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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16 – 첫 친구>

     

    막스와 제시는 이쁘장한 또래아이의 등장이 퍽 반갑고 신기했다.

     

    “저기, 볼풀공에는 왜 들어가 있던 거야?”

    “애들이랑 놀아주기 싫어서?”

    “바보야, 여자는 부끄럼쟁이거든? 부끄러워서 그랬을 거야.”

    “하, 부끄럼쟁이는 무슨. 왈가닥 같은 년이.”

    “뭐어? 너 말 심하게 하면 내가 혼내준다고 했지!”

    “악, 그만. 뼈 맞았어!”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기 시작하는 아이들.

    부럽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무심코 생각했다.

     

    “둘은 친구야?”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만나는 거야. 고향이 서로 맞닿은 남작가문이거든.”

    “말은 지가 더 심하게 하면서…….”

     

    금방 삐져서 입술을 삐죽 내미는 막스나 “뭐야 너 나 좋아해?” 하면서 놀리는 제시나 참 사이가 좋아보이는 이인조였다.

     

    “아까는 놀라게 해서 미안해. 처음 보는 장소에 가면 숨어있는 게 좋아서…….”

    “아, 그 기분 알지. 모르는 사람들이 귀찮게 하는 게 싫어서 도망 다니고 싶잖아.”

    “너희도 입학시험 보러 가는 길이야?”

     

    두 꼬맹이가 나란히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열 살 밖에 안 되는데?”

    “아니야?”

    “열 살이 어떻게 입학시험을 봐?”

    “스무 살도 힘든 시험인데.”

     

    두 아이의 눈에 설마 하는 감정이 일었다.

     

    “너 입학시험 보러 가는 길이야?”

    “진짜로?”

     

    뭔가 말실수를 한 기분이 드는데.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우와아”, “쩐다아” 하는 감탄이 이어졌다.

    굉장히 예전에 본 적이 있던 시선이다.

    리마스터 포켓몬스티커가 출시되어서 공책에 붙여 모을 때, 레어씰을 보고 주변에서 보이는 선망어린 시선이 꼭 이러했었지.

     

    “넌 이름이 뭐야?”

    “오크노디.”

    “이름 이상해.”

    “어떻게 사람 이름이 오크노디야?”

     

    내말이.

     

    “우리 형은 15살에 입학시험 보러 가는데. 오크노디가 형 대신 합격하면 좋겠다.”

    “왜?”

    “열 살짜리한테 졌다고 놀리고 싶거든.”

     

    그런 이유로 응원 받고 싶지 않아.

     

    불순한 응원동기야 어쨌든 두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의외로 즐겁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늦은 밤이 되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앗, 우리 이만 가봐야돼.”

    “야 막스. 니 동생 빨리 데려와.”

     

    카페진동벨처럼 지잉지잉하고 울리는 단말기에 막스가 지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한 살이나 갓 넘겼을까 싶은 아이를 안아들었다.

     

    “아부부”

    “야, 그거 내려놔. 볼풀공은 가져가면 안 돼.”

    “아부브바바!!”

    “악, 손으로 밀지 마!”

    “풋. 애 돌보기 너무 못해.”

     

    제시의 비웃음에 얼굴이 빨개진 막스가 애기가 손에 든 공을 뺏으려 들었지만, 애도 나름 필사적으로 막스를 밀고 공을 껴안고 난리가 났다.

     

    “애착인형 같은 거야.”

     

    제시가 옆에서 말했다.

     

    “엄마가 그랬는데, 생후 12개월이 지난 아이들은 부모 대신 관심과 사랑을 쏟을 애착물건을 가진대. 여기는 그런 인형이나 물건이 없으니 볼풀공을 애착인형 대신으로 삼았나봐.”

    “제시는 똑똑하구나.”

    “치, 칭찬한다고 뭐 안 나오거든?”

     

    꼬리만 달렸으면 붕붕 돌았겠네.

    그런데 저 볼풀공,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묘하게 끌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맡아줄까?”

    “볼풀공을? 왜?”

    “난 아직 여기서 더 있어야하거든.”

    “너도 애 돌보러 온 거야?”

    “리프가 기다리면 온다고 했거든.”

    “리프?”

    “메이드 이름이야.”

    “귀엽겠네. 근데 애가 욕심이 되게 많은데 되겠어?”

    “해보면 알겠지.”

     

    나는 애기와 눈을 마주쳤다.

     

    “안녕 애기야?”

    “어우마? 꺄꺄!”

     

    눈이 초롱초롱해져서는 금색 머리카락으로 손을 뻗는 아기.

    머리를 움켜쥐는 통에 볼풀공은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졌다.

    덕분에 간단히 볼풀공을 얻기는 했지만 막스가 아이를 떨어뜨리기까지 애 손에 잡혀서 머리카락이 몇 가닥은 뽑힌 것 같다.

     

    “미안. 우리 막내가 많이 난폭하지?”

    “괜찮아. 이 정도는 딱히 아픈 것도 아니고.”

    “너 되게 어른스럽다. 그래서 입학시험도 보는 건가? 키는 같은데 완전 어른 같아. 나였으면 엄청 짜증나서 웃음도 안 나왔을 텐데.”

     

    어른이 맞으니까 그렇지.

    아무튼 막스와 애기, 제시를 배웅하고는 애기가 안고 있던 볼풀공을 집어 들었다.

    침이 잔뜩 묻어서 번들거리는 공은 묘하게 다른 볼풀공들과 무게가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볼풀공의 형상을 띈 다른 무언가처럼 느껴진다.

     

    역시 익숙해.

    나는 이런 물건의 정체를 알고 있다.

     

    ‘이거 스탯석 아니야?’

     

    가능성은 있다.

    키즈존은 근육떡대남캐플레이어 시절에는 한 번도 들어와보지 못한 곳.

    내가 모르는 스탯석이 있다고 해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먹어보면 알겠지.’

     

    공에 묻은 침을 소매에 슥슥 닦고는 입을 와앙 벌려서 한입에 삼켰다.

    꿀꺽.

    목넘김은 매끄럽다.

    예상이 맞았네.

    이 느낌, 스탯석이 확실했다.

     

    ‘무슨 스탯이 올랐을까?’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플레이어의 상태창 기능이 없어도 아카데미 마법으로 상태창을 볼 수 있을 텐데.

    얼른 입학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제시와 시선을 마주쳤다.

     

    “자, 잠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제시의 손에는 자그마한 파우치가 들려있었다.

    요컨대, 타이밍이 나빴다.

     

    “오크노디……? 볼풀공을 왜 삼킨 거야?!”

    “앗, 아앗, 이, 이건 그러니까……”

    “얼른 치료사, 치료사 선생님한테 가야해!”

     

    손을 잡고 낑낑거리며 잡아끄는 제시.

    추정근력 29의 신체가 그 정도에 끌려갈 리는 없지만, 혹여나 저러다 제시가 다치기라도 할까봐 힘을 풀고 끌려가주니 응급실까지 끌려왔다.

    리프가 돌아오기라도 하면 어쩌지?

    음, 뭐 금방 돌아가면 되고.

    괜찮겠지?

     

     

    * *

     

     

    도박장에 침입할 수단을 찾아낸 리프.

    키즈존에 돌아온 리프는 텅 빈 볼풀장을 보고는 깨달았다.

    아가씨의 고질병 숨바꼭질이 또 시작되었구나.

    이번에는 제법 교묘하게 숨은 것 같지만 그녀 또한 암살교관으로 파견된 자.

    숨은 사람을 찾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

     

    “후훗. 아가씨의 숨소리가 들리는군요. 혹시 커튼 뒤에 숨어계십니까?”

     

    스르륵

     

    “아니군요……. 그렇다고 옷장에 숨는 진부한 선택을 하지는 않으시겠죠.”

     

    끼이익

     

    “여기가 키즈존 수면실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침대 밑에 숨으셨다면 제법 칭찬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르륵

     

    “오늘의 아가씨는 숨기 실력이 제법이군요…… 좋은 승부가 되겠습니다. 후후.”

     

    아무도 없는 키즈존에서의 나 홀로 숨바꼭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 *

     

     

    응급환자를 위해 설치된 응급실에는 다양한 설비와 전문치료사가 배치되어 있다.

    힐링마법을 쓰는 사제부터 외과시술을 하는 의사, 다양한 병의 증세를 치료하는 치료사까지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두 있었다.

     

    ‘게임에서는 부상 입고 무작정 응급실을 찾아가면 랜덤의사가 배정되어서 엉뚱한 치료를 하거나 아예 잘못된 치료를 받기도 했었지.’

     

    실력 있는 사제는 뼈의 위치도 다시 맞추지만 하급사제는 그런 거 없다.

    위험성을 아는 내 입장에서 응급실은 망캐의 지름길이고, 야간당번이라며 자리를 지킨 하급사제 에지오는 부러진 뼈의 농락자이자 다가오는 공포였다.

     

    “친구분이 공을 삼켰다고 하셨죠?”

    “네! 얼른 어떻게 좀 해주세요!”

    “음. 보아하니 만 5세는 넘은 것 같은데, 등록은 하셨죠? 여기 마나보드에 손바닥 찍어주세요.”

     

    머지 이건. 게임에 없는 신기능인가?

    석고보드 같은 돌덩이에 손바닥을 찍자 손이 쑥 들어가며 모양이 남았다.

    정교한 마법진이 석고보드 위로 떠오르더니 눈에 익은 ‘교신’과 ‘기록’, ‘분석’ 등등의 문양이 연속적으로 떠오르며 기하학적인 모양을 이루었다.

    이건 무슨 마법이지?

     

    “이럴 수가!”

    “왜 그러세요 선생님?”

     

    혹시 전투력 측정기 마법인가?

    실은 내 전투력이 53만이었다거나.

     

    “이 나이가 되도록 국제신원등록마도보관서에 등록되지 않은 무국적자라니!”

     

    전투력측정은 무슨, 신원확인 마법이었다.

     

    “네에에?! 무언가 착오가 있는 건 아닐까요, 선생님? 오크노디는 집사랑 비서랑 같이 비공정에 탑승한데다가 아카데미 입학시험도 준비하고 있는걸요?”

     

    제시의 이야기에 의사선생님은 허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중계기의 오작동으로 검색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 설마 만 10세에 가까운 아이를 등록도 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 리가 없지.”

     

    하하 웃으며 의사선생님이 자리를 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 밖의 복도가 보이는 투명유리 저편에서 심각한 얼굴로 의사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간호사들도 몇이나 나와서 술렁거리며 이쪽을 힐끗 보다가 눈을 마주치고는 어색한 손인사를 한다.

     

    “저기, 오크노디. 혹시 정말로 등록 안했어?”

    “몰라!”

    “에엑? 등록만 하면 재능검사를 무료로 해주는 신원등록마법진을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어?”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나한테 이런 마법이 있다고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걸.”

    “같이 왔다던 집사도? 메이드도?”

    “응.”

     

    제시의 표정도 바깥의 의사선생님들만큼이나 심각해졌다.

     

    [아- 아-. 잠시 안내방송 드립니다.]

    [보호자가 아이를 찾습니다. 금발에 키가 133cm가량이며, 마른 체구의 모험가세트여자복장을 입은 리본머리띠를 한 10세가량의 여자아이입니다.]

    [아이를 찾으신 분은 가까운 직원에게 인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리프가 찾고 있나봐. 돌아가야 해.”

    “가지마.”

    “제시?”

    “엄마아빠가 그랬어. 아이를 신원등록도 하지 않는 집안은 정상적인 집안이 아니라고. 오크노디네 집안은 정상적이지 않아.”

    “으음.”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래도 딱히 상관없지 않나?

    지원금도 주고 훈련도 시켜주고.

    랜덤파파 이벤트에서 이 정도로 도움을 주는 파파는 찾기 쉽지 않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지금까지 겪어본 회차 중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파파다.

     

    “파파는 나쁘지 않아. 나는 파파에게 감사하고 있어. 파파가 보내준 조나와 리프에게도 언제나 훈련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고.”

    “훈련? 기본적인 신원등록도 하지 않으면서 무슨 훈련을 하는 거야?”

    “검술대련이라거나? 전력질주와 걷기를 반복하는 스프린트 인터벌이라거나? 과녁에 묶은 다람쥐나 우리에 갇힌 토끼를 화살로 맞추기 같은?”

     

    제시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하는 학대가정의 피해아동을 보는 것처럼 초점이 떨렸다.

     

    “도망치자.”

    “뭐어?”

    “잡히면 오크노디가 또 큰일을 당할 거야.”

     

    제시의 눈에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은 혹시 알고 계셨나요?
    금성의 하루는 243일이라는 사실을.
    그렇습니다.
    지구인 작가가 일일연재로 243일을 연재해도 금성인에게는 무려 하루 만에 243연참이 올라오는 것이죠!
    고로 희귀한테디베어는 금성인 독자님들을 적극 환영합니다.

    같은 이유로 하루가 9시간 53분인 목성인들은 환영하지 않습니다.
    9시간마다 연재하지 않으면 일일연재가 아니라니, 두려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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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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