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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간만에 찾아온 휴일.

       

        송수아는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바로 오늘 새벽, 아카데미를 강타한 충격적인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유리는 이미 알고 있으려나?”

       

        핸드폰을 다루는 것도 어려워하는 송수아와 달리, 한유리는 기계를 다루는 것에 아주 능숙하다.

       

        거기에 더해 학생회장이라는 신분이 있었으니 아마 이 소식을 이미 알고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녀의 친구인 한유리가 먼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일 테니, 송수아도 그에 맞춰 보조를 해야했다.

       

        콰앙!

       

        “유리몬! 비상이야!”

       

        학생회 건물로 들어선 송수아가 곧장 학생회장, 한유리가 있을 방으로 들어섰다.

       

        곧장 평소처럼 한유리의 잔소리가 날아들 것이 뻔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니까!

       

        “엑?”

       

        방에 들어선 송수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시야에 펼쳐진 장면이 평소에 보던 것과 너무 달라, 순간 사고가 정지했기 때문이다.

       

        정갈하게 정돈된 학생회장의 방. ‘예약’ 타이머를 맞춘 가습기의 하얀 김. 불이 꺼진 형광등.

       

        “……유리? 한유리?”

       

        위화감 가득한 풍경에 송수아가 한유리를 불렀다. 하지만, 평소 한유리가 앉아있던 고급 의자는 텅 비어있었다.

       

        “빌런이 나타났는데……?”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믿기 어려운 현실에 송수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 (속보)빌런 출현! 자신을 ‘꿈속을 걷는자’라고 밝힌 자의 힘은? ]

        [ (속보)사상초유의 집단 의식 불명 사태. 확인된 피해자만 5,000명 넘어. ]

        [ (속보)빌런, ‘꿈속을 걷는자’, 자신이 원하는 것은 세계의 멸망. ]

        [ (속보)히어로 협회, 비상사태 선언 및 아카데미 임시 폐쇄 결정. ]

        [ (속보)정부, 정신 간섭계 히어로 집결령 선포. ]

       

        송수아의 손에 들린 핸드폰 화면은…… 포털 사이트의 뉴스 홈에 머물러 있었다.

       

        * * *

       

        나는 이 꿈속에서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고있다.

       

        그 무언가가 사물인지, 인물인지, 아니면 어떤 장소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 무언가를 찾는 걸 강렬히 소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

       

        찰랑이는 커피가 든 텀블러와 곱게 종이에 포장된 토스트. 대단히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음식을 슬쩍 내려다 보았다.

       

        두 음식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하다. 느껴지는 건 강렬한 기시감이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던 것처럼.

       

        “으윽!”

       

        그 사실을 떠올리자 갑작스레 호흡이 가빠진다. 이어서 마치 묵직한 돌에 맞은 것처럼, 강렬한 두통이 찾아왔다.

       

        지금의 나는, 마치 각인된 트라우마를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와 비슷했다.

       

        ‘기억’을 떠올리는 간단한 일이 이토록 두렵게 느껴지다니. 분명 ‘놈’이다. 놈의 힘이 꿈속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젠장.”

       

        나는 지금 처한 상황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기묘한 경험을 했다. 잠에 들때면, 기괴한 회색빛 세계에서 눈을 뜬다. 

       

        그 회색빛 세계에는 주민이 별로 없었다. 무대가 히어로 아카데미, 즉 제주도라 현실감을 더해줄 뿐, 확실히 현실과 다른 이질감이 가득했다.

       

        다만 문제는…… 내 ‘자아’가 이 꿈속에 있으면 있을 수록, 점차 닳고 깎여나간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기억이, 감각이 덧씌워진다. 아마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빌런.”

       

        확실한 사실은 이 거짓된 꿈속 세계를 만든 장본인이 평범한 아카데미의 학생도, 현역 히어로도 아니라는 것.

       

        이 꿈은…… 빌런, 그 히어로 역사의 이단아가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슥!

       

        마치 오래된 버릇처럼 양복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곧장 딱딱한 것이 만져진다. 나는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그 물건을 꺼내들었다.

       

        “……후우!”

       

        안주머니에 있던 것은 수첩이다. 갑자기 이걸 꺼내든 이유가 뭐냐고?

       

        ……이미, 과거의 나는 알고있었다. 얼마 전, 불현듯 찾아온 ‘꿈’이 의미하는 것을.

       

        팔락!

       

        수첩을 넘긴다. 첫 장부터 빼곡하게…… 내가 겪었던 일들이 적혀있다.

       

        [ XX년 XX월 XX일. ]

       

        [ 꿈에 회색빛 도시가 나타났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하다. 빌런. 그 미친놈 중에서도 가장 미친 녀석이 원작보다 훨씬 빨리 아카데미에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일기를 작성한다. 내 이름은 임혜성. D급의, 현상거절 능력자다. ]

       

        “…….”

       

        희미하던 기억들이 일시적이나마 형상을 되찾는다.

       

        그래, 나는 이 빌어먹을 공간 속에서 ‘나’를 잃고 있다. 그 사실을 다시한번 곱씹었다.

       

        빌런이 만든 이 가상의 무대에서…… 충실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인형이 되어가는 감각이 참 역겨웠다. 

       

        마치 물에 닿은 눈이 녹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레. 의식이 인형에 동화되는 느낌.

       

        [ 빌런, 꿈속을 걷는 자. ]

       

        [ 꿈을 다루는 초능력자. 과거, 원작에서의 사건 종결 기록을 보면 옛 세대의 Z급 능력자, 즉 랭커였다고 한다. ]

        [ 문제는 현시점이 원작의 극초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연히 히어로의 ‘정신 방벽’ 강도도 낮기에, 어마어마한 대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 ]

       

        과거의 나는 일이 꼬일대로 꼬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모든 것이 원작의 후반부에 등장할 놈, 그러니까 빌런, ‘꿈속을 걷는자’가 현시점에 출몰한 덕분이었다.

       

        원작, <ㅁㅁㅁ>에서 놈이 까다로운 이유는 간단하다. 

       

        놈은 우리가 현실이라 칭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놈이 만들어낸 가상세계, 그러니까 이 꿈 안에서 처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작?”

       

        그러고 보면, 원작이 뭐지? 이름이 따로 있던 것 같다. 풀네임은 엄청 길고, 보통 세글자로 줄여서 부르던 것 같은데.

       

        “…….”

       

        팔락!

       

        다시 한번 느껴지는 위화감에 서둘러 수첩을 넘긴다.

       

        [ XX년 XX월 XX일. ]

       

        [ 원작의 이름은 <히어로지만 사랑할 수도 있잖아?>, 줄여서 <히사있>이라 칭한다. ]

        [ <히사있>의 아포칼립스급 빌런, 꿈속을 걷는자는 ‘정신 방벽’이 취약하고, 힘에 강렬한 욕망을 가진 자를 ‘호스트’로 삼는다. ]

       

        [ 이 회색빛 세계는 ‘호스트’가 소망하는 꿈이다. ]

        [ 나는 지난 며칠간, 꿈을 꿀때마다 ‘호스트’를 찾았으나 실패했다. ]

        [ 따라서 얼마 뒤. 사건에 휘말린 ‘등장인물’은 호스트의 꿈속에 갇히게 될 것이며, 천천히 기억을 잃을 것이다. ]

       

        [ 다음 인물을 조사에서 제외한다. 김인만, 최영웅, 안젤리카. ]

        [ 다음 인물을 유력한 ‘호스트’ 후보로 확신한다. 임하늘, 임소미, 한유리, 양하나, 송창욱. ]

       

        [ ‘등장인물’은 모두 회색빛 도시에서 눈에 띄는 ‘빛’을 품고 있다. ]

       

        [ 기한 내에 호스트와 빌런의 연결을 끊어내지 않으면 이 거짓된 세계에서 나갈 수 없다. 한마디로 게임 오버다. ]

        [ ‘호스트’와 ‘빌런’의 동화를 해제한 뒤, 빌런을 처치하면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

       

        [ 절망에 빠진 미래의 내게 전한다. 힘내라. ]

       

        “……미친놈 아니야?”

       

        일기를 쓴 자랑스러운 과거의 나를 향해 걸쭉한 욕을 내뱉었다.

       

        아무리 내가 이 사건을 해결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도…… 이건 그냥 자기 스스로를 놀리는 것 아니냐고.

       

        꼬르륵.

       

        한참이나 수첩을 멍하니 보는데, 배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털썩.

       

        벤치에 앉은 나는 집을 나서며 챙겼던 커피와 토스트를 먹기했다. 

       

        역시, 생각이 복잡할 때는 더더욱 배를 든든히 채워야하는 법 아니겠나.

       

        그러면서 한손으로 들고있던 수첩을 읽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호스트’를 찾아, 빌런과의 동화를 해제하는 것.

       

        ……절로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등장인물이 ‘빛’을 품고 있다고 했으니 등장인물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

       

        어느 세월에, 또 어떻게 그들을 분별하고 ‘호스트’를 찾는단 말인가?

       

        “그나마 유력한 후보를 추려서 다행인데.”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과거의 내가 유력한 후보들을 몇몇 택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 정보가 없었다면, 분명 나를 비롯한 현실 세계의 ‘등장인물’은 꼼짝없이 빌어먹을 꿈속의 주민이 되었겠지.

       

        삐리리리리!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대뜸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슥 꺼내서 화면을 확인했다.

       

        [ 아내 ]

       

        “…….”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내게 커피와 토스트를 챙겨준 어여쁜 아내의 전화다.

       

        “여보세요?”

        ‘여, 여보.’

        “……뭐야. 무슨 일이야?”

       

        잔뜩 겁에 질린듯한 긴장된 목소리.

       

        삽시간에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우리 아이, 하, 하늘이가…… 나 때문에. 흐윽!’

        “침착해. 침착하게 상황을 알려줘. 내가 당신과 아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두려움에 떨며 슬피 우는 아내를 진정시켰다.

       

        혹여나 이에 대한 해답이 수첩에 적혀있을까?

       

        팔락!

       

        나는 핸드폰을 붙든 채로 수첩을 다음장으로 넘겼다.

       

        “……!”

       

        그런데.

       

        다음장의 첫줄에, 믿기지 않을 내용이 적혀있었다.

       

        [ D급의 <현상 거절> 임혜성. 즉 나는, 아내와 아이가 없다. ]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누구인가?

       

        지금 나와 슬픔 가득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이 사람은 누구지? 그리고…… 우리의 아이라는 하늘이. 즉 임하늘은?

       

        떨리는 눈을 아래로 내렸다. 작은 글씨가 그 밑에 더 있었다.

       

        [ 임하늘, 임소미는 <히사있>의 등장인물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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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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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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