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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네르는 이튿날부터 스스로를 가꿨다.

     

    세수하며 눈물자국을 닦아냈다. 온몸을 평소처럼 꼼꼼히 씻는다.

     

    꼬리도 정성을 들여 닦았고, 정성을 들여 말렸다.

     

     

    혼인 준비를 하나둘 준비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굳이 밖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간혹 홍염단으로 보이는 인족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러다 ‘베르그’라는 자신의 상대를 만날까 두려운 것도 있었다.

     

    최대한 상대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픈 마음이었다.

     

     

    네르는 오후를 하녀들의 마사지를 받으며 보냈다.

     

    몸의 부기를 빼, 더 아름답게 치장하는 준비과정이라 했다.

     

    물론 최근에 먹은게 없어 외려 야위었다 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러며 네르는 그나마 자신을 잘 따라주었던, 하녀 ‘라일라’와 대화를 나누었다.

     

    “네르님, 아프진 않으시죠?”

     

    “…응.”

     

    “그…아. 아니다.”

     

    “…”

     

    네르는 라일라가 자신을 배려하며 입을 조심하고 있다는게 너무도 쉽게 느껴졌다.

     

    며칠간 눈물만 흘렸으니 어찌보면 그럴법도 했다.

     

    네르 또한 아직까지도 그 우울한 마음을 떨쳐내진 못했지만,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라일라가 너무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라일라.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말해도 괜찮아.”

     

    “…”

     

    “이제 나도 준비됐어.”

     

    라일라는 눈을 깜빡이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밝은 표정으로, 네르의 몸을 콕콕 찌르며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분위기를 해맑게 바꿔나갔다.

     

    “네르님! 근데 어제 아프셔서 베르그님 못보셨죠? 정말 잘생기셨더라고요!”

     

    네르는 외모 따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로서도 늑인족으로서 형편없는 꼬리색을 지녔기에, 외모로 상대를 판단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라일라의 의도를 알아차린 만큼, 네르는 어렵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네! 그리고 키도 크시고, 몸도 다부지시던데요!”

     

    “…그래.”

     

    “그리고 또…그리고 또…”

     

    네르는 금세 라일라의 말들이 들려오지 않았다.

     

    외려, 그녀는 어떻게 몇 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야할지 생각중이었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덜 능욕당하며 살아남을까.

     

    어려운 일이었다.

     

    홍염단의 주요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가까운 사이이기도 해야하는만큼, 그 거리감을 어떻게 잡아두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네르는 베르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라일라를 바라보다, 한가지 부탁할 일을 떠올렸다.

     

    “…아.”

     

    “…네르님?”

     

    마사지를 받던 네르는 천천히 상체를 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일라. 나 부탁이 있어.”

     

    그런 네르를 보며, 라일라는 순식간에 열의를 불태웠다.

     

    “아…! 네! 네! 무엇이든지요!”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비하는 느낌이란, 참으로도 불쾌하고 짜증나는 것이었다.

     

    “그…베르그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 좀 더 얻어와줄 수 있어? 단원들에게 물어봐서…평소 모습이 어떤지 알고 싶어.”

     

    “…”

     

    “라일라, 평소의 모습들이야. 그가 보이는 나쁜 모습들도 다 괜찮으니까, 가서 알아와주라.”

     

    “…네르님…”

     

    “마음의 준비는 해야하니까…”

     

     

    이왕 결혼할 거라면, 네르는 먼저 베르그라는 인물을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를 이용할 방법을 알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모습을 먼저 알아둔다면, 무언가를 당했을 때 덜 상처 받을 것이었다.

     

    덜 놀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방어를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라일라는 네르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당연하죠, 네르님.”

     

    “지금 당장 가줘. 할 수 있겠어?”

     

    “네. 그럴게요. 저녁까지는 알아오겠습니다.”

     

    네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제자리에 누웠다.

     

    라일라를 제외한 하녀들의 손이 천천히 네르를 다시 매만졌다.

     

    “….네르님?”

     

    그렇게 몸을 맡기던 중, 라일라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응?”

     

    “그…죄송하고…감사해요. 모든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라일라는 자리를 떠났다.

     

     

    네르는 라일라가 왜 감사와 사과를 전했는지 곧장 알 수 있었다.

     

    사실, 블랙우드 영지내에 있는 늑인족 모두가, 이 용병단의 일로 네르에게 빚을 지는 것이었으니.

     

     

    ****

     

     

    나와 아담 형은 정찰대가 발견한 흔적을 살피러 블랙우드의 영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심각하구만.”

     

    페허가 된 숲을 보며 아담 형이 중얼거렸다.

     

    나도 그와 같은 의견이었다.

     

     

    부서지고 꺾인 나무들. 썩어가는 땅. 지독한 악취.

     

     

    최근 봤던 그 어떠한 규모보다 거대하게 지대가 망가져 있었다.

     

    나무들도 그저 꺾이고 넘어진게 아니라, 짓이겨져 땅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저 무너트리고 지나간게 아닌, 숲을 짓뭉개며 지나간 것이다.

     

    우리가 상대해야할 우두머리의 거대한 크기와 무리의 규모가 흔적으로나마 보이는 듯 했다.

     

    예상한대로 우두머리의 숫자도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못해도 네 마리의 우두머리, 즉 네 집단의 마물 무리를 상대해야했다.

     

     

    간혹 블랙우드 영지에서 쉬고 있다보면, 여기저기서 우두머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미 홍염단의 정찰대원도 한 우두머리를 먼발치에서 살폈다는데, 그런 크기는 처음봤다며 다들 혀를 내둘렀다.

     

    격렬한 전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블랙우드 가문의 장남, 기딘 블랙우드가 나와 아담 형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건 약과에 불과합니다. 한 괴수는 정말…”

     

    아담 형이 땅에 굴러다니는 돌을 툭 차버리며 답했다.

     

    “걱정 마시죠. 우리가 전부 죽여드릴테니까요.”

     

    “믿고 있습니다. 그나저나…부단장님은 이번 전투는 빠지시는 건가요?”

     

    기딘이 나를 보며 물어온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따라오던 바란도 뒤에서 흥미를 보였다.

     

    “새신랑이 다쳤다가는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닐텐데…”

     

    나는 그런 기딘에게 답한다.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전투는 빠지지 않습니다. 제 조는 제가 이끌어야 해서.”

     

    나를 보는 기딘의 눈에 미약한 놀라움이 담긴다.

     

    “…용감하시군요. 이토록 명예로우니 제 여동생도 좋아할 것 같네요.”

     

    역시나 늑인족은 명예와 전투를 신성시하는 종족이었다.

     

    아까의 질문도 사실은 나를 떠보는 의도가 다분했다.

     

    싸움에서 빠진다는 말을 내뱉었다면 무시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큰 상관은 없었지만.

     

     

    기딘은 나를 바라보다, 열의를 불태우듯 갑작스레 제안했다.

     

    “…혹시 저도 이번 토벌에 참여해도 괜찮겠습니까?”

     

    아담 형이 고개를 갸웃이며 물었다.

     

    “네?”

     

    “새신랑도 참여하는데, 제가 빠질 순 없죠. 우리 가문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저도 한 몸 던지겠습니다. 사실 지난 7년간, 저도 우두머리를 꽤나 죽여왔습니다. 이제는 병사가 부족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말입니다.”

     

    기딘은 뿌듯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나는 기딘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그의 제안이 싫어서는 아니었고…늑인족의 귀찮은 명예욕이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저렇게하다 죽은 늑인족을 아담 형과 이전 용병단에서 너무도 많이 봤다.

     

    혹여라도 기딘이 우리와 함께 전투를 나갔다가 전사라도 한다면…상상하기도 싫은 귀찮은 일들에 휘말릴게 분명했다.

     

     

    아담 형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애초에 홍염단 전부를 이끌고 왔기에, 부족한 부분은 없을 것 같네요. 기딘님은 쉬고 계시죠.”

     

    하지만 기딘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담님, 블랙우드의 힘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담 형은 잠시 나를 뒤돌아봤다.

     

    나는 굳이 그에게 눈치를 주지 않았다.

     

    모든 건 아담 형의 판단에 맡길 심산이었다.

     

     

    기딘은 망설이는 아담 형을 보며 묻는다.

     

    “아담 님은 개인적인 우두머리 토벌 기록이 어떻게 되시죠?”

     

    형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조곤조곤 답했다.

     

    “…14마리네요.”

     

    아담 형이 직접 목숨을 끊은 우두머리만 14마리였다. 절대로 낮은 수치가 아니었다.

     

    용병단에 오랫동안 몸을 담궈도, 한 마리의 토벌기록도 올려보지 못한 대원들이 수두룩했다.

     

    “단장님도 높습니다만…저는 26마리입니다.”

     

    아담 형도 순순히 기딘의 기록에 감탄을 표했다.

     

    “…놀랐군요. 그렇게나 많이 토벌하셨을 줄이야… 블랙우드 영지는 꽤나 마물의 습격을 많이 받았나봅니다?”

     

    “하하…그 동안 최대한 버텨보기는 했습니다. 어찌됐건, 우두머리를 잡을 줄 아는 건 용병단만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아담 형이 천천히 턱을 쓸었다.

     

    기딘의 토벌 기록을 들은 이후 확연히 느껴지는 안도감이 달랐다.

     

    객기로 참여하려는 건 아닌 듯 했다.

     

    게다가 저렇게나 많이 잡았다고 한다면 함께해서 나쁠건 없었다.

     

    26마리는 절대로 운으로 잡을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아담 형도 완강히 거절하던 입장을 꺾었다.

     

    그럼에도 형은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기딘님. 하지만 저희 입장도 이해해주셔야합니다. 토벌을 나갔다 기딘님이…뭐…전사라도 한다면. 우리의 입장이 꽤나 난처해지거든요.”

     

    “늑인족에게 전사란 명예로운 일이죠. 블랙우드가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은 없을테니 걱정 마세요.”

     

    “…우리의 용병단에 참여하는만큼, 우리의 규칙을 따라야합니다. 내려지는 명령에도 복종하실 수 있으신가요?”

     

    “저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따르겠습니다. 방해될 생각은 없고요.”

     

     

    기딘이 그 어떠한 말에도 끝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담 형도 결국 결정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같이 출진하시죠.”

     

    기딘은 그제야 씁쓸히 웃으며 밝혔다.

     

    “사실은… 그 괴수들에게 죽어간 병사들의 복수를 해주고픈 마음도 있어서…”

     

    솔직한 그의 말에 아담 형도 더욱 편해진 말투로 답했다.

     

    “이해되네요.”

     

     

    이내 정찰을 마친 우리가 몸을 돌렸다.

     

    곧있으면 네르 블랙우드와의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돌아갈 채비를 하던 중,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오는 질문.

     

    “아, 부단장님.”

     

    기딘이었다.

     

    “부단장님은 토벌 기록이 어떻게 되십니까?”

     

    미약한 기싸움이 걸려온다.

     

    악의는 없어보였지만, 의도는 다분해보인다.

     

     

    “…”

     

    아담 형은 눈동자만 굴려 나를 바라본다.

     

    바란도 마찬가지로 나를 곁눈질 했다.

     

    침묵이 흐른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 답했다.

     

    “…20마리입니다.”

     

    기딘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높은 기록이군요.”

     

    하지만 그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다.

     

    역시나 늑인족은, 명예욕이 강했다.

     

     

    우리는 다시 몸을 돌렸다.

     

    기딘은 제 늑인족 병사들의 곁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각각의 위치로 돌아가 블랙우드 영지를 향하여 복귀를 시작했다.

     

     

    그렇게 말을 몰고 있자니, 아담 형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잘 참았네?”

     

    바란도 미소를 지었다.

     

    “코 좀 눌러 놓으시지 그랬습니까.”

     

    나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이네. 늑인족의 저 느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이크좋아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셨다니 기쁘네요.

    헉. 플러스로 오자마자 구독이 많이 늘었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전개를 보여드리는게 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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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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