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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병문안이 모두 끝나고 난 이후.

   병실을 나온 나는 입구에서 벽에 기대고 서 있는 아일레를 보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반성했어?”

   “……네, 에.”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해. 아일레.”

     

   아일레는 그 말을 듣고 입술을 마구 우물거렸다. 억울해서 할 말이 있지만 그걸 말했다간 혼이나 날까봐 말 못 하는, 억압된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 특유의 행동.

     

   말해도 괜찮다는 듯 턱끝을 까딱이자 아일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그치만- 히어로였잖아요…… 저흰 악의 조직인데. 악의 조직이면 히어로를 습격해도 괜찮은 거 아닌가…….”

   “악의 조직이면 히어로를 공격해도 괜찮다?”

   “네…! 어차피 저 사람도 그런 걸 다 각오하고 히어로가 된 걸 텐데-.”

   “그건 틀렸어. 아일레.”

   “틀리다니, 대체 뭐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일레를 바라보았다. 그 한숨을 정면에서 받은 아일레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정말이지 나보다 몇 년 먼저 악의 조직 간부가 된 선배면서 이런 걸 설명해줘야한다는 게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지만…… 나는 그녀가 오해하고 있는 점을 짚어주었다.

     

   “우리는 악의 조직이지 빌런이 아니야. 물론 사람들은 우리나 빌런이나 똑같은 놈들이라고 말하겠지만- 엄연히 악의 조직으로서의 프라이드가 있다.”

   “……프라이드요?”

   “그래. 괜히 보스가 출동 예정일을 미리 신고하고 조직원을 출동시키는 게 아니지.”

     

   악의 조직은 단순히 사회에 반기를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르다보니 어쩌다 빌런이 된 다른 녀석들과 달리 악의 조직은 확연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수단이 빌런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수인왕 갈름은 강자와의 싸움을.

   예를 들어─ 아일레는 마법소녀와의 인연을.

   예를 들어─ 나는 이 세계에서의 생존을.

     

   아무런 목적도, 사상도 없이 그저 혼란과 광기만을 부추기는 빌런들과는 달랐다.

     

   “악의 마법소녀로서 자긍심을 갖고 행동해라 아일레. 이번엔 여러모로 사정이 좋아서 대신 해결해줬지만…… 두 번은 없으니까.”

   “……네에.”

   “너무 침울해 있지 말고.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갈까?”

     

   선배에게 악의 조직에 대한 걸 교육한 나는 가볍게 웃으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이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아일레는 어쩔 줄 몰라하는 듯 했으나, 그녀의 입과 배는 솔직했다.

     

   “그럼 떡볶이…….”

   “그래그래. 가자.”

     

   그렇게 향한 식당에서, 나는 여학생의 전투력이 매운 음식 앞에서 얼마나 올라가는 지를 알게 되었다.

     

     

   * * *

     

     

   니베르나는 부상 치료를 끝마치고 복귀했다. 히어로 협회는 그녀가 없는 동안에도 굴러가고 있었다. 이 모습만 보면 그녀 따위는 아무런 필요도 없어 보였지만 정작 실무진들은 그렇지 않았다.

     

   히어로 협회의 업무는 과중하다. 사람 목숨이 달린 업무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덕택에 직원들은 항상 업무에 시달렸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빠르게 치료를 마치고 복귀한 니베르나는 구원 투수나 다름 없었다.

     

   “니베르나! 복귀하자마자 미안한데, 출동 좀 해줄 수 있겠나?”

   “예. 물론입니다. 어디로?”

   “악의 조직 녀석들이지 뭐.”

     

   얼마 전 그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갈름의 얼굴을 떠올린 니베르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예정된 장소로 출동해 대기했다.

     

   예정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모습을 보이고 있으면 이블스 기업에서 항의 민원을 넣어대는 데다가 나타나겠다고 했던 악의 조직원들도 나타나지 않는 탓에, 니베르나는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면서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미리 예보된 악의 조직의 습격이 시작됐다.

     

   “─으하하하! 내가 왔다!”

     

   몇 달 전과 비교하면 지나치리 만치 활기차진 갈름의 목소리가 도시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대피 경보가 휴대폰이요 길거리에 설치된 스피커로부터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니베르나는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잽싸게 달려나갔다. 그녀와 함께 갈름을 막기 위해 보내진 히어로 몇이 동시에 따라 달렸다.

     

   “거기까지다! 악의 조직!”

   “너희의 악행을 가만 두고 보지 않겠다!”

     

   “오- 왔나?”

     

   예전엔- 그러니까 고작 몇 달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전투원들을 먼저 보내 그들이 쓰러지고 나서야 움직이던 갈름이었지만─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그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아깝다는 듯 움직였다.

     

   어차피 일개 전투원들이 A급 히어로를 막을 수는 없을 터, 괜히 부하들을 소모시키는 게 아니라 곧장 몸을 일으켜 히어로들과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오기 전에 몸은 풀었나? 전엔 저쪽 분홍 머리쪽이 약하던데. 그땐 생리라도 했던 건가?”

     

   “─포메이션 5!”

   “연습했던 대로 간다!”

     

   “좋은 자세다. 적이랑 대화할 필요는 없지.”

     

   갈름은 그리 말하며 히어로와 박투를 시작했다. 때리고 차고 박는 싸움을. 수인답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전투. 그러나 그 단순함으로 A급 히어로들을 때려잡는다.

     

   그저 힘이. 그저 속도가. 그저 기술이.

   인간이 타고난 초능력을 압도한다.

     

   “크으으윽-!?”

   “크하하하! 발전이 없구나, 발전이 없어! 너는 방어할 때 약한 곳에 무의식적으로 눈이 돌아간다니까!”

   “이 미친 싸움광 새끼가! 싸울 때 훈수 두고 싶냐!?”

     

   히어로들은 여유를 부리며 자신들에게 지도까지 내리는 갈름을 보며 분통을 토했다. 그러나 갈름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갈름의 컨디션이 좋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오늘따라 히어로들의 상태가 좋지 못 했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니베르나를 제외한 모든 히어로들이 바닥을 굴렀다.

     

   그 모습을 본 갈름은 퍽 실망스럽다는 듯 턱을 간질였다.

     

   “벌써 끝이라…… 흐으음- 오늘은 연장을 신청해야 하나.”

     

   이번엔 건물 몇 개를 부숴야 히어로들이 더 오려나 고민하는 갈름을 보며, 니베르나는 눈을 부릅떴다.

     

   “……좋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여유도 부리고.”

   “엉-? 실성했냐? 히어로가 빌런에게 뭔 말을…….”

   “분명 어렸을 적부터 엄청난 힘을 자랑했겠죠.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강인한 힘. 눈부신 재능을. 마치 자기가 세상의 주인공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그런 천재들을 부러워했다. 세상의 주연을 질투했다. 그들이 가진 것을 내려 깎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처럼 되기를 바랐다.

     

   지금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니베르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절대적인 존재가.

     

   “─그만한 힘과 재능을 갖고도 선택한 게 빌런이라니.”

   “아까부터 뭐라는 거냐?”

   “당신이 한심하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갈름 같은,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는 사람을 보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예전이었더라면 그리 분노를 참지 못 하더라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서, 그저 패배자의 열등감 따위로 끝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Are You Ready-!?]

   “당신을 계도하겠습니다.”

     

   변신.

   니베르나의 슈트 위로 새로운 슈트가 덮어씌워진다. 

     

   두 겹의 슈트를 겹쳐 입고서 탄생한 히어로는 악의 간부 앞에 당당히 일어섰다.

     

   “─히어로답게.”

   “어디서 무슨 장난감을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그 정도로…….”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갈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니베르나를 보며 흠칫 놀랐다. 살짝 방심하고 있었다지만 일순간 시야에서 니베르나를 놓치고 만 것이다.

     

   갈름이 다시 니베르나를 포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그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상태였고, 니베르나는 갈름보다 약했을 뿐 미숙한 히어로가 아니었다. 기회를 포착한 니베르나의 주먹이 갈름의 복부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주먹에 얻어맞고 빌딩 저 끝까지 날아간 갈름은 뒤늦게서야 제 배를 쓰다듬으며 건물 잔해물 사이에서 걸어나왔다.

     

   “흐, 흐하하하-! 으하하하하! 너, 강하구나!”

   “……한 방에 제압하는 건 무리였군요.”

   “아주 건방지구나! 이 나를 한 방에 제압하려 해?”

     

   그러나 입 바깥으로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갈름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씨익 미소 지으며 니베르나를 향해 다가온 갈름은 주먹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허나, 괜찮다. 건방과 오만은 강자의 덕목이니까.”

   “그런가요. 지금이라면 당신 정돈 얼마든지 무찌를 수 있을 거 같은데.”

   “하하하하-!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너에게 잡혀주마! 히어로!”

     

   그리고 다음 순간.

   수인왕과 히어로의 주먹이 격돌했다.

   두 초인의 싸움은 온종일 이어졌으며 싸움이 끝날 때까지 어느 한쪽이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이 날 히어로 협회로 복귀한 니베르나는 S급 히어로가 되었다.

   인생 처음으로. 그녀가 주연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 * *

     

     

   동료가 너무 시끄럽다. 주로 털 달린 짐승 동료가.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대뜸 찾아온 이 근육 짐승은 마치 자기 집이라는 듯 방 한켠을 차지한 채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 힘으로는 그 주둥아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더 악질적이었다…… 과학? 그런 거 연구해서 뭐하나. 팔뚝 둘레가 세 자릿수인 짐승 앞에선 그저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거늘.

     

   “으하하하하-! 과학자!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

   “아…… 예.”

   “재밌는 녀석을 만났거든! 웬 슈트를 입더니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더군! 아마 저쪽에도 너 같은 천재가 있는 모양이지!”

   “그렇군요…….”

     

   영혼 없는 답변을 내뱉던 나는 갈름이 말하는 슈트 입은 녀석 어쩌고가 니베르나라는 사실을 금새 깨달았다. 적당히 신경 써서 만들어줬더니 알아서 잘 써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갈름은 우리 조직의 최고 무력 중 하나요, 수인들 중에서 가장 강했던 몇몇 영웅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수인왕 칭호도 갖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런 갈름과 맞서 싸울 수 있다면야- 니베르나가 관심을 못 받아 자신의 꿈을 못 이루는 일도 없으리라.

     

   ‘이 인간한테는 비밀로 해야지…….’

     

   슬쩍- 어느새 술병을 꼬나쥐고 들이켜고 있는 갈름을 본다. 저 싸움밖에 모르는 싸움광 녀석이 니베르나의 슈트가 내 자작이라는 걸 알게 되면 무슨 부탁을 해올까?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달라고 땡깡을 부리겠지. 만들 수야 있지만 굉장히 귀찮은 일이었다. 일단 그만한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인프라가 부족했다. 내가 직접 인프라까지 만들 수는 있지만 그래서야 수억에서 수십억에 달하는 돈이 필요할 테고…….

     

   제아무리 세계적인 대기업의 회장인 보스라도 그만한 자금을 융통하는 건 무리다. 융통할 수 있더라도 자기 취미에 불과한 악의 조직 따위에 그걸 사용하는 건 더더욱 넌센스였다. 물건 하나 만들고 파산할 건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무엇보다─ 그런 물건을 만들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기기라도 했다간 답이 없어진다. 여기가 초능력 공학 같은 사짜 기술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날 갑자기 기계 조종이나 기계 최면 같은 초능력을 가진 녀석이 나타나서, 그런 기계를 자기 걸로 만들어버리면 끝…….’

     

   조직의 최고 무력인 갈름을 제압할 만한 기계를 그렇게 빼앗긴다면? 그게 어떻게 사용될 지는 몰라도 이 세상이 좋은 꼴을 보게 될 거 같지는 않았다. 그게 내가 굳이 내 통제에서 벗어날 정도로 강한 무기를 만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이! 과학자! 운동은 하고 있는 거냐!? 팔뚝이 그게 뭐냐! 두 자릿수밖에 안 된다니!”

   “……인간은 이게 보통인데요.”

   “안 되겠다. 가서 운동하자.”

   “아니, 저는 딱히…….”

   “─가자.”

     

   살기까지 내뿜으며 나를 헬스장으로 끌고 가는 갈름을 보며, 니베르나의 슈트 성능을 더 올려주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냥 거기서 이겨버리고 이 짐승 녀석 체포해버리지……!

     

   그러나 현실은 둘의 무승부에서 끝이 났고, 그 대가로 나는 철봉을 들어도 들어도 끝나지 않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맞이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공개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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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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