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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다들…’

   “다들 고개 들라고 해.”

   

   “영애님께서 일어나라 하신다!”

   

   파나타가 소리를 치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일어났다.

   

   부대에 별이 떨어져도 이 정도로 각이 잡혀있지는 않을 텐데.

   

   겁에 질려 있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팠다.

   

   나는 분명 마을에 쉬러 들어왔을 텐데 왜 더 피곤해 지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얼굴을 숨기고 들어올 걸 그랬나.

   

   아니다. 그랬어도 파나타가 옆에 붙어 있는 순간 정체를 들켰겠네.

   

   나는 파나타를 시켜 에반스의 주민들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들은 꺼지라는 이야기가 너무도 반가웠던 듯 파나타가 말을 꺼내자마자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조용해진 마을의 입구에선 나는 얼굴을 쓸어내린 후에 목소리를 냈다.

   

   “칼.”

   “예. 아가씨.”

   

   ‘저에 대한…’

   “내 소문이 대체 어떻게 나 있는 거야?”

   

   “안 들으시는 편이 나을 텐데요.”

   

   ‘사실대로 말해요.’

   “허접이면 허접답게 말해.”

   

   “알겠습니다.”

   

   칼이 이야기해 준 소문 속의 루시는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였다.

   

   아니. 성격이 지랄맞다거나, 말투가 시건방지다거나, 사람을 괴롭히는 걸 좋아한다거나, 구제불능의 쓰레기라거나 하는 소문은 이해해.

   

   그건 팩트니까.

   

   그렇지만 말이야.

   

   내 심기를 거스르면 기사단의 훈련용 인형이 된다는 건 뭔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지하에 가두어 놓고 괴롭힌다는 건 또 뭐고?

   

   그리고 말야! 루시가 아무리 정신머리가 없어도 다른 영애를 발로 짓밟았다는 건 심하지 않아?!

   

   아무리 소문이 과장된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하잖아!

   

   “아가씨. 아직 놀라시기엔 이릅니다. 이것도 일부에 불과합니다.”

   

   ‘진짜로?!’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저 칼. 기사의 명예를 걸고 한치 거짓이 없다 말하겠습니다.”

   

   이런 소문이 일부에 불과하다고!?

   

   그 사실에 너무도 놀라서 파나타와 전속 시녀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들이 내 눈을 피했다.

   

   진짜야?!

   

   이게 과장된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저런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오. 씨발. 신새끼시여.

   

   도대체 루시 이 년이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업보를 쌓아 둔 겁니까.

   

   가문에서 얼마나 패악질을 부려댔으면 저런 소문이 퍼졌을까요.

   

   …진짜 혹시나 싶기는 한데 저런 소문들 사이에 진실이 섞여있으면 어떡하지?

   

   나는 내가 빙의하기 전까지 루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그저 추측을 할 뿐이다.

   

   단순히 소문일 뿐이라 생각하는 저 업보들 중에 진짜가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나.

   

   언젠가 다른 사람이 칼침을 놓으러 온다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당신은 루시의 어떤 잘못 때문에 찾아온 거냐고.

   

   지친다. 지쳐.

   

   아직 잠을 자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그냥 방에 틀어박혀서 침대에 얼굴을 들이박고 싶다.

   

   에반스에서 찾아야 할 물건이 있는 게 아니었다면 오늘 하루 동안 히키코모리로 살았을 텐데.

   

   ‘촌장님…’

   “파나타. 여기 물약 파는 곳은 어디에 있어?”

   

   “물약 상점말입니까?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만.”

   

   ‘안내해주세요.’

   “안내해.”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집에 틀어박히러 갈 거니까.

   

   …근데 내가 가는 곳마다 이 난리가 나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

   

   원래 불길한 상상은 잘 들어맞는다고 물약 상점으로 가는 길에만 비슷한 일이 두 번이나 벌어졌다.

   

   그 난리를 겪고 나니 정신적으로 피폐해 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를 절로 알게 됐다.

   

   나는 스스로의 체력과 근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정상적인 상황에 한해서였다.

   

   스스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밀어 넣어지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약 상점 앞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반쯤 혼이 나간 상태였다.

   

   이래서 내일 던전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 몰라.

   

   생각해보면 이게 다 포셀 때문이야.

   

   그 녀석이 나를 마을로 밀어 넣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

   

   그냥 원래 하려던 대로 같이 야영을 했다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진짜 복수 마렵다.

   

   포셀. 두고 보자.

   

   나의 원한은 깊고도 짙으니.

   

   언젠가는 이 원한을 열 배로 되갚아 주고야 말겠다.

   

   문을 열고 상점의 안으로 들어가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그건 너무 비싸잖아요!”

   

   으. 목청이 참 좋으신 분이네. 귀가 나가버릴 것 같아.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옆에 있던 파나타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렐! 버미!”

   

   촌장의 목소리에 안에 있던 두 사람이 다툼을 멈추고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여전히 앙금이 남은 듯 날 선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당황해선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영애님!”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 만은!”

   

   그러니까 나 아무것도 안 할 거거든?

   

   상식적으로 니네끼리 싸우다 날 신경 못 쓴 정도로 뭐라고 하겠냐?

   

   ‘둘 다 일어나요.’

   “허접들. 일어나.”

   

   “아닙니다!”

   “영애님 부디.”

   

   ‘제발 좀 일어나주세요.’

   “귀는 뚫려있는 것 같은데 내 말은 안 들려? 일어나.”

   

   메스가키 번역이 위협을 가하자 두 사람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어느 쪽이건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는데 방금 전 소리를 친 여자는 당장에라도 울 것처럼 울먹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사람이 오열하는 걸 볼 수 있겠네.

   

   으. 제기랄.

   

   ‘저기…’

   “바보 둘. 뭐 때문에 싸우고 있었던 거야?”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을 해 줄 테니까 일 빨리 끝내고 사라져주지 않을래?

   

   너희 둘이 계속 그러고 있으면 점점 더 내 심신이 지칠 것 같거든?

   

   두 사람은 내가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다.

   

   하아. 아이들의 싸움을 중재하는 유치원 선생님의 기분이 이런 걸까.

   

   “이야기 하게. 영애님께서 기다리지 않나.”

   “그게.”

   

   결국 침묵을 깨고 촌장이 한 마디를 꺼내고 나서야 소리를 쳤던 여자가 느리게 목소리를 냈다.

   

   “황송합니다. 저는 이 상점의 체력회복물약을 사러 왔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저의 다급한 사정을 알고 폭리를 취하려 하여 따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건 모함입니다!”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자마자 다른 사람의 입에서 반박이 튀어 나왔다.

   

   “저는 본래 가격을 그대로 받았을 뿐입니다!”

   “어제만 해도 이것보다 더 싸지 않았습니까!”

   “그건 이 물약보다 질이 나빠서 그랬던 겁니다!”

   

   내 존재를 잊고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서로의 마음에 새겨진 앙금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가만 내버려 두면 해가 질 때까지 싸우겠네.

   

   뭐 어쨌든 간에 결국 물약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거지?

   

   ‘그..’

   “그 물약이 얼만데.”

   

   “그것이.”

   

   상점 주인의 말을 들어보니 물약은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

   

   내가 게임 속의 물가를 거의 외우다시피 하거든.

   

   그걸 기준으로 해서 따져보면 조금 비싸긴 해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야.

   

   폭리를 취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란 이야기지.

   

   하지만 이 또한 내 시점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가난한 평민들의 입장에선 돈 한푼 한푼이 소중할 테니까.

   

   ‘제가 살게요.’

   “내가 낼게.”

   

   “…네?”

   

   ‘사드린다고요.’

   “귀청소를 좀 하는 게 어때? 사준다니까?”

   

   지금 난 물약 하나 정도는 가볍게 사 줄 돈이 있다.

   

   저택에서 나오는 길에 베네딕이 무슨 일이 있으면 사용하라면서 금화 몇 개가 든 주머니를 줬거든.

   

   아무리 백작가문이라 해도 금화 몇 개면 커다란 금액인데 그걸 억지로 쥐어 주다니.

   

   베네딕의 딸사랑은 끝이 없구나.

   

   “감사합니다! 영애님!”

   

   여자는 혼자서 내 말을 곱씹다가 이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냥 여유롭게 안을 둘러보고 싶어서 물약을 사줬을 뿐이지만 감사를 들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여자를 떠나보내고서 뒤를 살피니 칼과 시녀가 나를 미묘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뭔데. 왜 그렇게 보고 있는 거냐.

   

   “어… 저. 영애님. 찾으시는 게 있으시다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만.”

   

   ‘괜찮아요. 혼자 둘러볼게요.’

   “허접은 가만히 있어. 알아서 둘러볼 테니까.”

   

   여자가 떠나간 후 홀로 남은 상점 주인은 더듬거리며 내게 제안을 했지만 거절했다.

   

   지금 내가 찾는 건 당신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는 물건이거든.

   

   이 상점에는 영약이 숨겨져 있다.

   

   그 안에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른다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상점에서 귀하디 귀한 영약을 헐값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약이 있는 장소는 기억 하고 있다.

   

   분명히 가게 오른 편에 있는 가판 끝의 구석을 살펴 보면.

   

   있다.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먼지가 잔뜩 쌓인 물약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이거다.

   

   내가 찾던 물건인 마력 상승의 영약.

   

   감정은 할 수 없지만 게임에 나오던 것과 모양이 똑같은 걸 보면 확실하다.

   

   나는 먹을 수도 없고 탱커 트리를 타기로 한 지금은 먹을 이유도 없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영약은 영약이다.

   

   챙길 수 있으면 챙겨야 한다.

   

   당장 백작 가문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영약이 세 개 밖에 없었던 걸 떠올려 봐라.

   

   영약은 귀한 물건이다.

   

   단언컨대 이 영약을 마탑의 마법사에게 보여주면 바로 눈이 돌아갈 걸.

   

   이것만 사면 미안하니까 나중에 던전에서 쓸법한 물건도 몇 개 살까.

   

   체력 회복용이랑 해독용, 그리고…

   

   나름 고심을 해서 고른 물건들을 상점 주인의 앞에 늘어놓았다.

   

   ‘다 살게요. 얼마에요?’

   “얼마야?”

   

   “그냥 다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

   

   진짜? 공짜로 먹어도 되는 거야?

   

   무료라는 말에 순간 혹했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았다.

   

   여기서 상전 주인에게 이 많은 걸 뜯어 가면 루시의 소문이 한 가지 추가될 게 분명했으니까.

   

   지금도 평판이 나락인데 여기서 더 떨어지는 걸 보고 싶진 않아.

   

   ‘그냥 말해줘요.’

   “그냥 말해. 얼마야.”

   

   “어… 그러니까. 이 정도면 은화 2개 정도면.”

   

   너무 싸지 않아?

   

   아무리 당신이 이 안에 영약이 숨겨져 있는 걸 모른다고 해도 은화 2개는 아니지.

   

   나한테 돈을 뜯어내기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원래 가격을 불렀다가 꼬투리를 잡힐 것 같아서?

   

   으음. 제대로 된 값을 치르려면 내가 선제시를 하는 수밖에 없나.

   

   입 싹 닫고 영약을 가져가기엔 양심이 찔리니까 어느 정도 값을 치러주자.

   

   나는 품 안에서 금화 두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이거 받으세요.’

   “이거 받아.“

   

   “이건… 이건 너무 많습니다. 이것들이 아무리 비싸봐야.”

   

   금화를 본 상점 주인은 악역영애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게 두려웠던지 즉시 떨리는 목소리로 양심선언을 했다.

   

   그냥 뭣 모르는 여자애 삥뜯는다 생각하고 가져가지.

   

   아. 뒤에 파나타가 있으니까 그렇게는 못하나?

   

   ‘그냥 받아요. 저한텐 필요 없는 돈이니까.’

   “내 말에 토 다는 거야? 얌전히 받아. 허접한 상점 주인은 평생을 일해도 못 벌 돈이잖아?”

   

   지금 나한테는 진짜로 돈이 필요 없거든. 있어봐야 쓸 일이 없으니까.

   

   사실 돈 같은 건 나중에 벌려면 얼마든지 벌 수 있기도 하고.

   

   내가 단호히 말을 하자 상점주인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품 안에 금화를 챙겼다.

   

   야. 이걸로 너 먹을 만큼 먹은 거다?

   

   이제 루시 영애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같은 소문 내줘야 한다?

   

   만약에 허세에 찌든 낭비벽이란 소리가 들리면 나 화내러 올 거야?

   

   물약들을 챙겨 가게에서 나오기 무섭게 뒤편에서 칼이 목소리를 냈다.

   

   “아가씨. 너무 비싼 돈을 치르셨습니다. 가게 안에 있는 것을 다 합쳐도.”

   

   ‘칼. 귀 대봐요.’

   “허접. 냄새나는 입 닫고 귀나 대봐.”

   

   잔소리를 하려는 칼의 입을 막은 후 그의 귓가에 대고 낡은 물약병의 정체가 영약이라는 걸 알려 줬다.

   

   그러자 칼이 눈썹을 치켜들더니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진짜에요.’

   “설마 날 의심하는 거야? 기사 실격이네.”

   

   “죄송합니다. 아가씨. 허나 그걸 어떻게.”

   

   ‘비밀이에요.’

   “허접이 알기엔 이른 이야기야.”

   

   흐흥. 거저로 마력 상승의 영약을 구하는 데 성공했네.

   

   이걸 어떻게 써먹는 게 좋을까.

   

   적당한 마법사한테 팔아먹는 게 최고인데 어디서 마법사 하나 안 떨어지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공은 나락에 떨어진 평판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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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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