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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개새끼가 되어 있었다.

         

       인생이 이렇게 파란만장할 수가 있나.

         

       그날 내 전두엽을 지배했던 새벽 감성이 사라지고 샐녘이 다가왔을 땐 내가 간밤에 뭔 개쌉소리를 늘어놓았는지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설마 하스펠트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축사로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그런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입학원서는 돌아오자마자 바로 폐기했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더 철저하게 행동해야겠다는 자기 피드백을 마친 나는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

         

       스스로 잘못된 점을 개선하려고 하면 뭐 하나. 이미 일주일이 지나갔는데.

         

       하스펠트가 생각을 바꾼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재 정황만 따진다면 날 끝까지 부려먹은 뒤 황궁에 맥없이 팔아먹으려는 계획은 적어도 개강 이후로 미뤄진 것 같았다.

         

       어쨌건 그날 이후로 내 삶의 질은 지수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오전 다섯 시에 일어나서 밤 12시 이후로 퇴근. 당연히 급여는 0이다.

         

       사실 퇴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지난 일주일은 하스펠트 교수와 착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그녀가 계절학기 수업을 들어간 하루 두 시간만이 부족한 잠을 보충할 유일한 기회였다.

         

       그 기회를 빼앗으려는 자가 있다면 설령 신적인 존재라고 해도 한 대 후려칠 생각이었으나….

         

       “야! 너 목에 그거 뭐냐?”

         

       애새끼는 예외다.

         

       쟨 또 왜 찾아왔어.

         

       갑작스럽게 연구실 문을 벌컥 열고 쳐들어온 프레이가 큭큭거리며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프레이는 검지로 내 목에 걸린 쇠고랑을 툭툭 건드리더니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거우니까 건드리지 마라….”

       “아니, 이거 누가 달았냐니까?”

       “교수가 했어.”

       “역시는 역시.”

         

       쇠사슬을 메고 있으면 특유의 철분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별로 좋은 냄새는 아니다.

         

       목 관절에도 좋지 못하다. 고철 덩어리가 목을 조이고 있는 탓에 고개를 돌리는 것도 힘들뿐더러, 무게도 꽤 나갔기에 자세를 잘못 잡기라도 했다간 빗장뼈가 비명을 질러대기 마련이었다.

         

       여기에 사슬 찰그락거리는 소리까지. 편한 정신상태로 작업을 하기에는 최악의 환경이다.

         

       “그러게 목걸이 달 때 저항을 했어야지!”

       “하란다고 그게 마음대로 되냐?”

         

       마법이 아니라 순수하게 육체적인 능력만 놓고 보더라도 하스펠트가 몇 수는 위다. 발버둥 치더라도 제압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스펠트뿐만 아니라 근거리에서 싸우는 배틀메이지는 대부분 그만한 신체능력을 지닌다. 거기에 체술까지 배운다면 마법 없이도 마수를 때려잡을 정도니 나 정도는 생선 가시 바르듯 쳐발릴 수밖에.

         

       “내가 도와줄 거 있어?”

        “없어. 가서 네 할 거나 해.”

         

       얘는 왜 유독 나한테만 들러붙는 걸까.

         

       “시험도 끝났는데 뭘 한다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야. 그동안 고생을 했으면 개강할 때까지 빈둥빈둥 노는 게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구.”

       “넌 꼭 붙을 것처럼 얘기한다?”

       “어허! 난 나를 믿으니까!”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프레이가 나를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여하튼 다음번엔 교실에서 만나자구, 노랭이!”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꼬맹이.”

         

       **

         

       프레이의 격려 아닌 격려를 받은 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게 다른 상황이었으면 목걸이를 차고 다닌다는 게 쪽팔려서라도 밖으로 잘 나오지 않으려고 했을 텐데, 배가 고픈 건 도저히 못 참겠더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시야에 반가운 얼굴이 나타난 건 그 무렵이었다.

         

       “어머, 한동안 안 보이더니.”

       “헤를라인 교수님!”

         

       나는 프레이가 했던 것처럼 헤를라인 교수 앞으로 쪼르르 다가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일주일간 하스펠트가 종일 감시하며 아예 자신의 곁에서 떠날 수 없도록 했었기에 헤를라인 교수와 만나는 건 거의 열흘만이었다.

         

       헤를라인은 내 목에 걸린 쇠목걸이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클라이스가 한 거야?”

       “네. 그렇게 됐어요.”

       “으음…. 아무리 클라이스라지만 너무 뜬금없네. 당장 3년 동안 어디 도망가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잖아. 아무 이유도 없이 너한테 목걸이를 채우진 않았을 거 아냐?”

       “걸렸어요. 여기 지원한 거.”

         

       내 말에 헤를라인이 쓰으읍, 하며 잇새에서 바람 새는 듯한 소리를 냈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헤를라인 교수가 추가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질문이라고 해도 뭣했다.

         

       “혹시 열쇠 홈 견적 좀 볼 수 있을까?”

       “왜요?”

       “기다려 봐. 잠깐만 확인하면 되니까.”

         

       노예가 차는 쇠목걸이는 보통 한쪽에 열쇠 홈이 파여있다.

       

       이 홈에 맞는 열쇠가 없다면 벗을 수 없는 구조였다. 머리를 감거나 씻을 때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노예가 제대로 씻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되겠느냐만은…. 그래도 이틀에 한 번은 씻을 수 있으니까 남보다 낫다고는 해야 하나.

         

       “됐다. 뭐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았어. 그보다도 합불 여부를 알려주는 통보문 주소는 잘 기재해 둔 거 맞지?”

       “네. 헤를라인 교수님 댁으로 발송되도록 전했어요.”

         

       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 축사에는 주소가 없기 때문이었으며, 하스펠트 교수의 연구실이나 저택으로 발송한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분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카데미 입시에 지원한 것만으로도 발작버튼이 눌렸으니 분명하다. 합격하면 날 가두고 예치금도 못 넣게 지랄할 게 눈에 훤하다.

         

       “좋아. 만약 붙으면 내가 당일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 여전히 축사에 살진 않을 것 같은데…. 설마?”

       “네. 하스펠트 교수님 댁에 머무르고 있어요.”

       “어휴, 이런 애한테 집착할 게 뭐가 있다고. 됐어. 알았으니까 마음 차분히 하고 기다리고 있어.”

         

       헤를라인 교수의 격려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내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엘프의 나라로 도망갈 수 있는 루트도 몰래 확보해두기로 했다.

         

       제발 그 계획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절박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선생님, 어서 오세요!”

       “후우, 요새 날씨가 쌀쌀해. 모두 감기 안 걸리게 조심들 하라고.”

         

       에테르와의 해후를 마친 직후. 아카데미 교정을 지나쳐 입학관리팀에 도착한 메리가는 목도리를 벗으며 널따란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마도구로 필기고사의 OMR을 판독하고 있는 교직원과 알바생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원래는 클라이스도 이 업무를 해야 했지만, 며칠 전부터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약속을 파토낸 탓에 메리가가 그녀의 몫까지 대신하게 됐다.

         

       그 급한 일이 뭔지는 불 보듯 뻔하지.

         

       “다음은 17조입니다.”

         

       메리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제 자리를 잡았다.

         

       “100명 분량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이번 입시에서는 재능 충만한 아이들이 많이 지원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완벽에 가까운 공계마도를 다루는 엘프 남학생, 불꽃에 관해서라면 하스펠트 가문 이상으로 진심이라는 살리에르 백작 가문의 장녀. 회장 하나를 통째로 얼려버렸다는 수계마도 사용자와, 스크롤도 없이 골렘을 자유자재로 소환했다가 해체하는 학생 등등.

         

       거기에…. 능력은 출중하나 여자 스캔들을 달고 사는 문제아 제2황자까지.

         

       예상대로 이들 모두의 필기 성적은 상위권을 웃돌았다. 실기에서 과락을 먹지 않았더라면 너끈하게 합격할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엘프 남학생은 모든 판독에서 정확히 90점씩을 맞아 현재 최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틸레트 실기도 실기 다름대로 어려웠지만, 필기고사는 타 아카데미의 추종을 불허하는 난이도를 자랑했다. 한 과목이라도 90이 나온다는 건 그 기수의 동료 마도사들 중에서도 상위 0.1% 이내에 드는 극상위권이라는 뜻이었다.

         

       아마 이 엘프 남학생이 1등이겠지.

         

       그 다음은 화계마도의 2인자인 살리에르 백작가나, 수계마도 개량에 독자적인 공을 세운 엘리예프 자작 영애 정도가 차석을 먹겠고. 제2황자도 내키진 않지만 특별반에 배정되는 건 확실할 것이다.

         

       그 외에 변수가 있다면…….

         

       “저기요! 여기 판독기가 고장 난 것 같아요!”

       “왜 그래요?”

        “이게, 이 학생 OMR이 전부 정답 처리돼서 나와요.”

         

       헤를라인 교수는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른 학생 건 다시 넣어봤어?”

       “어…. 이건 잘 작동하네? 이 학생 것만 이상한 게 아닐까요?”

        “설마 정말로 그런 게…….”

       “에이, 말도 마세요. 우리 학교 입시는 선생님들도 제시간 내 풀기 어려워하는 거 아시잖아요.”

         

       헤를라인이 손사래를 치는 입학처 직원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름.”

       “예? 학생 성함 말씀하시는 건가요?”

         

       에테르.

         

       헤를라인이 실눈을 치켜뜨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잡아내지 못한 알바생은 판독 결과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미리 인쇄해두었던 정답지를 가져와 손수 채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 보통이면 이런 반응이겠지.

         

       헤를라인과 그 알바생을 포함해 네 명이 각 과목을 수동으로 채점하기 시작했다. 헤를라인 교수가 맡은 과목은 기초마도이론이었다.

         

       기초마도이론 중엔 그녀나 하스펠트가 냈던 문제들도 있었다. 각 교수가 낸 문제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달랐는데, 여기서 출제자의 성격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헤를라인 교수 같은 경우에는 얼핏 쉬워 보이면서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으면 오답을 골라버리는 소위 ‘낚시’ 문제를 즐겨 낸다. 그나마 아는 거 나왔다면서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잘못된 선택지를 골랐다가 나중에 예상보다 점수가 깎인 학부생들을 보고 너흰 아직 멀었다며 깔깔거리는게 나름 재밌었다. 누군 그걸 보고 악질이라며 뒷담을 까기도 할 테지만.

         

       반대로 하스펠트 교수는 머리를 미친 듯이 굴려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도전적인 문제를 낸다. 그것뿐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자기가 연구하면서 배운 지식도 열화시켜 입시문제로 내는 게 특징이었다.

         

       헤를라인은 감히 말할 수 있었다. 클라이스가 이번에 낸 50번 문제는 자기도 제한 시간 내에 못 푼다고. 거기에 신경을 쏟느니 마킹 실수를 안 했나 점검하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스윽, 스윽, 스윽.

         

       시험지와 정답표를 대조하는 과정에서 빨간색 함박눈이 내렸다.

         

       그 기조는 후반부인 40번대를 진입해서도 계속되었다. 옆을 흘겨보니 다른 이들도 거의 채점이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47번 맞고, 48번 맞고, 49번. 자신이 낸 2중 함정 문제까지 가뿐하게 맞혔다.

         

       남은 건 50번. 클라이스 하스펠트 교수가 낸 최신 유형의 문제였다. 이걸 해결했느냐 못 했느냐만 확인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선생님, 국어 채점 다 했어요. 전부 맞췄습니다.”

       “수학, 50개 중 50개 정답입니다.”

       “대륙사…! 만점이에요…!”

       “기초마도이론은 어때요?”

         

       탁.

         

       채점 알바생의 물음에, 헤를라인이 펜을 내려놓으며 시험지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폭설이야.”

       

       날이 유독 쌀쌀한 이유가 있었다.

       

       이날, 틸레트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필기 만점자가 등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2/07/31 : 메리가와의 대화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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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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