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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주서연 7살……이 일주일 남은 시점.

       이제 막 드라마는 새로운 씬을 찍기 위해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이제 더 미룰 수도 없겠지.’

       

       스태프들은 그리 생각하며, 힐끗 서연을 보았다.

       멀뚱멀뚱 서있는 서연을 보자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2주 전에 있었던 촬영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여러모로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원로 배우인 정은선이 그런 식으로 지적했으니까.

       

       ‘말을 하지 않으셨나 보네.’

       

       서연은 이쪽을 힐끔거리는 스태프들을 보며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모로 배려해준다는 분위기는 편했지만, 괜찮은가 싶기는 했다.

       

       그날, 수아와 공정태 감독과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선 비밀리에 붙여진 상태였다.

       그 탓에 정은선 배우는 6살짜리 아역을 이유 없이 지적한 인물이 되었다.

       

       아니, 그들이 짐작하는 나름의 이유는 있긴 했다.

       조서희가 아닌 서연이 연화공주의 배역을 맡았기 때문.

       

       그 탓에 다른 스태프들이나 배우는, 앞으로 있을 서연과 정은선의 촬영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고민이 가장 큰 인물은 촬영 감독인 공정태였다.

       

       ‘이제 남은 촬영은 대부분 서연이 나오는 장면들.’

       

       심지어 횟수도 적지 않다.

       서연이 맡은 역인 연화공주는 극의 주연이었으니까.

       

       어린 연화공주가 출연하는 건 단 3화.

       화수로만 본다면 적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촬영횟수로 따져보면 절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16부 드라마를 찍는다고 했을 때, 촬영횟수는 대략 100회.

       즉, 3화를 찍는데 들어가는 촬영회수는 한 화당 6회가 조금 넘는다.

       

       ‘그것도 실수 없이 찍는다고 생각했을 때.’

       

       서연이 찍어야 할 촬영 횟수는 대략 20회쯤으로 잡아야 했다.

       거기다 현재 서연이 찍은 횟수는 단 한 번.

       

       무려 열아홉 번의 촬영을 거쳐야 했다.

       중간중간 다른 씬을 찍는다고 해도, 상당히 힘이 들게 분명했다.

       

       “서연 어머님, 괜찮겠습니까?”

       “…….”

       

       수아는 조금 떨어진 촬영장에서 힘차게 스트레칭하는 서연을 보았다.

       이쪽의 속은 생각도 안 하고 저 태연한 모습을 보라.

       겉만 보자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걱정하는 쪽이 오히려 이상해 보일 지경이었다.

       

       “괜, 찮은…… 것 같죠?”

       “……으음.”

       “후후, 솔직히, 잘은 모르겠어요.”

       

       서연은 자신의 딸이지만, 솔직히 특이한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아기 때부터 눈물을 보인 적이 드물었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당장, 연기를 시작한 것도 수아의 제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의 경우엔 조금 달랐다.

       

       “이번에는 서연이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딸은 참 귀엽긴 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으론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서연을 이렇게 신경써주는 공정태 감독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 정도로 배려해주신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보통 촬영 감독이 아역 하나를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건 드물다.

       배우의 캐어는 어디까지나 개인이 해야 할 몫이니까.

       

       “뭐, 재능있는 배우는 감독에게도 득이 되는 법이니까요.”

       

       당장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지만, 공정태는 서연의 재능은 진짜라고 믿었다.

       정은선 배우가 인정한 진짜 재능.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넓은 감정의 바다를, 저 작은 가슴에 품고 있었다.

       

       공정태는 절대 신인 감독이 아니었다.

       히트작도 몇이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배우들을 보았다.

       

       그중에는 마치 샛별과도 같은 배우들이 있었다.

       마치, 지금 서연과 같이.

       

       ‘조방우 감독이 괜히 눈여겨 본 아이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던 공정태는, 대략 세트장의 준비가 끝난 것 같자 고개를 끄덕였다.

       

       “자, 오늘 씬은, 이제 본격적으로 어린 윤서일과, 어린 이혜월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렇게 공정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 배우들에게 이번 씬에 대한 연기지도를 시작했다.

       어떻게 연기를 해야 되며, 장면을 표현할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

       

       어린 윤서일의 역.

       박정우는 눈앞에 있는 소녀가 내심 신기했다.

       

       ‘긴장을 안 하네.’

       

       박정우는 연기파 배우, 박선웅의 외동 아들이었다.

       나이는 열 살.

       하지만 연기 경력은 5년이나 되는 나름 베테랑 아역이었다.

       

       일일 연속극의 공주님인 조서희도 박정우의 앞에선 평범한 어린 아역일 뿐.

       적어도 같은 나이 대에서 박정우 이상 가는 커리어를 가진 아역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 박정우가 보기에 서연은 처음부터 신기한 애였다.

       오디션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럼, 자 큐 돌아갑니다. ……액션!!”

       

       공정태의 외침과 함께 시작된 촬영.

       어린 윤서일과 어린 이혜월의 연기.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역들의 연기가 펼쳐졌다.

       

       성균관 대제학의 아들, 윤서일과 몰래 궁밖으로 빠져나온 이혜월과의 만남.

       

       「전하, 혹시 연화 공주 전하 아니십니까?」

       「사, 사람 잘못 보셨, 보셧어요!」

       

       어린 나이임에도 진중한 어린 윤서일의 말에 도망치듯 달려가는 어린 이혜월.

       심지어 말하던 도중 혀까지 깨무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공정태는 대본을 살폈다.

       ‘깜짝 놀라, 발음을 흐트러트리며’라는 부분이 확실히 적혀있었다.

       

       대본과 다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해석된 느낌이었다.

       

       ‘그때 연기에서도 느꼈지만.’

       

       자기 나름대로 대본을 읽고 느낌을 잡는 느낌이었다.

       이런 해석은, 감정 연기와는 또 다른 서연의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공정태는 가만히 연기를 지켜보았다.

       둘의 연기는 정말 흠잡을 곳이 하나 없었다.

       

       대사는 물론이고, 가벼운 재스쳐나 동작도 그야말로 어린 윤서일과 연화공주 그 자체였다.

       스태프들도 홀린 듯이 볼 정도였다.

       

       배우들은 작게 감탄하며 웃고 있었다.

       자라나는 새싹들의 연기에 놀란 모양이다.

       

       ‘감정 폭이 전보다, 조금 줄었지?’

       

       오디션에서 보았던, 그리고 정은선과 합을 맞췄던 연기처럼 ‘연화공주’라는 느낌은 덜했다.

       깊은 감정 연기를 물속에 깊이 몸을 빠트리는 거라 표현하면.

       

       이건 물 위에서 수면을 발로 차는 느낌이다.

       

       ‘우스운 건, 그 덕에 오히려 어울린다는 거야.’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건 지극히 옳은 해석이었다.

       

       애초에 연화공주 이혜월은 궁을 빠져나온 시점에서 ‘서민을 연기하는 연화공주’가 된다.

       그러니 행동이나 어투에 다소 어색하거나 감정이 흐트러지는 게 정상이다.

       

       딱 지금의 서연처럼.

       

       “컷! 둘 다 정말 잘했어요! 완벽합니다.”

       

       공정태가 손을 들며 외치자, 두 아역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특히 어린 윤서일 역의 박정우는 내심 놀란 눈으로 서연을 보았다.

       

       ‘전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어.’

       

       행동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보다 옅었다.

       어린 이혜월의 대본은 박정우도 훑어보았다.

       

       솔직히 조금 난이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과 완벽히 합을 맞추었다.

       

       “너, 대단하네.”

       “네?”

       

       이마에 흐른 땀을 닦던 서연은 그런 박정우의 감탄에, 오히려 조금 민망해졌다.

       

       ‘열 살짜리 애한테 칭찬을 받다니.’

       

       아니, 뭐 연기는 솔직히 전생에서 쏙 빼온 거니까 잘하겠지.

       하지만 솔직히 이번에는 살살 흔들렸는데,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게 먹힌 모양이다.

       

       ‘오히려 강하게 모사하는 것보다, 애매하게 가는 게 더 어렵구나.’

       

       처음 안 사실이다.

       서연의 감정 연기는, 진짜 감정을 모사하는 것이기에 항상 ‘완벽’을 목표로 했다.

       그러니 그 수준을 낮춰, 애매하게 불쾌한 골짜기에 걸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심 간단할 거라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확실히 미래의 젊은 연기파 배우는 다르구나.’

       

       여태 박정우와 연기했던 아역들이 존재감을 잡아먹힌 게 아니다.

       물론 서연은 밀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니, 밀리면 안 되지. 쟤는 진짜 열 살인데.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는 서연을 박정우가 의아한 시선으로 볼 때.

       

       “우리는 저 나이에 뭐 했지.”

       “그래도 우리도 나름 조연이잖아, 한잔해.”

       

       다른 배우들이 보기엔 둘 다 그저 괴물 같은 아역으로 보일 뿐이다.

       특히 서연은 연기 경력이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첫 드라마 촬영.

       사실상 도무지 믿기지 않는 수준의 재능이었다.

       설령 전생의 기억이 있다해도 말이다.

       

       정작 서연은 그런 부분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계속해서 다음 씬 이어서 가겠습니다!”

       

       잠시간의 휴식 뒤, 공정태 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방금보다 훨씬 가벼워진 목소리였다.

       

       물론 스태프들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 촬영은 금방 끝나겠다.’

       

       누구든, 퇴근이 빠르면 좋은 법이다.

       

       ***

       

       “우리 딸, 오늘 촬영 어땠어?”

       

       주영빈은 퇴근을 하자마자, 딸의 방에 똑똑 노크하고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째선지 이전에 사준 로봇 장난감과 삐니핑 인형을 앞에 두고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뭐하니?”

       “고민하고 있었어요.”

       “뭘?”

       “삐니핑과 토오봇. 누가 더 강한가.”

       

       주영빈도 그 말에는 조금 고민됐다.

       남아 애니와 여아 애니 중에, 과연 누가 더 강할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진지한 주제였다.

       

       ‘크흠, 가끔 보면 참 특이하단 말이지.’

       

       여아용 장난감은 전혀 관심 없는 것 같으면서 주면 곧잘 가지고 놀고.

       정작 마트에 가면 자연스럽게 마트 카트에 로봇 장난감을 휙휙 던져두고 있었다.

       

       심지어 로봇 장난감은 나름 제대로 장식까지 해두는 게 아주 전문가 솜씨다.

       

       “음, 뭐 별 일 없었다면 다행이네.”

       

       어쨌든 영빈은 딸이 별 일 없는 것 같아 안심했다.

       최근 아내인 수아가 여러모로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너무 늦게까지 놀지는 말고.”

       “네.”

       

       그렇게 말하며 영빈이 문을 닫고 나가자, 그것을 힐끗 본 서연이 뒤로 풀썩 누웠다.

       

       ‘으음, 모르겠네.’

       

       물론, 삐니핑과 토오봇 중 누가 더 강한지 모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진짜 감정 연기라.’

       

       할 수 있냐, 할 수 없냐.

       라고 한다면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 그걸 자신이 조절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 부분은 정은선 배우의 말이 맞다.

       

       본래부터 감정 모사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는 건 미지의 영역이다.

       애초에 스스로의 감정을 마주하는 건, 내게 낯선 일이니까.

       말마따나 내 연약한 어린이 정신에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TS 육신은 무적이지만, 호르몬이나 정신은 또 다를 수도 있는 법.

       신중해서 나쁠 건 없었다.

       

       “흐음.”

       

       서연은 옆에 놔두었던 대본을 들었다.

       거기엔, 서연이 붉은 색으로 체크된 씬 넘버가 있었다.

       

       ‘진짜 감정연기가 필요한 부분은 두 곳.’

       

       씬 넘버 S#24와 S#32.

       이곳 만큼은 진심으로 연기하고 싶었다.

       

       

       이 장면은 다름 아닌.

       어린 이혜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언제나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후원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따로 공지로 이 부분에 대해 자리를 마련하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플러스는 20화 쯔음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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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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