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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홍등가의 상황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개판 오 분 전.

   

    아닌가? 이미 개판인 것 같기도 하고.

   

    서준과 춘봉이 어슬렁어슬렁 홍등가에 발을 디뎠을 때는 이미 피와 시체로 바닥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하여간.”

   

    서준이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가는 기녀들, 위협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흑도 놈들.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답답할 정도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흘끗 살핀 춘봉이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이대로면 춘봉이가 당장 검을 뽑아들고 달려갈 것 같은 상황.

   

    서준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갈…!”

   

    내공이 담긴 사자후에 일순 소란이 멎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근처에 있던 이들만이 서준을 바라볼 뿐 나머지 잡것들은 하던 짓을 이어갔다.

   

    “안 되겠구만.”

   

    가죽끈으로 검과 검집을 단단히 묶은 서준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이! 너네 뭐야?”

   

    딱 봐도 흑도 놈이다. 커다란 쇠몽둥이를 어깨에 걸친 채 어슬렁어슬렁 다가온 놈이 춘봉이를 보며 눈을 빛냈다.

   

    “호오, 싹수가 보이는 계집이군. 이리 와라. 아양만 잘 떨면 섭섭하게 대하진 않으마.”

    “뭐?”

   

    서준이 눈을 크게 떴다. 춘봉이는 지금 죽립을 푹 눌러쓴 상태.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 알았지? 이 몸을 보고도 여자라는 소리가 나…, 악!”

   

    서준의 엉덩이를 후려찬 춘봉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흐흐, 그래. 현명한 선택이다.”

   

    사내가 춘봉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미끄러지듯 피한 춘봉이 사내의 품으로 파고들어 다리를 올려찼다.

   

    뽀각-

   

    “끄아아아아악…!!”

   

    아, 저건 무조건 터졌다. 괜히 몸을 움츠린 서준이 떨리는 눈으로 춘봉을 바라보았다.

   

    “…잔인한 년.”

    “뭐 인마. 너도 차줘?”

    “아, 아뇨…?”

   

    사내의 비명 소리에 근처에 있던 흑도 놈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영영 사라져버린 사내의 후손에게 애도를 표한 서준이 검집을 내리쳤다.

   

    콰직-!

   

    사내의 비명이 멎었다. 검집에 묻은 피와 뇌수 따위를 털어낸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가라, 어린이 사랑꾼.”

    “뭐 이 새끼야?”

    “페도는 즉결처분이 답이지.”

    “페도? 뭔진 몰라도 나 지금 기분이 막 좆같아지려 그러는데?”

   

    눈을 사납게 뜨는 춘봉이. 

    동료 머리를 깨부숴놓고 잡담이나 하고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흑도 놈들이 달려들었다.

   

    파바박-!

   

    서준의 왼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이 지탄을 흩뿌리자 사내 넷이 쓰러졌다.

   

    “무, 무슨….”

    “고수다! 형님을 불러와!”

   

    앙탈을 부리는 사내놈들을 바라보던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가자, 금춘봉.”

    “오냐.”

   

    뒷골목 흑도 나부랭이들을 줘팰 이인조, 출발이다. 

   

   

    *

   

   

    달려드는 흑도 친구들을 얼마나 후려팼을까. 슬슬 상황을 파악한 친구들이 주춤거리며 더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자, 친구들. 이제 여기는 우리 영역이니까 오면 뒤질 줄 알아라?”

    “네놈 혼자 흑호문의 영역을 꿀꺽하겠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꼬우면 덤비든가.”

   

    검집을 까딱이자 흑도 놈들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애매하긴 하네.’

   

    다 죽이자니 그것도 좀 그렇고. 살려두자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고.

   

    어차피 저런 놈들은 박멸하는 게 불가능하다. 바퀴벌레처럼 꾸역꾸역 증식하겠지.

   

    애초에 약자라 하여 선한 것도 아니다. 저놈들은 그냥 대놓고 깡패짓을 하는 거고, 저놈들 외에도 병신들은 뒷골목에 차고 넘친다.

   

    “뭐, 거기까진 내 알 바 아닌가.”

   

    서준이 입맛을 다시고 있자 춘봉이가 다가와 주먹에 묻은 피를 그의 옷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저…, 그걸 왜 여기에 닦으세요?”

    “뭐. 싫어?”

    “응. 좆같은데?”

    “어쩌라고.”

   

    입술을 삐죽 내민 춘봉이 슬쩍 손을 거둬 제 옷에 피를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거 무서운 년이다. 허리춤에 있는 검은 뽑지도 않고 흑도 놈들을 죄다 주먹으로 피떡을 만들어버렸다.

   

    ‘쌓인 스트레스라도 푸는 것 같던데, 나중에 나로 스트레스 푸는 건 아니겠지?’

   

    그런 끔찍한 미래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춘봉이의 교육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가자. 그 여자는 어디 있으려나.”

    “찾으면 어쩌게?”

    “나도 모르지.”

   

    홍등가의 기루 중 절반은 흑호문의 소유다. 첫날에 만났던 범죄자 친구들이 흑호문 소속이었으니 아마 그 중 하나에 있지 않을까 싶다.

   

    “멈춰라.”

   

    문득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주변 흑도 친구들 안색이 확 밝아지는 걸 보아하니 저놈이 그 형님인가 뭔가 하는 친구인가 보다.

   

    “갈!”

   

    강이 흐른다. 청하문의 청 뭐시기에게서 베낀 청류검을 사내의 머리에 때려박았다.

   

    “헛…!”

   

    놀란 사내가 쇠몽둥이를 들어 막았지만 소용없다.

   

    콰지직-!

   

    쇠몽둥이와 함께 머리가 으깨진 사내가 쓰러졌다. 서준은 검집을 탈탈 털며 손을 내저었다.

   

    “자, 이제 진짜 꺼지세요들. 뒤지기 싫으면.”

   

   

    *

   

   

    아무 기루 중 하나에 들어설 때쯤 춘봉이가 입을 열었다.

   

    “너 조심해.”

    “이번엔 또 뭐야? 조심할 게 왜 이렇게 많아.”

    “니가 상식적으로 살면 별로 없는데 새끼야. 어? 상식적으로 살지를 않잖아!”

   

    씩씩대던 춘봉이가 허리춤에 매인 검을 가리켰다.

   

    “너, 아무 문파 무공이나 막 따라 쓰다가 무림공적으로 몰리기라도 하면 진짜 좆되는 거야.”

    “거 째째하게들 구네.”

    “아오!”

   

    춘봉이가 방방 날뛰었다.

   

    사실 나도 알고는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니까.

   

    첫째로, 문파의 무공에는 특색이 있다.

    청하문의 무공을 쓸 줄 알면 대충 아무나 칼로 쑤셔도 일단 청하문이 의심받는다.

   

    둘째로 무공에는 파해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단순화한 예로 가로베기 후 세로베기를 하는 초식이 있다면, 가로베기를 막고 곧바로 옆으로 피하며 공격하면 그 초식을 쓰는 입장에서 꽤나 곤란해진다.

   

    물론 파해법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파해법이 만들어지면 문파 자체가 휘청일 수 있는 만큼 조심할 수밖에 없다.

   

    셋째로, 그냥 원래 사람이 그렇다.

    사촌이 땅만 사도 배가 아픈 게 사람이다. 옆집 식당에서 요리법만 훔쳐가도 칼부림이 날 텐데 무공을 훔쳐간다?

   

    심지어 무공은 대대손손 물려져내려온 가보와 비슷하다. 그걸 훔쳐가면 일단 칼부터 들이밀고 보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 그러냐?”

    “아니, 근데 나도 억울하다고.”

   

    자신은 청류검의 심상과 기의 흐름을 보고 대충 베낀 거지 뭐 초식을 알고 그런 게 아니다.

   

    청하문의 내공과 비슷한 특징을 띠긴 하겠지만…, 이걸 구분한다고? 그게 가능할 리가.

   

    첫 번째 이유처럼 청하문이 의심받는 경우는 특색 있는 초식에 썰렸을 때지 내공 특색이 비슷한 경우가 아니다.

   

    아마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마기魔氣나 사기邪氣쯤 돼야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나처럼 개쩌는 재능이 있거나.

   

    “지랄 진짜.”

   

    비슷한 이유로 파해법도 좀 힘들다. 초식을 모르는데 뭔 파해법?

   

    아예 청하문의 내공과 상성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서준이라도 당장 그건 좀 힘들었다. 나중이면 몰라도 일단 지금은. 

   

    “그니까 결론적으로, 그 친구들이 날 쫓아오면 그냥 배 아파서 그런 거라는 거지.”

    “야.”

    “왜.”

    “혹시 병ㅅ…, 바보야?”

    “병신이냐고?”

    “그래 이 새끼야!”

   

    춘봉이 이마를 탁 치며 한탄했다.

   

    “걔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아하?”

    “당연히 니가 무공을 훔쳤겠거니 하지, 뭐 한눈에 보고 따라했다 생각하겠냐?”

    “그거 일리 있네.”

   

    서준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부터는 좀 티 안 나게 잘 써볼게.”

    “…좆대로 해라, 그래.”

   

    춘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

   

   

    “들어온 지 일 년쯤 된 기녀란 말씀이신지요.”

    “어…, 네.”

   

    기루에 들어오자마자 한 여인이 그들을 맞이했다. 스스로를 매월이라 소개한 여인은 보아하니 기녀들 사이에서도 위치가 꽤 있는 듯싶었는데, 그 분위기가 참 묘했다.

   

    “그 수가 적은 게 아니라 무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원하신다면 불러모으겠습니다만.”

   

    괜히 머쓱하게 춘봉이와 시선을 맞춘 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뇨,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요.”

    “그러십니까. 그러면 혹…, 달리 원하시는 게 있으신지요.”

   

    매월의 눈꼬리가 요사스럽게 휘어졌다. 서준은 본능적으로 검 손잡이에 손을…,

   

    찰싹-!

   

    “미친놈아!”

    “아차, 습관적으로.”

   

    화끈거리는 손등을 휙휙 털어낸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이만…, 어?”

   

    서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떠나려는 그의 눈에 나름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그 여자다.

   

    “찾았다.”

   

    서준의 반응에 매월이 미간을 곱게 찌푸렸다.

   

    “저 아이는….”

    “뭐 문제 있어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으음, 뜻대로 하시지요.”

   

    매월이 물러났다.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예의 그 여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기요.”

    “…예?”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온통 멍투성이인 여인은 급히 허리를 숙이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서준을 향해 다가왔다.

   

    “부, 부르셨나요?”

   

    뭐라 말을 해야 되지? 고민하고 있으니 슬쩍 고개를 들어올린 여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너, 너는…! 이 개자식…!”

   

    뭐지? 지금인가?

   

    찰싹-!

   

    반사적으로 검 손잡이에 올라간 손을 또 얻어맞았다.

   

    “야 좀! 니가 뭔 미친 살인마 새끼야!?”

   

    아니, 저 사람 눈깔에 살기 흐르는 거 안 보이니?

    

    “오빠 서운해.”

    “아, 아니, 서운할 것까지야….”

   

    춘봉이가 슬쩍 다가와 옆구리를 툭툭 두드렸다. 이제 안 서운하다.

   

    검에서 손을 뗀 서준이 여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기요.”

   

   

   

   

   

   

   

   

   

   

    ※ 일러 주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냥 춘봉이가 귀여워서 올리는 일러입니다.
시점은 영약 먹기 전쯤 되겠네요.
지금은 저기서 키가 좀 자라고 머리카락이 흑백 투톤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고양이 귀는 소품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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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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