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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이상한 애다.

        

       앨리스가 실비아를 처음 보고 한 생각은 그런 생각이었다.

        

       사실 겉보기로는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 없다.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있는 실비아는, 그저 말 없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예쁜 여자아이였을 뿐이니까.

        

       만약 짧게 대화를 섞는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말투가 조금 딱딱하긴 하지만 그래도 깍듯한 존댓말을 사용하고,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자기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아이니까.

        

       하지만, 대화를 길게 나눌수록, 그리고 그 행동을 옆에서 보고 있을수록, 이상한 것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실비아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앨리스와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이라 첫 만남이 정확하게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실비아는 그 어린 시절의 불분명한 기억 사이에 불쑥 끼어들어 어느새 앨리스와 말을 섞고 있었다.

        

       아니지, 정확히는 앨리스가 일방적으로 말을 걸면 실비아가 대답하는 형태였다.

        

       루카스의 말에 따르면, 앨리스는 아무리 말을 걸어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실비아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실비아와 마주치면 주변 어른들의 뒤에 숨고, 실비아가 근처에 있을 때는 마치 말이라도 걸까 두렵다는 듯 멀리 도망가곤 했다는 것이다.

        

       실비아를 무서워해? 내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사실 별로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앨리스는 지금도 실비아를 조금 두려워하고 있었으니까.

        

       황제의 적통은 앨리스 한 명이다. 팬그리폰 왕조의 피를 제대로 이어받은 이는, 다른 친형제, 친자매, 심지어 이복형제나 자매도 없는 앨리스가 이어받는 것이 옳았다. 만약 현 황제인 아서 3세가 고아들을 들여 자기 최측근으로 만드는 취미가 없었다면 정말로 그랬을지 모른다.

        

       피를 잇지 않았더라도 팬그리폰은 팬그리폰.

        

       그 옛날,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모든 질서가 재창조되던 시절, 기형이라는 이유로 절벽에서 버려진 한 아이가 온갖 뒤틀린 짐승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다. 사람의 몸으로 그리폰 무리를 제압하고, 가장 큰 그리폰의 등에 타고 다니던 그 아이는 후에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경의를 담아 그를 ‘그리폰의 우두머리’라고 불렀다.

        

       그 뜻이 담긴 이름이 팬그리폰.

        

       물론 그것이 신화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현대에도 그리폰은 남아있었으나 길들이는 것에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생포하거나 사냥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 등에 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폰은 끝까지 반항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그리폰을 길들였다는 이야기가 신화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애초에 그리폰이라는 영물은 무리를 지어 살아가지도 않고.

        

       하지만 그런 신화를 가진 제국이었기에,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제국 의회, 혹은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팬그리폰의 시선으로는, 그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은 황제로서 가진 능력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피가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을 계승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황제는 기꺼이 자기 자리를 그 사람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렇기에, 실비아가 두려웠다. 신화 속의 그 무시무시한 초대 황제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실비아는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눈앞의 일들을 순식간에 처리하곤 했으니까.

        

       그렇다고 실비아가 그리폰의 위에 올라타는 상상은 하기 힘들었지만.

        

       그리고 그렇기에, 실비아는 이상한 애였다.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도, 그리고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자기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일은 없을 거라는 듯 행동했다. 언제나 진짜 황녀는 앨리스고, 자기는 그저 옆에서 그런 앨리스를 돕는 자라는 것을 몇 번이고 말했다.

        

       처음에는 본심을 숨기기 위한 것인가 고민도 해보았지만…… 음, 글쎄. 적어도 지금의 실비아는 말과 반대되는 본심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정치에서 상대의 겉모습만 보고 의중을 판단하는 것만큼 최악의 실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앨리스가 보기에, 실비아는 앨리스 근처에 있을 때는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 무표정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의붓형제의 말은 그대로 무시하거나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일이 많은 실비아가 앨리스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앨리스가 불안해 할 때마다 응원해주고, 슬퍼하면 위로해주고. 모두 억양에 큰 차이가 없는 감정 없는 말투였지만, 앨리스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

        

       그것도 모두 연기일까?

        

       그저 앨리스가 황녀라서, 그 앞에서 기계적으로 행동할 뿐일까?

        

       별것도 아닌 연기에 앨리스가 속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래, 만약 그조차도 모두 연기였다면, 애초에 실비아는 황제가 될 재목이었던 것이리라.

        

       *

        

       어떻게든 왕국까지 따라와 버렸지만, 앨리스 팬그리폰은 지금 상황을 격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실비아를 총애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앨리스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인재로서 총애하는 것과 자식으로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직 국무는 고사하고 황태녀 지정도 받지 못한 앨리스와는 다르게 실비아는 이미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을 척척 해내고 있었다.

        

       그 실비아 본인은 정작 앨리스를 언제나 차기 황제로 대우해주었지만…… 그렇다고 조바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차기 황제를 결정하는 이는 실비아가 아니라 앨리스의 아버지인 현 황제였으니까.

        

       “또 혼나겠네…….”

        

       아버지는 종종 실비아를 불러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해 물었다. 그때마다 앨리스는 슬쩍 끼어들어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자기도 그걸 어설픈 흉내를 내거나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의 불호령.

        

       마구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거나 하시지는 않았지만, 황제답게도 그 말에 담긴 무게는 무거웠다. 앨리스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주눅 들었다.

        

       그리고 정작 그럴 때마다 위로해주는 사람은 실비아였다.

        

       실비아의 말이 언제나 진심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실비아보다 못 본 시험을 두고 실망하면 실비아는 자기가 운 좋게 몇 문제 더 맞혔다고 해주곤 했지만…… 사실 실비아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앨리스도 잘 알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실비아는 만점도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비아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앨리스는 마음이 들뜨곤 했다.

        

       그토록 능력 있는 이가 앨리스에게 ‘차기 황제’라고 해주는 것이 기뻤다. 황궁 내에 마땅히 친구라고 부를 존재가 없는 앨리스에게 실비아는 경쟁자이자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혼나고 나면 실비아는 앨리스를 위로해주겠지.

        

       그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실비아의 말대로 왕국에서 내어준 호텔의 최고급 객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웠다. 호위 병력은 루카스와 제이든이 핵심인데, 솔직히 앨리스는 두 사람이 실비아보다 훨씬 껄끄러웠으니까.

        

       혹시 시간이 남으면 실비아한테 같이 왕도를 돌아다녀 보자고 해볼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똑똑.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황녀님. 잠깐 실례해도 괜찮겠습니까?]

        

       “어, 어!?”

        

       그 말에 앨리스는 벌떡 일어났다.

        

       “왜, 왜 그러세요!?”

        

       그리고 당황해서 외쳤다. 주변에 실비아나 다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맞이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밖에는 제국 근위대가 있겠지만— 아니지, 지금 문을 두드린 이가 바로 제국 근위대겠지. 황녀를 직접 호위하는 병력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방 안에 누구도 없는 상태에서 손님을 맞아본 적은 없었다. 출발 직전이 되어서야 멋대로 탄 열차였기에 전속 메이드도 미처 타지 못한 상태였고.

        

       [벨부르 왕국의 샤를로트 드 벨부르 왕녀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와, 왕녀— 흡!”

        

       자기도 모르게 경악해서 비명을 지르려던 걸, 앨리스는 순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격으로 따지자면 벨부르 왕국의 왕녀는 팬그리폰 황가의 황녀와 동등한 수준은 아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팬그리폰의 ‘진짜’ 황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온 모양이었다. 황녀와 왕녀 모두 실무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친교를 다질 수는 있을 테니까.

        

       귀족 간의 친교는 이후에 실리로도 이어질 수 있다. 왕가와 황가라면 더 그렇다. 일면식도 없는 이보다는 얼굴이라도 아는 이와 말을 더 편하게, 자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실무 경험은 없어도 나름대로 정치 수업을 받은 앨리스는 벨부르 왕녀의 정보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었다.

        

       앨리스처럼 무남독녀. 앞으로 왕좌를 물려받을 가능성 큼. 그리고 앨리스나 실비아와 동갑.

        

       “……후우.”

        

       찾아온 이유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왕녀를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몹시 긴장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직접 넘겨야 했다.

        

       앨리스는 아까 실비아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언제나 당당하게, 황좌를 이어받을 적통답게.

        

       얼른 옷을 내려다보았다. 주름진 곳은 있는지, 혹시라도 얼룩이 있는 부분은 있는지. 다행히 조금 구겨진 부분은 있었지만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편다. 고개를 살짝 들어 언젠가 보았던 공작가 여인을 따라 했다.

        

       그리고 표정은 실비아처럼.

        

       몇 번 더 숨을 가다듬은 뒤, 앨리스는 입을 열었다.

        

       “네, 들여보내 주세요.”

        

       물론 심장은 실비아만큼 침착하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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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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