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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경찰인 아버지를 둔 무라사끼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생리적으로 혐오하게 된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법 위에 있는 것처럼 구는 일본의 화족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무지 법 질서를 지키지 않는 인종인 조선인이었다.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무라사끼 역시 어렸을 때부터 불량배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여러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저 두가지에 해당하는 인간은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두 종류에 해당하는 인간 둘에게 벌써 두 번이나 굴욕을 당했다. 첫 번째는, 화족에 해당하는 인간이었다.

       

       ‘젠장, 그 시마즈의 계집……!’

       

       자신의 패거리가 보는 앞에서, 일개 계집에게 따귀를 맞는 굴욕을 당했던 것.

       

       하지만 무라사끼로서는 그런 굴욕을 당하고도 어쩔 수 없었다. 내지에서도 시마즈 공작가문의 위세는 대단했기에, 아무리 종로경찰서장을 아버지로 둔 무라사끼라고 해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분하다…… 분해! 하지만 시마즈의 계집은 어쩔 수 없다!’

       

       하고, 홀로 분을 삭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분한데, 무라사끼가 용서할 수 없는 두 번째, 즉 조선인으로부터도 굴욕을 당했다.

       

        ‘건방진 조선인 녀석……!’

       

       그냥 건방진 조선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눈엣가시인데,  시마즈 계집과 친분이 있는 것을 보면 시마즈의 권세를 등에 업고 건방지게 구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건방진 조선인 녀석 스스로도 남작 작위를 받은 조선귀족의 자식. 일본 화족만큼은 아니었지만, 조선 귀족 역시 어느정도는 법 위에 있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화족인 시마즈 계집은, 타고난 핏줄 자체가 다른 상급 신민이었으니 백번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유사 귀족에 불과한 조선인은?

       

       ‘용서할 수 없다……!’

       

       그런 백철연이라는 존재는, 무라사끼로서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집합체였다. 그런 녀석이 자신의 뺨을 때리고, 자신을 제치고 분대에서 대장 노릇까지 한 것을,

       

       무라사끼는 일본제국의 남아이자 한 명의 대장부로써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굴욕도 이제는 끝이다.

       

       ‘드디어 오늘, 녀석과의 결착을 낸다.’

       

       조선귀족이라는 지위와 시마즈의 위세를 업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거렸지만, 녀석의 검술 실력 자체는 별볼일 없을 터. 조선인 주제에 자신을 이길 수 있을리 만무했다.

       

       마침 수업 첫 날인 오늘 오후, 검술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조선인 녀석이 호기롭게 제안한 대련, 그곳이 녀석이 묻힐 묘지가 될 것이다……!

       

       

       

       ***

       

       

       

       “이거 완전 명당이구만.”

       

       북한산 일대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세워진 학교의 수많은 건물들 중에서도, 꽤 그럴듯한 위치에 지어져 다른 건물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물에서 나오며 나는 중얼거렸다.

       

       산자락에 세워진 학교인지라 오르내리기는 힘들지만, 이 학교가 아니었으면 묫자리가 수두룩했을 자리인 만큼, 내려다보는 경치 하나는 좋았다.

       

       나는 뒤따라오는 송병오에게 말했다.

       

       『벌써 4교시네. 다음 수업은 뭐지?』

       

       일학년 과정에서는 오전은 공통 수업이라, 나는 첫 수업 이후로 내 분대원들과—아파서 의무실에 간 이유하와, 자기 패거리들과 다니는 무라사끼를 제외하고—몰려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 일정표를 들고다니던 송병오가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어디…… ‘기초마력학’이군. 마법관 103호. 담당은 구로베 사노스께 교수.』

       『기초마력학이라.』

       

       기초마력학이라면, 마력 운용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겠지. 아마 이것도 이론수업일 것이다. 이미 3교시까지 수업을 받았지만, 첫 수업은 대부분 별 것 없었다. 하긴, 어디서나 첫 날은 대개 교수들의 자기소개와 수업 소개만 하고 끝나니까.

       

       『네에네에, 시라바야시 군! 그거 알아, 그거?』

       

       송병오와 다음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양복자가 옆으로 다가와서 대뜸 물어온다.

       

       『갑자기 또 뭐를 아냐는 거야?』

       『다음 기초마력학 수업의 구로베 교수 있잖아! 있지있지, 선배들한테 들었는데, 구로베 교수 별명이 도라큐라 백작이라는 거!』

       

       아니, 양복자 얘는 기숙사도 아니고 통학이면서, 입학 이틀째에 언제 선배들하고도 친해졌대? 하여간 친화력은 장난이 아닌가보다.

       

       그나저나, 교수의 별명이 드라큘라 백작이라고.

       

       ‘귀엽네.’

       

       어딜 가나 학생들이란, 선생한테 유치한 별명 붙이기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반문했다.

       

       『글쎄, 왜? 생긴 것 때문에?』

       『아니아니!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항상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 거야!』

       

       피?

       

       『구로베 교수는 몇 년째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데…… 무슨 연구인지는 몰라도, 매일같이 실습용 마수를 해부하고 있대! 그 탓에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해부된 마수의 피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는 거야!』

       『히이……』

       

       옆에서 듣던 아이까와가 두 손을 모으고 질겁했다. 

       

       『근데근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의 연구실에서 일하는 폐기되어서 나오는 마수들은, 전부 피가 싹 빠져 있더래……! 그래서 별명이 도라큐라 백작이라고……!』

       『꺄악……』

       

       양복자가 목소리까지 깔며 분위기를 조성하자, 아이까와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본 양복자가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꺄하하! 어디까지나 풍설이기는 하지만 말야! 그래도 사실인 건, 몇 년 동안 연구의 진척이 없어서 엄청 날카로워져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

       

       흐음.

       

       학생들 사이에서는 저 구로베 교수라는 사람에 대해 이상한 루머들이 떠도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얘기만 들어도 그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을지 나름 추측이 갔다.

       

       마력학을 연구하는 교수가 마수를 해부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마수가 죽은 뒤 마석에서 마력이 증발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하는 연구목적이리라. 피를 모조리 뽑는 것은 아마 마력 유지에 끼치는 생력의 영향을 측정하기 위함일테고…….

       

       다만 문제는, 마력의 증발을 막는 것에는 복잡한 마력공학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엊그제 쇠말뚝 결계에서도 봤지만 지금의 주먹구구식 마력공학 수준으로는 아무래도 무리. 그래서 몇 년동안 연구에 진척이 없는 것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덧 구로베 교수의 강의실에 도착하니, 강의실 한켠에 이유하가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의무실 가서 세 시간 쯤 쉬었을라나. 나는 다가가서 조용히 조선어로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 

       “아…… 이제는 괜찮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데, 확실히 아까보단 안색이 나아진 듯한 것이 큰 탈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뭐, 그냥 학기가 시작되며 긴장한 탓에 몸이 살짝 안 좋았던 것이었겠지.

       

       그렇게 조선어로 몇 마디를 나누다가, 수업 시작 시간이 다가오며, 강의실에 학생들이 들어차기 시작해 슬슬 조선어 대화를 이어가기는 위험해졌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려다, 뭔가 생각난 김에 이유하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일본어 써야지. ……아! ‘괜찮다’라는 말, 일본어로 말해볼래? 그게 레슨 투야.”

       “일본어로 말이오? 어……”

       

       이유하는 잠시 고민하더니 더듬거리며,

       

       『대장부(大丈夫), 입니다……?』

       

       하고 말해놓고, 쿡 하고 웃는다.

       

       “내 여인인데 대장부라니, 어쩐지 내 말을 꺼내고도 우습구려.”

       

       일본어에서 ‘괜찮다’는 뜻으로 다이죠부(大丈夫). 즉, 대장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재미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수업 잘 받아.』

       

       나는 다시 송병오 녀석이 있는 쪽에 가서 앉았다. 딱히 자리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암묵적으로 교실을 반으로 갈라서 남학생은 왼쪽, 여학생은 오른쪽에 몰려 앉는 느낌이었으니까.

       

       곧, 강의실 뒷문으로 교수가 들어왔다.

       

       ‘저 사람인가.’

       

       저벅, 저벅. 학생들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강의실 가운데의 빈 통로를 저벅저벅 가로질러 교탁 앞에 선 교수의 첫 인상을 본 나는 생각했다.

       

       ‘왜 별명이 드라큘라 백작인지 알겠네.’

       

       그는 4월 초인데 덥지도 않은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고 검은 프록코트를 걸치고, 거기에 목깃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잘랐는지, 언제 감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자라서 떡진 곱슬머리는 아무렇게나 흘러내려와 깡마르고 메마른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그러나 짙은 다크서클 위로, 안광만은 흉흉하게 번뜩이는 것이 꽤나 인상깊은 모습이었다.

       

       이런 음침한 외견과, 연구 과정에서 발생한 오해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리라. 하지만 21세기에서 대학교를 다녀본 나는, 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몇 년째 성과 없는 연구에 매몰된 교수라는 것은 대개 저렇지……’

       

       이렇게 교수가 교탁 앞에 서자, 출석순서 때문에 졸지에 임시 급장이 되어버린 아이까와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기, 기립!』

       

       드르륵, 드륵. 의자 소리를 내며,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렷! ……례!』

       

       학생들이 고개를 숙여 교수를 향해 예를 표하고,

       

       『착석!』

       

       하는 소리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구로베 교수가 입을 열었다.

       

       『공통 기초마력학 강의를 맡은 구로베 교수다.』

       

       잔뜩 쉬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전공 과정에서는 방출계 마법학 수업을 담당하고있다. 너희들 중에서도 이후 내 수업을 받게 될 녀석이 있겠지…….』

       

       그렇게 운을 띄우더니,

       

       『하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쓰레기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술렁…….

       

       음침한 외모도 그렇고, 떠도는 루머도 그렇고, 학생들에게 말하는 뽄새까지. 확실히 학생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학생들의 시선도 무시한 채, 구로베 교수는 칠판에 ‘기초마력학. 그 1 – 측정’을 판서하고는 말을 이었다.

       

       『본 기초마력학 수업은…… 개인별로 그 울림이 다른 마력을, 각자의 전투 성향에 맞춰 적절히 운용하는 법에 대해 개괄적으로 배우는 수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각성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그러나, 너희들 중에서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온전히 아는 자는 아직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금일은, 너희들이 어떤 각성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아카데미에 입학까지 한 각성자가 자신의 능력을 모른다는 것이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교수의 말대로, 각성했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나도 독 저항 패시브 능력이 있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으니까.

        

       스테이터스 시스템이나, 마력 공학을 이용한 기계를 통해 마력 패턴을 측정해보면 무슨 능력을 각성했는지 바로 나오겠지만, 개인의 경험이나 추측만 가지고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의 의문과 함께, 호기심이 들었다.

       

       ‘지금의 마력공학 수준은 별볼일 없는 것 같던데…… 이걸 어떻게 측정한다는 걸까.’

       

       강의실 안에는 딱히 기계장치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로베 교수가 말했다.

       

       『급장.』

       『예, 옛!』

       

       아이까와가 대답했다.

       

       『이걸 생도당 한 장씩 나눠주도록.』

       『옛!』

       

       아이까와가 교탁 위에 올려져있던 종이뭉치를 들고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그냥 맨 앞 학생 몇명한테 주고 ‘뒤로 전달!’하면 편할텐데. 요령이 없는 건지 소심한 건지.

       

       나도 종이를 받아보니 색종이만한 크기에 마치 물감을 먹인 것처럼 빳빳한 종이였다. 마지막 학생까지 종이를 받아들자 교수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 나누어준 종이는 베르너-보일 시험지다……. 급장.』

       『예?』

       

       종이를 다 돌리고 겨우 자리에 가서 앉으려던 아이까와가 다시 고개를 들고 되물었다. 교수가 말했다.

       

       『교과서 17 페-지의 「각성능력 계열의 약식 측정법」 첫 단락을 읽어보도록.』

       『저어…… 기초 마력학 교과서 말씀이신가요? 교과서라면 아직 배부받지 못했는데요…….』

       

       구로베 교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교편으로 교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불쌍한 임시 급장 아이까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나, 교탁 위의 교과서를 펼쳐들고 교수가 지시한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에…… 각성능력 계열의 약식 측정법……. 측정 대상자가 마력을 운용한 상태에서, 베르너-보일 지시약이 도포된 시험지에 손바닥을 5cm 거리로 가져다 댄 뒤, 5분 후 시험지의 변화 양상을 관측한다…….』

       『그 다음도.』

       『……베르너-보일 지시약은 마력 에네르기에 의한 물리·화학적인 변화, 예컨대 온도·습도·압력·전류 등에 따라 색이 변하므로…… 이를 통해 마력의 방출성 여부 및 어느 계열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설명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 종이 쪼가리로 마력을 탐지해서 각성능력 계열을 측정한다는 거지. 

       

       ‘말하는 모자 따위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뭔가 좀 신박한 방식을 쓸 줄 알았는데 이런 식이었던 건가. 옆자리의 송병오가 중얼거렸다.

       

       『보통학교 이과시간에 배웠던 리토마스 시험지같군!』

       

       음, 그래. 딱 그런 느낌이다. 리트머스 시험지. 초등학교때 했던 과학실험. 과학적인 듯 하면서도 현대적이지는 않은, 이 미묘하고 어중간한 느낌.

       

       나도 종이에 손바닥을 가져다대고 마력을 집중해 보았다. 그러자 과연 시험지의 색이 변했지만,

       

       ‘뭐, 이걸 하나 마나……’

       

       지금 내가 빙의된 백철연이라는 학생은 오러 블로어 계열의 능력이 주력이고, 거기에 마력 감응과 패시브로 독 저항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뭐, 어차피 내일이면 상태창 복구가 완료될테니, 이런 시험은 거치지 않아도 상관 없었던 것이다.

       

       『오! 변했다! 변했어!』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 몇 명이 호들갑을 떨었다. 하긴, 뭔가 과학실험같은 느낌도 있고, 나름대로 신기하긴 했으니까. 그런데,

       

       『흥……! 어차피 난 검술 전공으로 들어갈 건데 이딴 쓸데없는 짓거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강의실 뒷편에서 남학생 한 명이 투덜거렸다. 양아치 무라사끼였다.

       

       『이런 것 따위, 마법쟁이들한테나 필요한 거 아냐? 대장부로 태어나서 검 안 들고 마법 쓰는 것들은 전부 겁쟁이들이지…… 큭큭.』 

       

       그렇게 주변의 일본인 학생들과 시시덕거리는데, 그 곁으로 구로베 교수가 다가가더니 조용히 말했다.

       

       『일어나게.』

       

       무라사끼는 엉거주춤 일어난다. 교수는 무라사끼의 명찰을 무심하게 슥 보고는,

       

       『생도 무라사끼 겐지.』

       『……예?』 

       

       철썩-!

       

       구로베 교수는 손을 들어 무라사끼의 뺨을 후려쳤다. 오우……!

       

       『자리에 앉게.』

       『예…….』

       

       무라사끼는 똥 씹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꼴 좋다.’

       

       그러게, 마법 가르치는 교수 앞에서 마법 쓰면 겁쟁이니 뭐니 쳐맞을 소리를 왜 하냐고. 병신인가?

       

       구로베 교수는 강의실 한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보고는 교탁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측정은 끝이다. 각자 시험지에 이름을 쓰고 교탁에 제출, 퇴실하도록. 결과는 명일 나올 것이다.』

       

       각자 자신의 시험지를 들고 일어서서 교탁에 놓고 나온다. 그런데, 

       

       『저…… 교수님.』

       

       하고,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있는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은발 댕기머리의 여학생, 이유하였다. 구로베 교수는 이유하가 있는 쪽을 천천히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교수를 부를 땐 ‘선생’으로 호칭한다. 그리고 직함에 「사마(님)」는 붙이지 않는다. 뭔가?』

       『그게…… 죄송합니다. 시험지가 한장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교수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저벅저벅 걸어 이유하의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나도 이유하가 앉아있는 쪽을 보니, 이유하의 시험지가 완전히 얼어붙어서 책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빙결!’

       

       그냥 마력만 운용했어야 했는데, 컨디션이 나빠서인지 적절히 조절을 못 하고 빙결을 대놓고 방출해버린 모양이었다. 구로베 교수는 이유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명찰을 보며 물었다.

       

       『리 류까 생도, 인가.』

       『아…… 예. 그렇습니다.』

       『아까의 쓰레기같은 생도보다 훨씬 낫군. 시험지는 그대로 두고 가도록.』

       

       

       

       ***

       

       

       

       숨이 턱턱 막히는 기초 마력학 시간이 끝나고, 나는 우리 분대원들과 함께—자기 패거리들과 다니는 무라사끼 한 놈은 제외하고—강의실을 나와 교정을 거닐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군.』

       『그러게. 과연 도라큐라 백작이 맞는 것 같네.』

       『그래도 우리는 다행이지! 저 교수의 수업을 오전에만 받으면 되니까……』

       

       그랬다. 오전까지는 공통수업이었지만, 오후부터는 각자의 전공수업이 배정되어 있었다.

       

       이유하처럼 마법이 전공인 애들은 오후에도 저 교수의 수업을 계속 들어야겠지만,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은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공통수업을 듣느라 같이 다니던 우리 분대원들에게 물었다.

       

       『검술과목 수업 받는 사람?』

       

       그렇게 묻긴 했지만, 있을리가 없었다. 각자 송병오는 사격, 이유하는 마법, 양복자는 염동력. 아이까와는 치유술로 다들 전공이 달랐으니.

       무라사끼는 나와 함께 검술과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었고.

       

       뭐, 그럼 나도 혼자 수업 들으러 가 봐야겠네. 

       

       분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나는 이유하에게 다가가 물었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안색은 창백했다. 아니, 오히려 아까 나쁜 컨디션에 무리하게 빙결 방출을 하고 난 뒤라서 그런지, 더 나빠진 듯도 보였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내 목전에 일본말로 「대장부」라고까지 하였잖소.  그대는 어찌 거듭 그러시오.”

       

       뭐, 본인이 괜찮다니까 어쩔 수 없지만……. 

       

       “뭐, 그럼 난 오후수업 들으러 간다. 바이.”

       

       그렇게 이유하를 비롯한 분대원들과 헤어진 나는, 검술과 교장으로 향했다. 강의실이라기보단, 체육관이나 도장 같은 느낌의 장소.

       

       학생들은 도장의 양 옆으로 줄지어 무릎을 꿇고 앉았고, 상석에는 하오리를 걸친 백발의 노인 한 명이 정좌해 있었다. 

       

       백발과 수염으로 짐작되는 지긋한 나이가 무색하게, 어지간한 학생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몸집과 정정한 풍채. 백발의 노인은 착! 하고 허벅다리를 찰싹 때리더니 크게 외쳤다.

       

       『자아, 시작해 볼까! 나는 겐류 곤자에몬일세!』

       

       검술과 담당의 겐류 교수였다.

       

       『그래! 검술과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너희들 중에는 칼을 처음 들어보는 초심자도 있을 것이고, 이미 능숙하게 칼을 잡아 본 사람도 있을테지!』 

       

        겐류 교수는 도열한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첫 시간인 오늘은, 우선 숙련자끼리의 대련을 보여주고 검술의 개요를 체험하려고 하네! 그래서 대련을 할 시범 역을 모집해볼까 하네만, 어디 실력을 뽐내고 싶은 녀석이 있는-』

       『선생!』

       

       교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라사끼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본 무라사끼 생도! 시라바야시 생도와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무라사끼라면, 아아, 종로서 무라사끼 경부의 아드님이시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라바야시 생도라면, 아마도…… 아! 일전 오니구모 건의 그 생도로군! 좋네. 둘 다 나와보게.』

       

       겐류 교수의 허락으로 대련이 마련되었다. 나는 도장의 중앙으로 나와서 무라사끼와 거리를 두고 섰다. 겐류 교수가 말했다.

       

       『본 대련에서는 각자의 각성능력은 일체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검술로만 승부하는 걸세. 알겠는가?』

       『예!』

       『예!…… 어? 잠시만요, 선생. 질문이 있습니다만.』

       

       나는 교수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련에 사용되는 검이 교도(敎刀)였기 때문이었다. 스테인레스강으로 만들어진 교육용 검이긴 하지만, 확실히 날이 서 있는 진검이었다.

       

       ‘대련에서는 목검 쓸 줄 알았는데……?’

       

       나는 겐류 교수에게 물었다.

       

       『이건…… 진검이지 않습니까?』

       『그래. 검술과 생도들은 모두 이 검을 쓴다네. 무슨 문제라도?』

       

       내가 교수에게 질문하는 틈을 타, 무라사끼가 비웃으며 말했다.

       

       『흐흐……! 자신이 없나? 무서운가?』

       

       사실, 그랬다.

       

       자신도 없고, 무서웠다.

       

       정도를 조절할 자신이 없었고, 자칫하면 다치게 할까봐 무섭기도 했다. 

       

       …이러니 내가 엄청 잘난 척 하는 것 같지만, 

       

       이건 오히려, 내 실력이 애매하니까 안전하게 휘두르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애초부터 몬스터를 썰어가며 익힌 검술이라, 사람을 상대로는 다치지 않게끔 안전하게 휘두를 자신이 없었다.

       

       ‘진검이라면, 오러를 넣지 않아도 위험할텐데….’

       

       물론, 21세기의 검술 대련에서도 목검보다는 진검을 주로 쓰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날을 죽인 진가검. 탄성이 없는 나무 몽둥이보다는 오히려 탄성이 있는 쇠막대기에 맞는 편이 차라리 덜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뭐 학교 어딘가에 치료 인력이 있긴 있겠지만, 그래도 진검대련이 위험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사스가 갓본제국 클라스! 인명경시는 아주 기본이구나!’

       

       아무튼 뭐, 진검을 쓰는 것이 정 규칙이라면 어쩔 수 없지. 최대한 조심은 하겠지만, 녀석이 다쳐도 내 잘못은 아닌 것이다.

       

       『진죠오니(정정당당하게)……』

       

       겐류 교수는 멀찍이 서서, 나와 무라사끼의 중앙을 향해 손을 내밀고 준비를 알렸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손을 번쩍 들어올려짐과 함께,

       

       『하지메(시작)!』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번개같이 칼을 뽑은 무라사끼가 다다미 바닥을 박차고 이쪽을 향해 쇄도해 왔다.

       

       『우왓! 무라사끼 녀석의 움직임 봐!』

       『빨라!』

       

       무라사끼의 움직임에 누군가가 감탄하며 외쳤다. 확실히, 저 덩치에 비하면 확실히 빠른 움직임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여유있게 발도하고는, 쇄도해오는 무라사끼를 보며 생각했다.

       

       ‘느리군.’

       

       

       

       ***

       

       

       

       각자가 전공수업을 들으러 떠난 뒤.

       

       이유하는 구로베의 강의실 주변을 멤돌고 있었다.

       

       이유하는 백철연이 자신만 감싸돌고 하도 걱정하는 듯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단 괜찮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쩐지 몸에 기운이 없고, 다소 으슬으슬 추운 듯도 한 아침의 증상은, 의무실에서 잠깐 쉬었을 때는 좀 나아졌지만, 구로베 교수의 수업 이후에 다시 심해졌던 것이다.

       

       역시 오후 수업은 결석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교수님께 일러두는 것이 예의겠지.’

       

       이유하의 오후 전공 수업은, 아까의 구로베 교수가 진행하는 마법학 수업. 기왕 결석할 것이라면 미리 일러두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든 이유하는, 다시 구로베 교수의 강의실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강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곧 점심시간이었으니 식사를 하러 떠난 것일까? 그렇게 뒤돌아서 나오려는데,

       

       『리 류까 생도.』

       

       하고, 갈라지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강의실 문간에 서 있는 사람은, 그녀가 찾고 있던 구로베 교수. 그는 이유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괜찮다면, 잠깐 내 연구실로 오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17화까지만 올려둘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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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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