

타탓-!

먼저 자리를 박차고 선공을 시작한 건 인형이었다.

‘회피’ 모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일격이 퍼어억-! 소녀의 말랑말랑한 복부에 꽂힌다.

“켁!”

소녀의 자그마한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운동장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데굴데굴 몇 번이나 구르며 푸르던 머리가 갈색이 될 정도가 되어서야 멈췄고.

“무, 무리일 것 같으면 포기라고 외치세요!”

이번만큼은 학생들과 강사 역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녀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김성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애한테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으득.

가속 따위가 아니라 그에게 다른 능력이 더 있었다면.

하다못해 가속 능력을 조금만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면.

당장 나서서 저 목각 인형을 대신 제압했을 텐데.

그렇게 소녀가 바닥에 축 늘어진 뒤에조차 목각 인형은 멈추지 않았다.

타탓-! 곧장 방향을 틀어 소녀가 쓰러진 곳을 향해 속도를 높였고.

“꺄악!”

히어로 랜딩처럼 쓰러진 소녀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꽂아 넣는다.

콰아아앙-!

마치 재블린 미사일이 터지는 듯한 요란한 소음과 진동.

그 끔찍한 결과에 학생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고.

강사만이 희게 질린 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먼지 너머로 소녀의 안위를 확인한다.

“…버, 버텼어?!”

놀랍게도 소녀는 살아 있었다.

아니, 그저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다.

“흐히, 히히히. 이제, 진짜 악마 같네…?”

소녀를 공격하던 인형의 주먹이 잘게 깨져나간 공간을 통과해 제 머리를 후려친 꼴이다.

공간계열 능력인가?

그렇다면 여태 보여주었던 소환은, 축성된 무기들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광경에 강사조차 입을 쩍 벌린 채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그 사이.

주륵- 입가로 피를 흘린 소녀가 히히히, 섬뜩한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피해가 상당한 듯 비틀거리는 모습이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또렷하다.

곱게 자라 있던 손톱은 어느새 죄다 빠져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다.

열 살 남짓해 보이는 꼬마가 보이기에는 지나치게 처절한 모습.

정작 소녀는 저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제 몸이 미아의 것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눈앞의 ‘악마’를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소원을 빌었다.

악마, 악마는 불타 죽어야 해.

영원한 지옥 불에 빠져서 고통받으며.

지상을 혼란에 빠뜨린 죗값을 치르면서 말이다.

화륵-!

소녀의 손 위로 새하얀 불꽃이 피어오른다.

5천 도가 넘는 온도에 소녀의 살갗마저 진득하니 녹아내리기 시작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 불꽃을 목각 인형에게 들이민다.

그때였다.

[…신 차려! 미친 새끼야! 정신 차리라고!!]

누군가 소녀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듯한 충격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